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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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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 저녁, 심야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11시가 조금 넘습니다.
  아이들이 티브이를 틀어 놓고 있을 때가 있어 가끔 쳐다보면, 그 시간대에 방송되는 프로그램 중에 “부부클리닉 - 사랑과 전쟁”이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보신 분들이 계실텐데 대개 이야기는 비슷합니다. 두 남녀가 만나서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했습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반대까지 뿌리치고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됩니다. 결혼의 첫 마음이 변함이 없어야 하는데 2년, 3년, 5년 지나면서 사랑이 조금씩 식어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부부가 갈등을 하게 되고 결혼에 대해서 후회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대개 보면 제 3자가 개입함으로써 갈등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시부모와의 관계 때문에 부부간에 갈등이 생깁니다. 장인, 장모의 관계 때문에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시동생이나 시누이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함께 살면서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단란하던 가정에 식구가 많아지니 갈등이 생깁니다. 거기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결혼 전에 알고 있던 이성친구나 옛 애인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서 삼각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갈등이 본격적으로 진전되게 됩니다. 그리곤 다툽니다. 그리곤 서로를 향하여 말합니다. “당신의 사랑이 식었어. 당신이 변했다.” 상대방은 “내가 변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변한거야.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구.”하면서 맞받아치고 다투다가 결국은 판사 앞에 가게 됩니다. 판사가 그들을 놓고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고 이혼 조정을 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의 제일 마지막에는 지난 주 방영되었던 내용에 대한 시청자들의 투표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혼 찬성, 이혼 반대에 시청자들이 표를 던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부부가 살고 안 살고를 어떻게 시청자 투표로 결정합니까? 어찌 보면 우리 일상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 가정이 얼마나 사랑의 위기를 겪고 있는지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 이혼한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경우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가정, 즉 어머니가 없는 가정에서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의 학업을 도와야 하고 유치원이나 초등학생인 경우에는 뒤치닥꺼리도 많고 어려움이 많다고 하고, 그런 가정이 약 24만 가정이나 된다고 합니다. 처음엔 그 가정에도 뜨거운 사랑으로 결혼을 했겠고, 어느 날 닥쳐온 위기가 그들을 갈라 놓았을 것입니다.

  어떤 남녀가 펜팔로 사귀게 되었답니다. 편지가 수없이 오고 가면서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고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서로 만나서 얼굴도 보고 대화도 하자고 해서 첫 대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둘은 큰 기대를 가지고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이 여자가 큰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백마를 탄 근사한 청년이 나타나리라 기대했는데 키도 안 크고 생긴 것도 별로인데 더 큰 문제는 한 쪽 눈이 실명된 애꾸눈을 가진 자였습니다. 이 여자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곤 화를 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진작 말했어야지. 이걸 속이고 나랑 편지를 했어요?” 남자가 하는 말이 “내가 언제 속였어요? 몇 월 몇 일 편지에 내가 애꾸눈이란 걸 말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언젠가 먼 발치에서 당신을 보는 순간 나는 한 눈에 반했습니다.’ 라고 분명히 썼습니다.” 이해를 못해서 문제지 사실은 사실대로 쓴 말입니다. 한 눈에 반했다! 우리는 대개 남녀가 만나서 한눈에 반했다는 말을 씁니다. 젊은이들 말에 의하면 필링이 오는 것입니다. 뭔가 가슴에 꽂힙니다. 그래서 교제하게 되고 결혼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뜨거웠던 첫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지속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보통 학자들이 말하기론 첫사랑의 감격, 결혼 당시의 뜨거웠던 감정은 2년을 채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2년이 되면 싸늘하게 식어버린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젊은 남녀들을 앞에 놓고 결혼 주례를 할 때 마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결혼은 결코 사랑의 완성이 아닙니다. 결혼은 사랑의 시작입니다. 지금부터 더 사랑을 만들어 나가야지, 우리 사랑은 끝났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날마다 신선한 사랑의 샘을 길지 않으면 여러분은 결혼의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고 권면하곤 합니다. 뭐 너무 좋아서 그 얘기가 귀에 들어올런지는 모르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대로 5년, 10년이 지나면서 권태기라는 것도 경험하게 됩니다. 처음엔 좋은 것만 보이는데 나중엔 단점만 크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사랑하면 장님이 되기 때문에 바로 볼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뜨거웠던 사랑의 감격을 점차 잃어버리고 냉냉한 심정으로 돌아간 한 교회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예수님께서 그 마음에 성령으로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도록 명령하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오늘 에베소 교회는 주님께 칭찬도 받고 인정도 받은 교회입니다. 특별히 에베소 교회라는 말은 신길동의 영신교회란 뜻이 아니고 에베소라고 하는 거대한 도시에 있는 교회를 말합니다. 에베소 지역에 있는 교회에 보낸 편지가 바로 에베소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시는 우상숭배가 많던 도시입니다. 아데미 신전이라고 하는 유명한 여신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거기 와서 머리를 숙이고 제사를 지내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런 지역 속에서 에베소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였지만 이단과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비판 의식은 발전했지만 결국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사랑하는 심정으로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일곱 교회에서 ‘7’은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과거에 있던 교회, 현재의 교회, 미래에 있을 교회를 총망라해서 오늘 주님은 교회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바로 우리 영신교회에 주시는 말씀,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의 관심은 역시 교회의 성장에 있습니다. 1970년대, 80년대, 90년대에는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조건이 구비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뜨겁게 기도해야 성장한다, 말씀이 좋은 교회가 성장한다, 전도를 많이 해야 한다, 예배당이 훌륭해야 성장한다는 등의 이유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는 교회가 성장하는 조건은 딱 한가지 만 말합니다. 건강한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살아있는 유기체요 생명체입니다. 마치 가정에서 건강하게 잘 크는 아이들을 보면 잘 자고 잘 먹고 잘 뛰어 놉니다. 그냥 내버려 두어도 잘 큽니다. 그러나 뭔가 병 든 아이들, 어딘가가 부족한 아이들은 잘 자라지 않습니다. 그것은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21세기의 화두요, 관심입니다. 저는 우리 영신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지난 주간, 릭 워렌 목사님이 한국에 오셔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끼치고 가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다섯 가지 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교회를 이야기하면서, 우린 40일 캠페인을 통해서 이미 이 다섯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예배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두 번째는 교제입니다. 세 번째는 사역입니다. 서로의 섬김이 있어야합니다. 네 번째로는 훈련입니다. 열심히 말씀을 통해 훈련받는 교회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가 바로 전도입니다. 불신자에게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증거 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요, 성장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가 잘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는 교회가 참 좋은 교회요, 훌륭한 교회요,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에베소 교회는 주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 예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성도 간에 사랑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두 가지가 부족할 때 주님은 책망하십니다. ‘너희가 첫사랑을 잃어버렸구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첫사랑을 상실할 때 위기가 오는 것입니다. 앉아서 예배는 드립니다. 헌금도 습관대로 드립니다. 그러나 기도를 해도, 말씀을 들어도, 헌금을 드려도 첫 사랑을 잃어버렸기에 감격이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했으니까 한 가정이고 한 가족이니 살아가는 것이지 “당신 없으면 난 절대 못 살아.” 이런 고백은 결혼 10년 후에는 별로 안 하는 모습을 봅니다.  내 부인이고 남편이라니까 그런 줄 알고 사는 것입니다. 싸늘하게 식어져버린 우리의 가정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교회를 향해서 뜨거운 사랑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교회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 다섯 가지를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를 붙잡고 계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1절 말씀을 읽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아멘. 
  주님의 모습을 보니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있다고 했습니다. 일곱별은 일곱 개의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들을 일곱 별로 이야기합니다. 또 한 가지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의 일곱 금촛대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오늘 교회에 임재해 계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성령으로 교회와 함께 하시고 이 자리에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옆에 분과 얘기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당신의 몸 된 교회에 늘 임재해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교회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일곱별을 붙잡고에서 붙잡다는 말은 놓을 수 없을 정도로 꽉 붙잡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교회를 꼭 붙들고 계십니다. 이 교회를 붙드시고 잡고 계시는 분이 주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교회 역사를 돌아볼 때 마다 위기 속에서 늘 주님이 함께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도자를 통해서 나아갈 바를 인도받게 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인간적으로 교회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도 불신앙적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교회가 어떻게 하려고 그래? 큰일 나겠네.” 아닙니다. 우리가 걱정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순종하며 참으로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왜 입니까?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주인 되신 주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책임지시고 이끌어 가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이끌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끌어 가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떠받들고 섬기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 목적에 충실한 균형잡힌 교회가 될 때 주님은 이 교회를 통해서 영광 받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오늘 주님의 모습은 교회의 수고를 인정하시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아멘.

  오늘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네 행위와 네 수고와 인내를 안다고 하십니다. 사도바울이 와서 에베소 교회를 개척했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사도 요한이 그 교회를 목회했습니다. 그러다가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서 거기서 기도하다가 이런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개척 초기부터 그 도시의 많은 반대자의 핍박과 공격 속에서도 굳건히 서 왔습니다.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수고와 그들의 인내를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헌금하고 기도하고 애쓰십니다. 주님은 그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그것을 인정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섭섭해 할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미 여러분을 알고 계시고 칭찬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준 것도 결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부의 엽전 두 닢도 주님은 기억하고 칭찬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사람의 인정을 너무 목말라 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다 알고 계신다는 맘으로 우리는 교회를 섬겨가야 합니다.
  또 보십시오. 주님은 오늘 책망의 말씀도 있지만 인정과 칭찬을 먼저 하십니다. 내가 첫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네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내가 너를 안다고 칭찬하시고, 격려하셨습니다. 여기에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도 가정에서 아이들 책망할 때도 칭찬 세 가지는 하고 하나 책망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책망부터 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성적표를 가져왔습니다. 잘한 것도 있는데 못한 것도 있습니다. “아이구, 이 놈아. 이걸 성적표라고 가져오냐!”라는 말이 먼저 나갑니다. 그러나 “너 보니까 국어가 80점이고, 수학이 85점이고 참 잘했다, 그런데 음악은 좀 부족하네. 그것만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참 좋겠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칭찬 먼저 받고 지적받으면 괜찮거든요. 의욕이 생깁니다. 오히려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의욕이 생깁니다.

  여러분, 교회에서도 종종 어떤 분들은 교회의 문제를 가지고 따지듯이 항의하는 분들 있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잘하는 게 뭐 있습니까?”하며 뭐도 부족하고, 뭐도 부족하고 주욱 얘기 합니다. 저는 동의가 안 됩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게 많거든요. 오히려 “목사님 우리 교회는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어린이집도 좋고, 방과 후 교실도 좋고... 그런데 요거 하나가 부족한 것 같아요 요것만 보완하면 더 좋은 교회가 될 것 같은데요...”라고 이렇게 말하면 얼마나 예쁘겠습니까요? 그런데 조그마한 단점을 침소봉대해서 전체인양 얘기하면 안 됩니다. “많이 애쓰시는데요. 요거는 미처 못 살피시는 것 같아요라고 얘기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렇구요. 이웃에서도 그렇고 부하를 다룰 때도 그렇습니다. 먼저 칭찬하십시오. 두 가지 쯤 칭찬하시고 한 가지 지적하십시오. 그래야 평균입니다. 그러나 지적부터 하면 누구나 마음에 부담이 되고 시험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의 수고를 알고 인정하시고 칭찬하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첫사랑의 상실을 책망하시는 주님이십니다.

  3절, 4절 말씀을 읽습니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아멘.

  주님은 칭찬하셨습니다.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다 안다, 그런데 너희에게도 책망할 것이 있으니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첫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안타까움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에베소 교회가 이단과의 치열한 싸움을 했습니다. 교회 안에 이단이 들어오면 안되거든요. 우상숭배자가 들어오면 안되거든요. 그러니 그들은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보수주의자가 되고 비판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일단 사람만 보면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 사랑으로 누구든지 환영하지 못하고 일단은 시험해 보고 의심해 보고 비판해 보고 하는게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지키다보니 문제는 사랑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인 것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 사랑을 상실한 교회 여기에 위기가 있습니다. 진리를 잃어버린 사랑은 무모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 없는 진리는 말 그대로 질리는 얘기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뭐라고 합니까? 내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너 자신을 불태우는 희생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옆에 계신 분께 얘기하겠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 때문에 여기에 온 것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껍데기만 남은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사랑을 잃어버립니다. 집사는 얻었는데 권사는 얻었는데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신앙생활 10년, 20년 하다 보면 자칫하면 사랑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전통만 남아있고, 규칙만 남아있고 비판만 남기 쉽습니다. 아무리 고래등 같은 집을 짓고 산들 사랑이 없는 부부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시체입니다. 초가집에 살아도 사랑이 있는 부부가 행복한 것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가정,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들이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교회의 마크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사랑을 마땅히 보여 주어야 합니다.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 성도는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율법사가 와서 질문합니다. 제일 되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옆의 분께 묻겠습니다. “첫사랑을 간직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처음 예수 믿을 때의 감격이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처음 예수 영접했을 때 교회 오면 너무 좋고 찬송만 부르면 눈물이 나고 기도만 해도 감격이 벅차오르던 그 감격을 갖고 계시냐는 질문입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랑을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요?

  오늘 성경에 소개됩니다. 5절 말씀 읽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아멘. 

  촛대를 옮기곘다는 말은 너를 심판하겠단 말씀입니다. 터키에 성지 순례를 가보면 에베소 교회는 없어져버렸습니다.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터만 남아있습니다. 그들이 첫사랑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 교회는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첫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주님의 권면이요 명령입니다. 너희는 먼저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먼저는 생각하셔야 합니다. 내가 어디서 사랑을 잃어버렸는가 생각하셔야 합니다. 어디서부터 우리 가정이 위기가 왔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어디서부터 우리 교회 공동체의 사랑이 상실되었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remember 그런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즘 어떤 결혼 상담 전문가들은 추억여행이라는 것을 권합니다. 부부가 냉각기가 되고 사랑이 싸늘하게 식을 때 제 2의 허니문 여행을 하든지 아니면 처음 사랑했던 장소를 찾아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 사랑을 고백할 때 처음 손을 잡았던 장소, 처음 키스했던 장소 거기를 가서 그 때를 회상해 보라고 말입니다. 우리 집사님들은 어디서 처음 손을 잡았나 모르겠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이 식었을 때 그 장소를 가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의 사랑을 다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 얘길 듣고 가만히 우리 집사님하고 처음 데이트 한 곳이 어딘가 생각해 보았더니 대구 효목동 동촌 구름다리 위였습니다. 휴가 때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생각을 합니다. 추억여행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무엇입니까?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 처음 사랑의 행위를 계속 하라는 것입니다.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중요합니다. 어디서 멀어졌는가 생각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처음 은혜 받은 장소 한번 찾아가 보십시오. 지금의 내 모습은 그 때의 모습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우리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부부가 결혼 10년 만에 이혼에 합의를 했습니다. 이혼하게 된 배경은 그렇습니다. 결혼해서 너무나 사랑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때 부부는 서로 원망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좀 돈이 많았더라면 미국까지 가서 고쳤을텐데... 당신이 돈을 못 벌어서 그렇다고 아내는 남편을 원망합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당신이 좀 아이를 잘 돌보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하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부부는 점점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해서 이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혼을 하려고 모든 짐을 서로 나누는데 옷장 위를 정리하다가 뭔가 선반에서 툭 떨어지는게 있었습니다. 처음 아기를 낳았을 때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습니다.  부부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처음 아기를 낳았을 때의 모습을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행복했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둘이 품었던 꿈도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 이혼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반성을 하게 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해의 손을 내밀게 되고 다시 부부가 결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첫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 어디로 가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리셨습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채찍을 맞으시고 우리가 당해야 할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는 다시 그 분에게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 주님과의 대화를 회복하십시오. 부부간에도 대화한다고 앉으면 화만내고 싸우는 부부가 있습니다. 진짜 대화한다고 해도 마음 속의 대화가 아닙니다. 기껏 한다는 말이 “개 밥 줬어? 병원 데리고 갔어?” 부인이 서운합니다. 어떤 남편은 난초를 너무 좋아해서 출장 간 동안에 물 안 줬다고 싸웠다고 합니다. 진정한 대화는 전기세 냈니, 공과금 냈나, 아이 학원 갔다 왔는지 등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것이 대화입니다. 부부간에 그런 대화가 단 5분도 없습니다. 그러니 말 아예 안하고 사는 것입니다. 말하면 싸우니까요. 그런 집의 대화는 대 놓고 화내는 게 대화입니다.

  우리 주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 얼마나 대화하고 계십니까? “주님 저 너무 힘들어요. 주님 사랑해요. 주님 오늘 나 마음이 아파요.” 이런 대화를 하루에 10분, 20분  하십니까? 대화가 끝나면 냉각기가 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 성경을 하루에 얼마나 읽으십니까? 성경을 읽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주님의 사랑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혼자 찬송 불러보셨습니까? 주님의 사랑에 너무나 감격해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부르다가 울어보신 적 있으세요? 어떤 집사님은 찬송은 잘 안 부르는데 유행가는 부른답니다. 무슨 노래 부르냐고 했더니 ‘울려고 내가 왔던가’ 를 부른답니다.

  주님과의 대화를 회복하십시오. 십자가 앞에 나가서 주님의 사랑을 바라보십시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나를 위한 못 자국, 창 자국을 더듬어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주님의 사랑을 회복하시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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