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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빈들의 감사 기적 (마 14: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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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난처”라는 책을 낸 코리 텐 붐이란 여사가 있습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나치 독일에 의해서 수용소에 갇혀 많은 고난을 받고, 또한 많은 간증을 남긴 위대한 신앙인입니다.
  그녀가 자매인 베시와 함께 악명 높은 한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용소는 벼룩이 얼마나 많았는지 벼룩 때문에 잠을 잘 수 없고 견딜 수 없었습니다. 코리의 입에서 벼룩 때문에 불평이 나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언니 베시가 말하기를 “우리 감사하자. 벼룩 때문에도 감사하자.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감사해야지. 우리가 불평하면 되겠니?” 코리와 베시는 매일 아침마다 기도할 때 벼룩에 대해서도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머무는 이 수용소가 힘든 곳이지만 이렇게 많은 벼룩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도 참으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늘 하던 대로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찬양을 했습니다. 보통 다른 수용소에 있을 때는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을 경비병들이 못 하도록 금지했는데 몇 날이 가도 경비병이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다.’ 하고 열심히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수용소에 그들이 거한 감옥에 너무 벼룩이 많다고 소문이 나서 아예 경비병들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그들은 얼마든지 마음 놓고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벼룩에게 감사하는 것 그것도 큰 유익이고 축복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든지 어렵든지 그 가운데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선한 결과, 유익한 결과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늘 감사를 자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세 가지 절기를 주셔서 늘 감사를 기억케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는 절기, 첫 번째는 유월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종 되었던 애굽에서 자유함을 얻고 홍해를 건너서 가나안에 나온 것이 유월절입니다. 그들은 후에도 유월절을 지킬 때 마다 우리를 죄와 억압의 땅에서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곤 했습니다. 두 번째 그들이 지키는 절기가 수장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한 해의 농사를 다 수확해서 저장한 후에 그리고 하나님 앞에 수장절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칠칠절이라고도 부르는 맥추절입니다. 그 한해의 첫 번째 농사를 지어서 그 첫 농사를 수확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맥추감사절입니다. 우리는 흔히 보리 농사를 지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곤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간은 늘 감사를 잃어버리기 쉬운 존재입니다. 감사하기 보다는 불평하고 원망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감사하는 훈련을 시켜주시도록 감사절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아니 감사를 체질화 시키도록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 삶에 유익이요, 감사는 우리 삶에 기적의 조건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에서 우리는 감사를 통해 일어난 아름다운 한 광야의 기적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말씀을 증거 하는데 그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이 구름떼같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많던지 남자 장정만 5천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이들과 여인들까지 합치면 1만 5천명이 훨씬 넘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능력 있게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가고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을 돌려보내야 합니다. 또 그들은 허기져 있었고 굶주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의도를 알아챈 제자들은 말합니다. “저들을 각 동네로 보내서 거기서 사 먹게 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차마 그냥 돌려보내실 수 없었습니다. 굶주리고 허기진 그들이 먼 길을 가다가 지쳐 쓰러질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무리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오늘 성경에는 없습니다만, 다른 성경에 보면 빌립이 말합니다. “이 많은 사람에게 떡을 먹이려면 200데나리온 어치의 돈이 필요합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라고 치면 오늘날 10만원씩만 쳐도 약 2천 만 원의 돈이 필요합니다. 그 많은 돈이 어디 있습니까? 또 돈이 있다고 한들 그 떡을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스러운 제자 안드레는 이 곳 저 곳을 수소문했습니다. 음식을 가진 사람을 찾게 되었는데 한 어린 소년이 마침 오병이어,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을 가진 소년을 안내해서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가난한 소년의 점심 도시락인 오병이어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실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을 오십명, 백명씩 줄을 지어 앉히고 그 떡을 나누어 줄 때에 그 많은 사람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이 기적의 배후에는 바로 주님의 사랑과 소년의 드림과 그리고 감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이 기적이 일어난 상황을 보십시다. 1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아멘.
  이미 날이 저물어가는 시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곳은 빈 들이라고 했습니다. 광야를 의미합니다. 사막입니다. 빈 들은 어떤 이미지를 줍니까? 그 곳은 넉넉지 못합니다. 황폐합니다. 적막한 곳입니다. 쓸쓸한 곳입니다. 소망이 없는 곳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주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바로 이 빈 들은 현대인의 삭막한 심령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 있습니다. 텅 비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에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감사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이 삭막한 심령의 빈들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그 기적의 조건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주님의 사랑이 있어야 했습니다. 한번 따라해 보시지요. “주님의 사랑은 기적의 조건이었습니다.”
  성경 14절 말씀을 읽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아멘. 
  예수님은 나아 온 많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측은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원어로 보면 내부로부터, 속사람으로부터 가슴이 애끓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셨다는 의미입니다. 내장이나 심장으로부터, 내부로부터 아픔을 느끼는 상태가 바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사랑의 지극한 형태입니다. 그 허기지고 지치고 피곤한 영혼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서 무언가라도 먹여서 보내고 싶은 주님의 사랑, 그 지극한 마음이 기적의 출발이었습니다. 사랑은 기적의 씨앗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 기적은 탄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바로 기적의 불씨입니다.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공동체에 진정한 사랑의 심령이 있을 때 거기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는 기적, 주님의 자녀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기적의 불씨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으로부터 기적은 출발하는 것입니다. 인도의 캘커타 거리를 걷던 테레사 수녀는 병이 걸려도 약 한번 써보지 못하고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많은 사람을 보면서 죽을 때 죽더라도 좀 편안히 죽을 수 있으면 어떨까하는 시랑의 마음이 불같이 일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구호활동을 하고 건물을 지음으로 캘커타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거렁뱅이로 죽어가던 노숙자로 죽어가던 사람들이 따뜻한 품 속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수 있었습니다. 나이팅게일이란 전쟁으로부터 상처받은 사람을 치료하는 한 여인의 작은 사랑의 불씨가 오늘날 적십자를 탄생시켰으며, 삼중고를 겪은 헬렌켈러에게로 향한 설리번이란 위대한 선생님의 사랑의 헌신이 그녀를 위대한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사랑은 위대한 기적의 출발입니다. 사랑하십시오. 긍휼히 여기십시오. 불쌍히 여기십시오. 오늘 이 광야에는 주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이 놀라운 기적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이 아름다운 광야의 기적의 배후에는 소년의 드림이 있었습니다.

  여기 모든게 다 갖추어져 있었다 해도 그 소년의 드림이 없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17절 말씀을 읽습니다.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아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했더니 어떤 제자는 불평을 하면서 그 많은 사람이 먹을 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했는데 주님이 사랑하는 제자 안드레는 수소문 끝에 한 소년을 데리고 왔습니다. 여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예수님은 가난한 소년의 그것을 가지고 위대한 기적을 일으킨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적에는 많은 물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주님께 가장 작은 것, 소량의 것을 가지고 우대한 일을 이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소년을 칭찬해주셨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만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 소년이 가지고 온 그까짓 비쩍 마른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 덩어리가 무슨 도움이 되곘냐고, 번잡스러우니 가져가라고 치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가장 작은 것이라도 그것을 들어서 위대한 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는 선교헌금, 그것이 비록 작은 액수일지라도 그것이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시골에 있을 때 그 교회 교육관이 없었습니다. 한 어린 소년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6년 동안 저금한 것을 통장으로 받았는데 졸업하면서 그것이 몇 십 만원이 되는 돈이 되었습니다. 많은 돈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소년이 그것을 가지고 ‘우리 교회에 교육관을 만들어주세요’ 하고 교회에 헌금을 드렸습니다. 교육관의 필요성은 알지만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하던 장로님들이 그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니 이 소년이 이 저금통장을 깨서 드리는데 우리가 그냥 있을 수 없지... 했습니다. 모두가 헌금하기 시작했는데 교육관을 훌륭하게 건축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작은 소년의 희생, 작은 소년의 드림과 그 헌신이 위대한 일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의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에 가서 복음 전할 때 자주 장사인 루디아란 여인이 자기 집을 드렸습니다. “우리 집에 오셔서 예배드리시고 여기 머무세요.” 그래서 그 루디아의 집에서 빌립보의 첫 교회가 탄생되게 된 것입니다. 내 것을 드릴 때 그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구원을 이루시고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제자들에게 나귀 새끼를 풀어오라고 했습니다 “왜 풀어가느냐” 했더니 “주가 쓰시겠다 하십니다.”했습니다. 그 때 그 나귀의 주인이 그러면 얼른 가져가라고 자기의 나귀를 주님께 말없이 드렸습니다. 그 주인의 드림과 희생을 통해서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이루셨고 십자가의 대업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작은 것일지라도 내 시간을 드리고 내 물질을 드리고 내 마음을 드리고 내 사랑을 드릴 때 거기서 위대한 기적이 출발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린 그런 생각 많이 합니다. 이렇게 큰 공사, 건축을 하는데 그까짓 내가 드린 5천원 만원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 드려봐야 그게 그거지... 그러나 정성과 기도가 담긴 그 적은 돈일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들어서 크게 사용하고 위대하게 사용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적은 재능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 아닙니다. 그 작은 재능을 통해서 큰 역사를 일구어 가시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기근을 맞이했을 때 시돈 땅 한 과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집을 찾아가서 그 여인에게 물을 청하다가 그 여인이 물 뜨러 가는 사이에 다시 불러 얘기합니다. “내가 몹시 배가 고프니 내게 떡을 좀 만들어 줄 수 있소?” 여인은 말합니다. “사실 우리 집은 너무 어려워서 이제 밀가루 통에 가루가 조금 남았고 기름병에 기름이 조금 남아서 마지막 떡을 나누어 먹고 아들과 나는 대책없이 죽어야 할 판인데...”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선지자의 말에 순종해서 마지막 남은 그것을 주님 앞에 드릴 때 하나님은 그 가정을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기근이 다 끝날 때 까지 통에 가루가 끊이지 않고 병에 기름이 다함이 없었던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드림을 통해서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소년의 헌신, 이 소년의 희생이 놀라운 기적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아름다운 이 기적의 조건이 있습니다. 주님의 감사하는 손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19절 말씀 읽습니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배 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광주리를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성경의 축사하셨다는 말을 원어로 보면 ‘하나님 앞에 찬양과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오병이어 그 가난한 소년의 도시락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어주라고 했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만약 그 소년이 혼자 그 도시락을 먹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께 내어드렸을 때, 주님이 거기에 감사의 축복을 하신 후에 그것을 나누어 줄 때,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원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서 예수님은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때 마다 감사하셨던 흔적들을 우리는 찾아볼 수 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1절에 보니, 나사로가 죽어서 이미 나흘이 지났고 썩어서 냄새가 나는데 마르다 마리아의 슬픔을 보다 못해서 예수님은 무덤가에 찾아가십니다. 그리곤 하늘을 향해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돌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명령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죽었던 나사로가 베를 동인채로 걸어 나온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감사가 있는 곳 마다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어떤 감사가 있습니까? 감사는 오늘도 기적의 조건이요 위대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서 6장 10절에 보니까, 다니엘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무리들이 모략을 꾸며서 앞으로 이 우리의 왕 외에 다른 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절하거나 기도하는 사람을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왕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이 왕의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집에 돌아와서 예루살렘 쪽을 향해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고된 대로 그는 체포되고 그는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사자는 그의 머리 털 하나도 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자 굴 에서도 그는 토해짐을 얻게 되고 다시 옛날에 모든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욥을 보십시오. 그는 하루아침에 모든 재물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가족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건강까지도 상실해 버렸습니다. 도저히 감사할 조건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사했습니다. 입술로 원망하지 아니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때 욥기 42장에 보니, 욥의 노년에 하나님께서 꼭 갑절의 복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 길을 막으셔서 풍랑을 일으키셨습니다. 배에서 던짐을 받게 되었는데 고래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영락없이 죽은 신세입니다. 그러나 그는 고래 뱃속에서 회개의 기도,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큰 고래가 요나를 토해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생명을 회복했습니다. 이렇게 감사엔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증거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모진 매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 착고가 풀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의 능력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위대한 능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반면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그들은 광야 40년 동안 불평과 원망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마지막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것에서 열 두 정탐꾼을 파송했는데 그들이 와서 그들 중의 열 명이 아주 부정적인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 땅에 가니 그 자손이 얼마나 키가 큰지 장대 같고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와 같다, 그들의 성읍은 너무 견고하기에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없고 우리는 여기서 죽을거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은 낙심하고 모세에게 돌을 들어 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던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긍정적인 보고를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의 시체로 뒹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평과 원망의 결과입니다.

  여러분, 삶의 주어진 여건 속에서 우리는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내게 이런 일을 맡기셨다면 “오 하나님! 저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이런 귀한 일을 맡기신 것 참 감사합니다.” 감사함으로 그 일을 하셔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반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같이 능력 있는 사람을 뭘로 알고 이까짓 시시한 일을 맡긴다고, 내가 이런 일이나 할 사람이냐고 불평하고 원망했다면 하나님은 결코 그에게 더 큰 일을 맡길 수 없을 것입니다. 작은 일에 감사하는 이에게는 더 큰 감사의 조건을 주님은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적은 사랑의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드림에서 출발합니다.

  요즘 우리 삭막한 세상 속에서 훈훈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의 제일 부자, 아니 세계적인 부자를 꼽으라면 우린 빌게이츠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회장입니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독실한 신앙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늘 산상수훈을 읽게 했고 암송하게 했습니다. 그 속에서도 누가복음 6장 38절을 늘 암송했다고 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그는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베풀기를 즐겨 하는 사람이 바로 그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돈을 자선 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그가 기부한 돈이 약 300억 달러가 된다고 합니다. 그의 전 재산이 5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0조가 되는데 지금까지 300억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약속하기를 “내가 죽기 전에 내 재산의 95%를 사회에 환원하겠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내 재산을 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5%ㅂ만 내 자손에게 유산으로 남길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받은 세계 제 2의 부자인 워런 버핏이란 분이 빌게이츠가 운영하는 게이츠 재단에 자기 재산 가운데 85%, 374억 달러를 내어 놓기로 약속했습니다. 약 36조 원이 되는 돈입니다. 이 374억 달러는 계산이 안 되는 돈입니다. 우리나라가 IMF 때 수백억 달러가 없어서 부도가 났는데 한 개인이 이렇게 많은 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힘이 없다면 어찌 이 일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야 돈이 많으니까... 여러분, 돈이 없는 사람이 내놓기 쉬워요? 많은 사람이 내 놓기 쉬워요? 없으면 없는 대로 드리기가 어렵고 많으면 많은대로 드리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 훈훈한 감동이 전해지면서 홍콩의 영화배우 성룡도 자신의 재단의 절반을 자신이 운영하는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답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오늘 한 소년이 드렸던 오병이어가 큰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습니까? 우리의 이웃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내어놓을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마음과 드림의 희생과 감사의 마음이 있을 떄 거기에 놀라운 기적과 축복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광야의 기적이 여러분의 삶에도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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