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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말리엘의 조언 (행 5: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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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입니다. 법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원칙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이 법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법대로만 살면 된다고 하지만 과연 우리가 법대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쉽게 우리가 법을 어기며 살고 있습니까? 가장 쉽게는 교통법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온전히 교통 법규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요즘 포스코 사태에서 보듯이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이 멀쩡하게 있건만 그 법대로 시위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됩니까? 세상 어느 나라가 경찰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죽창을 찔러대며 화염방사기로 불을 뿜어댑니까? 이 모두가 법이 법이 아닌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법으로 질서를 다스린다고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도덕 윤리는 또 어떻습니까? 법으로 규정하지는 않더라도 서로 간에 지켜야 될 도리를 윤리라고 말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법보다도 더 윤리가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법은 어기지만 않는다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이 없지만 윤리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의 경우, 법정에서의 거짓 증언이 아니라면 법으로는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하지만 윤리적으로는 거짓말은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바른 말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과연 그렇던가요? 오히려 바른 말을 함으로서 더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도 바른 말을 함으로서 야기되는 문제를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바른 말을 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대제사장이 엄명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냥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더욱 담대하게 성전에 서서 모여든 무리들에게 예수가 누구신지 자기들이 겪어 보았고 직접 눈으로 보았고 같이 대화를 나누었고 같이 손도 잡아 보았으며 함께 음식도 들었던 예수님에 대해 증거합니다. 제자들의 심령에 임하신 성령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입을 다물고 있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성전 수비대에 붙들려 대제사장과 공의회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대제사장이 붙잡혀 온 제자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말을 합니다.

"우리가 그대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엄중히 명령하였소. 그런데도 그대들은 그대들의 가르침을 온 예루살렘에 퍼뜨렸소. 그대들은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하지만 제자들을 심문하는 대제사장과 공의회 앞에서 담대하게 답변을 합니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먼저 말을 하고는 이어서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은 여러분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분을 높이시어 자기 오른쪽에 앉히시고, 영도자와 구주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고 죄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십니다.”라고 증언합니다.

그랬더니 대제사장과 공의회 회원들은 그 말을 듣고서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왜 그들은 제자들의 증언하는 말을 듣고 그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요?

사도들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잖아요. 그들은 자기들이 듣고 본 대로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바른 말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면 어떤 결과가 닥치리라는 것을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까? 아니죠. 사도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인 것처럼 저들이 자기들도 능히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에게는 이제는 죽음도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설사 자기들이 죽어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이요 아니 다시 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주님이 올라가신 하늘나라에 자기들도 들어갈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들로 하여금 담대하게 증거하도록 이끌고 계시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무서운 게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바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예상한 그대로 저들은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저들로서는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것을 결코 인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증거로 볼 때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어떤 점에서는 자기들의 권력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맙니다. 아니 권력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지금까지지 자기들이 누렸던 모든 기득권을 다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알고 잘 믿어 왔다고 자부했던 자기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신성 모독죄로 몰아서 죽게 만들었던 자기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결국은 자기들이 신성 모독죄를 저지른 결과가 되기 때문에 애써 이것을 부인하고 쉬쉬하며 덮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제자들의 증언을 인정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바른 말을 하여야 한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에 대한 말만은 들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로서는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라고 하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세상을 자기들의 손에 쥐고 마음대로 휘둘러 왔던 사단의 모든 기반이 뿌리째 흔들려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에 대한 말을 듣지 못하게 만들고 설사 예수에 대해서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그 마음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에 대해서 증거하는 우리들에게뿐 아니라 듣는 이들의 마음에도 성령께서 역사하시기를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바른 말을 하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통해서 분명히 거짓말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기를 다짐해야 하고 바른 말만 하게 될 경우 어려움이 닥쳐올 수도 있기에 이렇게 어려운 일이 닥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으니 항상 말씀 안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길을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며 오직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가말리엘의 조언을 생각해 봅니다.
사도들이 예수에 대해 담대하게 증언을 하자 대제사장과 공의회 회원들은 격분해서 사도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 그런데 율법 교사로서, 온 백성에게서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파 사람이 의회 가운데서 일어나서,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게 한 뒤에, 의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이 사람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조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전에 드다라는 사람이 자기가 위대한 인물이라고 선전하여 사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지만 그가 죽임을 당하고 난 뒤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또 인구 조사를 할 때 갈릴리 사람 유다가 일어나 백성들을 꾀어서 반란을 일으키게 한 적이 있었지만 그도 죽으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에게서 손을 떼고,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십시다. 이 사람들의 이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망할 것이요,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여러분은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없소. 도리어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봐 두렵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율법 선생이요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의 말을 듣고 그의 말을 옳게 여겨서 사도들을 불러다가 때린 뒤에,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고서 놓아 주었습니다.
사도들이 바른 말을 했을 때 분명 사도들은 죽음의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 가운데 가장 존경 받는 사람이었던 율법 선생 가말리엘이 그들을 변호해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가말리엘이 나서서 말하도록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바로 성령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 입에 대답할 말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야 하는 것이요 거기에 어떤 두려움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무리들이 사도들을 때리면서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몇 달 동안 태신자 전도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도했던 분들 가운데 여러분들이 우리와 함께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될 듯 될 듯 하면서도 아직까지도 꿈쩍도 하지 않는 분들이 여럿 있어서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들 안에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반감을 가지게 만드는 마귀의 역사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보다 강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의지해서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게 될 때 그리고 끊임없이 예수의 능력을 힘입어서 나아가게 될 때 결국 그들은 주님의 능력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님의 능력의 도구로서 대적하는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을 세워서 오히려 변호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까? 왜 우리가 착하게 살아가야 합니까? 오늘날 우리가 착하게 산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손해 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바르게살기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은 손해 같으나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오히려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만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속이는 자가되지 않아야 합니다. 스스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거짓말이라고 하면 사람 앞에서의 거짓말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 앞에서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 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어떤 거짓말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라고 하겠습니까? 우리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저렇게 살아 보겠노라고 다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놓고 지키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거짓말을 하는 것과 무엇 다르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무엇 다르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 잘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내 힘으로 살려고 하기에 어려운 것이지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따라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살아간다면 내 마음에 주시는 성령의 감동하심대로 순종한다면 결코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문제는 내 마음입니다. 내가 어떤 각오를 가지고 말씀을 실천하느냐 하는 내 의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물론 어려움도 예상이 됩니다. 실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세우시는 도움의 손길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가장 어려운 사람이나 내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사람이 오히려 내게 가장 큰 도움을 펼치는 손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본문의 가말리엘을 통해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나를 속상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누가 나를 어려움에 빠뜨리고 있습니까?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십자가에 죽기까지 참으셨던 주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주님이 바로 어려움 당하는 나를 돕기 위해서 내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먼저 겪어 보셨기 때문에 능히 나를 도우실 수 있고 나를 위로하시며 격려하실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나보다도 주님이 나를 더 잘 알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언제 어디서건 오히려 당당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들은 저들로부터 매를 맞고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는 말하지 말라고 협박을 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공의회에서 물러나왔고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그리고 이집 저집에서 쉬지 않고 가르치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요 우리가 할 일은 어떤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도 혹 마음 상할 일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맡겨진 그 일을 결코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요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대로 순종하고 말씀대로 헌신하고 말씀대로 섬겨나가며 말씀을 들고 나가서 증거하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대로 충성을 다하고자 하면 그에 따르는 어려움이 예상되기도 하고 실제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사도들은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 역시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충성을 다하고자 할 때 당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렇듯 예수의 이름 때문에 어려움 당하게 된 것을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마태복음 5장 10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서 어려움 당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앞에는 천국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천국에 속한 모든 것이 주어집니다. 아니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활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누구에게 욕을 먹고 누구로 인해서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고 해도 오히려 꿋꿋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오히려 대적자를 통해서도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될 것이요 그로 말미암아 더 크고 놀라운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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