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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왜 교회입니까? (골 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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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번주간에는 교회적으로 연중 가장 큰 행사인 유초등부 여름성경학교와 중고등부 학생들의 여름수련회가 열립니다. 어린시절 직접 내가 경험한 교회생활 중에서 이런 행사들은 크게 기억이 됩니다. 그리고 교회를 생각할 때 좋았던 이런 기억들은 얼마나 교회에 정착하고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막상 이제 교회 속에 들어와서 그런 행사를 한번 준비하고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교사들과 교역자들의 기도도 있어야 하고 고난의 수고가 있어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몸으로 희생의 수고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고난과 희생의 댓가를 지불하면서도 이런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이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점점 교회의식이 약화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지어는 보편적인 교회의 제도를 무시하고 “무교회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상당수의 사람들이 교회가 너무 위선이 많고 이중적이다라고 하면서 교회를 떠납니다. 주님은 좋고 하나님은 좋은데 교회는 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속에 들어왔을때 문제는 더 이상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고 헌신하는 것을 거부하는 성도들도 많이 있습니다.왜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가 하면 바로 “왜 교회인가?”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 교회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교회생활에 문제가 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교회란 사람을 의미합니다.이것은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과 그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세상으로 보냄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며 그 백성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렇게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이 모임을 얼마다 귀중하게 생각합니까? 얼마나 교회를 위하여 땀과 열정을 쏟고 있습니까? 과연 여러분에게 있어서 교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오늘 본문 골로새서는 바울이 쓴 성경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기록한 성경이 4권입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래서 빌레몬서입니다. 그런데 이 4권의 성경의 주제가 “교회론"에 대한 내용입니다. 바울이 기록한 13권의 서신서중에서 대부분의 주제가 ”교회론“입니다.
바울의 메시지의 핵심 바울 사역의 핵심이 바로 교회였습니다.
물론 그 사역에는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사역을 기쁨으로 삼았고 사명으로 삼았습니다.본문 24절에서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은 앞으로 남은 생애 교회를 위하여 고난받으면서 내 육체에 채우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생애의 가장 큰 꿈은 바로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섬기고 교회를 위하여 희생하는 것을 소원하면서 인생을 살았습니다.
왜 이토록 바울은 교회를 중요하게 여겼습니까?
교회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1. 교회는 바로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24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바울 서신13권에서 바울이 교회를 정의할 때 ‘그리스도의 몸’으로 강조를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교회를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한 몸이기 때문에 한 피 한생명 한연합체인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것입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입니다.바울은 예수님과 교회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여기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한 삶이 곧 주님을 위한 삶이요 교회를 섬기는 것이 곳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기 어떻게 바울이 예수님과 교회가 하나라는 계시를 깨닫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바울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사울을 둘러 비춥니다. 그리고 음성이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합니다. 사울이 ‘주여 뉘시오니까’합니다. 그러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합니다.
바울은 직접적으로 주님을 핍박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바울에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합니다.이것은 바로 교회와 주님이 하나인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교회는 바로 주님의 몸인 것입니다.

이미 주님은 이땅에 계실 때 이 몸된 교회를 세우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이시니라” 그러면서 말씀합니다.
“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주님은 ‘내교회를 세우리라’고 합니다. 물론 사도 베드로가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핵심멤버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베드로의 교회가 아닙니다. 누구의 교회입니까? 바로 주님의 교회입니다. 주님과 교회는 하나인 것입니다.

종종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예수님은 좋지만 교회는 싫다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 속에 여러 가지 죄와 문제점을 바라보면서 교회에 대한 상처와 실망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오늘 문제는 우리가 실망과 상처를 받을때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에 보면 지상의 많은 교회들이 문제와 죄가 있었습니다.
이미 사도행전에서 우리가 모델로 생각하는 초대예루살렘교회도 구제의 문제로 다툼과 분쟁이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하고 엄청난 부흥을 경험하였던 교회입니다. 무엇보다도 능력있는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12명의 사도들이 사역했음에도 문제가 발생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번 주일예배때 함께 살펴본 빌립보교회도 그렇습니다. 물론 이 교회도 여러 가지 장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집사님들 사이에 서로 다툼과 분쟁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에 소개되는 고린도교회는 어떻습니까? 파당으로 인해서 분열의 문제가 있었고 세상에도 없었던 간음의 문제,우상에게 절하는 문제,예배 중에 일어나는 무질서의 문제,은사의 오용의 문제등 많은 문제들이 교회 속에서 있었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모든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주님의 몸이요 주님의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이 지상의 모든 교회는 불완전하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우리가 이 불완전성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만약 어느 누구가 “우리 교회는 완전하다” 하다면 그것은 교만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한창 각광을 받고 있는 미국의 윌로우크릭 교회,새들백교회도 100%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서울의 사랑의 교회 좋은 교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합니다. 또 우리 교회 모든 교회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이런 불완전한 교회 문제가 잇는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를 가장 사랑하는 분이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목사보다도 장로보다도 그 어떤 평신도보다도 교회를 가장 사랑하는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교회는 바로 우리 예수님께서 피흘려 사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교회의 주인은 바로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완전한 교회 속에서 교회를 바라볼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완전한 교회를 욕하고 부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 주님을 부정하고 욕하는 것입니다.
혹시 교회 속에서 문제가 보이고 어려움이 있을때 서로 옳고 그름을 갖고 서로 편을 나누고 공격하고 판단하면서 서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옳고 그름보다 더 강조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차라리 손해를 보고 차라리 양보하고 차라리 지라고 합니다. 옳고 그름보다 교회가 더 요구하는 덕은 바로 지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참고 억울함을 당하시고 피흘리셔서 산 몸된 교회이기에 그렇습니다.
교회란 주님의 몸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값주고 사신 몸 주님께서 고난받으시고 희생하심으로 사신 귀한 몸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2. 교회를 통해서만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27절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합니다.
여기에 2가지 중요한 단어가 소개됩니다.

하나는 비밀이요 다음은 영광의 소망입니다.
교회는 바로 하나님께서 감추신 비밀을 드러내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비밀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영광의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소망이 있고 그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교회란 바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곳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그리스도를 닮도록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영광의 소망을 갖게 하는 곳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여러분의 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비밀이 밝혀지고 알아가는 모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이 모임을 통해서 예수님 안에서 소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먼저 교회 속에서 우리가 먼저 집중할 것은 예수님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복음에 집중해야 합니다. 먼저 복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나를 위해 고난받으심 나를 위해 죽으심 나를 위해 부활하심이 바로 복음입니다. 먼저 복음의 특징은 은혜입니다. 교회는 은혜의 하나님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은혜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은혜로 우리의 모든 약함과 부족함을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복음의 특징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 안에서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으로 먼저 우리가 교회 속에서 사랑이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때대로 우리가 율법을 앞세우면 교회는 망조가 듭니다.율법은 먼저 정죄합니다. 우리의 허물과 잘못과 죄들이 정죄되어지면 여러분 그것은 주님을 헛되게 합니다. 교회는 먼저 잘못을 정죄하고 죄를 정죄하기보다 먼저 은혜로 덮어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복음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은 우리에게 서로 누가 옳고 그르고 자꾸 잘못을 들추어내고 서로 미워하게 합니다. 그러면 서로 망하게 됩니다. 여러분 그러나 복음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교회 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선행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우선은 사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 모임 속에는 물론 앞에서 일을 하는 목사님있고 장로님 있습니다. . 먼저 믿었고 더 예수님을 아시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여러분들을 잘 도와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때로 실망도 줄 수 있습니다. 또 이 곳에 모인 지체들은 아직 완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사람에게 집중되면 문제가 일어나고 시험이 듭니다.
고린도교회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파,아볼로파,게바파,그리스도에게 속한 4파가 있었습니다. 여기 바울 아볼로 게바는 지금으로 말을하면 목회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의 성향과 은사도 다양합니다. 바울은 열정적이어서 개척을 잘하고 아주 적극적인 성격 강한 성격의 지도자입니다 . 다음에 아볼로는 학자형으로서 말씀을 잘 가르치고 증거하는 목회자입니다. 베드로는 또 뜨겁고 열정적인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또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런 각각의 유형을 좋아하하는 부류들이 서로 당을 이룬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바울파,아볼로파,게바파,그리스도파로 나뉘어 싸우고 있는데 싸우는 이유가 바로 사람을 따라 싸우는 것입니다.즉 사역자들에 대한 오해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지금으로하면 목회자들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나는 아볼로에게라"그렇게 말을 하면서 분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무엇보다도 조심해야 할 것은 사람을 따라 교회에서 당이 형성되어서는 안됩니다.목사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을 따라 어떤 이유로든 나위어져서 분리되어서는 안됩니다.
이제 이미 말씀드렸지만 교회는 당이 없어야 합니다.오직 예수 안에서 십자가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그런데 오늘 우리는 고린도교회가 이렇게 사역자를 따라 나위어진 것은 그들의 오해, 말씀에 대한 미성숙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교회 속에서 우리가 자랑하고 드러내고 높이실 분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이 교회의 주인이시오 그분이 우리의 찬송과 말슴과 모든 모임의 주인이십니다. 단지 우리는 그분의 조연자로서 엑스트라로서 우리가 그분을 드러내시기를 바랍니다.

3. 교회를 통해서만 참된 인간의 변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28절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라

교회란 바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을 만들어가는 곳입니다.
바로 여기 완전한 자란 주님을 닮은 자입니다. 이 사람을 결국 우리가 제자라고 합니다. 교회는 바로 우리 주님처럼 온전한 사람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요 그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먼저 핵심적으로 목표를 삼아야 할 것은 사람입니다. 다른 어떤 일보다도 먼저 사람을 키우고 세우고 새롭게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사람이 변화되어 세워지면 나머지 일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에 가보면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11절-16절을 보십시오. 여기 보면 교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 교회의 핵심 직분들이 소개됩니다. 사도,선지자,복음전하는자,목사,교사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직분자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12절에 보면 성도를 온전케하는 일입니다.
왜 성도를 온전케하여야 합니까?
온전케된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성도를 온전케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4장 1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아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서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게 되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에수님을 닮은 장성한 사람을 세워가는 곳이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인격은 혼자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혼자서 안되고 공동체가 필요합니까?
인격이란 혼자 성경읽고 혼자 기도하여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이란 관계를 통해서만 성장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어느 정도인지는 스스로는 알 수 없습니다.함께 어울려 보고 함깨 사귀어 보고 생활할 때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 속에 온갖 원수가 다 모인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저 원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저원수와 함께 교제해야 합니다. 그 원수가 주리면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이유들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온전함을 배우고 닮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첫 번째 핵심사항은 “하나”되는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하나되는 것입니다.
알아야 할 것은 그 하나됨의 과정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적대감으로 뭉쳐져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이웃과 화목하고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공동체 속에서 서로 교제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주님닮은 사람 온전한 사람을 우리가 세워갈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바울29절을 보십시오.
“이를 위하여 나도 내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합니다.
여기 바울은 어떻게 수고했습니까?
힘을 다하여 수고했다고 합니다. 24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채우노라“고 합니다. 고난의 수고를 할때 주님닮은 사람을 세울 수 있습니다.
오늘 주일학교 교사들에게도 중고등부교사들에게도 그밖에 찬양대나 모든 사역자들에게도 주님의 사람을 세우고 주님이 원하시는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고난이 있을 것입니다.
잘 이시기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바울은 성령님의 역사를 따르는 수고를 했습니다.
주님의 일은 성령을따라 해야 힘이 들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면서 저와 여러분들을 도우십니다. 목사도 성령의 역사를 따라 사역해야 합니다. 교사들도 성령의 역사를 따라 사역해야 합니다.찬양대도 성령의 역사를 따라 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우리의 능력을 초월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가르칠때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찬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전도할 때 전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에 능력을 주십니다. 바울은 그의 사역에서 그의 가르침의 사역에서 그의 모든 목회사역에서 이 성령님의 능력을 따라 승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땅을 떠나면서 우리에게 성령을 약속하시면서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합니다.

누가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합니까?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순종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하라는 대로 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분이 기도하라고 할때 기도하면 기도를 도우시면서 기도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그분이 전도하라는대로 전도하면 그분이 전도의 능력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그분이 인도하는대로 순종하고 우리가 찬송하게 되면 그분의 능력을 경험하는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성령님의 능력을 경험하시는 사역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희생없이는 안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바울의 눈물과 땀의 희생이 있엇기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교회도 그렇습니다. 오늘 눈물과 땀과 고난의 희생이 있는 곳에 주님의 교회가 온전한 교회로 세워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물과 기도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다함께 건강한 교회로 온전한 교회로 만들어 주님께 영광돌리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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