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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은 모르지만 (고전 15: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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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 :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고전15:37,38)

  본문은 부활에 대한 말씀으로 씨앗이 새로운 형태의 식물을 만들어 내듯이 부활 이전의 육체의 상태와 부활 이후의 형체는 전혀 다름을 분명하게 답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뿌리는 것은 되어진 형체가 아니라 ‘씨'라는 알갱이 하나입니다. 그러나 훗날에 보게 되는 것은 씨와는 아주 다른 크고 많은 형체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이런저런 씨앗들을 모르고 뿌리지만 다음날에는 그 씨앗들이 내포하고 있던 형체를 알게 됩니다.

  모름Ⅰ: 형체
  우리가 수박을 먹음은 ‘수박'이라는 형체를 심어서가 아닙니다. 조그마하고 까만 씨앗 하나 땅에 심었는데 거기서 싹이 나고, 줄기가 생기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점점 커져 씨보다 수 천만배 큰 ‘수박'이 됩니다. 녹색에 까만 줄무늬 겉옷, 하얀 속내의 속에 빨간 살과 수많은 씨앗들... 제 아무리 두뇌가 뛰어나고, 말을 잘할지라도 이 신비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둔한 자라도 신비를 즐길 수는 있습니다. 인생은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보이지 않는 어떤 형체의 씨앗을 심고 있습니다. 헌데 지금 내가 뿌리고 있는 씨앗 속에 내일의 내 형체가 숨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내일 만들어질 내 형체를 생각지도 아니하고 분별 없이 마구 나쁜 씨를 뿌려댑니다. 여기에 인간의 어리석음이 있고 불행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품어야 할 생각이 있고 품지 말아야 할 생각이 있으며, 할 말이 있으며, 안 할 말이 있고, 행동해야 될 것이 있고 행동치 않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종자를 심든지 종자대로 되어집니다.
현재는 미래의 출발점이긴 하나 내일의 형체를 결정짓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지금'이라는 순간도 잠깐후면 과거가 됩니다. 지금 나는 모르지만 현재 나의 삶은 내 미래와 심판의 원인입니다. 삶은 생각, 말, 행동으로 미래의 나를 짜는 것입니다.

  모름Ⅱ : 섭리
  사람은 내가 지금 처해있고, 하고 있으며, 당하고 있는 삶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모릅니다. 그 날들을 살고 난 후에야 ‘아하! 그 모든 것이 이렇게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셨구나!'라고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지만 언제인가는 반드시 깨닫는 날이 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를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심은 알아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미래를 알고 사는 줄 압니다. 하지만 이는 큰 착각입니다. 미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셔야만 내가 누릴 수 있습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동안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이는 잠언 27장 1절 말씀이며, “우리에게는 우연이라고 하는 것들이 실은 거룩한 섭리의 결과임을 유의하라." 이는 맥고우먼의 말입니다. 하나님께선 명백한 목적을 가지시고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선하신 그 목적,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 예수님의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는 눈물, 아픔, 고독, 환란, 괴로움도 있습니다. 허나 어느 것 하나 잘못됨이 없는 선하신 섭리입니다. 미래에 나를 유익케 하시려는 다스림입니다. 인간의 길은 자기가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가는 것입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잠16:6)" 제가 중학교 때 다독다작을 하고, 고등학교에서 웅변을 할 때는 왜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목사가 된 후에야 섭리셨음을 알았습니다. 지난날의 가난함, 교통사고에서 살리시고, 차 위로 떨어지는 돌덩어리를 막아 주시고, 군목으로 병원, 논산 훈련소, 교도소에서 근무하게 여학교 교목을 하게 하심에 대해 당시에는 그 까닭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압니다. 궁핍한 사람의 마음을 아는 목사, 덤의 인생을 살고 있는 목사,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목사, 타향살이의 고달픔을 헤아리는 목사, 예민한 청소년들의 마음을 아는 목사, 죄인들의 심리, 생활을 파악하는 목사가 되게 하시려는 섭리셨습니다. 제 생의 이력서 중에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치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 실존의 현실 속에 구체적으로 임하는 실재입니다. 어느 미국 선교사가 일본에서 선교를 했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죽도록 복음을 전했건만 겨우 한 명을 전도, 세례를 주었을 뿐입니다. 그 한 명도 자기가 데리고 있던 일본인 가정부였습니다.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실패자였습니다. 그는 은퇴했고, 귀국을 했습니다. 헌데 놀랍게도 가정부의 아들이 일본 신학교 학장이 되었으며, 많은 목회자를 길러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오늘'이 아닌 ‘내일'에 압니다. 영국의 어떤 부인이 ‘기독교 입문'이라는 책을 길에 떨어뜨려서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백스터'라는 청년이 주워서 읽었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며, ‘미신자에의 경고'라는 책을 써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회개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찬송가 작사자요 목사인 ‘더드리치'이며, 그는 ‘종교의 부흥과 발전'이라는 책을 썼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반열에 들어서게 했습니다. 이 속에 정치가이며, 자선 사업가요, 노예폐지 운동가인 윌버포스가 있었고, 그는 ‘실제적인 기독교관'이라는 책을 썼으며,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리치몬드'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는 ‘우유장수의 딸'이라는 책을 썼으며, 영국 사회에 엄청난 화제를 뿌렸고, 이 책은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한 부인이 모르고 떨어뜨린 책 하나가 이렇게 엄청난 역사를 일으킬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마10:30)" 아브라함은 하나님? 꼈?갈 바도 가리켜 주시지 않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심의 까닭을 몰랐지만 그것은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려는 섭리셨습니다. 바로의 딸이 나일강가에서 갈 상자 속의 모세를 건져냄과 모세가 광야에서 40년간 연단 받음은 그를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게 하시려는 섭리셨으며, 요셉이 애굽의 종으로 팔려 감은 그로 하여금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시려 하는 섭리셨습니다. 룻,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좇아감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를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한나, 다른 여인처럼 결혼하자마자 자녀를 낳을 수 있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사에 흠 없는 영적 지도자 사무엘을 낳을 수 있었을까요? 여호수아, 모세의 수종이나 들던 사람이 모세의 후계자가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지금 내가 행하고, 내게 일어나는 일의 까닭을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어제'에서 ‘오늘'에 ?있음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때로 우리는 내 앞날이 알고 싶습니다. 허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장래를 알지 못하게 하신 섭리를 감사해야 합니다. 만약에 내가 내 죽는 날을 알고 있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지레 죽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장래를 보여 주시지 않음은 우리를 향하신 참 사랑이십니다. 우리는 지금 아무 것 몰라도 확실한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를 복된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나는 모르지만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모름Ⅲ : 내세
  내세는 죽어야만 갈 수 있기에 지금은 볼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내세가 있음을 믿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라...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2,3절)"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부자가 세상에서 호의호식 할 때는 내세를 몰랐습니다. 죽어 음부에 떨어져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음부의 고통 속에서 낙원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보았고, 천국과 지옥을 알았으며, 전도 못했음을 후회, 전도하려고 했으나 이미 불가능했습니다. 내세란 지금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기에(사45:15) 섭리도 숨겨져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내세를 믿음은 망상도, 미신도, 허구도 아닙니다. 실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생에서 회개한 것은 기억지 않으시나 회개치 아니한 것은 낱낱이 기억하고 계십니다. 사후 지옥이냐 천국이냐는 원인의 결과요 심은 대로 거둠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시126:6)"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5:7)"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내세는 사후에 와질 세계이기에 지금은 모르나 지금이 과거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되는 날 알게 됩니다. ‘담겨지고, 버려지고', 심판은 하나님의 담고 버리심의 분류입니다(마13:48). 내세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현세에서는 지금이 중요하나 내세에서는 과거만이 거론되고 중요시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내세, 하나님의 집이 있기에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을 가치 있게 살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환란, 고통, 괴로움의 의미를 모르더라도 말씀에 의지하여 인내하고 견디며, 절제하고, 소망 중에서 살아야 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그리스도인은 내세의 생을 위하여 현재에서 회개하고 모든 것을 결단하고 던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신앙은 과거의 후회도, 미래의 자랑도 아니요 현재의 투자입니다. 내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지금이 있어야 미래가 있고 영생의 내세가 있습니다. 천국은 믿는 자의 것이며,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습니다(마13장).

  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아들 넷을 둔 어느 어머니가 병상에서 임종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병상에 둘러 서있는 아들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작별의 키스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첫째, 둘째, 셋째에게는 ‘굳 나잇' 키스를 하라하고, 막내아들에게는 ‘굳 바이' 키스를 하라고 했습니다. 막내아들은 이상해서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형들은 굳 나잇 키스를 해야하고, 나는 굳 바이 키스를 해야 되나요?" “얘야, 너의 형들은 머지 않아 저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엄마와 다시 만나게 된단다. 그러나 너는 지금이 마지막이란다. 엄마는 너를 예수님께로 인도하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너는 끝내 네 고집대로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너와 나는 다시 만날 수가 없어. 그래서 네 형들과는 ‘굳 나잇'이고 너와는 ‘굳 바이'란다. 이에 막내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젖은 뺨을 어머니의 볼에 대고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도 '굳 나잇' 인사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엄마! 굳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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