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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비결 (히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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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수해로 가족을 잃고, 집이 무너지고, 전답이 물에 잠겨 수심에 쌓여 있는 이웃들이 있는데, 그 기회를 이용해서 오물 20톤을 방류하다 발각된 사람. 월척을 얻겠다고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수고와 고통에 편승해서 즐기고, 이익을 얻고,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 얌체족이라고 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얌체족 같이 신앙생활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교회 처음 출석하는 분들이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짐을 내려 놓은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지만, 신앙의 연조가 꽤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부담없이 신앙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혹 이 말씀이 마음에 걸리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느꼈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주시는 말씀으로 알고 분발하는 기회로 삼기 바란다. 내가 강단에 서서 설교를 시작한지 15년이 넘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 때리기 위해 설교를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런 유치한 짓 할 줄 모른다. 앞으로도 물론 그럴 생각이 없다. 그러니 혹 마음에 부담이 되는 분이 있으시면 오해 없이 긍정적으로 받으면 큰 은혜가 될 줄로 믿는다. 

우리는 그동안 히11장을 통해서 여러 믿음의 사람들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요셉, 기생 라합...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아도 쉽고 편안하게 신앙생활 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에게 조롱 당하기도 했고, 억울하게 손해 보기도 했고, 때로는 목숨을 걸기도 했고,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승리의 면류관을 쓰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딤후 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이다. 폐막식 바로 전에 마라톤 경기로 휘날레를 장식한다. 그 때 주경기장에는 골인점을 향하여 달려 들어오는 마라토너를 보기 위하여 관중들로 꽉 들어 차있다. 마침내 한 선수가 힘차게 경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 온다. 관중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골인 지점을 통과하고 시상대에 오른다. 다른 종목의 우승자들에게는 메달과 꽃다발이 수여되지만 마라톤의 승리자에게는 머리에 월계관이 씌여 진다. 42.195km,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결승점에 다다른 선수에게 주어지는 영광이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나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본문 1절의 말씀을 묵상할 때 올림픽 경기의 마지막 종목인 마라톤 경기의 모습이 떠 올랐다. 이 땅에서 믿음의 경주를 마치고 천국으로 입성하는 성도들을 향하여 이미 천국에 먼저 들어간 구름 같이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일제히 스탠드에서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열렬히 환영하는 그 장엄한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그리고 천국을 진동하는 그 함성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 얼마나 감격스럽고, 얼마나 영광스러운 순간이겠는가? 여러분 그 날을 기대하시기 바란다.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의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장면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신앙생활은 마라톤 경주에 참여한 선수들과 같다. 사도 바울은 자주 운동 경기의 달리기에  비유하고 있다.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갈 2:2)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빌 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오늘 본문의 말씀은 물리적인 심각한 핍박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도들을 붙잡아 주고 계속적으로 믿음을 지키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많은 믿음의 선진들에 대하여 소개했다.

그들은,  지금 여러분들이 당하고 있는 환경 보다 더 안 좋은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켰고 끝내 승리의 면류관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승리한 성도들이 구름 같이 여러분들을 성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제시한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비결은 무엇인가?

1.장애물들을 제거해야 한다.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1)모든 무거운 것

박윤선목사님, 이 세상의 염려와 욕심이라고 했다. 그런 것들은 성도들로 하여금 전진하지 못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 된다.

예수님의 비유, 결실치 못하는 이유 - 씨앗이 가시덤불에 떨어졌기 때문이라 하셨는데 그에 대한 해석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염려와 근심은 주께 맡겨야 한다. 안고 있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마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2)얽매이기 쉬운 죄

단단히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 고질적인 죄를 말한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나쁜 습성들을 가르킨다. 그것들은 무엇인가?

골3:8-9,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롬13:12-13,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했다면 결단이 필요하다. 벗어버려야 할 악한 습성들이 무엇인가 살펴보고 과감하게 벗어 던지는 용기가 필요하다. - 진정으로 용기 있는 자.

2.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마라톤 경주는 1년에도 여러 차례 있다. - 동아마라톤, 보스톤마라톤, 아시안게임, 올림픽등등.., 자신의 기호에 맞게 선택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인생의 경주는 단 한 번의 기회만 있을 뿐이다. 누구든지 마라톤의 출발선에 설 수는 있다. 그러나 끝까지 달리는 선수는 많지 않다.

예)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경기장,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탄자니아에서 온 존 스티븐 아쿠와리 선수. 결승점에 골인한 후 기자의 인터뷰. 

“조국은 내가 경주를 출발하라고 7,000마일 밖인 이곳에 나를 보낸 것이 아닙니다, 경주를 끝까지 마치라고 7,000마일 밖으로 나를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신앙의 마라톤에 참여한 선수들과 같다. 자기 뜻에 맞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고, 주저 앉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포기해서는 안된다.

예)요셉의 인내, 욥의 인내를 배워야 한다. 히11장의 허다한 증인들, 그들은 인내로 믿음의 경주를 승리로 이끌었다.

딤후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3.예수님 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를 바라보자”란 말의 의미는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시키자”란 뜻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를 바라보아야 하는가? 3가지 이유가 있다.

1)믿음의 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 우리 믿음의 시작이 되신다.

2)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3)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참으셨다. - 살면 살 수록 인간은 추하고 냄새가 난다.  예수 같은 분이 없음을 느낀다. 나의 죄를 위해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면 감사가 넘친다.

예)베드로의 실패, 마14: 예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실 때. 베드로는 시선을 놓쳤다.

세상에서도 성공하는 사람들은 목표가 분명하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놀고, 쓰고, 즐기는 것을 포기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사람은 다 놓치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쟁이다. 놀더라도 예수 안에서 놀고, 즐기더라도 예수 안에서 즐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놀고 즐기는 일에 빠져서 예수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눈 길은 놓치지 말자.

4.예수님만 생각하는 것이다.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요즘 새벽에 욥기를 설교하고 있다. 욥은 당대의 의인이요 부자였다. 하나님께서도 인정하는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에게 재난이 닥쳐 왔다. 그의 소유와 10명의 자녀를 잃고, 자신의 몸은 악성 피부병으로 걸레처럼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한다.

욥 10:1-2,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

까닭없이 닥친 재앙으로 인해 욥은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까닭없이 고난을 당하는 욥을 생각하라고 말하지 않고 예수를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억울한 것으로 따지면 예수님은 욥보다 한 수 위에 있다. 아무 죄도 없는 분이 죄인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

인류 역사가 가운데 가장 잘못된 재판의 대표적 사례가 빌라도의 법정이다. 아무 죄도 없는 분을 죄인으로 정하고 십자가형을 선고한 것이다. 예수님 입장에서, 가족들이나, 제자들 입장에서 이것보다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참으셨다. 왜 참으셨는가?

이 땅에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신앙 지키는 것 때문에, 조롱당하고, 미움받고, 손해보는 일들이 많다. 이와 같은 고난과 핍박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다. 적당히 신앙생활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닥치지 않는다. 고난이 다 피해간다. 참으로 신앙의 중심을 지키려는 사람에게 환란과 핍박이 온다. 그때 신실한 성도들은 피곤해지고, 낙심케 된다.

그럴 때 예수님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아무 죄도 없이 애매히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다시 힘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여러분의 생각이 예수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란다. 그러면 모든 시험 환란 어려움을 능히 이길 수 있다.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비결

1.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2.인내로써 경주하는 것이다.
3.예수님 만을 삶의 목표로 삼는 것이다.
4.예수님 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현실의 삶에서 타협하지 말고, 우리에 당한 싸움을 힘써 싸워 나가기 바란다. 우리 혼자 각개전투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이 계신다. 그리고 이미 승리한 구름 같은 믿음의 선진들의 성원이 있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믿음의 지체들이 있다.

바로 여러분 안에 계시고, 여러분 옆에 있다. 함께 격려합시다.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영광스러운 그 날을 기대하며 날마다 날마다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만 생각하며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축원한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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