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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염치불구하고 손을 내밀어 (마 14: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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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람들은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과 눈인사를 잘합니다. 친절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데 길에서 낯선 사람과 몸이 부딪치는 것은 큰 실례로 여깁니다. 바로 ‘익스큐즈 미’ 하면서 사과합니다. 실수로 몸이 닿았어도 크게 미안해합니다. 그래서 길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익스큐즈 미’입니다. 이런 문화가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일부러 몸을 만지는 것은 성범죄에 해당합니다. 법적으로 큰 봉변을 당하게 되니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교민들이 이웃 어린아이가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엉덩이를 만졌다가 형사 고발을 당한 사례가 많습니다.

몸이 닿는 것은 여간 친한 사이가 아니면 허용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특히 환자의 몸을 직접 만지면서 고친 적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한센병 환자의 몸도 직접 손으로 만지시며 고쳤습니다. 이는 부정을 타는 것으로 유대인들에게는 금기에 해당됐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환자의 몸에 손대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실 때는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말을 못하는 사람은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양 귀에 손가락을 넣으셨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진흙을 눈에 바르셨습니다. 상한 부위와 정도에 따라서 치유의 방법이 다양합니다.

예수님의 손은 약손이었습니다. 주님의 손길이 닿는 곳에는 언제나 치유의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어떤 중병도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자도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치유 장면은 특별합니다. 예수님이 고칠 의향을 가지고 환자에 손을 댄 것이 아닙니다. 환자들이 예수님의 옷가에 손을 대고 나았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다 나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게네사렛에 도착하셨습니다. 게네사렛은 갈릴리 서쪽 마을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근방에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들을 불렀습니다. 소문을 들은 병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성경에는 모인 사람의 숫자가 보고되어 있지 않습니다. 짐작컨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봐집니다. 왜냐하면 평소에는 예수님이 병자들을 일일이 고쳐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도 그 많은 군중을 일일이 만나면서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그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왔기 때문에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일일이 만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너무 많은 사람 때문에 치유를 포기하셔야만 했습니다.

사람이 모이면 군중심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군중은 언제 폭발할지 모릅니다. 군중에게 예의나 도덕을 요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 군중을 통솔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나서서 예수님께 정중히 청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이 다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낫기를 포기하고 돌아가라고 하긴 더 어렵습니다.

또 부분적으로만 고치는 것도 공평한 처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비상수단을 생각해 냈습니다. 예수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게만 해도 나을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본문 가운데 숨어 있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곤란에 빠뜨리지 않고 은혜를 챙기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난처한 상황을 극적인 타협으로 이겨내고 있습니다. 옷가에라도 만지면 낫겠다고 본 것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단순히 기적을 베푸는 자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전무후무한 큰 권세임을 알아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에게 그런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옷가에 손을 대어 병을 고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래 동안 혈루증으로 앓았습니다. 12 년 동안 낫지도 않는 고질병이었습니다. 그녀는 기력도 없고 용기도 없어 감히 예수님 앞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군중들 틈에서 잠간 예수님께 손을 내밀었습니다. 예수님의 옷가를 만졌습니다. 그 때 예수님에게서 능력이 나갔습니다. 그녀는 곧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허락을 받지 않고 예수님께 손을 댔습니다. 예수님은 몸을 돌이켜 누가 내 옷에 손을 댔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민감하게 능력이 나간 것을 알아채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물음은 여인에게 호통처럼 들렸습니다. 여인은 두려운 마음으로 자수를 했습니다. 두려워 떨며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 5:34>

허락도 없이 예수님에게 손을 대는 것은 무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너무도 간절했기 때문에 그 일이 용서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토록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여인이 믿음으로 손을 내밀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이라도 만지면 내 병이 나으리라고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짧은 시간에 수많은 병자를 고치십니다. 일일이 신경을 쓰면서 만지며 고치는 것에 비하면 아주 쉬워 보입니다. 더구나 손을 대는 자는 다 낫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방법이 있었다면 진작부터 써 먹었을 일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쉬운 방법을 놔두고 그동안 힘들고 어렵게 사역하셨을까요?

한 번에 한 사람을 고치나, 한 번에 백 사람 천 사람을 고치나 마찬가지일까요?

오늘 본문을 잘못 보면 도매금으로 고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의 수많은 병자들이 다 나았지만, 도매금으로 나은 것이 아닙니다. 저들은 모두 믿음으로 나았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으로 나은 것입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도 믿음 없이 예수님을 만지지 않았습니다. 모두 예수님을 만지면 내 병이 나으리란 믿음으로 만졌습니다.

대단한 군중입니다. 그 중 한 사람도 믿음이 없었던 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의 길거리응원이 민족문화 상징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수만 명이 빨간 옷을 입고 거리에서 열렬하게 응원하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자리의 쓰레기가 깨끗하게 치워진 모습은 더 감동적입니다.

군중은 한 순간에 폭도가 될 수도 있고, 순한 양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군중은 정말 표창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병을 고치려는 열망으로 타올랐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너무 불리했습니다. 자칫하면 예수님은 또 군중을 피해 달아나셔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타협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들에게 오실 수 없으니, 우리가 예수님께 가겠다고···

예수님이 우릴 만지지 못하시니, 우리가 염치불구하고 예수님을 만지겠다고···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과격하게 만지지 않았습니다. 욕심을 부려 예수님의 옷을 당기는 자도 없었습니다. 아주 신사적으로 예수님을 세워두고 그 앞을 지나면서 옷가에 손을 댔습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질서를 지키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주 짧은 시간에 은혜를 만졌습니다. 도매금으로 싸잡아 나은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주님을 만지면서 병이 나았습니다.

이 장면은 결코 소란스럽지 않았습니다. 무슨 예식을 치르듯이 경건했습니다.

예수님 앞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은 경이로운 얼굴로 자기 병이 나은 것을 체험했습니다. 경탄해하면서 손을 들어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주님을 경배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나를 만지시나, 내가 주님을 만지나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내게 다가와 나를 만져주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런 은혜를 체험하려면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이 찾아오시도록 아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놀라운 만져주심을 경험하겠지요?

그러나 여러분! 그렇게 기다리지 마십시오. 내가 주님을 찾아 주님을 만지면 됩니다. 함부로 주님께 내 더러운 손을 내밀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겸손히 주님을 만질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언제든 주님을 찾으면 내 곁에 와 주십니다. 손을 뻗어 주님께 내미십시오. 주님과 접촉이 이루어지는 순간, 주님의 은혜가 나옵니다. 내가 나으리란 믿음으로 내미십시오. 주님의 능력이 나옵니다.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 때, 손을 내미십시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십자가의 주님을 만지십시오. 제자 도마가 십자가에 못 자국 난 손을 만졌습니다. 주님의 그 손을 만졌습니다. 사랑의 주님은 그 손을 결코 뿌리치신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자비로우심으로 우릴 만져주십니다. (황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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