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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성전 (왕상 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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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윗 왕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법궤가 천막 속에 보관되고 있는데 반해 자기 자신은 백향목 궁전에서 산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너무나 송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윗 왕의 마음을 아시고 “너는 내 성전을 지을 자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성전을 짓고자 하는 그 마음 중심을 기뻐하시고 이렇게 축복하셨습니다.

1)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가장 존귀하게 만들어 주리라.
2) 앞으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정착지를 마련해 주고 그들이 다시는 옮겨 다니지 않도록 하리라.
3) 너를 모든 대적으로부터 평안하게 지켜 주리라.
4) 네자손들이 영원토록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게 하리라.
5) 네 아들이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지을 것이니라.
6) 네 자손들이 왕이 되어 범죄하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징계할지라도 사울처럼 왕권을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7)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리라(삼하7:1-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다윗 왕처럼 성전을 소중히 여기고 랑하는 마음이 되어 다윗 왕이 받은 7가지 축복들을 모두 누리시기 바랍니다.
                   
2. 에덴 동산에는 성전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와 함께 계셨기 문이었습니다.(창3:8)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므로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입고 하나님을 얼굴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시며 찾으셨습니다. 아담은 자신이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누가 네가 벗은 것을 말해주었느냐? 네가 먹지 라고 한 나무 실과를 먹었구나?”며 물으셨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하와가 그 실과를 주어 먹게 되었다며 그 책임을 하와를 아내로 주 하나님께 돌렸고, 하와는 뱀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켰습니다. 결국 회개하지 않은 아담과 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6-17)는 말씀대로 범죄한 인간에게 내려진 심판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심판하시되 인간 스스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만든 치마 대신에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다고 했습니다.(창3:21) 하나님께서는 심판 중에서도 인간의 죄를 가리울 가죽옷을 입히시는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가죽옷은 동물의 희생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동물이 희생된 것입니다. 동물이 희생되었다는 것은 피를 흘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피값으로만 인간의 죄가 가리워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확실하게 잘 설명해주는 말씀이 레위기 17:11입니다.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14)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
피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인간을 위해 가죽옷을 입히신 하나님 마음에는 벌써 인간의 죄 사함을 위해 희생제물을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죄를 범한 인간이 죄 사함을 받아 사는 길은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사에 있음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성전은 바로 인간이 죄 사함을 받기 위해 희생의 제사(예배)를 드리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죄한 모든 인류가 사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므로 죄사함을 받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하나님 성전에 나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드리는 희생제물은 무엇이겠습니까?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바로 모든 인류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희생되어야 할 제물은 “하나님의 어린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희생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입히신 가죽옷은 인류 구원을 위해 예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마음에 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사함을 위해 십자가에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드리는 곳이 바로 성전인 것입니다.

3.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곳은 어디이겠습니까? 그곳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며 지시하신 곳입니다. 바로 모리아 산입니다.

(창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신 아브라함이 과연 믿음이 있는지, 과연 하나님을 믿음으로 경외하는지 그 여부를 시험하기 위해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히11:17) 그 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한 산이 바로 모리아 산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와 의논 한 마디 없이 독자 이삭을 데리고 3일 길을 걸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으로 갔습니다. 번제물도 없이 나뭇단을 지고 가는 이삭이 번제물에 대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은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해주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에 이르러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는 순간,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7-12)는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이렇게 복을 약속하십니다.

(창22:16-18)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과 믿음이 시험되었던 곳이 바로 모리아 산이었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은 곳,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마음의 순종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순종은 믿음의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순종하는 것이고 순종하는 사람이 믿는 것입니다. 순종하므로 믿음을 얻게 되고 믿음으로 순종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 원하시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순종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샤마”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듣는다.”입니다. “순종”과 “듣는다.”는 말은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 역시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데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0:17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다는 것은 아브라함처럼 마음을 열고,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님 말씀을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성 프란체스코가 수도원에서 어느 날 농사일을 하고 있는데, 젊은 두 사람이 수도사가 되겠다고 왔습니다. 당시 수도생 선발기준은 아주 엄격했습니다. 때 마침 배추 모종을 하고 있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그들에게 모종을 주면서 “이 배추를 거꾸로 심어라”고 지시합니다. 뿌리를 하늘로 하고 그 줄기를 땅으로 하여 심으라 말하고는 들어가 버렸습니다. 한 수도사 후보생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니 그렇게 해야지”하고 거꾸로 심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한참 심다말고, 배추 뿌리를 하늘로 해서 심다니 말도 안 된다 생각하고 뿌리를 땅으로 해서 심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저녁에 나와 보고 거꾸로 심은 사람을 수도사로 뽑고, 자기 생각이 합리적이라고 여기며 바로 심은 사람은 돌려보냈습니다. 배추 모종을 거꾸로 심으라는 것이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를 시험하기 위해 명령한 것이 아닙니다.
수도원생을 뽑고자 하는 분이 알고자 하는 것은 과연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포기하고 순종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수도사로 훈련시키기 위해 가장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가 바로 순종이기 때문에 어떠한 명령을 내릴지라도 순종하는지 그 여부를 알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은 전혀 귀에 담지 않고 성전에 어쩔 수 없이 나가 형식적으로 제물을 바치는 배부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사1:13-14)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울은 본래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막내 지파인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가장 키가 크고 가장 잘생긴 소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했습니다. 한번은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으라는 아버지 말씀에 무려 사흘 길을 두루 다닌 적이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사울은 그는 스스로 작게 여기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를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9:21)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게다가 자기가 왕이 된다는 말을 듣자, 짐짝 뒤에 가서 숨었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작게 여길 때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높임을 받아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어 누리게 되는 것이 많아지다 보니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 아말렉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 중 노약자들만 골라 만행을 저질렀던 것을 기억하여 그들을 반드시 심판하리라고 말씀하셨던 대로 때가 되어 아말렉을 심판하기 위해 사울 왕에 명령하십니다.  아말렉 족속과 그들의 모든 가축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진멸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을 생포하고 가축 중 별로 가치 없는 것들만 진멸하고 좋은 것은 숨겨 두었습니다. 게다가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것은 전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임에도 자기를 위해 기념비까지 세웠습니다.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과거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사울 왕은 다만 그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집행관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말렉 왕까지 죽일 필요가 있겠느냐, 아깝고 때깔 좋은 가축까지 모조리 죽여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것은 사울의 생각입니다. 그들을 살리고 죽이는 권한은 사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때문에 사울 왕은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집행관으로 자기 생각이나 감정 등을 나타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을 통해 가축들을 모두 진멸하지 않고 좋은 것들을 숨겨 둔 책임을 묻자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그랬다며 자기 생각과 욕심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사울의 불순종과 교만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책망하시며 심판을 선고하십니다.

(삼상15:22-23)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아말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그대로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사울 왕은 도리어 하나님의엄중한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가난할 때나 부할 때나, 낮을 때나 높을 때나, 약할 때나 강할 때나 항상 겸손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아브라함과 다윗이 받아 누린 복을 받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신28:1-68)

4. 마지막으로,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곳은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아라우나 타작마당이었습니다. 다윗이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에게 인구 조사를 금했습니다. 인구 조사를 통해 자칫 자신의 능력과 영예, 그리고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하여 교만과 자만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이 통치 말엽에 이제 이룰 만큼 이루었고, 자신과 나라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이 인구  조사를 명령합니다. 조사 결과 병력수만 무려 13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지금에 비해도 실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구 조사가 끝나고 다윗은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께 이렇게 회개합니다. “내가 이러한 일을 해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이 종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빕니다. 참으로 내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은 책임을 요구하시듯이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누리게 된 다윗 왕에게 엄중하게 문책하십니다. 하나님은 세 가지 징벌을 제시하시며 “그 중 하나를 택하라 내가 너에게 그대로 처리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지자 갓을 통해 다윗에게 제시된 세 가지는 “왕의 나라에 일곱 해 동안 흉년이 들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왕이 왕의 목숨을 노리고 쫓아다니는 원수들을 피하여 석 달 동안 도망을 다니시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왕의 나라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퍼지는 것이 좋겠습니까?” 등 이었습니다. 다윗 왕은 “괴롭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자비가 많으신 분이니, 차라리 우리가 주님의 손에 벌을 받겠습니다. 사람의 손에 벌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며 세 번째 징벌, 질병의 징계를 택합니다. 

그리하여 그 날 아침부터 정하여진 때까지, 이스라엘 전역에 전염병을 내리시니, 질병으로  죽은 사람이 하루에만 칠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처참한 모습에 다윗 왕이 이렇게 통회합니다. “바로 내가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바로 내가 이런 악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백성은 양 떼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차라리 나와 내 아버지의 집안을 쳐 주십시오.” 다윗 왕의 통회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선지자 갓을 통해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으로 올라가서, 거기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 그래서 다윗 왕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라우나 타작마당으로 갑니다. 그리고 아라우나에게 “그대에게서 이 타작 마당을 사서, 주께 제단을 쌓아서,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고 하오.”라고 말합니다. 아라우나는 “높으신 왕께서는, 무엇이든지 좋게 여기시는 대로 골라다가 제물로 바치시기 바랍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번제로 드릴 소도 있고, 땔감으로는 타작기의 판자와 소의 멍에가 있습니다. 왕이시여, 아라우나가 이 모든 것을 왕께 바칩니다. 하나님께서 왕의 제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아라우나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되오. 내가 꼭 값을 지불하고서 사겠소. 내가 거저 얻은 것으로 주 나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는 않겠소.”라며 은 쉰 세겔을 주고, 그 타작 마당과 소를 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다윗의 제사와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내리던 재앙이 그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솔로몬이 건축한 하나님의 성전은 다윗 왕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던 아라우나 타작마당, 참회를 예배를 드린 타작마당, 그래서 재앙을 그치게 한 타작마당이었습니다.
성전은 이처럼 참회의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살인한 죄악을 범하고 이렇게 회개합니다.
(시51:1-2)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제사 제물보다 상한 심령으로 통회하는 것을 멸시하지 아니하시는 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시51:16-17)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참회라는 사람을 멸시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통회하는 사람을 더럽다고 하여 멀리 하지 않으시고 죄악을 도말하여 정결케 하시며 더욱 더 가까이 하십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구원의 기쁨으로 유쾌해지는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삶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에게서 성령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다윗왕은 지은 죄를 두고 즉시 회개하므로 성령이 항상 그와 함께 하시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지은 죄를 지적받았을 때 회개하지 못하고 변명을 일삼고 그 죄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서 성령을 거두시고 그를 버리셨습니다. 회개하면 살고, 회개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예수께서 유월절 식사를 제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근심하여 “주여, 접니까?”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에 유다가 “랍비여, 접니까?”하고 묻습니다. 예수께서 “네가 말하였도다.”며 말씀하십니다. 이렇게까지 분명히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데도 유다는 회개하지 아니하고 결국 예수를 팔고 자살하여 죽고 맙니다.(마26:21-25)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며 책망을 듣고 기분 나쁘게 여겨 예수를 배신하거나 떠나지 아니하고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며 더욱 더 예수께 달라붙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를 배신하여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일을 회개했을 때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를 다시 찾아가셔서 소중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은 유다는 망하고, 회개한 베드로는 더
                    큰 사명을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그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만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그와같이 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만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그와 같이 망할 것이다.”

(눅13:2-4)죄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회개 하지 않기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졌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망하게 됩니다. 이 나라 민족과 지도자들이 엄청난 죄를 짓고도 멀쩡하다고 안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죄를 회개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은총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그 죄로 망할 날이 반드시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회개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복을 가져오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죄와 허물이 있다고 해도,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서, 하나님 앞에 돌아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다시 축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옛날 가수 박재란씨는 18세 때 가수가 되어 “럭키 모닝”, “산너머 남촌에는”, “밀짚모자 아가씨” 등을 부르면서 인기 가수가 되었습니다. 인기와 돈으로 박재란씨의 인생은 황홀하였습니다.?그러나 가요계에 새로운 가수가 계속 등장하면서 박재란의 인기는 떨어지기 시작하였고 신혼의 단꿈마저 딸 하나를 얻은 뒤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가요계의 영광의 자리를 다시 차지하려고 했지만 어려웠습니다. 집념은 병이 되어 박재란씨를 쓰러뜨렸습니다. 심장과 신장에 이상이 오더니 급기야는 악성 위궤양이 되어 음식을 전혀 먹을 수?없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발병 초기에 딱하게 여기고 도와주던 이웃들도 하나, 둘 떨어져 나갔습니다. 6개월, 1년 2년이 되면서 얼굴은 새까맣게 기미로 뒤덮히고, 스타킹을 신을?수 없을 정도로 다리는 가늘어져서 일어서서 걷기조차 어려웠습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것은 죽음에 대한 생
각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어야 할까를 생각하던 어느 날 무심중에 TV를 켜니 어느 목사님의 말씀 중에 “하나님께서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는 말씀이 들려 왔습니다. 그 한마디가 갑자기 하늘과 땅을 가득 채웠습니다.?수없이 들어 왔고 무심히 지나쳤던 그 한 말씀이 갑자기 박재란씨의 마음을?치고 들어온 것입니다. “성경! 성경이 어디있지!” 하면서 성경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도 실감할 수 없었던 대목 대목들이 생명수처럼 마음속으로 흘러들었습니다. 눈물, 콧물, 엎드려 통곡하다가 자신의 죄를 자복하다가 어릴 적 소꿉동무에게 행한 거짓말까지 낱낱이 떠올라 회개로 밤을 세웠습니다. 시장기를 느낀 박재란씨는 냉수에 밥을 말아 김치를 반찬으로 먹었습니다. 먹다가 “아니 내가...김치하고 냉수에 밥을 말아서 먹고 있지 않아?”?깜짝 놀랐으나 몇 시간이 지나도록 멀쩡했습니다. 오히려 활기와 힘이 솟구쳤습니다. 너무도 신기하여 그때부터는 감사의 눈물을 봇물처럼 흐르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 15년 동안 병이 무엇인지 모를 만큼 건강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간증하며 하늘나라의 영광을 노래하는 전도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과 강단 설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성경과 설교말씀을 듣고 보고만 끝나서는 안됩니다.?말씀을 들을 때 내 죄가 드러나야 하고 그 죄를 회개할 줄 아는 자가?되어야 합니다.?박재란씨에게 애통한 회개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 하셨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 살려면 회개해야만 합니다.

기도가 열리고 감사가 넘치는 생활은 회개를 통해 얻어지는 것입니다. 사명이 회복되고 찬송과 기쁨이 회복되며 축복의 문이 열리는 길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회개의 제사를 드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순종과 회개의 제사를 드려 하나님의 축복이 충만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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