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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마음을 알라 (민 6: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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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장맛비가 유난히 많이 왔습니다. 1973년 집계를 시작한 뒤 올 장마 강수량 717.3㎜ 신기록을 냈습니다. 역대 1위 기록입니다. 지난해(350.4㎜)의 두 배 수준입니다.
지구촌이 가뭄 등 기상이변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일본 규슈 3일간 1100㎜ 폭우로 24명 사망, 7만여 명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서유럽은 연일 폭염으로 30명 사망 했습니다. 보스니아는 섭씨 41도, 스페인은 40도,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는 39도를 기록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센트럴 밸리의 수은주가 46도까지 치솟아 50여명 이상이 숨졌습니다.
브라질의 세계 최대 규모인 이과수 폭포의 수량은 70년만에 최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지구촌은 잦은 기상이변으로 각종 자연 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화산폭발 지진 해일 황사 가뭄 홍수 . . . 자연에 대한 폭력이 자연재해로 되돌아 오고 있습니다.
온 세계는 자원고갈, 대기오염, 수질오염,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같은 문제로 지금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인류는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2백여 년밖에 안 되었지만 화석 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면서 이산화탄소와 이산화질소를 과다하게 배출하면서 지구의 온실효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이로 인해에서 가뭄과 홍수, 폭염 등 기상 이변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은 생태계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생물 멸종의 위기를 조성시키고 있습니다. 지구상에는 1천만 종이 넘는 생물이 존재하지만 앞으로 50년 내에 2백만 종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집중호우로 재산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고 망연자실한 수재민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헌금 시간에 특별 헌금을 하고자 합니다.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좋았더라”고 감탄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 좋으신 하나님 . . 우리는 그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알아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 . ”(호 6:3) ‘이 백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 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17절에 보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 .” 라고 기도했습니다.

1. 하나님의 바램은? 하나님은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이 아침에는 하나님을 좀 더 알아 가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철없는 자식이라도 부모의 마음을 알 때 비로소 효도하게 됩니다. 늙고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워낙 가난한 살림이라 일도 하지 못하고 밥만 축내는 아버지가 야속하고 귀찮기만 했습니다. 아들은 아내와 의논한 끝에 뒷산 밑에 있는 큰 연못에 아버지를 밀어넣기로 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업고 연못까지 가서 빠뜨리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아들의 목을 감은 팔을 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놓으라거니 안 된다거니 옥신각신하는데, 마침 지나가던 순경이 이 광경을 보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더럭 겁이 났습니다.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붙들려 가서 혼이 날 판이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얼른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내가 이렇게 늙고 병들어 아무 쓸모없는 몸이라 입이나 덜어 주려고 연못에 빠져 죽을 작정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이를 알고 달려와 말리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이랍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비로소 크게 뉘우쳐,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 여생 동안 극진히 모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간절한 바램과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잘되고 영원한 승리자가 되고 영원한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여러분들, 하나님을 바로 아시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소위 ‘축도’라고 하는 축복기도의 원형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백성을 위해 축복을 비는 축복기도를 가르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제사장의 역할이 있는데 그것은 제사장에게 백성을 축복하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인데, 이는 죄인인 사람이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로 가득한 인간이 하나님께 그냥 나가는 경우 하나님의 그 거룩하심으로 인해 그 자리에서 죽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그들을 대신해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사장의 임무입니다.

백성들은 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야하고, 제사장은 그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백성들을 축복할 특권이 제사장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받고 평안하게 살기를 원하고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오셔서 복받기를 원하고 사모하며 그 복을 받아 누리셔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여호와”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이 복의 주관자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을 주는 자는 어떤 초월적이거나 신령한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고목나무나 바위 등 조금 이상하게 생긴게 있으면 경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할 수록 정신적으로는 공허하기에 경배의 대상이 많아졌습니다. 돈, 쾌락, 섹스, 스포츠, 스크린 . .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너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사45:7)

우리 국민들은 샤마니즘적인 복의 개념을 갖고 살아 왔습니다. 지식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에도 . . 그러나 그 복을 주시는 분이 어떤 분이시고 복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지도 않고 조상적부터 그래왔으니 . . .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복을 달라고 합니다.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사는 길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거운 짐만 없다면 즐겁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셔서 영적으로 우리가 계속 지탱해 나가도록 하십니다. 복은 그저 쉽게만 받으려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련과 함게 복을 주십니다. 옛날 괘종시계는 거추장스러운것 처럼 보이지만 추 때문에 시간이 맞는 것입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 . . ”(시127:2) 그들은 하나님만이 정녕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대속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울러 백성들을 위해 축복했습니다. 23절,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 . . ” 27절, “그들은 이같이 . . . ”

목사는 바로 교인들이 참 복을 받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있습니다. 구원은 예수를 믿으면 단 한번으로 끝납니다. 그럼에도 목사가 계속 있어야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잘 섬겨 바로 믿어 복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벧전2:9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목사가 필요없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성도가 복을 받도록 인도하고 지도하고 기도하는 자로 있는 것입니다.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복을 받도록 지도 하도록 하나님이 세우신 목사를 우습게 여깁니다. “기도해줘도 안 났던데 . .” 목사가 설교를 하고 나면 자기 잣대로 평가해 버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물론 금방 알아 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의 기초가 바르게 되지 못하고 정초에 기도원 찾고 신령한 목사 찾아서 안수받는다고 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복받을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목사를 통해서 말씀을 듣고 배우고 훈련받아야 합니다.

어떤 유명한 신학자 한 분이 그의 손자가 목사안수를 받는 날, 자기 손자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축복 기도 받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손자 목사는 당황하며 “할아버지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습니까?”라고 말하며 정중하게 거절하자 그 할아버지는 “목사님으로서 축복하는 것입니다. 빨리 해 주세요. 이 노인이 이렇게 하나님의 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더라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그의 손자가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이 너무 감격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처음 안수 받은 목사에게 맨 처음으로 축복 기도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주의 종으로부터 축복기도 받는 것을 소중하게 알아야 합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시133:2)과 같이 하나님의 크신 복이 주의 종을 통해서 전 성도들에게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축복기도는 곧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24절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세상이 주는 복과는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복은 물질적인 복이요, 일시적인 복이요, 없어지는 복이요, 불완전한 복이요 사람을 온전케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영적인 복이요, 근본적인 복이요, 영원한 복이요, 사람을 온전케 하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보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엡(1:3)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심은 하늘의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세상 것이 굉장해보여도 깊이 바라보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잡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나타나십니다. 베드로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고 말씀 하십니다. 갈릴리바다에는 수심이 얕은 곳에서만 고기가 있었는데 의외의 명령을 하셨습니다. 참으로 순종하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바다사정은 베드로가 더 잘 압니다. 그러나 경험많은 베드로가 주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랬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힙니다. 베드로는 무릎을 꿇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베드로는 창조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보다 더 큰것은 없습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인생이 바뀝니다.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은 베드로에게 복을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복을 주시려고 오십니다. 그 때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순종하십시오.

2. 하나님은 지키시기를 원하십니다.

‘지킨다’고 할 때 히브리어는 ‘솨마르’라고 되어 있습니다. ‘솨마르’라는 말은 ‘둘레에 가시 울타리를 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지켜 달라고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 주변에 가시 울타리를 쳐주셔서 보호하여 주십니다. 악의 세력에서 위험에서 . . .하나님의 지키심은 세심합니다.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쳐서 지키시는 하나님!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 121:3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시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사람 스스로 짓는 인생의 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시는 인생의 집이라야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건강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하고, 우리의 생업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하고, 우리의 번 물질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 . . ”(사52:12)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들은 그들이 사자굴과 풀무불 속에 들어갔을 때 사자의 입을 봉해 주었고 풀무불이 사르지 못하도록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언제, 어디서나’입니다.
야곱이 팥죽 한 그릇에 장자명분을 사고 형 에서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가서 머슴살이20년만에 돌아오는 길에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가느리고 야곱을 추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얍복강가에서 밤새 기도할 때 하나님의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고 기쁨으로 형제상봉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을 압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말라고 누누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연약하고 힘이 없는 양은 울타리를 쳐주어야만 보호받을 수 있듯이 연약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영적인 울타리를 쳐주셔야만 보호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입니다.

시편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울타리가 되주시는데 누가 감히 넘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 했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울타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울타리가 되주셔서 재앙으로부터, 사단으로부터, 사망으로부터, 저주로부터 보호해 주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2)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했습니다.

3. 하나님은 얼굴을 우리에게 향하기를 원하십니다.

25절에 “주님의 얼굴로 나에게 비취신다”고 했고 26절에는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든다’(나사)는 말은 “받아들이다” “공급하다”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굴을 서로 향하고 있습니다. 보고 또 보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얼굴을 향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들은 얼굴을 자꾸 피합니다. 외면합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을 불신하고 거역하는 사람에게는 얼굴을 돌리십니다.

하나님은 마치 잠자는 어린 아기를 사랑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부모가 그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를 향해 그의 은혜의 얼굴빛을 비취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이 항상 우리를 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빛’은 최대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성도들이 모인 성전에 시선을 고정시키시고, 주시하시며, 영광을 비추어 주십니다. 그래서 어두움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실패가 없고, 고통을 모르게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얼굴의 영광이 우리를 비추는 것은 큰복입니다.

영적으로 가장 큰 저주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저주 아래 놓이게 되고, 모든 것이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향하고 계시는 것이고 저주란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돌리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경청하는 것은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입니다. 예배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교할 때 말씀을 경청하지 않고 자꾸 딴 곳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대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얼굴을 숙이거나 돌릴 수 있을까요?
얼굴을 비취실 뿐 아니라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주님이 나에게 가까이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이에요. 은혜(하난)란 본래 “구부리다” “아랫사람에게 몸을 굽히다”는 뜻입니다. 조건없이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얼굴과 은혜의 손길이 떠나지 아니하는 사랑 받는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4. 하나님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민6:26) 했습니다.
‘평강’(peace)은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복들 중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복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천하 권세를 누리며, 모든 명예를 소유했다 하더라도, 마음에 평강이 없으면 다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을 ‘평강’이라 생각해서, 만날 때마다 인사를 ‘샬롬’(shalom) 곧 ‘평안하기를 빕니다’라고 축복했습니다. 워렌 위어스비 (Warren Wiersbe)는 “이 평강은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우리 속마음의 평정, 영적인 건강, 영적인 번영, 영적인 안녕 등을 포함한다”고 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아무런 어려움이나 문제가 없을 때 주어지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역경 가운데서 주는 평안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에도 주시는 평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127:2) 했습니다.
여기의 잠은 평안을 말합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평안해야 단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불안이 사라집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기쁨이 샘솟습니다. 모든 것을 넉넉히 이깁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3:6-7)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려면 하나님을 믿고 모든 무거운 짐을 맡겨야 합니다. 맡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맡아주시지 않고 맡아주시지 않으면 평강은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축복할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면 복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축복의 권세만 주셨습니다. 저주의 권세를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원수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움직일 때 보면 옆에 꼭 붙어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블랙박스가 들려져 있습니다. 언제 핵전쟁이 일어나도 대처할 수 있는 박스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무슨 명령을 하든지 다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옆에 돈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뭐라고 시키든지 다 그대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수재민 돕기에 1억을 주라면 주고, 미자립교회들에게 5000만원씩 주라면 주고 . . 얼마나 신납니까?
며칠전 저와 절친한 감리사님에게 들은 이야기 인데 어느 장로님이 1억을 주면서 미자립교회들에게 천만원씩 나눠주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이 감리사님이 가슴이 막 뛰더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나든지 . . .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축복 주시는 것을 보장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사용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알고 그 하나님의 말씀따라 축복하며 삽시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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