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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이 우리를 새롭게 만듭니다 (롬 10: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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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줄로 믿습니다! 지금도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평안의교회가 지지난 주와 지난 주 두 차례에 걸쳐서 총력전도의 날 행사를 하였습니다. 수요일 오전 10시30분 부터 30분간 기도회를 하고, 11시에서 12시반 까지 전도를 마치고 돌아와 1시에 점심식사를 하면서 전도사역 현장에서 허락하셨던 아주 소중한 경험들을 간증하며 귀한 시간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지지난주에도 장마 중이었으나 웨슬리전도대의 수요일 전도사역을 위하여 좋은 일기를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했는데 놀랍게도 하루 전부터 좋은 일기를 허락하셔서 기쁨으로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기간이 세계감리교대회가 개최되는 주간이라 수많은 성도들이 기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음을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 수요일에도 우리교회는 제2차 총력전도의 날로 선포하고 주공 2,3,4단지를 집중적으로 전도할 계획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간은 내내 집중호우로 말미암아 전국이 산사태가 나고 강둑이 터져 마을이 수몰되는 등 감당하기 어려운 일기로 인하여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비가 오는 기간에는 차라리 전도를 취소하는 것이 낳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굳게 먹고 전도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수요일날 새벽기도 시간 까지도 비가 와서 우리의 마음을 어렵게 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뉴스를 들어보니 중부지방에 200㎜, 심한 곳은 300㎜까지 집중호우가 내리리라는 기상특보가 발령중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날 새벽기도 시간에 온 성도가 합심하여 좋은 일기를 주시도록 기도했지만 일기는 변할 기미가 보이지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도들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좋은 일기를 주시도록 끝까지 기도의 끈을 놓치 않았고, 10시30분 전도자들이 속속 모여드는 시간이 되면서 날씨가 개어지기 시작하여 오후 내내 아파트 전도를 하는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전도사역을 마친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최근 두 차례에 걸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마음에 전율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심지어는 두려움 같은 무엇을 느껴졌습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응답의 역사에도 일종의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함부로 우리가 기도할 것도 아니고, 만일 우리가 기도한다면 반드시 응답된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게된 체험의 한 주간이 된 줄로 믿습니다.

지난 주 저는 새가족과 함께 선교속회를 겸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참석하여 보니까 아주 귀한 성도의 간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날 그시간에 병원에서 진료를 예약한 상태였는데 고민을 하다가 병원에 다시 연락을 하여 오늘은 내가 중요한 일 때문에 진료를 받을 수 없으니 다음으로 연기하겠노라고 하였더니 한 달 후에나 진료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예약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집사도 아니요 오래된 성도도 아니었습니다. 새롭게 신앙의 길에 결심을 한 그의 모습에서 우리 참석자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성도의 믿음이 저렇게 순수하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때로는 집사님이나 권사님등 오래 믿었다는 사람들 조차도 자기들의 개인적인 이익이나 여러가지 스케줄이 겹치면 주님의 일을 소홀히 여길 때가 있는데 말입니다. 병원 예약때문에 오늘 참석이 어렵다고 하여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사유였지만 그분은 달랐습니다. 예배가 우선이요, 하나님과의 약속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 우리가 오히려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냥 있다가 가도 아무도 알아 주지 않고, 아무도 느껴주지 않는 무가치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내 자리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있어 내 자리가 빌때에 모든 사람들이 함께 아파하고 위로할 만큼 소중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성도들의 그 사랑과 수고의 땀이 담긴 모습을 잠깐동안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전도 현장에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부분들이지만 좀 더 관심을 기울인 손길에서 우리는 사역에의 자부심을 더욱 느끼는 계기가 된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믿음이 우리를 새롭게 만듭니다’ 라는 주제입니다. 믿음이 우리를 새롭게 만든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은혜로운 고백입니다. 믿음이 우리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덕목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성도의 열심입니다. 열심이 있는 성도, 열심이 있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전도하는 일에도 열심이요, 기도하는 일에도 열심이요, 은혜를 받는 일에도 열심인 우리의 모습 말입니다. 오늘도 3부 예배시간 11시가 되었는데도 빈자리가 많았습니다만, 찬송과 기도하는 2-3분 사이에 빈자리가 찼는데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반드시 고쳐나가야할 부분입니다.

"주차를 하려다보니 교회 주위를 몇 바퀴 돌다가 10분 늦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도 이제는모두가 다 아는 이유가 되었지요. 그렇다면 그시간을 감안하여 미리 오셔야하는 것이 예배자의 도리일 것입니다. 11시예배에 늘 5분씩 늦는 이를 위하여 제가 다음주부터는 11시30분에 예배를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 어떨것 같습니까? 그분들은 또 11시 35분이나 되어야 오지않겠습니까?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것은 그 분들이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삶의 태도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정말 고쳐져야 할 우리들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열심이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열심이라고 하는 것은 자동차에 엔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선 엔진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불이 붙어야 그 자동차의 무거운 중량과 5명, 10명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도 100㎞ 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삶에 있어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그 얼굴만 보아도 괜히 마음이 두근거려지지 않습니까? 그런가 하면 열정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 오히려 나 자신의 작은 열정 조차도 식어지게 됨을 확연히 느끼게 됩니다.

열심을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요한계시록 3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계시록 2장과 3장을 보면 소아시아 7교회에 대하여 사도 요한에게 말씀해 주시는데 그 중 3장 후반에 보면 라오디게아교회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대단히 실랄합니다. 곧 네가 뜨겁던지 차던지 하기를 원하셨고, 그렇지않고 계속 미지근한 신앙의 태도를 보인다면 내가 토해 버리겠다고 까지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의 태도가 미지근해 가지고서는 안 됩니다. 우리 평안의교회의 색갈은 어떻습니까? 열정의 색입니까?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입니까? 주님께서 라오디게아교회를 책망하신후 마지막으로 권면하신 말슴이 이것입니다. "회개하라, 그리고 열심을 가져라" 그렇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의 결정적인 문제는 열심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열심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하여 열심을 내기를 권하시는 그 말씀이 곧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인줄로 믿고 그 말씀대로 행하기를 축원합니다.

로마서 12장 11절에 보면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열심과 반대가 되는 개념은 게으름입니다. 무슨 일을 해도 게으름에 노출되어 있어요.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대해서 그 열정과 애정이 주체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권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의 덕목은 열심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 열심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면 곤란합니다. 열심을 가졌으나 그 열심에 방향이 그릇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울이전에 사울이었습니다. 이 사울은 젊은이였지만 가말리에 문하생으로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고, 관원이었고,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30대에 최고의 지위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이상하게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었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 아주 큰 분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초대교회 일곱집사 중 가장 헌신적인 스데반집사를 돌로 쳐서 죽이는 엄청난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돌로 쳐 죽이면서도 당연히 여겼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은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서 스데반에 필적한만한 인물을 찾아나섰고 결국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사역중이던 아나니아를 목표로 하여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비행기 타고 쫓아가 살인을 하려고 간 것과 다름없는 모습입니다. 사울이 일행과 더불어 다메섹으로 향할 때 그에게 하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당연히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면 이건 하나님의 음성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음성은 의외였습니다. "누구시오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울에게 혼란이 생깁니다. 그럼 예수는 누구이고 하나님은 누구인가? 우리처럼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했다면 빨리 이해했을 터인데, 하나님에 대해서만 열심이었던 사울은 그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강한 빛이 받은 그는 그 빛에 눈이 멀었습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릴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우뢰소리와 같이 들렸지만 사울에게는 분명한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그는 두려워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앞을 보지 못한 그를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인도하셨습니다. "너를 핍박하려고 다메섹에 온 사울을 내가 멈추어 놓았으니 네가 가서 안수하여 눈을 뜨게 해 주고 그를 보살펴 주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아나니아와 그의 공동체는 자신들을 해하려고 사울이라는 자가 온다는 소식에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 사람에게 가까이에 갈 수 있느냐며 염려하였지만 주님게서는 오히려 그를 통하여 이방인의 빛으로 삼을 것이라며 두려워 하지 말고 가서 사울을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아나니아는 사울이 있는 곳에 가 그를 데려다가 자기의 집에서 쉬게 하고 음식을 주어 회복을 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안수하였을 때 사울의 눈을 뜨게 하는 역사가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아나니아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은 사울은 그제서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핍박하려던 제자 아나니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그에게서 세례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처음 사울이 방향을 잘 못 잡아 주의 충성된 제자 스데반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제 돌이켜 주의 제자로 삼으시고 그의 잘못된 열심을 고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로 쓰임받게 한줄로 믿습니다.

젊은 사람으로서, 관원으로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서 정치, 사회, 종교 등 모든 부분에 있어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면 그는 사실상 성공한 사람의 모델같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오직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울의 열심은 빗나간 열심이요 방향을 잃은 열심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단종교에 빠져 열심인 이들에게 큰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잘못된 그의 열심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다메섹도상에서 중단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열심은 새롭게 변화되어 출발한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이름이 변하여 바울로 바꾼 이후에 그의 열심은 이방인을 구원, 곧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가 방향을 바로 잡고, 그가 열심을 바로 잡은 이후에 자기의 생명을 다해서, 자기의 목숨을 다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자기의 생명을 다한 줄로 믿습니다. 이 생명 구원하는 일에 자기의 생명을 다 해서라도 자신은 그 일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우리를 이렇게 새롭게 만듭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나는 믿음은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 줍니다. 달라져야 합니다. 분명히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믿음, 이 신앙을 가지고 새롭게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살아가는 평안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생명을 다하였던 바울사도, 이스라엘의 영혼구원을 위한 것이라면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겠노라고 다짐하며 실천했던 바울사도, 바로 그 열심, 그 열정을 본받기 원합니다. 귀한 직분을 가졌으면서도 주님 앞에 헌신하지 못하고 충성하지 못했던 저희들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는 진정으로 주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진정으로 산 믿음으로 나아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황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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