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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쓰임받는 일꾼 (행 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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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받는 일꾼(행6:1-15)

지난 두 주간 동안 타지키스탄 단기선교에 참여하고 돌아왔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성도 여러분들의 중보기도를 통해 순조로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영혼구원의 때를 기다리는 준비된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고 영혼구원에 힘쓰는 모습이 참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세계를 가슴에 품고 선교하는 교회의 비젼을 성취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지난 주 올바른 문제해결의 방법을 통해 우리들의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또 앞으로 만나게 될 문제들을 오히려 부흥의 기회를 만들어야 함을 말씀드렸습니다.

올바른 문제해결의 방법으로
첫째, 일을 중단함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둘째, 우선순위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셋째, 일을 분담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서로 양보하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초대교회는 오히려 분제를 부흥의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조금 더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일을 분담하는 문제입니다.
일을 분담하기 위해서는 일을 맡아서 할 일꾼이 필요합니다. 어떤 일꾼이 일을 맡느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일들은 그 일을 맡은 일꾼의 역량과 자세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문제가 원활히 해결되고 더욱 좋은 결과를 이루게 된 데에는 그 일을 맡았던 일곱 사람들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사도들은 아무에게나 일을 맡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일꾼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선택되어 맡겨진 일꾼들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도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만들 만큼 신실하고 좋은 일꾼들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주 진지한 기도입니다. 저는 일을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저 자신에게는 그런 능력도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저는 함께 일하기를 원하고 역할을 분담하여 그 역할에 가장 적절한 적임자가 세워져서 일하게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람을 붙여주시옵소서. 좋은 일꾼, 함께 일할 믿음의 신실한 동역자들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도 끊이지 않고 하는 기도입니다. 감사한 것은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좋은 동역자들을 붙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은 결코 사도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일곱 사람의 선택과 그때 그때 필요한 사람들이 세워짐으로 좋은 일꾼들이 동역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일꾼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일꾼이 되어야 하고 또 일꾼을 세워야 합니다. 전쟁을 하려면 군인이 필요합니다. 건물을 지으려면 건축가가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0장2절을 보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를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이 정말 많다는 말씀을 이번 선교를 통해서 다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추수할 일꾼이 부족한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받아들일 준비된 영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복음의 일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꾼을 세우시고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의 쓰심에 합당한 일꾼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쓰임 받는 일꾼은 어떤 일꾼일까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누가 쓰임 받는 일꾼이 되는지를 살펴보며 우리들도 쓰임 받는 일꾼이 되기 위해 이렇게 준비하기를 원합니다.

3절 말씀에 보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늘 살피고 들었던 말씀입니다. 쓰임 받는 일꾼은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하여 하나님께나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또 바울은 디모데 후서2장21절에서 “자기를 깨끗케 하는 사람”이 쓰임 받는 일꾼이 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중요한 자질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쓰임 받는 일꾼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쓰임 받는 일꾼은 원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일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여기 있습니다.
1절을 보니까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말 원망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에 보면 정말 원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민수기 14장을 보면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고 여호수아를 원망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지지요?

민수기 14장28절을 그대로 한번 읽어드리면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그러니까 망하겠다 망하겠다 하는 자를 정말 망하게 하고 죽겠다 죽겠다 하는 자들을 정말 죽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들은 대로 행하시겠다고 합니다.
고난 자체의 힘든 것을 견디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원망하기 쉽습니다. 고난 있을 때 원망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의 부족이나 모자람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다른 사람이나 상황 혹은 외부적인 조건들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쉽게 다른 사람에게 원망합니다.

원망하는 사람이 쓰임 받는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되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원망은 전염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망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덩달아 원망하게 됩니다. 원망하는 사람은 자기에게서 문제를 찾지 않고 항상 다른 사람에게서 문제를 찾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원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 옆에 있으면 기분이 상합니다. 결국 공동체를 부정적인 모임으로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가 정말 경계해야 될 것들이 원망하는 것입니다. 원망은 망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망했습니까? 광야에서 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원망하는 말 때문에 망했습니다. 쓰임 받는 일꾼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원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입 가리고 말 안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마음속에는 원망이 가득하면서 입으로만 말하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원망의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원망의 마음을 바꾸어 감사를 찾으면 됩니다. 입술로 감사를 말하고 기뻐하고 찬송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려면 긍정적인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나쁜 것을 보지 말고 좋은 것을 보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없는 것 때문에 원망이 생기니 있는 것 가지고 감사하면 됩니다.

쓰임 받는 일꾼은 원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원망하지 않는 사람이 쓰임 받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쓰임 받는 일꾼이 되기 위해 원망의 마음과 말들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둘째, 쓰임 받는 일꾼은 얼굴에서 빛이 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일곱 집사 중에 한사람인 스테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했습니다. 쓰임 받는 일꾼은 그 얼굴이 빛나는 사람입니다. 
잠언 15장13절을 보니까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얼굴이 빛난다는 것은 무슨 얘기입니까? 얼굴하고 가장 가까운 것은 우리의 속사람입니다. 얼굴이 변화되었다는 얘기는 속사람이 변화되었다는 얘기와 똑같고 얼굴이 빛이 났다는 것은 우리 속사람이 빛이 났다는 얘기하고 똑같습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다 속여도 표정은 못 속입니다. 절대로 못 속입니다. 표정을 아무리 속이려고 해도 표정 속에 있는 칼라, 영감, 이런 것들은 속일 수 없습니다.
탁 보면 압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목회를 하면서 느는 것이 있는데 관상 보는 것이 늡니다. 
링컨이 그랬다고 하지 않습니까? 40살 이상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찡그린 얼굴을 하는 사람은 그 속에 고통과 아픔이 있습니다. 주름진 것을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주름도 웃어서 진 주름과 찡그려서 진 주름이 다릅니다.
환한 얼굴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속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뻣뻣한 얼굴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속에 긴장과 교만이 있습니다. 얼굴이 붉그락 푸르락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안에 분노가 있습니다. 참기 어려운 원망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상태가 변화되듯이 얼굴도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얼굴을 빛나게 한다는 것은 우리 속사람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피부 관리를 받으라고 해서 몇 번 간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의 얼굴이 빛나야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한동안 받았습니다.
그런데 피부 관리 아무리 많이 해도 진정 속마음의 관리가 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우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엡3:16-17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속사람이 강건하기를 위해서 그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시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신 사람의 얼굴은 환하게 빛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계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성도 여러분들의 얼굴이 환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원망으로 찡그리니 얼굴을 버리고 감사와 찬송으로 환하게 빛나는 얼굴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쓰임 받는 일꾼은 말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10절의 말씀입니다. “스테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스테반은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였습니다. 그 말하는 것을 세상사람들이 당하지 못했습니다.
말하는 것을 보면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말의 크기와 색깔, 말의 사용을 통해 어느 정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말의 사용을 잘 해야 합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말에도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뱉는 말은 그냥 돌아오는 법이 없습니다. 무엇인가 그 창조적 능력을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빌어먹을 놈이라고 말하면 빌어먹는 놈이 됩니다. 말로서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힘보다 강력한 힘이 세치 혀에서 나오는 말에 있습니다.

원망의 말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부정적인 말들이 문제입니다.
할 수 없다. 안된다는 부정적인 말뿐만 아니라 판단하는 말, 정죄하는 말, 생각 없이 던지는 모든 말들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되고 못된 싹이 돋아나는 것입니다.

말이 아름답다는 것은 지혜롭게 말하는 것입니다. 말에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진실이 있어야 하고 상대의 심정을 고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잠13:3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존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잠15:1 “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말이 아름답다는 것은 성령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나는 대로 하는 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입에 자갈을 물려 혀를 고르게 함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으로 말해야 합니다.

교회가 말이 많은 곳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많은 곳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말들이 많은 곳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말이 많은 곳에는 문제가 끊이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많은 곳에는 항상 생명의 능력과 역사가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쓰임 받는 일꾼은 말이 아름답습니다. 사랑의 말, 긍정적인 말, 사람을 세워주는 말, 칭찬하는 말, 사람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말이 아름다운 말입니다.
아름다운 언어로써 하나님과 교회에 쓰임받는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많은 문제가 있을 때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일꾼입니다.
좋은 일꾼의 특징은
1. 원망이 없습니다.
2. 얼굴에 빛이 납니다.
3. 말이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좋은 일꾼이 되어 주께서 쓰시는 복된 사람들이 되시길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년 8월6일 주일낮예배

사랑의 하나님 우리 교회에 쓰임 받는 일꾼들이 많이 세워지게 해 주시옵소서.
원망이 없고 마음이 아름다워 얼굴이 빛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말들을 가진 일꾼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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