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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련속에서도 꿈을 붙잡는 인생 (창 3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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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더위속에서도 평안하셨습니까? 요즘,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계절적으로 많이 힘드시죠?
안타까운 소식입니다만 요즘 하루 36명, 한달 1000명이 자살로 목숨잃는다고 합니다. 자살이 5-6년전에 비해 2배가 늘었다고 합니다. 노인들의 자살, 상사의 폭력, 성희롱에 참을 수 없어 목을 맨 군인,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식들과 동반 투신자살하는 젊은 여성들, 성적을 비관하여, 취업을 하지 못해 괴로워서, 카드빚에 시달려서 . . .

왜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일까요?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자살은 앞으로 희망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희망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희망을 잃은 사람들 중에 우울증 환자가 많습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습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흔히 슬프고,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고, 자신이 무가치한 사람인 것 같고, 비관적인 생각들이 많이 드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 우울증은 자살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흑인 시인인 랭스턴 휴즈는 ‘꿈을 단단히 붙들어라. 꿈을 놓치면 인생은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새와 같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슬픈 사람입니까? 시한부 생명을 사는 사람입니까? 파산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정말 불쌍하고 슬픈 사람은 바로 꿈이 없는 사람입니다. 꿈이 없으니까 내일이 반갑지 않습니다. 꿈이 없으니까 날마다 그 날이 그 날입니다. 아무런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선지자 요엘은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욜2:28절)이라고 했습니다.

잠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 그렇습니다. ‘꿈이 없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흥합니다. 꿈이 있는 사람, 비전을 끝까지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어느 병원에서 종양을 치료하는 의사 둘이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서 마주 앉았습니다.
한 의사가 동료에게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여보게 난 이해할 수가 없네’ ‘뭐가?’
‘아니, 생각해 보라고. 자네나 나나 같은 약을 같은 양만큼, 같은 스케줄로 처방하잖아. 전혀 다를 게 없는데 내 성공률은 26퍼센트이고 자네의 성공률은 72퍼센트야.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그 얘기를 듣던 동료가 대답했습니다. ‘우리 둘 다 똑같이 철자가 E. P. O. H로 시작되는 약 에토포시드(Etoposide), 플래티늄(Platinum), 온코빈(Oncovin), 하이드로시유리아(Hydroxyurea) 네 가지로 처방을 하고 있네. 그런데 자네는 그것을 환자에게 주면서 약자로 ‘E. P. O. H’라고 써서 주더구먼. 그런데 나는 달라. 나는 순서를 바꾸어서 ‘H. O. P. E’라고 써서 준다네. ‘HOPE’ 소망이라는 이 글자가 그렇게 만드는지 모르지! 내가 보기에 자네와 내가 다른 것은 이것뿐이네.’
꿈을 꾸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어려운 시련을 당할 때, 어떤 믿음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가장 힘든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잃치 않았던 한 사람의 삶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는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이었습니다.

1. 요셉은 꿈 때문에 시련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꿈없이 아무렇게나 살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자신의 뜻대로 꿈을 심어주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왕상3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내게 고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네 꿈이 무엇이냐, 솔로몬아? 내가 들으리라.”

사도행전 2장 17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한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요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꿈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꿈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오늘날 가장 무서운 병은 꿈을 잃어버리는 병입니다. 믿음안에서 꿈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믿음 안에서 품은 꿈은 반드시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디즈니 랜드를 만든 후에 월트 디즈니는 플로리다의 올랜도에 디즈니 월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월트 디즈니는 그가 꿈꾸었던 디즈니 월드이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준공식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월트 디즈니가 없는 준공식을 성대하게 거행했습니다. 준공식을 구경왔던 한 사람이 디즈니 월드의 설계와 건축을 담당했던 마이크 벤스라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다. “디즈니가 이곳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세상을 떠나서 매우 유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마이크 벤스는 “아닙니다. 그는 이미 이 디즈니 월드를 보았습니다. 때문에 디즈니 월드가 여기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디즈니는 죽었지만 자신의 꿈이 성취될 것을 이미 꿈으로 마음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디즈니 월드가 있다는 것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꿈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11:4)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은 미래의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비젼’(vision)인 것입니다. 비젼은 본다는 Emtdlqselk. 통찰력, 미래상, 선견지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으로 미래를 보았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큰 믿음, 큰 꿈, 큰 비젼을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비전은 역사를 바꿉니다. 미국의 국회의사당(워싱턴D.C 1850년대 완공)을 세울 때의 일입니다. 당시 국회의사당이 지나치게 크고 백악관과 너무 떨어져 있다는 불평이 일어 백악관 가까이에 작은 국회의사당을 건립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 때 이것을 설계한 설계사가 국회의원들에게 30분만 설명할 시간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 설계사는 “이 시대의 국회의원 여러분, 여러분은 왜 비전이 그렇게도 작습니까? 저는 일백년 후 우리 미국이 세계적인 나라가 되었을 때를 바라보며 이 국회의사당을 설계했으며, 우마차가 아니라 더욱 발달된 교통기구를 타고 다닐 때를 꿈꾸며 이곳에 국회의사당을 설계했습니다.” 그 설계사의 위대한 비전 덕분에 200년이 훨씬 지난 오늘에도 강대국 미국의 국회의사당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 시련을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고난 없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고난 없는 인생은 어떤 가치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성도의 시험은 믿음 때문에 옵니다. 꿈 때문에 옵니다. 마귀는 시험을 통해 성도가 믿음을 잃고 꿈을 잃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나도록 하기 위해 시험하는 것입니다.

약4:12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감당하지 못할 시험이 너희에게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확실한 믿음 위에 서기를 바랍니다. 시험이 오거든 두려워하지 마세요. 주님도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도에게 마귀가 시험하도록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마귀의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사랑을 받아야 할 혈육의 형들에게 시기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정도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형들이 요셉을 상인에게 팔았습니다. 사실은 죽이려다가 판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형제들이, 죽이려하고, 팔았던 것입니다. 이보다 더 비참하고 어려운 일이 어디있습니까?
팔려서 이국땅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인집 아주머니 보디발의 아내에게서 억울한 모함을 당합니다. 착한 요셉을 유혹합니다. 그 유혹을 거절한다고 모함합니다. 열심히 순종 잘하고 책임감있게 집안 일을 잘 돌보는 요셉이 모함을 당해 감옥으로 갑니다. 점점 갈수록 좋아져야 할 텐데 점점 힘들고 불안한 사람이 펼쳐집니다.
감옥 속에서 배신을 당합니다. 술 맡은 관원장. 떡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을 하여주었으나 저들은 은혜를 잊었습니다. 미끈한 말로 약속을 해 놓고도 그 약속을 짓밟았습니다.
이 모든 시련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꿈 때문입니다. 꿈은 이련 시련을 동반합니다.

여러분 시련 없이, 꿈없이 편히만 살고 싶습니까? 시련이 있더라도 꿈을 품고 살기를 원하십니까?
톰 모너핸은 “아무리 강한 적이 몰려 도전해 오더라도 절대로 싸우기를 포기하지 말라. 포기하는 순간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마크 빅터 한센은 “문제를 피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무덤)에 눕는 순간 모든 문제는 우리에게 사라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벧전2:19)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2:20)

2. 그러나 요셉은 꿈 때문에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고난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하루 이틀이라면 누구든지 이겨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 해, 두 해 그렇게 세월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만 꿈을 포기해야 할 상황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꿈을 믿고 지금까지 인내하며 살아왔는데 그 꿈은 개꿈이었군요. 이젠 포기하겠습니다.’ 하고 소리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입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었습니다. 요셉의 마음에는 그런 마음이 밀려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목구멍까지 그 말이 나왔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입으로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 써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를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그 후에 하나님이 욥의 시험을 허락하셨고 . . . . 욥의 가정은 소 떼, 양 떼 모두 다 도적맞고 불타 죽고, 자녀 10남매가 대풍에 집이 무너지면서 다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입으로 원망의 말이나 불평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1-22)고 했습니다.

마귀는 욥의 입에서 원망과 불평의 말이 나오게 하려고 온갖 고통과 불행을 갖다 주었지만 실패하고 도망갔습니다. 온몸에 악창이 나고 구더기가 바글바글. . .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결코 그 입술로 범죄 치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결국 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불평이 자꾸 나올 때는 마귀가 나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빨리 알아채리고, 빨리 회개하고 죄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의 입술을 잘 지켜야 합니다. 혀를 잘 길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에 굴레 씌우리라”(약3:1-2)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꿈을 이루기 위해서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입 조심입니다. 입 때문에 고난 다음에 다가오는 축복을 발로 걷어 차버릴 때가 많습니다. 입을 함부로 놀려서 원망하고 불평하면 될 일도 안되고, 오던 복도 도로 나가 버립니다. 입은 무거울수록 좋은 겁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큰 죄가 아닌 줄 알지만 멸망과 불행을 가져오는 무서운 죄가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2주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40년 동안 광야를 맴돌다가 불평하던 사람들이 다 죽은 다음에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고난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합니다. 바보처럼 일했습니다. 그랬더니, 요셉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창39:23)

미국의 서해안에서 동해안으로 큰 물통에 물고기를 담아 운반을 했는데, 물고기가 사는 환경을 다 갖추어서 기차에 싣고 운반했지만, 운반하는 2주일 동안 물고기가 다 죽어 버렸답니다. 너무 과잉보호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그 안에 큰 낙지 한 마리를 집어넣고 운반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 낙지가 배가 고프면 긴 다리를 내밀었고, 물고기들은 필사적으로 피해 다니기 시작했는데, 2주일이 지나도 죽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도 세계적으로 오래 사는 사람들은 “사람은 일하고 도전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고난의 바람을 보내주시지 아니하셨더라면 불과 30세의 나이에 당시 세계 최강의 나라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독수리는 거센 바람이 없으면 결코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꿈에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원대한 꿈은 그만큼 큰 인내를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21:19) 하셨고, 또 사도 바울은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4)라고 했습니다. 인내만이 꿈(소망)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인스탄트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1분에 OK하는 라면도 있습니다. 원터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리모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조종합니다. 두 번 누르는 것도 싫어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내력이 없습니다. 조금도 못 참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꿈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인내를 더하시기 바랍니다. 인내로 원대한 꿈을 이루어내시기를 축원합니다.

3. 요셉은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뜨거운 열정이 없으면 성취하는 것도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은 열정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열정과 비전이 있는 사람입니다. 비전이 분명하기에 열심도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비전이 열정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진정한 열정은 비전이 함께 해야 합니다. 열정과 비전은 함께 갑니다. 열정은 자칫 야망이라고 하는 말과 혼돈하기 쉽습니다. 열정이라는 말과 야심이라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른 말입니다. 물론 야심을 이루기 위해서 열정을 부리는 일은 흔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이루기 위한 열심이지 하나님을 위한 열심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동분서주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열정은 결국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고 맙니다. 야망이란 다분히 이기주의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믿음으로 산다는 명분 아래 자기 편리한 대로 안일하게, 게으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게을러서 노력하지 않는 것을 자신이 세상에 초연하기 때문이거나 믿음으로 살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비젼의 사람은 열정이 있고 열정의 사람은 얼굴이 다릅니다. 눈빛이 다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사람을 고용하기 위해서 아는 사람에게서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면담한 후에 고용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추천했던 사람이 링컨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재능도 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추천을 했는데 마음에 안 드셨나 봅니다.” 링컨이 그 이유를 말했습니다. “나는 저 사람의 얼굴 표정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아니, 사람이 자기 얼굴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한 인간의 눈과 표정을 만드는 법입니다.” 꿈꾸는 사람의 얼굴은 행복해 보입니다. 여러분의 꿈이 무엇입니까? 이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어떤 꿈을 꾸며 살고 있습니까?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감옥에서, 애굽의 총리로서, 그는 최선을 다하여 일했습니다.
그는 열심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그는 정성을 다하여 충성했습니다.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말입니다. 즐겁게 행복하게 . . .
꿈이 없으면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시간을 함부로 허비합니다. 흥청망청 보냅니다. 꿈이 없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고 열심히 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만약에 요셉에게 꿈이 없었다면 그는 미쳐 버렸거나 화병 들어서 죽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무려 13년 동안 모질고 험난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행복하게 종살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비젼 때문입니다. 시련속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는 참 믿음의 사람들이 되셔서 이시대의 승리자, 성공자, 간증자, 복된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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