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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은 대로 거두리라 (갈 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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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가장 이상적인 선생님으로서 제자들과 많은 무리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산상보훈을 강론하실 때 당시의 사람들은 유대인의 랍비나 서기관들보다도 감동적이고 능력 있는 말씀이라고 여겼습니다. 마태복음 7:28-29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 함일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보고 배운 제자들이 그대로 실천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요 13:13-15).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은혜를 받았을 경우 반드시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실천해야만 됩니다. 본문 말씀 6절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하였습니다. 9절에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라고 하였고, 10절에는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를 지칭하는 말이며, “모든 좋은 것”은 곧 주님께서 의도하시는 선하고 착한 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를 찾아온 율법사에게 그가 배우고 아는 바를 곧바로 실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0:28). 야고보는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하였습니다(약 4:17). 예수님의 제자된 사람은 듣고 보고 아는 바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본문 말씀 7절에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우리는 심고 거두는 진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실천하여야 될 모든 좋은 일의 의미를 생가해 보고자 합니다. 이는 곧 심은 대로 거두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I. 정직으로 심어야 됩니다.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말에도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하는 자연법칙의 교훈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는 자연의 이치와 삶의 원리를 적용하려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신 말씀은 신앙세계에 그대로 적용하여 정직하게 심고 거두는 진리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1) 거짓으로 얼룩진 세상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여기에 마귀가 개입하면서부터 죄와 심판의 악순환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호세아 4:1-2에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말세의 현상 중에 사람마다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딤전 4:1-2).
오늘날 범죄한 인간의 모든 생활은 거짓으로 일반화 되어 버렸습니다. 정치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어느 곳에도 진실과 정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호세아 10:13에 “너희는 악을 밭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2) 스스로 착각하지 말아야 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는 말은 자기 자신에게 속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대부분 자기를 과신하는 착각으로 말미암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자기의 연약함과 한계를 자기 스스로가 잘 알 것인데도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입니다. 고린도전서 4:18에는 미련한 사람이 자기를 지혜 있는 것처럼 과시하는데 이를 가리켜 자기를 속이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8:2에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과신하거나 착각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에게 실망을 주는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6:3에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은혜를 받은 다음 자기가 아는 것만 자랑할 뿐 실천하지 않으면 자기를 속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1:22에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만홀히 여긴다”는 말은 업신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겉으로는 인정하는 척하면서도 내심으로는 허수아비 취급을 하며 무시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이와 같은 경우는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신론적 성향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시편 14:1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교만하여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하나님이 그런 것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줄 믿고 있다고 했습니다. 욥기 22:13-14에 “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하는구나”고 하였습니다.
여기 대하여 다윗은 세상의 권세자인 군왕들과 관원들이 헛된 경영을 하며 하나님께 맞서려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2:3-4에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고 하였습니다.

Ⅱ.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을 심어야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년에 거두려거든 곡초(穀草)를 심어라. 십년에 거두려거든 나무를 심어라. 백년을 거두려거든 인재를 심어라. 영원히 거두려거든 복음을 심어라’고 하였습니다.
슬기로운 하나님의 백성은 비록 짧은 세상을 살지만 영원을 위해서 심고 가꾸는 사람들입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전 3:11).

(1)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 있습니다.

8절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라고 하였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란 육체적인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되는 것으로써 한마디로 말하면 육체의 소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7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의 소욕에 만족하기 위하여 이런 일에 인생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결과가 썩어지는 열매를 가져오게 하는 불행임을 일러줍니다. 야고보서 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호세아 8:7에는 “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고 하였으며, 욥기 4:8-9에는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성령으로 심는 것이 있습니다.

8절에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육체로 심어 썩어지는 것을 거두는 것과는 달리 성령에 의하여 심어지는 것으로써 반드시 영생의 열매가 보장되는 경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통하여 두 종류의 다른 씨가 있음을 말했습니다(마 13:24-30). 마귀로부터 뿌려지는 가라지는 결국 꺼지지 않는 불로 들어가 타서 없어지는 것이고, 예수님의 손에서 뿌려지는 알곡은 생명의 씨가 되어 하나님의 곡간인 천국에서 영생하는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마 13:37-40).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은 모두 썩어지지 아니하는 영생의 소유자들입니다. 베드로전서 1:23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유독히 영생의 열매를 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성령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로마서 8:5-6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하였습니다.

(3) 거두는 때를 아는 것입니다.

땅에 곡식을 심고 가꾸는 사람은 그것이 자라서 열매를 거두게 될 시기를 잘 압니다. 그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견디기가 힘이 들어도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7에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열매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소망 중에 인내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6:5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선한 목적을 위하여 헌신하고도 그 결과가 이루어지는 시간이 더디므로 낙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0:36에는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Ⅲ. 기회가 주어졌을 때 심어야 됩니다.

10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선용해야 됩니다.
선한 일은 언제 어디서나 마음만 먹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면 곤란합니다. 에베소서 5:15-16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기회를 사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말입니다.

(1) 기회는 한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은 이룰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전 3:1). 예수님께서는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 9:4). 낮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하고 밤은 어두움에 갇혀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임을 뜻합니다. 하루의 24시간도 아침과 저녁, 그리고 낮과 밤을 정확하게 나누다 보면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된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할 수 있는 낮은 비록 시간뿐만 아니라 건강이나 지식이나 재물이나 모든 여건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가정이나 직장, 사업 등과 관련이 있고 나아가서 국가나 사회 그리고 주변의 환경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조건들이 뜻하지 않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순간의 기회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로 임하여야 만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12:1에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2) 예고 없이 끝나고 맙니다.

‘버스 지나간 다음 손든다’는 말처럼 한번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나면 아무리 애를 써도 돌이킬 수 없는 안타까운 지경에 이릅니다. 모세는 주어진 시간이 밤의 한 경점 같이 빨리 지나간다고 하였습니다(시 90:4). 
그러나 아무리 빨리 지나가더라도 그 시간을 가늠하고 있는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갑자기 들이닥치므로 당황하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권력이나 재물을 가진 사람이 무엇이나 마음먹은 대로 다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그 권력도 재물도 한 순간에 다 없어져 버리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은혜 받고 봉사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뜻을 펴보지 못하고 접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자기를 다스리면서 어느 정도 목표를 이루었다 싶으면 어느새 기회가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시간이 나의 형편에 맞도록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뜻 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하였습니다(눅 21:34). 세상에 있는 것들은 다 허망한 것이기 때문에 평생 동안 노력해서 이루어 놓은 것이라도 한 순간에 허물어지고 없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사 40:8). 이와 같은 사실을 알기 때문에 솔로몬은 “네 손에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잠 3:27).

(3) 성도에게는 든든한 보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고에 가득찬 재물에 만족한 나머지 죽음이 눈앞에 이른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부자를 두고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눅 12:21).
그렇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영혼의 닻과 같이 든든하고 견고한 소망이 있다고 하였습니다(히 6:19).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6:9에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 심지어 인간 자신까지도 다 없어지지만 그래도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보장이 있습니다. 요한 1서 1:17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늘나라 영원한 세계를 믿고 성령으로 영생의 도리를 심는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도 하늘나라를 가꾸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6:20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손상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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