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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야곱입니다 (창 27: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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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곱입니다 (창 27:30-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전
                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 하였은 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다윗, 아브라함, 요셉, 베드로, 사도바울 등입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초인적인 모습으로 한 시대를 군림한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모습과 아주 비슷한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 인물이 야곱입니다. 야곱은 우리의 모습과 아주 흡사한 사람입니다. 야곱은 욕망덩어리였습니다. 욕심도 많았고 소유욕도 강했고 남의 것을 탐내고 속이는 사기성이 아주 가득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야곱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나옵니다.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형을 속이고 눈 어두운 아버지를 교묘하게 속입니다. 그 형은 동생에게 속임 당하고 피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속은 후 본문을 보면 “심히 크게 떨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아들의 교묘한 사기성에 그만 치를 떨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오늘 현대인들의 모형이고 어쩌면 오늘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야곱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기 야곱은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모습이 있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

야곱은 욕망, 거짓, 탐욕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야곱은 욕망을 채우는데 수단 방법을 자리지 않았습니다. 형이 가진 좋은 것은 반드시 꾀를 써서 뺏었습니다. 야곱은 목적지향적인 사람입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꾀와 수단을 동원하고 부모도 형제도 고려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야곱은 오늘 현대인들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오늘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크게 야망을 채울 사람입니다. 오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야곱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자기본위, 이기적, 자기위주, 자기 성을 쌓느라고 야단입니다.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속이고 빼앗고 탐욕스럽게 긁어모으느라 혈안입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야곱은 잘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이 세상이 온통 갈등과 거짓과 불화로 싸여 있습니다. 

자기 꾀에 넘어짐

야곱이 그 욕망을 채우려다 마침내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야곱은 형이 가진 기득권을 빼앗지 못해 안달했습니다. 그리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형의 약점을 노려서 뺏었습니다. 뺏는 사람도 문제지만 뺏기는 사람도 문제가 있습니다. 소중한 것은 잘 간수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다 양보하고 다 줄수록 좋습니다. 그렇지만 신앙 중심만큼은 빼앗기지 말고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형 에서는 그 소중한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장자권을 팔아먹을 정도면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뺏겨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야곱은 뺏으면 다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얻기도 했지만 잃은 것도 많습니다. 우선 그는 버림을 받습니다. 형으로부터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고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20년 동안 온갖 설움을 다 받고 살아갑니다. 20년 동안 처가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머슴살이를 하는 동안 자기가 속였듯이 자기도 장인으로부터 똑같이 속임을 당합니다. 속임을 당해도 결혼 첫날밤 색시를 바꿔치기 당하는 속임을 당합니다. 외삼촌에게 딸이 둘이 있었습니다. 그 두 딸 중에서 야곱이 둘째딸을 좋아했습니다. 그 딸을 아내로 맞아들이기 위해서 7년간 머슴살이를 하고 마침내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날이 밝아 아침에 보니 옆에 누워있는 여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둘째딸이 아니고 첫째 딸이었습니다. 그 순간 야곱이 무슨 기분이었겠습니까.

  도둑맞으려면 개도 안 짓는다고 했습니다. 약은 고양이 밤눈 어둡다고 했습니다. 이 얄밉도록 약은 야곱이 아주 결정적일 때 자기도 감쪽같이 속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약게 사는 사람들이 속임 당할 때는 어처구니없이 당하고 실패하는 것입니다. 오늘 세상에 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 약은 사람들이 잔꾀를 많이 쓰기는 하는데 결국에 가서 보면 얻은 것이 없습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어느 차가 쏜살같이 앞지르기를 하더니 차 사이를 누비며 요란하게 달렸습니다. 그래서 누가 숨넘어가는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저렇게 달려도 별로 빠른 것이 아닌데 하고 나는 정속도로 뒤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그 차가 얼마 앞에 신호에 걸려서 서 있었습니다. 과속한다고 반드시 빠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호가 바뀌자 내 앞에 있는 차는 잘 출발해서 나도 잘 갔는데 뒤를 보니까 그 차가 출발을 하지 않습니다. 보니까 앞차가 고장이 나서 그 차까지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차 백미러로 그 모습을 돌아다보는 내 마음이 왜 그렇게 재미가 있었던지.

토기와 거북이 이야기가 오늘 현대인들에게 참 좋은 교훈을 줍니다. 토끼가 재주가 많습니다. 거기다 꾀도 많고 발도 빠릅니다. 때로 그것이 문제일 때가 있습니다. 토끼는 그것 때문에 낮잠을 잤고 요령을 부렸고 꾀를 부렸습니다. 그런데 장점도 없고 언제나 느린 거북이는 요령부릴 생각은 아예 마음에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좀 늦기는 해도 거북이가 이기게 된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잘 나가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부도 잘했고 재주도 있었고 수단도 좋았고 언제나 남들보다 앞서갔습니다. 목회를 시작했는데 모두 앞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매사가 좀 늦은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처음에는 뒤쳐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한결같이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눈물도 많이 흘리고 기도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재주가 많은 학생들은 기도하는 일에 소홀했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갈수록 목회환경이 역전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세월이 갈수록 비교가 안될 만큼 뒤쳐졌습니다.

오늘도 야곱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고 나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약은 사람은 언젠가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집니다. 우리는 야곱을 보면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발견된 자

이 꾀가 많고 탐욕이 많던 야곱이 어느 날 하나님께로부터 발견됩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야밤에 도주하다가 도중에 광야에서 밤을 새우게 되었습니다. 지금 야곱은 가나안 집에서 외가가 있는 하란으로 도망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말은 오늘의 예루살렘에서 이라크 땅으로 걸어갔다는 말입니다. 그 길이 얼마나 긴 거리입니까. 그 길을 가다가 하루 밤 광야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하늘을 이불삼아 돌로 베개하고 처량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 밤이 야곱에게 가장 두려운 밤이었을 것입니다. 그곳은 언제나 맹수의 위협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곤충, 뱀, 전갈이 와서 쏠는지도 모르는 곳입니다. 또 언제 강도가 올는지도 모르는 곳입니다. 성경에서 강도만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사람이 광야를 지나다가 강도를 만난 것입니다. 그 강도들이 지나가는 사람을 다 뺏고 때려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강도들은 양심도 없습니다. 왜 뺏어가면서 때려서 죽게 합니까.

그런데 그날 야곱에게 강도나 짐승들 보다 더 무섭고 두렵게 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이 고독입니다. “여기에 나 혼자 있다”하는 고독함, 이것이 야곱을 더 무섭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이 고독이고 나 혼자다 하는 적막함입니다. 이것을 잘 이겨내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지고 마침내는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마음을 하늘을 향하여 열게 되면 기회가 주어지고 전화위복이 되어 하나님을 만나는 복을 받게 됩니다. 야곱은 그때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죄송한 마음, 후회스런 마음, 별생각이 다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밤에 한없이 후회하고 뉘우치며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이 뉘우침, 회개, 눈물, 이것이 복입니다. 사람이 후회, 뉘우침, 눈물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한밤에 환상 속에서 사다리가 하늘로부터 내려지더니 그 사다리를 타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다리 꼭대기에 하나님 서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야곱이 그 두렵고 고독한 밤에 얼마나 안심이 되고 기쁨이 되었겠습니까. 그때 모습을 성경 창세기 28:13절에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네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네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나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아시고 찾아오셨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광야 한복판에 홀로 누워 처량하게 잠자고 있는 이 성실치 못한 야곱을 어떻게 아시고 찾아오셔서 환상을 보여주셨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이 질문은 사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 할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어떻게 나를 아시고 나를 불러주셨는가”하는 질문입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은혜인 것을 알게 될 때 그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순종하게 됩니다. 야곱이 그날 밤 하나님으로부터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야곱은 그 밤에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리라고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밤에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기적이고 은혜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가 닿은 죄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형을 속여서 일평생 피눈물을 흘리게 한 죄인입니다.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교묘하게 속여서 형에게 가야할 복을 다 가로챘습니다. 아들에게 속고 나서 아버지가 아들의 사기방법이 너무 무서워서 치를 떨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죄인이 어느 날 하나님의 눈에 뜨이고 발견됩니다. 그 순간이 야곱의 인생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야곱의 인생이 180도 뒤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죄인 야곱이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마침내 성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의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형성하는 복을 받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야곱입니다. 우리들이 야곱과 똑같은 탐욕, 욕망, 거짓, 속임, 내 것 챙기기 위해서 나 위주의 삶을 살아가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입니다. 우리들 중에는 옛날에 야곱이었던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중에는 지금도 야곱 그대로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지독한 이기주의자이고 자기본위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말만 신자인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직분도 있고 외모로는 그럴듯한데 속은 변화하지 못한 채 아직도 나 본위이고 자기이익에 혈안이 되고 형제도 속이고 이웃도 속이고 떼어먹고 손해 끼치고 피해주고 남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모두 야곱입니다. 아직도 변화되지 못해서 나오는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야곱이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났으니 망정이지 그날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야곱은 평생 남을 속여먹고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복을 받고 변화되어 마침내 성자가 되고 그 자손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만나고 발견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변화를 받아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일으킨 사람들이 많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부유층들이 다니는 사립학교 교사로 20년 동안 재직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한 여인의 비명소리를 듣게 됩니다. 보니까 위독한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진 돈이 없고 또 신분이 낮아서 치료를 받을 기회도 없다는 통고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어머니의 품에서 죽어갔습니다. 테레사가 그 과정을 지켜보는 순간 하늘로부터 내려 쪼이는 빛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만난 하나님은 야곱을 변화시키셨듯이 이 테레사를 변화 시켰습니다. 그때 테레사가 밀려오는 감동에 힘입어 “이제부터 내가 서 있을 곳은 사립학교 강단이 아니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곁이다”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인생은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모든 기득권을 다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곁으로 다가가 평생을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마침내 사람들로부터 성녀로 추앙을 받게 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헨리 나우웬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었습니다. 책을 30권이나 써내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꿈을 너무 일찍 이루어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만족해 살아가던 어느 날 그 교수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순간 그 교수는 충격을 받고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결론 내리기를 지금까지 나의 삶은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지독한 이기주의적 삶을 살았다고 회고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학교에 사표를 내고 정박아시설에 들어가 남은 인생을 봉사의 삶으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왜 그 좋은 자리를 버리고 힘든 길을 택하였는가”하고 질문했을 때 대답하기를 “오르막길에서는 칭찬과 성공에 가려서 예수가 보이질 않습니다, 나는 이제 낮은 곳에서 예수를 더 가까이서 만나고자 합니다, 나는 이제 인생의 말년을 정박아 시설에 들어가 아이들의 용변을 도와주고 식사와 목욕을 시키는 일로 보내고 싶습니다“하고 했습니다.

인생의 성공시대에는 예수가 안 보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욕망, 성공 욕으로 가득 차 있으면 예수가 더욱 안 보입니다. 예수가 안 보이는 것이 아니고 예수가 생각조차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탐욕의 욕망만 커져서 형제의 것을 탐하고 부모를 속이고 남의 것을 탐내고 손해를 끼치고 빼앗고 자기본위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 눈에 하나님이 생각나고 보이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안에 갇혀서 야곱처럼 빼앗고 사기 치는 일에만 머리를 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사람들마다 속임 당하고 고통당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발견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발견되고 은혜를 입으면 야곱이 성자가 되듯이 새롭게 변화를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나는 지금도 야곱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내가 지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변화 받지 못해서 갈등을 유발하며 살아가는 야곱이 아닌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 예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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