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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아와 같지 않은 축복(요 14: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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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요 14: 18~21
제목: 고아와 같지 않은 축복

  신․구약 성경에서 고아의 위치 혹은 수준은 불쌍하고 가련한 과부나 정처 없이 떠다니는 나그네와 같은 동급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서열을 말한다면 고아가 선두에 가장 많이 나옵니다. (욥29: 12)의 말씀을 보면 고아의 특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도와줄 자 없는 고아를 건졌음이라” (신24: 17~22)의 말씀을 보면, 곡식을 벨 때나 감람나무의 열매나 포도원의 포도를 추수한 후에 곡식난을 잊어버리고 그냥 돌아왔거나 감람열매나 포도열매가 남았거든 그냥 버려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객이나 고아나 과부가 가져가서 그것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의 말씀을 보면 고아는 참으로 약하고 외롭고 의지할 곳 없고 가엾은 불행하고 불쌍한 자의 대표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왜 이런 고아라는 말이 등장했는가? 배경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시골 출신이요 어부 출신들이 굉장한 출세의 길이 열렸다고 흥분되어 있을 그 때에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 들어 와서는 모든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잔치를 벌였습니다. 희망과 기쁨의 축제 분위기였는데 갑작스럽게 예수님의 말씀은 축제 분위기가 아니라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들 가운데 나를 배신하고 나를 팔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사건 때문에 내가 제사장들에게 잡히고 고난 당한 후에 십자가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폭탄과 같은 선언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자마자 잔치 분위기는 완전히 찬물을 끼얹은 듯이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제자들의 마음에는 허탈감과 불안감과 두려움마저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향 버리고 가족 버리고 직장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대책 없이 죽으시면 우리는 뭐냔 말인가? 이 예수님은 죽이는 무리들이라면 우리를 그냥 두겠는가? 하는 두려움, 불안, 걱정으로 긴장하고 당황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 14: 1~3)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 말씀하신 후에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분명히 강조하려는 내용은 세상의 모든 좋은 것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자들은 하늘나라에 영원한 처소와 영원한 면류관을 보상으로 받을 것이지만 천국에 이르기 전 이 땅에 사는 동안은 결코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고와와 같이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말씀에는 어떤 의미와 배경을 강조하고 계신다는 말입니까?
1. 예수님을 떠나도 예수님의 이름은 이 땅에 두시겠다는 것입니다. (12~14)
  이것이 세상 고아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세상 고아는 부모가 자식을 버리거나 부모가 먼저 죽으면 그 자식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혼자 살 수 있으면 살고, 친척이 보살펴주면 다행이고 외국으로 팔리면 팔려가고 그러다가 병들면 죽고, 이런 안타까운 현실이 세상의 고아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재림하시거나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비교도 안  되는 영원한 처소도 영광스러운 상급도 준비해 놓으셨지만,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도 고아와 같이 불행하게 되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우리에게 두고 가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름이 무엇에 유익하며 세상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은 최종 결재 도장과도 같고 확실한 보증수표와도 같은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3)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시행하시고 그 시행된 사건 때문에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하나님이 증거 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7)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싸인이 되면 하나님은 예수님 때문에 반드시 결재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싸인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예수님은 반드시 기쁨으로 응답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기도하면 예수님의 행하셨던 일도 행할 뿐 아니라, 큰 것도 행할 수 있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도 고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즉 굳게 닫혔던 옥문을 열린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어떤 이름입니까? 그 이름을 의지하여 죄를 고하면 그 어떤 죄도 용서되는 신비한 이름이 예수님의 이름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이름을 우리에게 주고 가신 예수님. 결코 우리는 고아와 같지 않은 은혜와 축복의 성도인 줄 믿습니다.
  (요16: 23~24) “너희가 무엇을 하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 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믿음 있는 사람은 이 예수님의 위대하고 크신 이름을 마음껏 사용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세상에서 비참하게 외롭게 가난하게 의지할 것 없는 가련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예수님의 크고 위대하신 이름을 마음껏 활용하도록 그 이름을 두고 가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믿는 저와 여러분들 세상에서 고아처럼 살아가는 것은 본래 예수님의 의도하신 바가 아닙니다. 고아처럼 살아가지 않게 하시려고 능력 있는 예수님의 이름을 두고 가셨기에 마음껏 활용하고 사용해서 가난한 자가 부요하고 병든 자가 강건해지고 상처받은 자가 치료함을 받고 염려와 근심 중에 있는 자가 기쁨과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못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했습니다. 1차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해야 합니다. 2차적으로 믿음으로 그리고 선한 목적으로 구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하지 아니하며 근심하며 고민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애 3:33)
고아처럼 살지 말고 부요하시고 능력 많으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여 부족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큰일을 행하고 멋있고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은 떠나도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16~17) (25~27) (16:7~)
보혜사 라는 단어는 ‘곁에’ 라는 말과 ‘부름받음’ 이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즉, ‘곁에서 돕기위해 부름 받은자’ 라는 뜻입니다. 세상 고아처럼 외롭게 혹은 도울자 없이 내버려진 채로 살아가지 않도록 성령님을 보내셨다는 말씀입니다. 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16:7)에서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라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이 계시는 것과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는 것의 차이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의미로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승천하시고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유익이라는 말씀인가? 어떻게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지 말고 부활하신 몸으로 영원히 유대
땅에 남아 계셨더라면 엄청난 일이 일어났을 것이요. 역사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인데 왜 예수님은 죽으셔야 하셨고 그리고 부활하셔서 승천해야 하셨는가? 도대체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으며 무엇이 유익하다고 말씀하셨단 말인가? 잘못 오해하면 예수님은 능력 면에서나 전지전능성에 있어서 성령님만 못 하신 분으로 알기 쉬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신적인 모든 면 즉 능력, 권세, 영광, 전지전능 모든 면에서 성삼위 하나님은 동등하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역적 의미에서 또한 영적 질서와 사역 분담이라는 의미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만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창조사역과 구속계획은 성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성취하신 분은 성자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구속과 예수님의 구속성취를 완벽하게 완성하시는 분은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영적 질서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시공간의 제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사람의 몸을 입지 않으셨기 때문에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우리의 무엇을 도와 주시는가? 한 마디로 말해서 󰡒두려워하지 않도록 도와 주신다“는 말입니다. (25~27)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두려워하며 근심했는가를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안 믿거나 세상적으로 해석하거나 또는 그 말씀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님이 오셔서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린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셔서 세상에서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도와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요 16:13) 의 말씀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이쯤 되면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시므로 제자들은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두려워했는지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렸거나 안 믿었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장래 일의 불투명성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 두 문제만 해결되면 제자들은 근심도 두려움도 없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것입니까? 사람의 지식으로도 경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장래일과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인데, 이것을 보혜사 성령님이 알려 주시고 믿게 되도록 도와 주시는 줄 믿습니다.
  세상 고아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장래 일을 그 누구도 알려 주거나 보장해 주는 자가 없다는 것 아닙니다. 누구의 말을 듣고 살아야 될지 아무도 그에게 말해주는 조언자가 없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말씀 한 구절 한 말씀도 거부하거나 불신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성도의 장래에 대하여는 영원한 처소가 준비되어 가고 있고 영원한 천국이 약속되어 있고 영원한 기쁨과 믿음의 승리자들을 위한 영광스러운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고 끊임없이 알려 주시는 줄 믿습니다. 성도에게 내세의 확신정도가 신앙의 정도요. 헌신과 봉사의 척도이기도 합니다. 내세의 확신이 크면 클수록 주를 위하여 크게 헌신합니다. 목숨까지 내던지고 내세를 위하여 달려갑니다.
  (히11: 35~)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장래 일에 대하여 확신이 없고, 희미하니깐 고아처럼 불안해하고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을 두려워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헌신을 주저하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이런 약한 우리를 도와 주시는 분이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고아와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근심하며 두려워 하지 않도록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바라옵기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세상을 근심이나 두려움 없이 하늘의 평안으로 여유있게 당당함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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