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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날마다 성경을 상고합시다! (행 1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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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1."바른 메시야관을 갖자!"
2."온전한 복음을 전파하자"
3."신사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자!"

[HAN 행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HAN 행 17:12]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HAN 행 17: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HAN 행 17: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
사도 바울의 회심 이후, 하나님의 섭리로 세계복음화의 문이 열리게 되
었습니다.
바울은 소아시아 지방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는 동방으
로 갈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아시아로 가려던 사도 바울의 발걸음을 허락지 아니
하시고,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통해서 유럽의 첫성 빌립보로 인도하셨습니
다. 그 결실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루디아 가정과 간수 가정이 모두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아,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의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지방의 선교 여행
기입니다.
데살로니가는 알렉산더 대왕의 누이이며, 빌립왕의 양자 카산더의 아내
의 이름을 따라 지어진 도시입니다.
이곳은 내륙의 풍요로운 농경지가, 동쪽의 육로와 해로에 연결되는 곳이
었기 때문에, 키케로에 의해 "우리 영토의 심장"이라고 불리웠고, 또한
마게도냐의 수도로서, 당시 인구가 약 20만이나 되는 큰 도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데살로니가를,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보
았습니다. 그 때문에 빌립보에서 채찍에 맞고 투옥되는 일까지 당하고서
도, 16Km이상이나 떨어져 있는 데살로니가에 결사적으로 들어갔던 것입니
다. 이로 인해 데살로니가에는 빌립보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교회
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본문 말씀에 의지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복음전파의 역사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바른 메시야관'에 대하여 가르쳤습니다.
"바른 메시야관을 갖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도,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습니다.
바울은 일찍이 유대인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이렇게 선언하였지만, 자신의 동족을 잠시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롬 9장에 보면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
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세 안식일,
곧 3주일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는 아직 신약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던 때이므로, 구약
성경을 강론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구약 성경을 받아들이는 것은 좋
았지만, 그 해석에 있어서는 사도 바울과 같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신, 구약을 막론하고 성경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
스도 이십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비록 오래 동안 구약 성경을 읽었지만, 그 마음이 강
퍅하여져서 외식으로 흘렀고 영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성경이 예언한 메시아가 예수님인줄 몰랐습니다.
그리하여 '성경대로 예수가 곧 그리스도시라' 하는 사도 바울의 주장을
배척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메시아관, 그리스도관은 어떠했길래 그랬을까요?
그들은 한 마디로 고난의 메시아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언젠가 메시아가 오면, 모든 원수들을 무찌르고, 풍부한 빵을 공급해 주
며,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를 건설하여, 태평성대를 누리게 해줄 것
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에게 있어서, 빵과 부요와 대제국은 커녕, 십자가에서 죄수 모양으
로 힘없이 죽어간 예수가, 메시아라는 주장은 아마도 천부당만부당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도, 마치 이들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그
러한 메시야로 생각하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빌 1:29에 말씀하기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만 아
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를 믿는 것은, 영광만 있지 않습니다!
부요만 있지 않습니다!
만사형통만 있지 않습니다!
고난도 있을 수 있고, 연단도 있을 수 있고, 시험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우리를 소망으로 인도합니까?

고난 뒤에는 영광이 있을 줄 믿습니다!
연단 뒤에는 부요가 있을 줄 믿습니다!
시험을 통과한 후에는 예비하신 축복과 은총이 넘칠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이 오랜 기간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음을 잃지 않고, 연단받은 후에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
니다.
욥이 참혹한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께 매어달렸을 때, 갑절의 축
복이 임한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주님을 위해, 고난받을 생각이라고는 꿈에도 없이, 오
직 번영과 축복과 만사형통만을 구하며 주님을 믿는다면, 그는 기독교 복
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
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하셨는데,
과연 나는 주님을 위해 고난받아 본 적이 있는가? 내게는 그리스도를 위
해 고난받은 흔적이 있는가? 이것을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기념하시고, 그 위
에 복을 더해 주시는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땅에 정치가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부자로 오시지 않으셨습
니다. 허황된 거짓 선지자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진리와 함께, 목숨까지라도 내주시는 참된 메시야로 이땅에 오신 것입니
다.
[HAN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 마십시오!
연단을 부끄러워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께서 복주시기 위해서 나에게 그릇을 주시는구나!' 할렐루
야! 이렇게 믿으시고, 능히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바울은 성경말씀을 강론하여 '온전한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온전한 복음을 전파하자"

사도 바울은 '세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고 가르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에 나타나 있는 메시아 사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와 부활을 중심하여 강론하였습니다.
인간의 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그리고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해
강론했습니다.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다시 살으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이렇게 초대 교회 전도의 중심 내용이었습
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예수님의 다른 사건들을 다 전하였다고 할지라도, 그의 죽으심
과 살아나심을 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기독교를 전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
다.
존 스토트는 말하기를 "기독교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제거해 버리면 기독
교는 파괴되어 버린다"고 말하였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고전 15:1-4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
시 살아나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 두 가지 사실,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사람은 누구
든지 구원을 얻는다는 것!' 이것이 복음의 본질인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이것이 곧 오리지날 복음이고, 원본의 복음이고, 영원한
복음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순수하게 복음을 전한 결과가 어찌되었습니까?
4절에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
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헬라인이란 곧 유대교에 입교한 헬라인을 의미합니다.
바울의 회당 전도에 유대인은 별로 회개한 자가 없었으나, 헬라인의 큰
무리와 상당수의 귀부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중된 자로써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써 나중
되리라'고 하셨는데, 여기 데살로니가에서도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서,
유대인들은 복음을 시기하고 배척했으나, 이방인인 헬라인은 많은 수가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3 주간에 걸친 사도 바울의 선교로 설립된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후 참
으로 모범된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온전한 복음을 들을 때에, 그 심령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도 바울처럼 온전한 복음을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 복음을 열심히 전파하셔서, 먼저 신앙생활을 한 사람답게 앞서 가시
고, 회개의 열매, 성령의 열매, 빛의 열매, 전도의 열매 등을 주렁주렁 맺
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신사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자!"

당시 도시 중심부에는 대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거기에는 건달과
불량배 등이 할일 없이 빈둥거리고 다녔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들을 데리
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였습니다.
스스로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노라 자부하는 유대주의자들이, 깡패
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종교적인 독선은 얼마나 무서운 죄를 저질을 수 있는가를 보여줍
니다. 데살로니가에 살던 유대인들은 결국 바울과 실라를 잡으려다 여의
치 못하자 사도들을 도와준 야손을 읍장들에게 고소하였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에서는 야손으로 하여금 바울 일행을 다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보를 받는 정도에서 소동이 끝나고, 바울과 실라는 다음 선교지
인 베뢰아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11-12절에 보니까,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
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
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라고 했습니다.

1. 베뢰아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그것을 귀히 여겨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생명과 능력
으로 임합니다. 간절하지 않는 자들은 개나 돼지와 같이 복음의 귀중성을
모르는 자들이니 그들에게는 은혜가 임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
서도 말씀하시기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
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
려하라'고 하셨습니다.

베뢰아인들을 신사적이라고 했는데, 이는 인격과 성품이 고상하다는 뜻
이 있으며, 동시에 편협하거나 폐쇄적이지 않고 개방적이며 열린 마음을
의미합니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마음 바탕이 좋다는 말입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 찔리는 가시가 없는 그런 순전한 마음을 뜻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순수하게 진리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가난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참 진리에 대해 목말랐습니다.
그 때문에 사도 바울이,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자 그
들은 순전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2. 베뢰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상고했습니다.
저들은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맹목적인 신앙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샘을 파는 듯 금을 캐는
듯 사도들의 가르침이 구약과 일치되는지 성경을 연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실 때 항상 구약의 예언에 따라 행하셨기 때문
에, 그의 생애가 바로 구약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그러므로 베뢰아 사람
들이 성경을 깊이 상고한 것은, 결국 예수를 메시아로 바로 믿기 위함이
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뢰아 사람들은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믿기 위하여 날마다 열심히 성경을 상고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너무 감정에 치우치면 광신적이 되기 쉽습니다.
반면에 너무 지성에만 치우쳐도 냉랭하고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베뢰아 사람들은 지정의를 겸전한 균형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었
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베뢰아인들에게서 규모 있는 신앙을 베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의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지방의 선교 활동으로 교회가 세워지
고, 많은 수의 사람이 주께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
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
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 심령의 깊은 욕구를 다 만족히 채워줍니다.
고독한 자가 성경을 읽을 때는 참된 친구를 발견합니다!
어두움에 헤매는 자는 참된 빛을 발견합니다!
영적으로 굶주린 자가 성경을 읽으면, 생명의 양식, 생명수가 채워집니
다!
슬픈 자는 위로를 받고, 병든 자는 건강의 비결을 발견하고, 실패한 자
는 성공의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되고, 낙심된 사람은 소망을 얻게되는 것입
니다.
나약한 자는 새로운 담력을 얻게 되고,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망을 받을
수밖에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때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실로 성경은 우리들의 인생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복되게 살도록
교훈하는 모든 것의 안내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도 모두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으시고,
매일매일 성경말씀을 깊이 상고하심으로,
고상하고 신사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자 한번 따라해 주십시오!
1."바른 메시야관을 갖자!"
2."온전한 복음을 전파하자"
3."신사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자!" 할렐루야!

오늘 받은 말씀대로 준행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시고 날마다날
마다 영광 돌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시를 축원합니다!

-이종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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