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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라! (삿 13: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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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라!
사사기 13:15-20

여호수아 5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건너게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요단 근방의 왕들과 백성들이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는 곳에는 이러한 역사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나아갈 때에 어둠의 권세들과 악한 영들이 두려워서 도망가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지난 주 목요일 저녁에 남목교회 학생회 집회를 인도했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처음 말씀을 전하는데 참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찬양을 하면서 합심기도를 하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영적 체험이 없었습니다.  한 사람씩 안수 기도를 하면서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안수 기도를 마칠 즈음에 그래도 몇 아이들이 성령의 만지심을 체험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한번 찬양을 뜨겁게 한 후에 기도를 하게 하고 안수 기도를 하는데 한 여자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으려고 하는데 보니까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보니까 아이의 눈은 꼭 감겨진 채 뭔가 두려워하면서 입으로는 "안돼요"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예수님'이라고 말해 보라고 했더니 '싫어'라고 하는 겁니다.  이 아이에게 사단이 들어간 것입니다.  악한 영이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끌고 앞으로 데리고 나오면서 기도를 그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모두에게 알게 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음 보는 이 광경 앞에서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이 친구를 살리기를 원한다면, 이 친구를 사랑한다면 정말로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혼란스럽던 분위기가 갑자기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시는 것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뜨겁게 보혈의 찬양을 한 후에 부목사님과 교사들로 하여금 아이의 몸에 손을 얹게 하고, 제가 머리에 손을 얹은 후 선포를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아이 속에 있는 악한 영은 떠나가라"
그랬더니 이 아이의 입을 통해서 사단이 부르짖습니다.
"안 나가"
보니까 이 아이의 입 모양은 뱀의 입 모양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크게 선포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영은 떠나가라"
그랬더니 그렇게 발악을 하던 이 아이가 잠잠해지고 악한 영은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날 아이들은 많은 영적 체험을 했다고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날 밤 이 여자 아이에게 임하셔서 악한 영을 몰아내고 자유함을 주셨던 성령님의 역사가 오늘 우리들에게도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있는 의심과 절망과 낙심과 비난의 모든 어둠의 영들이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천리길로 떠나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예수를 잘 믿으십시오.  지금은 예수를 잘 믿어야 할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자원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가정의 자원이 되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겁낼 것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칼과 권세와 돈으로 우리를 공격해 오지만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믿는다면 그분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은 반드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하여 이 시대 속에서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인간이 역사 속에서 주인이 되고, 위대한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된 것도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인간의 생각이 오늘날에 와서는 인류를 파멸의 시대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릇된 생각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생각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생각을 바로 가지면 행복해집니다.  번성합니다.  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생각을 잘못 가지면 불행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원입니다.  이 자원을 기도와 찬양으로 잘 개발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언제 어떠한 경우에라도 소망의 생각과 긍정적인 믿음에 찬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 땅에 일어나고 있는 파괴의 악한 영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몰아내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민족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절망과 원망과 미움과 상실감을 갖게 하는 어둠의 영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몰아내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의 의식구조와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바뀌어야만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생각대로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우리들의 생각을 주장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의 생각 속에 기생충처럼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두 사람의 부정적인 생각이 다수의 마음을 흔들게 합니다.  한 두 사람의 파괴적인 말이 공동체의 하나됨을 무너뜨리게 합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보냈던 열두 명의 정탐꾼들 가운데 열 명의 정탐꾼들의 주장은 한 마디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집에 가서 민수기 13장과 14장을 깊이 음미하면서 읽어보십시오.  거기에 보면 분명히 열두 명의 정탐꾼들은 그들이 보고 온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임을 알았습니다.  알았을 뿐만 아니라 그곳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명의 정탐꾼들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다"

14장 1절에 보면, 이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 온 백성들이 아우성을 치며 밤새도록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차라리 우리가 애굽이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보십시오.  열명의 부정적이고 그릇된 생각이 온 백성들 속에 부정적인 생각과 분열과 파괴와 절망감 속으로 몰아넣으면서 '우리들은 결코 못한다'고 포기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상대의 강함을 내세우고 그 앞에 항복하라고 강요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들이 종으로 살았던 애굽, 저주와 파멸과 죽음만 있었던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이들의 믿음 없는 행동과 말들 앞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을 찢으며 분연히 일어납니다.  이들 두 사람은 열명의 정탐꾼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합니다.  우리가 보고 온 땅은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은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똑 같은 시간과 똑 같은 조건에 똑 같이 가나안 땅을 돌아보고 왔지만 어떻게 이렇게 생각이 엄청나게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열명의 정탐꾼은 환경을 보았지만, 두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열명의 정탐꾼은 문제를 보면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생각을 가졌지만 두명의 정탐꾼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서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열명의 정탐꾼은 '안 된다'고 판단했지만, 두명의 정탐꾼은 '된다'고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어떤 안경을 썼느냐에 따라서 빨갛게 보이기도 하고, 파랗게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푸른 숲도 시뻘건 안경을 쓰고 보면 시뻘겋게 보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의 안경으로 바꾸어 껴야만 됩니다.  왜냐하면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운명을 변화시키는 것은 물질이나 환경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들이 되십시오.  하나님은 다수의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사람들보다는 소수의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를 만들어 가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여 누구에게선가 부정적인 말을 듣거든 귀를 닫으십시오.  비난과 모멸과 파괴적인 소리를 듣거든 귀를 닫으십시오.  여러분들이 그 소리에 반응하는 순간에 사단은 그 말을 통하여 우리들의 마음에 가리지처럼 자리를 틀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우리의 입을 더럽게 만들지 마십시오.  우리의 귀를 더럽게 만들지 마십시오.  우리의 생각 속에 사단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십시오.  아십니까?  소극적인 사람은 소극적인 역사 밖에 일으키지 못합니다.  어정쩡한 태도는 어정쩡한 역사만 낳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대처해 나가는 사람들 편에 서서 역사를 이루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광야와 같은 삶입니다.  창조적인 생각을 가질 때에 기적은 일어납니다.  적극적인 생각과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가득 차 있는 생각을 가질 때에 기적은 일어납니다.  불평은 공동체의 창조성을 죽이고, 원망은 개인의 창의력을 죽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창의력이 생기고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마라의 쓴물 앞에서 갈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과 원망을 했지만 모세는 기도함으로 창의력을 얻고 나무를 꺾어 쓴 물 속에 집어넣어 단물로 변하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평과 원망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고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일진데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을 붙들고 자기 자신을 기적의 주인공으로 만드십시오.  믿음의 사람은 자신 속에 신령한 바람을 일으켜야 합니다.  하늘의 바람을 일으켜야 합니다.  믿음의 바람, 소망의 바람, 사랑의 바람을 일으켜야 합니다.  하늘의 영이 내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여호와의 힘을 붙들고 우리의 삶에 기적의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 한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오늘도 기적은 일어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자만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믿음만 붙들면 모든 문제의 해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는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는 그런 가정이 등장합니다.  이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자녀가 없다는 것은 가정의 가장 큰 절망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13장 2절에 보면,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이 시대에는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이 최대의 저주이고 최고의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삼손이라는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이 아들은 기적의 아들이었습니다.  분명히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일까?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은혜는 기적을 낳는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참된 기쁨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은혜 없이 살아가는 삶은 생수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된 메마른 사막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려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면 누릴수록 더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주일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차를 타고 템스강 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 내가 템스강의 작은 물고기가 아닐까?  내가 이 물을 다 마셔버려서 템스강이 다 말라버리면 어떡하지?"
그때 하나님이 그 작은 물고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마음껏 들여 마셔라.  작은 물고기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문득 '내가 등산하는 한 사람의 등산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의 공기가 너무 좋은데.  내가 호흡하다가 다 마셔서 공기가 고갈되면 어떡하지?'
그때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껏 들여 마셔라.  작은 인간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이 피곤하지만 하나님이 그때마다 하늘을 열어 주신다면 일평생 능력 있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이스라엘에 베풀어지는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식이 없어 희망을 잃었던 한 가정이 생기를 회복합니다.  가장 큰 근심거리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해결된 것입니다.  삼손의 출생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는 사람의 수단과 방법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인간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렇습니다.  은혜는 항상 주님 편에서 시작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마노아의 아내에게도 주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이 여인의 이름은 성경에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여인에게 하나님이 천사의 모습으로 방문하셨는데 마노아 부부는 자기들을 찾아온 분이 하나님의 천사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사자에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에서 그 이름을 기묘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사야 9장 6절에서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언하면서 그 이름은 '기묘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기묘자란 '놀라운 분'이라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우리의 이해의 수준을 뛰어넘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 놀라운 분이 놀라운 방법으로 슬픔과 절망에 젖어 있는 여인 곁에 다가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과 판단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이 놀라운 방법으로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은혜가 아닌가요?  슬픔으로 낙심되어 있는 나에게 주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는 이것은 은혜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마노아의 가정이 받고 있는 고통을 해결하시고 암울한 시대에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해 친히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직접 찾아오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도 우리들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 은혜를 사모하여 기적을 낳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모압 여인 룻입니다.  모압이라는 민족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영원히 버림받은 민족입니다.  거기에다가 롯은 남편을 잃은 과부였습니다.  그가 시어머니를 따라 남편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와서 살았습니다.  룻은 이삭을 주우면서 참으로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룻 앞에 하나님이 보내신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룻은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룻은 이 하나님의 사람 앞에 엎드려 자기의 절실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룻기 2장 13절에 보면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이때부터 롯의 삶에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의 인생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모든 기적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가 기적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있으면 우리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있으면 우리는 부흥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있으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들을 누리게 됩니다.

이 시간 묻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 가운데 기적이 필요하십니까?
절망 중에 희망이 필요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에게 임하여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적은 옛날에 있었던 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정말로 필요한 것이 기적입니다.  그런데 이 기적은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기적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기적 같은 일들을 기대하면서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만 됩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 은혜 속에서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십시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를 향하여 놀라운 일들을 행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를 위하여 위대한 역사를 준비하시고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의 약속이 이루어진 통로가 기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텍사스 시스코의 한 호텔 방에서 한 젊은이가 절망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탁자에는 하얀색 알약 수십 알이 널려 있었습니다.  한참 몸부림을 치던 젊은이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어릴 적 어머니께서 '세상 사람은 모두 널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널 잊지 않으신다.  그분은 너에게 참 피난처, 요새가 되신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그 동안 피난처 되신 하나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눈을 떴습니다.  무엇인가 결심한 듯 두 주먹을 꽉 쥔 채 방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외쳤습니다.

"투자자 여러분, 여러분이 투자하신 그 귀한 돈을 다 날리고 부도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을 뵐 면목이 없어 자살하려고 수면제를 사서 호텔에 투숙했다가 어릴 적에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 하나님이 저의 피난처라는 말씀이 생각나 밤새 회개와 헌신의 기도를 드리고 용기를 얻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한 번만 용서하시고 상환을 유예해 주시면 원금과 이자 모두를 쳐서 갚겠습니다."

그 후 투자자 가운데서도 가장 큰 피해를 본 두 명의 투자자가 다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의 새로운 사업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사람이 세계적인 호텔 힐튼의 창업자 N. C. 힐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다 맡길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도이고, 기도가 기적의 통로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라는 말이 나옵니다.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했던 마노아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기로 이미 약속하셨는데도 마노아는 기도했습니다.  왜요?  마노아는 기도야말로 기적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통로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약속한 대로 반드시 행하십니다.  그러나 성도가 기도할 때를 기다리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과 승리를 맛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기도만이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마음 깊이 믿고 기도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여 '내 삶에는 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드십니까?  야고보서 4장 2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것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그렇습니다.  구하지 않기 때문에 응답이 없고,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의 기도 중에 우리의 생각대로 구한 이기적인 기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정말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매일매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기도에 대해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내가 쓸 것, 나에게 필요한 것 등 나의 소원을 하늘에서 응답 받는 것이 기도는 아닙니다.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을 나의 삶에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도하게 하시는 진정한 이유는 단순히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자신의 얄팍한 이기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아갈 때, 주님의 뜻에 우리의 삶의 초점을 맞추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할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그러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기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적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누리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진정 기적을 맛보는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깨달을 때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기도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목사인 저는 여러분 개개인들이 다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개인이 일어나 가정을 세우고, 가문을 일으키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우리의 공동체인 언양 영신교회가 일어나고, 이 민족이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를 기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기적의 약속을 이루는 통로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제 여러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이 한 주간 저와 여러분 개개인을 향한, 그리고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살아가 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향한 기대와 약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놀라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경험되고 간증되어지기를 원합니다.  나와 내 가정과 내 가문과 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십시오.  기대가 없으면 얻는 것도 없습니다.(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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