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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하라 (마 17: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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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마28:18) 하셨다. 하늘과 땅에 관련된 모든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피조물로, 매우 연약한 존재다.

  특히 주님의 선택된 성도들은, 사단과 치열한 영적 전쟁 중에 있다. 전쟁 중에는 보급품을 충분히 공급받아야 승리할 수 있다. 따라서 영적 전쟁 중에 있는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계속 구해야 한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의 보급로인 기도를 막아서고 있다.

  현대인은 너무 바쁘게 살기에, 기도생활을 잊어버렸다. 사탄은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고, 무엇인가 바쁘게 쫓아가도록 만든다. 사탄은 Good으로 Best를 빼앗았다. 좋은 것으로 최고의 것을 빼앗았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도움과 능력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 생활의 승패는, 얼마만큼 기도생활을 늘릴 수 있느냐에 있다. 따라서 기도 시간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영적 전쟁의 모델이라고 하는 출17장을 보면, 여호수아는 아말렉과의 전쟁에 나가 싸운다. 그런데 전쟁의 승패는, 산꼭대기에서 손들고 기도하는 모세의 기도에 달렸다.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기고, 기도하는 모세의 팔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겼다. 너무 지쳐서 팔이 내려올 때, 아론과 훌이 양쪽에 서서, 그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붙들고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기도의 승리요, 아론과 훌의 승리였다.

  하나님의 사람이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힐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도행전 12장은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사도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빌더라. 그때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끊어지는 역사가 있었다.

  우리 인생도, 꼼짝 달싹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힐 때가 있다. 이때 어떻게 옥문을 열 수 있으며, 우리를 묶고 있는 세상의 끈들을 자를 수 있는가?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해야 한다.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하려면, 기도해야 한다. 따라서 기도가 능력이다. 기도하면 된다.

  미국의 콜로라도 스프링스는, 목회자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아침이면 사탄숭배자들이 제사에 사용했던, 손과 발목이 절단된 고양이들의 시체가 즐비했고, 무당과 점성술사들이 판을 치는 곳이었다. 이곳에 테드 헤거드(Ted Haggard)목사님이, 뉴라이프 교회를 개척하였다.

  지하실에서 첫 예배를 드린 후, 거의 매일 밤마다 사탄숭배자들로부터 “너는 내일 죽는다. 우리가 너를 죽인다. 내일 아침 너는 교인들 앞에서 쓰러져 죽을 것이고, 다시는 네 아들을 보지 못한다”는 협박을 받았다. 그러나 전화번호부를 뜯어서,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지금은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지금 이 지역에 2,000명 이상 모이는 교회가, 10교회 이상 되고, 뉴라이프교회는 매주일 11,000명 이상이 출석하는 교회가 됐다. 이제는 가장 살기 좋은 지역으로 손꼽히게 되고, 찬양과 기도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

  전 세계를 가슴에 끌어안고, 지금 기도하고 있다. 전 세계에 영적인 부흥을 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도시로 바꾸어가고 있다. 이런 능력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란다.

1. 능력을 잃은 세대

  본문을 보면, 귀신들린 어떤 아이가 초라하게, 거품을 내뿜으며 쓰러져 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을 끌어안고, 신음하며 울고 있고, 바로 곁에서 제자들은, 웅성거리며 서 있다. 왜 안되지? 왜 귀신이 물러가지 않지? 당황하고 쩔쩔매고 있다. 저만큼 서기관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웃고 있다.

  이때 예수님께서, 세 제자와 함께 나타나셨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를 나무라시며 “그 아이를 이리로 데려 오라” 하시고, 귀신을 쫓아내니, 그 아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자, 예수님과 접촉하자 문제가 해결되었다.

  오늘 우리시대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인가? 경제 위기인가? 북한의 핵 위협인가? 정치적인 불신인가? 교육정책의 부재인가? 모두 문제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신자들이 믿음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권능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데 있다.

  교회가 마땅히 행해야될 능력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권세를 누리지 못하고 살고 있다.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없었지만,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은과 금은 많아졌으나,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를 잃어버렸다.

  교회 건물은 저마다 커지고 웅장해졌다. 교인들은 많아졌다. 재력도 있어 보인다. 이름대면 알만한 유명인사들도, 교회에 늘어나고 있지만, 영적인 능력은 약해졌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능을 행사하지 못한다.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얼마나 비극적인 말씀인가?

  제자들이란 말 대신에, 교회란 말로 바꿔보자. “내가 교회에 데려왔으니,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내가 교회에 이 문제를 가져와도 능히 해결하지 못하더이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잘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을 바꾸고 고칠 수 있느냐!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느냐의 문제다.

  이 세상에 문제는 언제나 있어 왔다. 문제가 없었던 때는 없었다. 그러므로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없음이 문제다. (마10:1)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이미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낼 때, 성경을 공부하는 방법을 먼저 가르치지 않았다. 성경을 가르치는 방법을, 먼저 가르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교회는 학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요, 하나님의 군대다. 신앙생활은 게임이 아니다. 소풍놀이가 아니다. 영적인 전쟁이다.

  그래서 귀신을 쫓아내며, 이 세상을 다스리며 정복하는 권세를, 제자들에게 먼저 주셨다. (행19:1)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능력을 주었더니, 바울의 앞치마만 갖다가, 병약한 자에게 얹어도 병이 나았다. 귀신이 물러갔다.

  이를 부럽게 생각했던 유대인이, 귀신들린 자를 만나 “내가 사도 바울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해 너에게 명령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고 했다. 그때 귀신이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는 누구냐?”고 하였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도도 안하고, 적당히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맡기지 않고 살아가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보혈의 능력도, 복음의 능력도, 말씀의 권능도, 알지 못하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

  악한 귀신들린 자가, 바울을 흉내내는 이 유대인을 때려 엎어놓고, 옷을 벗기고 할퀴자, 발가벗고 도망하였다. 신앙은 흉내내는 게 아니다. 무당도 배운 학습무당하고, 신내린 강신 무당과는 다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성령의 능력에 접속된 사람하고, 흉내내는 사람하고는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나요?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만나셨나요? 성령 충만의 체험이 있나요? 홍수가 나서 물이 넘쳐도, 물을 마셔야 갈증이 해결되듯이, 우리 교회에 아무리 많은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도, 내가 구체적으로 만난 예수님이 있어야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권세를 주셨다. 그런데 아담은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 하나님의 배신하였다. 하나님을 배신한 결과 사단에게 순종한 결과가 되어서, 그때 아담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도록 주신 권세를, 사단에게 양도해 버리고 말았다.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눅4:6)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라고 하였다. 세상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누가 사단에게 넘겨주었는가? 하나님의 자녀들, 아담과 하와에게 주었던 권세와 영광을, 범죄로 상실하고, 사단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예수님께서는 사단의 권세를 부수시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십자가에서 사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 피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권세를 되찾았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선언이며, 능력인가?

  이 권세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셨다. 성령님 안에서, 이 권세가 제대로 행해지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대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권세를, 우리에게 다시 맡겨 주셨다. 따라서 이 권세를 믿고 사용하시기 바란다.

2. 권세를 사용하라.

이 권세는 신자에게, 사용하도록 주셨다. 액세서리가 아니다. 선포하고 명령하는 권세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호받고, 축복 받고 치유 받았음을 선포한다.

  저는 이 세상에서 범죄하고 실수하고 넘어졌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이름으로 용서받았음을 선포한다. 그래서 사단에게 빼앗겼던 모든 권세를 회복했고, 이 땅을 정복하는 주님의 영광과 권능이 내 안에서 회복되어졌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성도들에게, 권능을 회복시켜 주셨다.

  그러므로 구경만 하지 마시기 바란다. 사단이 다 듣고 있다. 우리 입으로 선포하지 않으면, 우리 것이 될 수 없다. 특별히 주님의 전에 올 때마다 성령님의 나타남을 구해야 한다. 권세는 이미 내 것으로, 회복되었다고 선포하라. 그리고 기도 후원을 비축해 나가야 한다.

  주님 전에 나아와 예배 한번을 드리더라도, 형식적으로 예배드리려고 하지 말라. 준비된 심령으로, 하나님의 성령님의 능력을 불타는 목마름으로 사모하라. 찬송을 한번을 부르더라도, 그 찬송 속에 내 신앙의 고백을 담아서 찬송하라. 기도하더라도 하나님의 권능에 접촉되어야 한다.

  가정에 돌아가면, 오늘부터 이 권세를 사용하라. 교회 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 같은데, 집에 가면 부부간에 갈등이 일어난다. 교회에서 밥 먹을 때는 좋은데, 집에서 밥 먹을 때는 자꾸 싸움이 일어난다. 그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외쳐라. 갈등을 가져오고, 외식하게 만드는 것들은 떠나라고 외쳐라.

  우리 자녀들의 공부방에는, 악령이 득실거리고 있다. 악령은 컴퓨터를 통해, 우리 아이들을 점령해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이지만, 인터넷 천국이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아이들에게도 자살 사이트와 폭력 사이트, 음란 사이트가 무분별하게 노출된 나라는 없다.

  음란사이트에 노출된 학생들이, 너무나 많기에, 컴퓨터 앞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라. “우리 아이들을 유혹하는 사악한 영들은 물러가라, 우리 남편을 괴롭히고, 방황하게 만드는, 영들은 물러가라” 이렇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추방해야 한다.

  이 컴퓨터를 주님의 주권에 돌려드리니, 이 컴퓨터를 통해 우리 아이들의 가치관이 건강해 지고, 주님께 영광돌리고, 지능이 발달되어, 주님께 쓰임 받는 자녀가 될지라. 이렇게 선포하시기 바란다. 이렇게 악한 영들을 추방하고, 모든 잘못된 사이트들을 차단하라.

  우리 아이가 성장한 다음에는 이미 늦는다. 우리의 집과 사업을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주권에 돌려 드려라. 사단의 모든 유혹을 물리쳐라. 예수님께서는 사단을 추방하고,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기도할 때에, 간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고 언제나 명령하는 기도를 하셨다.

  열병은 떠나가라. 깨끗함을 받을지어다. 귀신아 떠나가라. 일어나 걸어라. 주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셨다. 우리도 명령하시기 바란다. 당당한 권세가 우리에게 있다. 명령할 권위가 우리에게 있음을 믿고, 외치시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녀를 맡기실 때, 육체만 맡기시지 않았다. 그들의 삶을 맡기셨다. 그들의 영혼을 맡기셨다. 자녀를 축복하라. 당당하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축복하고 선포하라. 온전히 그들의 삶에, 주님의 주권이 나타나도록 선포하라.

  하나님께서 부족한 종에게, 이 교회를 맡기실 때,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셔서 이 교회를 맡기셨다. 제가 위임하는 주의 종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권위를 그들에게 부여해 주신다. (마16:18)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요3: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였다. 너무도 유명한 말씀이지만,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원할 때, 영접기도를 시킬 때만 사용한다.

  그러나 본문을 연구해 보면, 이 말씀을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이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네 행위를 안다 하시며,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셨던 말씀이다. 네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 없이 행동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네 마음의 문을 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정작 우리에게 “나는 네가 기도하는 그 자리에 들어가서, 같이 기도하고 싶다. 네가 설교하는 그 자리에 함께 가서 설교하고 싶다. 네가 심방하는 그 자리에 내가 함께 동행하고 싶어. 네가 찬양하는 그 자리, 봉사하는 그 자리에 들어가고 싶단다.

  그런데 너는 내가 없이 봉사하고, 찬양하고, 설교하고 있기에, 나는 여기서 부지런히 너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단다…”라고 말하시는 내용이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는, 미지근한 교회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예배하면서도, 찬송하면서도, 기도하면서도, 열심히 봉사하면서도, 심령이 식어진 이유와,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아시나요? 우리가 기도하고 축복하면서도, 우리 자녀들이 비틀거리고, 남편들이 방황하는 이유를 아시나요?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의 가정 문밖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의 방문을 열고, 사업의 문을 열고, 재물의 문을 열고, 예수님 여기에 계셨군요 하면서, 주님의 손을 붙들고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모셔들이기 바란다. 교회에 오면 주님을 믿는 사람인데, 교회를 나가면 믿는 냄새가 왜 나지 않는다.

  예수님 없는 삶 때문에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 들어가기 위하여, 내가 지금도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너희 사업을, 너희 가정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승리하시기 바란다.

3.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하라.

귀신을 쫓아내는데 실패한 제자들은, 사람들 앞에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사람들이 떠나고 난 다음에, 예수님께 조용히 찾아가 물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천년 전 이 신음소리는, 오늘 우리들의 신음소리가 아닌가요? 2천년 전에 제자들의 한탄은, 우리교회의 한탄소리는 아닌지요? 우리는 왜 안 될까요? 우리는 왜 이 능력을 행할 수 없나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왜 무력한 사람으로 살아갈까요?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없다고 하시지 않고, 적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믿지만, 우리의 삶을, 우리의 사업을, 가정을, 전폭적으로 주님께 맡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능력이 안 나타난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을 정복하고, 사단의 권세를 물리치고, 이 땅을 정복할 권세가 내게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21절에 보면, 없음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다른 사본에 보면,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온다.

  본문과 같은 내용인 (막9:29)에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하였다.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하라는 말이다. 왜 금식기도를 강조하고 있나? 우리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안 해도, 밥은 먹는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권능이 빠져있다면, 우리가 밥 먹고 잠자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기도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 땅에서 가장 우선순위는, 우리 신앙생활의 최우선 순위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권능에 연결시키는 일이다.

  루터는 이 기도로, 당시에 거대했던 천주교 교권과 맞서 종교개혁을 완성했다. 칼빈은 금식기도로 제네바를 거룩한 도시, 성지로 바꾸었다. 모니카는 금식기도로, 방황하는 아들, 어거스틴을 성자로 바꾸었다. 우리가 꿈꾸어 왔던 일에, 실패할 수 있다. 다른 많은 일들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이,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되면,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하면 된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하는 일이다. 꿈을 이루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하시기 바란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 시간을 정해놓고, 수요예배와 심야기도회를 사모하며, 기도하시기 바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하면,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된다. 사업도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하면 해결된다.

  우리 아이에게 족집게 과외선생님을 붙여주지 않아도,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하면 자녀문제는 모두 해결된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되고, 믿음도 자라게 된다. 기도를 중단하게 되면, 패배가 시작이다. 기도를 많이 비축해 둬야, 위기가 왔을 때 쓸 수 있다.

  결론이다. 특별히 우리다운교회 성도들은, 새벽에 하나님과 접속하시기 바란다. 아브라함이 새벽에 이삭을 바치고, 믿음에 조상이 되었다.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갈라진 시간은 새벽이다. 1907년 한국에 일어난, 거대한 부흥의 물결은, 새벽기도로 시작이 되어졌다.

  축복의 문이 열려진 시간이 새벽이었다. 베드로가 빈 그물을 들고, 새벽을 맞이했을 때, 예수님을 만남으로 만선되는 축복이 되었다. 여리고 성은 새벽에 무너졌다. 야곱이 씨름하여 승리한 시간이 새벽이었다. 예수님은 새벽에 탄생하셨고, 새벽에 부활하셨다. 새벽에 승리자가 신앙의 승리자다.

  귀신 나오는 영화를 보면, 새벽이 되면 귀신이 물러간다. 귀신이 활동하는 시간은 밤이다. 따라서 밤에는 가족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밤에 혼자서 돌아다니다 보면,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된다.

  밤에는 술 먹자, 고스톱 치자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새벽에 전화해서 “고스톱 치자, 한잔하자”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새벽 기도 시간을 다시 찾아, 주님의 권능에 접속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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