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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정한 이웃들 (눅 10: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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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오늘 우리 복음적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란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란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현장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삶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향하여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천국백성의 기본적 사명입니다. 성도로서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향하여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빛과 소금의 삶은 영향을 받기보다는 영향을 주어야 하는 삶인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수재민 돕기 헌금을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왜 거룩한 부담을 안고 여기에 동참해야 했습니까 또 오늘은 63명의 영적전사들이 3부예배후에 태국 야소톤을 향하여 떠나게 됩니다. 우리모두 성도님들은 저들을 후원하고 응원하기 위해 마음과 헌신으로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63명의 단기선교단은 왜 태국을 가야하며 우리는 왜 응원해야 합니까? 또 하나 우리교회는 중보기도사역에 있어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어제까지 제 1기 중보기도사역을 마무리하고 내일부터 제2기 중보기도사역이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4개월 동안 쉬지 않고 하루도 빼지 않고 오전6시부터 밤12시까지 릴레이로 성도들 서로를 위해 중보하며 영적 파수군의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이 사역은 목사에게 있어 큰 기쁨이었고 자랑이었고 든든함이었습니다. 제가 설교하는 지금도 중보기도실에서 기도하고 있겠지요 이처럼 성경이 요구하는 바 복음적 그리스도인을 향한 소금과 빛의 사명이기 때문에 우리는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삶의 현장에서 더 좋은 사람을 찾기보다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삶의 현장에서 더 좋은 이웃을 원히기 보다는 더 좋은 이웃이 되어주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묻습니다. 네가 나를 믿느냐 그다음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모두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주님을 사랑하길 원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사랑을 원하시는 주님의 관심은 주님 자신보다는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행한 것에 중심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는 나에게 어떻게 했는가 보다는 내가 너에게 맡긴 소자에게 어떻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마25:35절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고 36절에서는 벗었을 때에는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는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는 와서 보았느니라 합니다. 이 말씀앞에 오른편에 있는 자들이 우리가 언제 그리하였습니까 물으니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한 율법사가 주님에게 와 묻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때 주님은 너는 율법사인데 율법에는 무어라 기록되었으며 너는 어떻게 읽느냐 하십니다. 율법사는 정확한 답을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주님은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합니다. 이때 율법사는 소릴 높여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질문합니다. 여기에 주님이 율법사에게 강도만난 사람의 이야기 강도만난 사람을 선한 사마리아사람이야기를 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아마도 율법사는 영생에 대하여 묻고는 있지만 영생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기록된대로 표현하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 얼마나 알고 있나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묻는 것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깨끗한 사람인가 한번 저 예수 선생에게 확인해 봐야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알고 계신 주님은 율법사에게 강도만난 사람의 얘기를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데 강도를 만났고 강도들은 있는 것을 다 빼앗고 옷을 벗기고 얼마나 때렸는지 거만 죽게 된 것을 버려두고 도망을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때 제사장 레위인 순서대로 길을 지나가다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불쌍히 여겨 상처에 포도주와 기름을 붓고 그 상처를 싸맨 후에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하룻밤을 함께 머문 후에 이튿날 돈을 주막 주인에게 주며 돌보아 주십시요 돈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아주겠소 하며 떠나갔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주님은 묻습니다.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자입니다. 주님은 가서 너도 이와같이 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건앞에서 사람들의 판단이나 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강도만난 사람 본인의 책임이나 지역을 관활하는 치안담당처의 안일함을 지적하고 말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강도만난 자의 허물을 실수를 말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어려운 일을 만났을때 그 아픔을 놓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말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교통사고라든지 금번 수해를 입은 지역이 조심 안해서입니까? 물론 조심성이나 과속을 하게되면 사고의 확률이 높기는 합니다. 또 하나 강도만난 현장에서 누구책임이냐 책임론을 주님은 언급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강도만난 현실 거의 죽게된 사람 이 현실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물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강도만난자의 곁을 지났던 사람들의 반응은 너무나 상반되었습니다. 먼저는 제사장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나 장로를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자 몸과 마음이 늘 깨끗한 성별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쁘기도 하고 어설프게 손댔다가 죽기라도 하면 사체를 만지는 순간 더 이상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합리화하여 피합니다. 레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이라 할 수 있는데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 사람의 일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 가는 중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왜 강도만난자를 피한 자의 모델로 제사장과 레위인을 두셨는지 생각해봅시다. 사실 지나간 사람은 이 외에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사람에게는 문제삼지 않으셨습니다. 종교인이요 교회다는 사람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묻겠습니다.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법적 책임이 있습니까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신앙인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변에서 크게 들리는 소리들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향한 목사를 향한 소리들이 무엇입니까 다른 일반인들에게는 문제가 안되는데 신앙인들에게는 문제가 됩니다. 이것이 세상을 향한 신앙인들의 거룩한 부담입니다. 이것은 신앙인들을 향한 세상의 기대요 교회를 향한 세상의 기대입니다. 율법사의 실수는 여기에 있습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묻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웃이 될 사람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이웃은

제사장과 레위인과는 달리 지나가던 사마리아사람은 강도만나 피 흘리는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가 누구냐 누구 책임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까이 갔습니다. 그 사람의 필요가 되어주었습니다. 내게 있는 포도주와 기름으로 살피고 주막에 데리고 가서 하룻밤 머물었습니다. 함께 해준 것입니다. 떠나면서 돈을 주며 주막 주인에게 부탁합니다. 다음에 와서 더 줄테니 이 사람을 살펴달라는 것입니다. 책임져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교입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 오늘 우리 단기선교단이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보의 마음입니다. 함께 해주고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고 필요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함께 해 주는 것입니다. 책임을 함께 느끼는 것입니다. 이 세사람중에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입니다. 율법사의 대답은 자비를 베푼자니이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가서 너도 이와같이 하라입니다. 가서 너도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 주라는 것입니다. 가서 너도 주님을 모르는 자의 이웃이 되어 주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필요로 하는 자에게 이웃이 되어 주라는 것입니다. 약한 자의 이웃이 되어주라는 것입니다. 가서입니다. 앉아서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 많은 곳에서 우리 모두에게 이웃이 되어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 아 멘 -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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