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왕의 사람 (삼하 18:5-15)

  • 잡초 잡초
  • 367
  • 0

첨부 1


왕의 남자라는 영화가 최근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많은 목사님들이 그 영화를 보았느냐 해서 보지 않았다 하면 어떻게 이렇게 감각이 뒤떨어진 사람이 있나 하는 눈으로 보면서 꼭한 번 보라는 권면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고집스럽게 보지 않다가 인터넷사이트에 공짜로 보여주는 창이 떠 있어서 공짜라면 한번 보자 해서 보았는데 나는 내가 무식한 것도 있지만 왜 사람들이 그처럼 이 영화에 빠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돈 주고 안 보길 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왕의남자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역사를 바꾸었습니까? 충성심이 있습니까? 아니면 철저한 의리가 있습니까? 무슨 철학이 있습니까? 한갓 왕의 엽색행각에 노리개 감이나 되는 것을 가지고 무슨 대단한 것처럼 왕의남자 왕의 남자,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제목을 왕의 남자 하려다가 왕의 사람으로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기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를 이해하고 고락을 함께해주고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대신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이 분명하게 서있으면 든든하지요. 역대 대통령가운데는 이런 분명한 사람을 옆에 두었다 해서 화제가 된 분이 있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그러지 못하여서 물로 비유된 분도 있습니다. 누가 내 옆에 서주느냐 참으로 중요한 것이지요.

예수님에게도 옆에 서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자들이지요. 가이사라 빌립보지역에 가시다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을 합니다. 더러는 선지자라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하나이다. 예수님이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얼른 대답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때 주님이 흡족했습니다. 이런 제자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다윗과 요압의 이야기가 압살롬의 반란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압살롬은 왕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자기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요압은 왕의 수장입니다. 왕을 지키는 장수 중에 우두머리입니다. 그러기에 반란을 일으킨 압살놈과 전쟁을 하기위해 나갔습니다.

전쟁을 하러 나갈 때 다윗이 부탁을 합니다. 아무리 반란을 일으킨 아들이지만 아들은 아들이기에 압살롬이 패한다 해도 죽이지는 말아 달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버지의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원수중의 원수지만 부모의정을 끊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식과 부모의 다른 점이 이것 아니겠습니까?

전쟁이 치열해집니다. 그리고 이만 명이나 전쟁에서 죽습니다. 마침내 패한 압살롬이 노새를 타고 도망을 칩니다. 그러다가 큰 상수리나무 밑을 지나는데 압살롬의 머리가 그 나무에 걸리는 바람에 노새만 쏙 빠져나가고 압살롬은 대롱대롱 매달려있습니다. 이것 보면 압살롬의 머리가 대단한 머리입니다.

얼마나 머리가 길고 숱이 많으면 나뭇가지에 걸려 떨어지지 않고 매 달려 있습니까? 대단하잖아요. 여러분 중에 그렇게 매달릴 머리를 가진 분 있어요. 머리가 좋은 것이 불행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할 때 평소에 압살롬이 그 머리를 꽤 자랑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자랑거리가 불행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자랑거리는 부러워 할 것이 없어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자랑이지 은혜를 떠나면 내 자랑거리가 올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의자랑거리를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약점도 장점이 될 줄로 믿습니다.

미국백악관 보좌관으로 들어간 한국분이 한분 계십니다. 이분은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시지요. 그분의 간증을 방송을 통해서 잠간 들었는데 자신의 약함이 자신의 장점이 되었다고 간증을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맹인이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백악관의 보좌관으로 들어 갈수 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약함이 강함이 되었습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 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오늘 압살롬에게는 강함이 약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머리가 나무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병사 한사람이 요압에게 보고를 합니다. 요압이 하는 말이 그래 그러면 절대로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라. 할줄 알았는데 요압이 하는 말이 네가 왜 당장 죽이지 않았느냐 그랬더라면 너에게 은 열개와 띠 하나를 내렸을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병사가 대단합니다. 하는 말이 은 열개가 아니라 천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안 됩니다. 하는 것입니다. 안되는 이유는 다윗이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왕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병사입니다.

그런데 요압은 이 소리를 듣고도 부하들을 데리고 가서 나무에 달려 있는 압살롬을 창으로 찌르고 쳐서 죽입니다. 이일로 인하여 다윗이 얼마나 슬퍼하며 애통하는지 모릅니다. 33절에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입니다.

요압은 훌륭한 장수 입니다. 다윗에게는 든든한 보호자였습니다. 문제는 왕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제멋대로인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힘이 있고 능력이 많다 해도 제고집대로인 사람. 제멋대로인 사람은 왕의 사람이 아닙니다. 왕에게 슬픔을 가져다주고 왕에게 괴롬을 가져다 줄뿐입니다.

사람은 몇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머리도 있고 가슴이 있는 사람, 머리는 있는데 가슴이 없는 사람, 머리는 없는데 가슴이 있는 사람, 머리도 없고 가슴도 없는 사람, 최고의 문제아는 머리도 없고 가슴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무식한데다 고집까지 쎈 사람이제일 무섭답니다. 그런데 이 사람보다 더 골치 아픈 사람은 머리는 있는데 가슴이 없는 사람입니다. 머리는 비상합니다. 잘 돌아 갑니다. 똑똑합니다. 문제는 가슴이 없습니다. 포용을 모릅니다. 용서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집이 대단합니다. 자기 고집대로 자기 생각대로만 움직입니다. 이러면 골치가 아픕니다. 요압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왕의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함은 예수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의 사람이라면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아무리 똑똑하고 열심을 낸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걱정거리밖에 될 것이 없습니다.

사울이 그랬습니다. 삼상15장에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말렉을 전쟁을 합니다. 하나님이 아말렉을 쳐서 하나도 남김없이 진멸하라 합니다. 그런데 사울이 그중에 좋은 것은 죽이지 않고 취합니다. 사무엘이 잘못을 책망하니까? 사울이 변명하기를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끌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에 사무엘이 책망을 하지요. 순종이 제사보다 났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열심을 내면 무엇 합니까? 뜻을 저버리는 열심은 일을 그릇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열심은 안하는 만 못 합니다.

지금 요압이 그래요. 그런 열심을 누가 내라 했습니까? 차라리 왕의 마음을 헤아리는 무명의 병사가 낳습니다. 병사의 말대로만 했으면 왕이 저처럼 슬퍼하지 않아도 됩니다. 왕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중요 합니다. 유능하면 무엇하고 똑똑하면 무엇 합니까? 기쁨이 아닌 걱정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낳은 것이지요. 좀 부족하다 하여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위대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깊이 헤아릴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나를 향한 사랑뿐 아니라 나와 똑같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랑을 헤아리지 못하면 우리도 요압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요압이 예수님 시대에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사들입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전까지 그랬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헤아려야 합니다.

손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들과 함께 아버지가 놀고 있습니다. 우리가위 바위 보 하자. 손이 부끄러워 밖으로 잘 내놓기를 싫어하는 아들에게 아빠가 하는 말입니다. 가위 바위 보해서 네가 이기면 아빠가 네가 가지고 싶은 것 다 사주고 아빠가 이기면 아빠가 네 손바닥을 때리는 거다. 가위 바위보, 아빠가 졌습니다. 또 가위바위보, 또 졌습니다. 가위바위보를 하는 동안 아빠는 한번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부끄러워 내밀지 못하는 손을 쳐들고 흔들면서 좋아합니다. 그 모습을 보는 아빠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손가락이 자라지 않아 조막손이라서 내는 것이 주먹밖에 없습니다. 아빠가 자기를 위해 져주었다는 것을 먼 훗날에나 알겠지요.

다윗이 압살롬을 생각합니다. 압살롬이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왕의사람은 왕의마음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만왕의 왕 된 예수 왕의 사람입니다.
(김영태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