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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집념의 신앙인 야곱 시리즈(6) : 아름다운 노년 (창 49: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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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당한 불행

목회를 하다 보면 성도들 가운데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산 분들 이야기를 듣습니다. 듣다보면 너무도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참 기구한 삶을 사신 분들입니다. 유난히 제 기억에 남는 한 분이 계십니다. 나이가 무척 많이 드신 할아버지였는데 자식들을 많이 낳았지만 자식 복은 참 지지리도 없는 분입니다. 자식들 중에 한 명은 젊은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남은 자식 중에도 사업이다 뭐다 하다가 실패하면서 큰 빚을 지고 가정이 파탄했을 뿐 아니라, 빚보증 문제로 형제끼리 사이가 갈라져 싸우다가 다시는 서로 안 보겠다고 선언했을 뿐 아니라 그 후론 부모에게도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속상해하던 아내는 몇 해 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이 할아버지 홀로 단칸방에서 쓸쓸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까? 그런데 이 소설 같은 기막힌 이야기가 오늘 성경에도 나옵니다. 바로 노년의 야곱 이야기가 거의 똑같더라는 말입니다.

야곱은 이 할아버지처럼 노년에 큰 불행을 여러 번 당하게 되는데 첫째가 창세기 34장에 나온 딸 디나의 추행사건입니다. 세겜에 정착하여 좀 안정되게 살아보려 했던 야곱 일가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데 동네 구경을 갔던 하나뿐인 딸 디나가 그 지역 추장인 세겜에게 겁탈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아들은 열둘인데 하나밖에 없는 딸이니 얼마나 애지중지 아끼며 곱게 키운 딸일까요?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늙은 야곱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디나의 복수를 하려고 동복(同腹) 오빠(레아의 자녀)인 시므온과 레위가 잔인하게 세겜 족속을 속여 학살한 사건이 일어나 야곱 일가는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그가 노년에 겪은 두 번째 불행은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막내 베냐민을 낳다가 죽은 사건입니다(35:16~21). 사랑하는 배우자, 평생을 서로 믿고 의지하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니 이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입니까? 부부는 오래오래 같이 사는 것 자체가 큰 행복입니다. 우리 주변에 아내나 남편이 먼저 세상 떠나서 홀로 사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까 남편과 아내가 내 곁에 오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집에 가시면 남편이나 아내에게 꼭 이런 말을 하세요. "돈 많이 안 벌어 와도 좋으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삽시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자마자 또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맏아들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간통한 사건(35:22)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이 얼마나 큰 배신감을 느낄 사건이었을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노년의 야곱의 가슴을 아프게 한 사건이 바로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죽음이었습니다(37장). 물론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실제 죽은 것이 아니라 형들이 요셉을 팔아넘긴 후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요셉의 채색옷에 짐승의 피를 묻히고 짐승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만 아버지 야곱은 정말 사랑하는 아들이 죽은 줄로만 알고 "내가 음부까지 가서 아들에게 가겠다."고 부르짖을 정도로 슬퍼합니다. 사람이 겪는 불행 중에 가장 아픈 일이 바로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애지중지 사랑한 딸은 강간을 당하고 자신은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며, 사랑하는 아내 라헬은 아들을 낳다 죽고 맏아들은 서모와 간통하고,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은 죽고, 그야말로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죽거나 그 인생이 파괴되는 일을 연달아 겪게 되었으니 이 늙은 아버지의 속은 지금 상하다 못해 다 썩어 문드러지게 생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노년에 불행이 연달아 닥쳐오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그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내 인생 다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 해도 최후의 보루인 신앙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으면 영적으로 약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원망하고 교회를 떠나거나, 심한 영적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순간이 중요합니다. 바로 그 순간에 오히려 더욱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사랑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닥쳐오고 불행이 엄습해오는 바로 그 때 더욱 신앙을 굳건히 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우리의 여생을 평안하게 지키실 줄 믿습니다.

야곱도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았기에 신앙을 굳건하게 지킵니다. 어떤 일이 닥쳐와도 하나님 붙잡은 손을 놓지 않습니다. 야곱의 주특기가 뭐라고 했습니까? '움켜쥐는 것'이지요.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 만나 한번 움켜쥔 손을 어떤 일이 있어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시련과 불행이 몰려오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 붙잡은 손을 더 꽉 움켜쥐고 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나요? 과연 노년의 야곱은 지금까지 살아온 '험악한 세월'을 보상 받고도 남을만한 행복한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합니다. 더욱이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을 따라 기근에 지친 가나안 땅을 떠나 풍족한 애굽 땅으로 이주해 갑니다. 이제 말년에 출세한 아들 덕을 톡톡히 보며 편안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야곱이 아들 덕에 여생을 오래오래 편안하게 잘 살았더란다"하고 옛날이야기 식으로 끝난다면 참 허망합니다. 이것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창세기 35장부터 마지막 장인 50장에 이르기까지 야곱의 노년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우리가 주목할 만한 야곱의 노년의 모습들이 나타납니다. 이 사실들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 사람은 마지막 마무리를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생 올곧게 살고도 인생의 마지막 마무리를 잘 못해서 추하게 기억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나, 내 자녀들을 위해서나,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나 우리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기에 오늘 야곱의 노년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주 귀한 영적인 교훈을 줍니다. 자, 그러면 오늘 야곱의 노년에 일어난 아름다운 일들을 세 가지로 정리해 봅시다.

첫째, 야곱의 노년은 '축복 받는 삶'이 되었습니다.

첫째로, 야곱의 노년은 '축복 받는 삶'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34장에서 야곱은 세겜에 정착해 그곳 원주민들과 어떻게든 사이좋게 지내보려고, 딸 디나를 추장 집에 며느리로 보내고 서로 통혼함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려했는데(34:8~10) 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런데 왜 이런 야곱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까? 단순히 누이동생의 복수를 하려는 두 오빠의 증오심 때문일까? 아닙니다. 야곱의 계획이 실패한 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일가가 세겜이라는 이방 땅에 정착해 이방인들과 통혼하고 편안히 살기를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야곱의 계획을 실패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다음 장인 35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세겜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으라"고 명하십니다. 여기서 '일어나'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지금 네가 있는 그 자리가 잘못된 자리니 주저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더 이상 이방 땅에 정착해 살 생각 하지 말고 벧엘, 외삼촌 집으로 가던 길에 길바닥에서 돌베게 베고 자다가 하나님을 만났던 그 약속의 땅 벧엘로 가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제야 야곱은 "아, 하나님이 나를 실패하게 하신 것이 다 이유가 있구나."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자리, 우리가 추구하는 계획이 하나님 뜻과 다를 때 실패하게도 하시고, 그 길을 막기도 하십니다. 빨리 깨달아 그 길을 떠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데 우리는 야곱처럼 화를 내고 속상해 합니다. 그러다가 늦게라도 깨달으면 빨리 하나님 뜻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야곱도 깨달은 즉시 자기 식구들과 집안에 있는 종과 모두에게 벧엘로 올라가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2절에 이 때 야곱이 식구와 종들에게 한 말이 놀랍습니다.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이방 땅 세겜에서 살던 야곱 가족에게 이미 이방 신상이 들어와 우상숭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뜻이요, 야곱도 이 사실을 알면서도 방관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이 좀 더 분명해 집니다. 야곱 일가가 이대로 세겜에 정착하고 살았다면 틀림없이 우상숭배에 빠져 멸망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 일가는 이방신상과 귀고리를 모두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약속의 땅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 명령대로 단을 쌓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9~12절에 야곱을 축복하시면서 많은 후손과 땅을 약속하고, 다시 한 번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는 축복된 이름으로 불러주십니다.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자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가장 보람된 일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축복을 받는가? 나이 들면 고집도 세어지고 내 맘대로 하려는 욕심이 생깁니다. 자녀들까지 내 뜻대로 하려 듭니다. 또 야곱처럼 편안하게 안정된 삶을 살고 싶은 욕망도 생깁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살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러다가 슬슬 믿음생활도 해이해지고 죄도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 보면 나이 들어서 더 잘 믿는 분도 많지만 건강도 안 좋아지고 교회 오는 것도 힘들다 보니 신앙생활이 해이해지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바로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이런 순간에 더욱 힘내서 신앙생활 더 열심히 하고 하나님께 다가가야 합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열심히 성경 보고 찬송해야 합니다. 노년기에 찾아오는 이런 모든 유혹을 이기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그를 축복해 주십니다. 그 모든 여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야곱처럼 말입니다.

둘째, 야곱의 노년은 '축복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야곱의 노년은 '축복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앞서 축복 받았으니 이제 남을 축복'하는' 삶이 되어야지요. 창세기 48장에 보면 야곱은 애굽에 내려와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합니다. 48:1부터 보면 늙은 야곱은 병이 들어 침상에 드러눕습니다. 아마 노환이겠지요. 그토록 고대하던 아들 요셉을 다시 보았으니 안심이 되어 "이제 내가 죽어도 한이 없어"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그렇게 병들어 힘없이 병상에 누워있던 야곱이 생전 처음 얼굴을 본 두 손자를 축복하기 위해 침상에서 힘겹게 일어납니다. 눈물겨운 장면입니다. 야곱은 두 손자를 안고 무릎 사이에 물리고(12절) 두 손자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정성스럽게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뒤이어 49장에 보면 야곱은 자신의 열두 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이 짧은 시간에 그 축복 내용을 다 살펴볼 수 없지만 대표적으로 우리가 잘 아는 '야곱의 축복'이라는 복음성가 가사처럼 요셉에게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는다'고 엄청난 축복을 빌고 있습니다. 이렇게 야곱의 노년 마지막 시기는 무엇보다 자녀들과 자녀손을 축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늙으면 할 수 있는 가장 복되고 보람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자녀들에게 물려주겠습니까? 정말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은 바로 야곱처럼 우리 자녀와 자녀손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며 우리 자녀와 자녀손들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지금 이 순간도 나를 위해 기도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계신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다."고 믿고 힘을 내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 기도가 응답되어 우리 자녀와 자녀손들이 요셉처럼 담장 너머 뻗어가는 복 받은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간혹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노년에 오직 자녀들과 자손만 위해 기도하면 되느냐?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기도의 지경을 더 넓혀야 합니다. 창세기 47:10을 보면 야곱은 처음 만난 애굽 왕 바로에게 축복을 해줍니다. 이렇게 축복의 지경을 넓혀야 그 복이 우리 자녀와 자손에게도 돌아옵니다. 간혹 오직 자기 자손만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 자손도 큰 복을 받기 어렵습니다. 우리 자손만 위해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범위를 넓혀 주변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면 바로 그 복이 나와 내 자손에게도 그대로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보면 젊은이들 하는 일이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며느리도 그렇고,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면 "나는 안 그랬는데 왜 저 정도 밖에 못하나" 싶어 잔소리도 늘고, 야단도 많이 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내 입에서 "너 참 잘 한다," "계속 잘 해라" 하는 격려와 축복의 말이 많이 나와야지 어른이 자꾸 잔소리만 하고 야단만 치면 덕이 안 됩니다. 아무쪼록 나이가 한 살 씩 더 먹어가면서 우리 입에서 축복의 말, 격려의 말, 아름다운 말만 많이 나오고, 우리 기도가 지경을 넓혀 좀 더 많은 사람을 축복하는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나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의 노년은 '화합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의 노년은 '화합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자기를 팔아넘긴 형들을 용서하고 애굽으로 이주시킵니다. 야곱의 살아생전에 헤어졌던 가족이 다시 만나고 하나가 되는 화합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격적입니까? 그러나 형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가지질 않습니다. "요셉이 지금은 아버지 살아계시니까 봐주는 거지, 아버지 돌아가시면 틀림없이 복수할 거다"라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룰 지경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로한 야곱이 세상을 떠나고 형제들은 모두 정성을 다해 아버지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룹니다. 하지만 드디어 형들이 그토록 우려하던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에 떠는 형들을 향해 장례를 마친 요셉이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습니다."(19~20절) 바로 이 순간 진정한 화해와 화합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참 좋아해서 장례식 때 종종 설교를 합니다. 어느 가족이나 어느 형제나 마음속에 서로에 대한 한두 가지 불편한 마음은 다 있습니다. 말을 안 하고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부모자식 간에도, 형제간에도 다 조금씩은 불편한 마음은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부모님의 장례식이 그간의 불편했던 마음이 다 해소되고 진정한 화해와 화합이 이루어지는 가장 좋은 장소가 될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간혹 장례식장에서도 유산문제나 장례방법을 놓고 형제가 다투는 부끄러운 모습을 봅니다만 아무래도 부모의 장례식이야말로 그동안 불편했던 모든 심정을 다 해결하고 형제가 다시 한 번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야곱의 자녀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노년에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든 자손들이 화합하고 하나 되도록 애쓰는 일이며, 이 노력이 나의 죽음과 장례를 통해 완성되도록 할 때 우리의 마지막 길은 진정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포항에 내려오고 얼마 있다가 신학교에서 저를 가르친 교수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한참동안 제 근황을 묻고 다정하게 부탁의 말을 하셨는데 평상시에도 늘 다정다감하게 저를 아껴주신 분이기는 하지만 그날따라 너무 다정하게 말씀하시기에 느낌이 조금 이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그 교수님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교수님이 당신의 제자들에게 일일이 다 전화해서 목회 열심히 하라고 부탁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내 주변에 마음이 영 불편했던 사람들 찾아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당부할 사람들 다 찾아 다정다감하게 당부하고, 축복할 사람 다 찾아서 간절히 축복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노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인 줄 믿습니다.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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