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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이 걸으신 길 (마 16: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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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누구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은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훌륭한 교사’, ‘세계적인 위인’, ‘존경받을 만한 분’, ‘위대한 철학자’... 등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고백대로 예수님은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분이십니다(요1:12).

우리들이 오늘의 본문속에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베드로의 신앙고백(마16:13-20)이 있은 후에 곧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수난을 예고하셨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은 직후에 자신의 고난을 예고한 것일까요? 바클레이라는 신학자는 ‘예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은 후에 곧바로 그의 수난을 예고하신 것은 그가 세상의 메시야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들은 예수를 무력으로 왕으로 추대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그의 메시야 성에 대한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곧바로 그의 메시야로서의 길은 고난과 고통의 길이지 명예와 권력에 대한 것이 아님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속에서 예수님의 걸어가신 길은 어떠한 길인가를 우리자신들이 깊이 깨달아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걸어감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1.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7-9)

일본의 재벌이자 미국에서 가장 큰 할리우드의 영화사를 소유한 마쓰시다는 가난한 집에서 몸이 약한 아이로 태어나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입니다. 이런 그가 세계 굴지의 재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남보다 못한 조건의 가정환경과 자신의 여건을 비관하지 않고 자신을 불행하게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 그의 마음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고난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신이 주신 세 가지 은혜 덕에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첫째, 신은 내가 가난한 집에 태어나도록 해주셨다. 그로 인해 나는 매우 어렸을 때부터 구두 닦기, 신문팔이 등 온갖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이것은 세상을 살아 나가는 동안 둘도 없는 나의 재산이 되었다. 둘째, 신은 나를 허약한 신체를 가지게 하셨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해 이를 이기기 위해 항상 운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신 것이다. 덕분에 난 90살이 넘은 지금까지 건강한 육체를 지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신은 나를 초등학교도 갈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게 해 주셨다. 때문에 나는 내가 배우고자 하는 것들을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수밖에 없었다. 만나는 사람 전부를 스승으로 삼고 그들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 가며 열심히 그들이 아는 전부를 배웠던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자신에게 이롭게 바라보고 노력한 노장의 인생이 담긴 말입니다.

"단점만을 찾아보려는 당신의 두 눈과 마음을 버리십시오. 이는 차라리 없느니만 모한 인생의 걸림돌이 되는것입니다."

성도의 축복은 고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은 축복을 보장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은 고난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는 축복을 말하는 종교는 기복적인 축복만을 바라는 기복종교이지만 고난을 통하여 부활과 축복을 말하는 종교는 참된 종교인 동시에 축복종교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난은 우리들에게 유익을 줍니다.

세계적인 천재들 중에는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한 사람이 많습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구제불능의 바보’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중학시절 수학성적은 낙제점이었습니다. 농구천재 마이클 조던은 고등학교때 후보선수로 전전하다가 결국 팀에서 쫓겨났습니다. 알렉스 헤일리는 ‘뿌리’의 원고 보따리를 들고 4년동안이나 출판사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는 주위의 냉소적인 태도에 충격을 받아 자살까지 생각했습니다. ‘디즈니랜드’를 설립한 월트 디즈니는 무려 다섯 번이나 파산한 정리해고자 출신입니다. 최근 베스트 셀러로 또로은 잭캔필드의 ‘내영혼의 닭고기 수프’는 무려 33개의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았습니다. ‘팝의 여왕’인 다이애나 로즈는 9집 앨범을 낼때까지 단 하나의 히트곡도 없었습니다. 성공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공’은 ‘용기’를 재료로 만들어집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고난과 슬픔의 문제가 있다면 고난을 회피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기독교는 고난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평안을 얻고 더 나아가 기뻐하는 종교입니다.

2.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사랑의 길이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잘 알려진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드리려 합니다. 그중에 두 가지는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하나는 자식을 죽인 학살자를 아들로 삼았다는 이야기입니다. 1948년 여순사건때 그의 아들 동인과 동신 형제가 남한 내부의 빨치산에 의해 학살되었습니다. 그 학살자 안재선을 살려내어 양아들로 삼는 놀라운 신앙을 보여 주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을 기초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통하여서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문둥병자를 사랑했던 이야기입니다. 오래전 전시관에서 손양원 목사님께서 나환자의 피고름 나는 발을 빨고 있는 그림의 모습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온갖 병자들을 치료하시는 모습 같았습니다. 그 그림 밑에 ‘자신이 저들의 모든 아픔을 다 짊어지고 저들이 건강하게 살기를 원했다’라는 글귀를 읽으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밀려왔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차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사람입니다. 소유형의 인간은 자기가 가지지 않으면, 행복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소유욕이 도리어 참으로 바라는 것들을 잃게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은 바로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신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원리를 과소평가합니다. "주는 것은 곧 가지는 것이다"라는 원리입니다. 가지는 것이 많아지는 것으로 아는데, 실상은 주는 것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흉년이 들어 먹을 양식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한 끼분의 양식을 먹고 죽음을 준비하려던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없는 중에서도 그 과부에게 먼저 선지자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게 한 다음에 과부와 아들이 먹게 하셨습니다. 과부가 이에 순종하여 결국 비가 다시 내릴 때까지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는 이적을 하나님께서 행하셨습니다.

사랑의 원리는 나누는데 있습니다. 서로의 결핍과 서로의 단점과 서로의 기쁨과 서로의 생명을 나누는데 있습니다. 이런 것을 함께 보완하며 나누지 못할때는 본능적인 짐승에 불과한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으로 고린도전서 13장에 있는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고전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진정한 사랑의 근본을 보이셨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을 용서하시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감싸주시고, 열등감을 가진 자들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병자들에게 건강을 주셨고, 무지한 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고와와 과부를 사랑하셨고, 우리 자신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천국을 향한 보상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교훈은 천국의 삶이었습니다. “온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목을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5-26).
세상의 모든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영생을 얻지 못하면 불쌍한 것입니다. 너무나도 지금의 세상은 보이는 것만을 위하는 세상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영생이 보장되어 있는 천국을 향하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성경의 여러곳에서 영생의 약속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9절에서 주님은 "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말씀하셨으며, 마태복음 25장 46절에서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으며, 마가복음 10장 17절에서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묻는 젊은이에게, 21절에서 대답하시기를 "네게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10장 25절에서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는 율법사에게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가서 너도 자비를 베풀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 6장 27절에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볼 수 있으며, 이어 41절에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볼 수 있으며, 이어 28절에서는 베드로와의 대화에서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내가 뉘게로 가오이이까"라고 말했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생명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귀한 생명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온 천하 보다도 더 귀한 생명을 가지고 나쁜짓을 하는데 바쳐서야 되겠습니까? 이 귀한 목숨을 하나님의 원망하는데 사용해서야 되겠습니까? 이 귀한 목숨을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 하겠습니다.

성도들의 삶이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걸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삶이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고신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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