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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양에 대한 버릇을 고칩시다! (사 4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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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고 있습. 참 세월빠릅. 이렇게 빠른 세월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같이 정신없이 흘러가는데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화살같이 지나가는 와중에서도 면면히, 꼼꼼히 주위를 살피며 살아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 그렇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에 붙잡을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순간들을 다 놓치게 되기 때문입.
제가 요즘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있습. 제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입. 큰 녀석이 한국 나이로 4살이 되었고, 둘째녀석이 2살이 됐습. 통상적으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예쁜때라고 합. 이 아이들이 자라가는 소중한 모습들을 마음속에 담고, 또 필름속에 담아서 잘 보존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습.
그중에 요즘 들어서 제가 제일 간직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있습.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하고 가슴뿌듯한 아이들의 모습인데, 뭐냐하면 제가 퇴근해서 집에 문을 열고 막 들어갔을 때, 저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입. 한마디로 난리가 납. 저희집이 5층 아파트에 5층인데, 밖에까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아빠~~ 하고 소리를 지릅. 그 뿐만이 아니라 두 손을 들고 하여튼 있는 힘껏 흔듭. 그 뿐만이 아닙. 입이 있는데로 찢어지고, 눈이 올라갑. 그뿐만이 아닙. 거기다가 너무 좋으면 뭐합? 펄쩍펄쩍 뜁. 그리고 안아달라고 하고 그래서 저는 얼굴에 뿐만아니라 온 몸에 뽀뽀를 하고...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둘째녀석도 멀찍이서 놀다가 제가 나타나면, 말을 아직 잘 못하니까 어,어 하면서 환하게 웃으면서 제 발 앞에 까지 와서 전봇대같은 제 다리를 꽉 껴안습.
캬~~ 너무 행복합. 이게 한 두 번도 아니고, 요즘 매일, 제가 퇴근해서 들어가기만 하면 이 일이 벌어집. 너무 좋습.
그래서 저는 그냥 빈 손으로 집에 들어가지 않습. 가능하면 300원짜리 하드라도, 아니면 큰 놈 좋아하는 500원짜리 ‘왕꿈틀이’라도 사가지고 가서, 그들의 열렬한 환호에 화답해 줍. 아직까진 제 손에 들려있는 사탕발림 때문에 저를 그렇게도 열렬하게 환영하는 것 같진 않습.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저 자체를 반겨줍.

‘헌금에 대한 버릇을 고칩시다’에 이어서, 오늘 찬양에 대한 버릇을 고칩시다 라는 제목으로 설교할 것을 미리정해놓고 한 주간내내 찬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묵상하다가, 제 아이들이 아버지인 제가 너무 좋아서 하는 이 반응들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드려야 할 찬양이구나 라는 깨달음이 있었습.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이 찬양이라는 것도, 우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아주 밀접한 요소입. 통계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라고 하면 떠오르는 가장 첫 이미지가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가운을 입고 찬양을 부르는 성가대라고 할 정도로, 찬양은 교회를 대표할 만큼 강력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
그리고 교회 존재 목적의 1순위인 교회의 부흥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합.
행 2장 전후에보면,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폭발적인 교회의 부흥이 있었습. 신도의 수가 하루에 3천명씩 늘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 그려면서 그 성장 요인들이 열거되어 있는데 그 중 47절에 보니까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그래서 모여서 찬양할 때 놀라운 성장이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습.
그렇습. 찬양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 교회의 부흥에 빠질 수 없는 요소가 찬양이라는 것입.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복음이 들어와서,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부흥이 있었던 요인중 하나도 찬양의 흥왕이었습.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성결교단을 창시한 정빈, 김상준 이 두분도 거리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항상 먼저 북을 치며 찬송을 부를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회심시켰다는 기록이 있습.
현대를 기독교 침체기 내지는 퇴보기라고 말하지만, 그나마 그 퇴보를 멈추고, 그 침체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있다면 그것은 80년대 후반부터 불기 시작한 경배와 찬양의 물결이라 할 수 있을 것입.
이런 놀라운 생명력있는 찬양을 아직도 많은 신자들은 형식과 습관에 젖어 합. 나쁜 버릇으로 합. 찬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깊은 영성을 체험하지 못하신 분들이 많다는 것입.
우리의 잘못된 버릇, 어긋난 관점들을 조금만 바로 잡는 다면, 언제든지 우리는 찬양의 삶을 통한 풍성한 영적 생활을 누릴 수 있으리라 믿습.

그중 하나는, 먼저 우리들 안에 음악 자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합.
우리나라가 이렇게 급속적인 발전을 하며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아직도 유교적인 관점이 문화와 인식 곳곳에 숨어 있습. 여러분, 유교적인 관점의 대표적인 산물이 뭡? 양반과 상놈. 그래서 알게 모르게 21c 첨단시대를 살고 있다는 현대인들이라 할지라도, 양반이 할 일과 상놈이 할 일이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합.
그럼 우리나라의 전통적 흐름 속에서 이 음악은 어느쪽에 속해 있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에 유교 문화가 팽배할 당시에 음악이라는 것은 서민, 즉 상놈들의 삶의 애환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였다는 것입. 그래서 그 당시 음악이 흘러나왔던 곳은, 모내기를 하거나 곡식을 거둬들이는 농부들의 입에서나, 그물에 고기를 싣어올리는 어부들이었고, 술집에서 양반들의 비위를 맞추는 기생들에게서나 들을 수 있었던 것입.
그리고 수백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요즘은 그나마 좀 덜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음악대학을 간다, 그래서 성악이나 악기 전공자가 되겠다고 하면, 뭔가 약간은 뉘앙스가 좋지 않았었습.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딴따라 라고 하면서, 비웃기도 했습.
이러한 인식들이 신앙생활에 그대로 접목이 되어 졌습. 그래서, 예배전 찬양을 하는 시간이나, 성가대의 찬양시간, 심지어 회중 찬양의 시간 즉 예배안에 음악이 흐르는 시간은 그것을 업수히 여기거나, 쉬이 여기는, 그래서 으레히 딴 짓을 합. 음악 감상 시간정도로 여긴다는 것입. 음악을 감상하며 주보를 보거나, 옆사람과 못다한 얘기를 하는 시간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자리를 정돈하는 시간등으로 흘려 보낸다는 것입.

여러분 음악은 누가 만들었습? 하나님.
저는 창 1장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그 날 그 날마다 마치실 때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하셨던 그 말씀을 하실 때, 그냥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 우리 하나님은 최고의 창조자이시면서 최고의 예술가 이심을 믿습. 그래서 제 말이 꼭 맞는건 아니지만, 제 믿음으로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노래로 부르셨을 것 같습. 이렇게 말입. 도레미파솔라시도~~
예, 그렇습. 음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귀한 것입. 그것이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에 걸러지다 보니까 약간의 계층이 생기게 된 것이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가까이 접해야 할 귀한 선물인 것입.
이제 더 이상 유교적 관습에 젖어서 찬양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 아버지의 관점에서 찬양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기므로 그것을 귀히 여기고, 그 안에서 높은 가치를 발견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또 하나는, 난 노래를 못하기 때문에 찬양의 시간과 나는 거리가 멀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
저와 성이 같은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두 분이 계시는데, 그 중에 제 후배 이 목사님 사모님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이 어디인지 전 알고 있습. 노래방입.
친구들끼리, 직장 동료들, 무슨 모임 등에서 같이 어울릴 때, 노래 못하는 사람들이 2차로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이 노래방이라고 합. 자기가 나름대로 노력해서 잘 쌓아놓은 이미지가 하룻밤새에 쨍그랑하고 깨지기 때문입.
그런데 간혹가다가 개중에 어떤 사람은, 이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주재파악이 채 안된 상태에서,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노래방으로 향하는 사람이 있습. 다들 뭣 모르고 같이 같습. 진짜 앉아있기 힘듭. 1차의 좋았던 분위기가 다 깨집. 또 이런사람이 마이크 한번 잡으면 웬만해선 놓질 않습. 하나둘씩 머리가 아프다는 둥, 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위독하시다는 둥 하면서 빠져나갑.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그 좋은 회식 날 잡기를 두려워 합.
우리들 주위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얘기입. 이 얘기의 주인공이 행여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 중에 한 분일 수도 있습.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의식을 교회로까지 끌고오지 말자는 것입. 우리의 찬양생활에까지 접목시키지 말자는 것입. 난 노래를 워낙 못하니까, 음치에다 박치에다, 눈치, 코치도 없으니까, 사회에서 음악에 관련된 뭐 좀 하려고 하면, 너 제발 좀 조용히 있어 달라고 하니까, 교회에서도 조용~~ 하지 말자는 것입. 제발 세상의 버릇으로 신앙생활하지 말자는 것입.
왜? 사회에서는 노래부르는 사람의 음정을 듣고, 박자를 듣고, 음색을 듣고, 외모를 보고, 그래서 사람을 향해 부르는게 세상노래지만, 찬양은 음정, 박자, 음색, 외모 보다, 우리를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이 대상이라는 것이 중요하며, 그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중심!
세상 노래는 목소리로, 표정으로, 실력으로 사람 듣기 좋으라고 부르는 것이지만, 찬양은 그게 아닙. 찬양은 가슴으로, 믿음으로 부르면서 하나님 들으시라고 부른다는 것입.
박자 좀 못 맞춰도 좋습. 음정! 기분 좋으면 좀 샵되고, 좀 않 좋으면 플렛되도 좋습. 성가대가 아닌, 회중속에 섞여서 찬양을 하는 상황이라면, 단 한가지만 주의하면 됩. 무엇? 내가 지금 이 찬양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있는가? 입. 찬양함에 있어서 이것보다 우선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습.
그래서 세상음악과 찬양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면, 세상음악은 멜로디를 중히 여기지만, 찬양은 가사를 더 중시 여긴다는 것입. 그 가사에 내 마음을 담아 부를 때 진정한 찬양이 되기 때문입.
그래서 모든 것을 벗어 던져야 합. 제 아이가 만약 퇴근하는 저를 맞으면서 체면차리고, 지위 따지고, 격식을 차린다면 저를 그만큼 기쁘게 해 줄 수 있겠습? 아닙. 주의 전에 나와서는 오직 하나님 앞에만 있다고 생각하시고, 명함 집어 던지고, 권위의식 뿌리치고 찬양을 통해 주시는 뜨거운 감정, 가슴으로 목청껏 외치면 되는 것입.
옆사람 좀 들으면 어떻습? 그렇다고 인상 찌푸리는 사람 없을 것이고, 행여 인상 찌푸리면 다음주엔 그 사람 옆에 안 앉으면 되지 않습? 거기에 걸려서 하나님 가장 기뻐하시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라는 인간 존재의 이유가 되는, 하나님을 찬송하려고 지음받은 그 목적을 포기하시겠습?
우리는 찬양 하기 위해서 이땅에 있는 존재입. 그러므로 만약 찬양하지 않는다면, 좀 과장되이 말씀드리면, 이 땅에 존재할 이유 가치가 없는 것입.
그러기에 찬양하는 것을 세상음악 하는 것과 동일시해서, 난 노래잘 못하니까 소극적으로 하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가슴과 믿음으로, 가사를 통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찬양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

말씀을 맺음.
오늘 본문 말씀에 보니까, 사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이것이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겠지만 오늘 설교에 빗대어 본다면, 여러분 이제 여러분이 과거에 찬양했던 그 모습을 기억하지도 마시고, 생각하지도 마시기 바랍.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43:20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의 광야같은 삶에 길을 내셨고, 사막 같이 건조한 삶에 강을 내어 주셨습. 그리고 우리의 삶에 그것들을 마음껏 마실 수 있게 해 주셨습. 또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그런 삶 가운데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십.
이 말씀 다음에 바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라는 말씀이 연결된다는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다고 믿습.
하나는, 여태껏 그렇게 역사하신 하나님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와 우리가 계속해서 찬양하는 삶을 쉬지 않을때, 하나님께선 우리의 인생여정에 계속해서 새 일, 즉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며 그 생명수를 마실 수 있는 일들을 베풀어 주신다는 말씀입.
바라기는 찬양을 일반 세상 음악과 동일시 했던 생각을 고치고, 찬양에 대한 나의 모든 소극적인 태도를 바꿔서 내 평생 사는 동안 살아계신 주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신령과 진정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가운데 행하시는 새 일들을 계속 맛보는 삶을 살게 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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