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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에 대한 버릇을 고칩시다! (요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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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예배’에 대해서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

봉헌, 찬양, 기도 참으로 중요한 신앙의 요소들 입.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집약돼서, 온전하게 표현되는 결합의 장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예배일 것입.
하지만 이 중요한 예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습관들 때문에 향기가 가득한 예배가 되야 함에도, 냄새 내지는 구취가 가득한 예배를 드리므로, 우리의 삶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예배, 참으로 생명을 걸기에 아깝지 않은 이 예배를, 향기 가득한 예배로 바꾸어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을 예배하시기 위해서 이곳에 앉아 계십. 하나님을 예배 하시기 위해 피곤한 몸이지만 일찍 일어나셨고, 그리고 예배의 장소인 교회에 와 계십. 그러면, 정말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을 예배하고 계십?
교회에 나오는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입.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고, 이 말을 인정합. 하지만 막상 나와서 앉아 있는 우리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
1차적으로 우리가 점검해야 할 것이 있다면, 예배의 목적이 무엇이냐? 입. 하나님을 존경하고, 경의를 표하며, 찬양과 영광을 드리는 것이 예배입. 하지만, 우리의 예배에 대한 자세는 이것에 있기 보다는, 다시말해서 예배를 통해 뭔가 드리려는 목적보다는, 뭔가 받으려는 것에 우리의 관심이 더 있다는 것입.
하나님께선 그 어떤 것보다도 예배를 통해 우리를 복 주십. 하나님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보이십. 그러기에 예배를 통해 뭔가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 문제 해결함의 확신을 얻고, 위로를 받고, 평안을 얻고, 능력을 얻고... 하지만 이것들은 먼저 예배의 주 목적인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할 때에 주어지는 것인데도, 드림 보다는 얻음이 주가되고 있습.

예배가 무미건조하다는 말을 합. 매주 예배는 드리지만, 예배가 따분하고, 어렵고, 심지어는 지겹기까지 합. 아무런 마음에 감동이나 변화도 없고, 점점 형식과 습관을 쫓게 됩. 그리고 이것에 대한 탓을 성가대의 찬양이나, 설교자의 설교탓으로 돌립. 물론 성가대의 찬양이나, 설교가 예배의 핵심이 된다는 말에는 저도 부인하지 않습. 하지만, 정말 찬양이나 설교 때문에 회중의 예배가 그르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예배 가운데, 성가대의 찬양이나, 설교를 두실까요? 아닙. 하나님께서 예배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데요. 예배에 얼마나 많은 비중을 두시는데요.

성경 안에는 예배에 대한 중요성을 무수히도 많이 말씀하고 계십. 하나님의 말씀은 수백 번 거듭해서 예배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습. 그래서 성경은 예배로 가득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
십계명의 제1계명이 무엇? 출20:3-6에 보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인간에게 제일 처음으로 명하신 말씀이 무엇? 오직 하나님께 예배할 것을 강조하고 계십.

우리 인생여정에 모델이 되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후 광야 생활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성막을 짓게 하셨고, 오직 예배를 통해서 만이 하나님 함께 하심을 체험할 수 있게 하셨습. 힘든 광야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 예배하는 일을 우선하게 하셨던 것입.

이렇게 예배를 중요시 여기시는데, 이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예배의 틀속에 박혀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요소를 제하시지 않으시겠느냐는 말입.

예배의 주체는 하나님이십. 그리고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주체는 나입. 내가 올바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내가 올바로 집중하고 있지 않고, 내가 올바로 드리지 않으면서 다른 것만을 탓하며 온전한 예배드리지 못한다면, 예배를 통해 전달되어지는 하늘의 생명력은, 일생동안 영원히 맛보지 못하게 될 것입.

그러므로 우리가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께로부터 무엇을 얻을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드릴까? 내가 온전히 드리고 있는가? 하는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

그럼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향기 가득한 예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
먼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예배는 어떤것인가? 앞에서 말씀드린 냄새나는, 구취나는 예배는 무엇인가?
그 하나는, 잘못된 형태로 예배하는 것입.
출 32장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기위해 시내산에 올라가 있을때, 백성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금을 다 모아 녹여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예배하기로 결정했습. 그렇다고 그 금송아지가 다른 신이 아니었습. 다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금송아지의 형상으로 만든 것입. 그래서 그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 여기고, 예배한 것입. 모세가 시내산에서 돌아와 이 모습을 보았을 때, 그는 매우 화가 나서 십계명 돌판을 던져 깨뜨렸고, 하나님의 진노도 매우커서 전 세대를 멸망시키시겠다고 하셨습. 하지만 노를 거두시고, 3천명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것으로 화를 푸셨습.

하나님은 받아들일 수 없는 방법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받지 않으십. 분명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그 예배는 허공을 치는 예배인 것입.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되는 예배인 것입.

또, 자기 방식대로 드리는 예배도 받지 않으십.
자기가 좋아하는 예배에만 참석합. 자기 편한 시간, 편한 방식으로 드립. 자기의 생각대로 드리는 예배!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
레위기 10장 에 보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라는 두 아들이 나옵. 그런데 이들이 제사장 직을 임명받자마자 죽임을 당합. :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방법에 의한 정성을 들인 불이 아니라, 쉽게 구한 불이라는 것입. 이렇게 자기들 멋대로 구한 불로 예배를 드립.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 금하신 술까지 마시고, 성막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려 했던 것입.

사울의 예도 있습.
삼상 13장에서 제사장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심지어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 나라의 왕이라 할지라도 설 수 없는 제단에서서 대신 예배를 드립. 자신의 권력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며,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합. 결국 이 일 이후로 사울은 하나님의 후회의 대상이 되었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 자신의 힘과 권력, 세상의 지위를 앞세우는 예배,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한다고 하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습. ‘바리새인들’입. 하나님께서 이들에 대해서 마15장에,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말씀하시고, 23장에서는,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라고 책망하십.

예배라고 다 받아주시는 것이 아닙. 모든 예배마다 다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는 것이 아닙.
오히려 말라기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물론 강권적으로 역사하실 때도 있지만, 또한 질서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선 정해 놓으신 방법대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역사하시고, 그 예배에 기름 부으시고, 크신 은총을 허락하신다는 것입.

우리의 예배의 태도를 점검해봐야 할 것입.
지금 내가 드리고 있는 이 예배, 내가 매주 드렸고, 또 드릴 이 예배를 잘못된 형태로 드리고 있지는 않는가? 내 방식대로 드리진 않았는가?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며 드리진 않았는가? 돌아봐야 할 것입.

그럼 이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어떤 것인가?를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예배를 통해서 얻게 된 지식에 더하여 알아보겠습.
먼저, 시 24:3-6에 보면, 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5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 즉,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려면 예배자의 손이 깨끗해야 하며 즉, 삶이 깨끗해야 하고, 마음이 청결해야 하며, 예배함에 있어서 허탄한 생각이나 거짓이 없이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자의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입.
그리고 예배하면 가장 대표되는 말씀이라 할 수 있는, 요4:23에서 말씀하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십.
우리는 예배에 대해서 들을 때, 이 말씀 즉,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해야 한다는 말씀을 참 많이 들었습. 그런데 이 신령과 진정이라는 두 단어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었습.

요 4장 말씀은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입. 이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도 예배를 드렸습. 자신들의 유일한 예배 장소였던 그리심 산에서, 율법 시대에 행했던 것처럼 동물의 배를 가르며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 하지만 말씀에, 여인이 예수님께 이것 저것 예배에 대해 물은 것처럼, 사마리아 인들의 예배는, 적절한 지식이 없이 드리는 예배였습. 그들이 드리는 예배는, 단지 열광적이고, 정열적이고, 흥분된 예배였습. 즉, 진정 다시말해서 진리 없이 신령으로만 드리는 예배였다는 것입.
반대로 이 당시 유대인들의 예배에는 신령없는 진리로만 드려지는 예배였습.
그들은 구약 39권 모두를 받아들이며 구원의 가르침에 대한 진리를 알고 있었습. 하지만 이들에게는 신령함이 없었습. 다시말해서 머리로만 알고 있었지, 그것이 마음으로까지 내려오진 않았던 것입. 그래서 차갑고, 율법적이었으며, 위선적인 예배를 드렸던 것입.

사마리아인들은 가슴이 큰 대신 머리가 작았고, 유대인들은 머리가 큰 대신 가슴이 너무 작았던 것입.
이 신령과 진리는 어느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예배의 두 기둥입.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예배는, 신령과 진리가 잘 조화된, 다시말해서 열정적이며, 정열적인 예배, 감격이 있고, 눈물이 있는 예배, 하지만 단순한 감정에만 치우친 것이 아닌, 반드시 진리에 기초한 균형있는 예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

눈물은 있는데, 말씀이 없습. 쉬 뜨거워 졌다가 쉬 식습. 반대로 말씀은 있는데, 눈물이 없습. 신자로서의 삶의 향기가 없습. 이 두가지가 잘 조화된 예배를 드리려고 힘쓰고 애쓰는 모습이 있어야 할 것입.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예배하러 나오셔서 이렇게 기도하며 예배를 시작하시길 권면합.
‘하나님, 오늘도 제가 아버지를 예배하러 나왔습. 한시간동안 최소한 한 번은 마음이 뜨거워지게 해 주시옵. 더불어 최소한 한가지의 진리는 깨닫고 돌아가게 하옵소서’ 라는 결단과 이 결단에 대한 집중이 있을 때, 그 예배자는 살아나게 되고, 살아난 예배자들이 드리는 예배는 산 예배가 되고, 그 예배는 하나님 역사하시는 예배가 된다는 것입.
말씀을 맺음.
결론적으로 그럼, 이런 예배를 드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주일 대 예배를 산 예배 되게 하기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그것은 주일 한 날만 예배의 날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6일을 예배하는 삶을 사는 것입.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 가정, 직장, 학교에서 찬양하는 삶을 사는 것입.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입.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사는 것입. 다시말해 삶이 예배가 될 때, 주께서 정해놓으신 거룩한 주일 예배에 모인 모든 예배자들을 통해 드리는 예배는 참으로 감동과 진리가 넘치는 예배가 될 것입.

오늘 본문에 마리아가, 맡으면 맡을수록 자꾸 맡고싶어지는 향기로운 기름을 쏱아부어 예수님과 더불어 모인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했던 것처럼, 우리의 예배도 하나님께서 자꾸 맡으시고, 흠양하시는 예배가 되기를, 그 예배가운데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온전한 예배자가 되기를,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가 참으로 예배구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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