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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는 말씀 (살전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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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주간 휴가를 잘 다녀왔습니다. 시골의 100여명 모이는 교회와 서울의 만여명 모이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회중석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며 예배자로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전율을 느꼈습니다. 오늘 여기 불러 주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우리를 기르시고 말씀으로 날마다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닫는 사람입니다.
이 자리에 말씀으로 임하고 계십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설교를 듣는 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시간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인 최목사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목사인 나를 통해서 당신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귀가 없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만이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뜻이 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신앙생활을 활기차고 생기있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무미건조하고 생기없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생기가 넘치고 활기차고 푸릇푸릇하고 건강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건강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는 항상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칩니다. 일을 해도 열심히 하고 기쁘게 하고 충성을 다하고, 어려운 일을 당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넉넉하게 이기고 좋은 열매를 맺으며 지경을 넓혀가고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이루어 갑니다.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서 역사해야 합니다.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서 역사해야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내 심령에 풍성하고 충만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부터 1950년 전 그리스 지역에 데살로니가라는 교회가 개척되어 설립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얼마나 믿음이 얼마나 잘 성장했는지 건강하고 아름다운 믿음으로 자랐습니다.

우리 데살로니가전서 1장 2-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뭐라고 했습니까?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믿음의 역사가 있었고 사랑으로 수고하는 교회였고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6-7절을 또 읽겠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얼마나 좋은 교회냐? 6절에 보면 예수님을 닮은 교회였다고 하고 있고 7절에는 믿음의 본을 보이는 교회였고, 8절에는 저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믿음의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 성도였다는 겁니다. 요즘 말로 짱아닙니까.

예수님을 닮은 교회요, 믿음의 교회요, 다른 지역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였습니다. 얼마나 건강한 교회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아름다운 믿음의 교회가 되었는가? 바울은 그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2장 13절을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이 비밀을 아셔야 됩니다. 이렇게 훌륭하고 건강하고 밝고 싱그러운 믿음을 가졌던 이유는

첫째,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니 이 말씀이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해서 이들이 이런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말씀이 그 심령 속에 들어가 살아 역사하면 변화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무엇이기에 이런 역사를 이루느냐? 히브리서 4장 1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여기서 뭐라고 하느냐?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다고 합니다. 즉 에너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어의 에너지(energy)가 이 말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에너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물체나 생명체를 움직이는 힘이 에너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에너지와 같습니다. 우리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셋째는 좌우의 날 선 검과 같다고 했습니다. 손만 스쳐도 싹 자라는 예리한 검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심령에 들어올 때 우리를 수술할 줄 믿습니다.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고 날 선 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다고 했습니까? 살아있고 운동력이 잇고 좌우에 날 선 검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심령에 들어와 우리의 심령 골수를 찔러 쪼갤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에 들어올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느냐? 첫째로, 우리의 속에 들어오셔서 역사할 때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거듭나게 되고 믿음이 생기고 죽은 심령이 살아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떨어질 때 그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말씀의 씨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는 믿음은 들음으로 난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 거듭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이 들어오면 믿음이 생깁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구원받은 우물가의 여인이 나옵니다. 그 천박한 여인이 구주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녀는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좋아서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와서 보라”고 할때 온 동네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듣고 우물가로 나와서 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찾아 나온 저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끝이 나자 사람들은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요4:42)
내가 듣고서 확신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간증을 듣고 믿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듣고 내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이 역사하면 우리에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심령에 들어와 역사하면 하나님이 믿어집니다. 그런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말씀이 내 심령에 들어와 역사하면 회개하고 변화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변화가 됩니다. 언제 변화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심령에 들어올 때...예리한 칼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갤 때 우리는 속의 죄악을 감추어 두지 못하고 그것을 토하여 내고 회개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에 보면 베드로가 성령충만하여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아 죽인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설교했을 때 역사했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 하거늘”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하고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성령충만 받으라”
여러분들, 오늘도 여러분이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이 여러분 심령에 들어가서 심령에 있는 죄악을 찔러 쪼개기를 축원합니다. 누구라도 어떤 사람일지라도 주의 말씀이 역사하면 변화됩니다.

오늘 라디오에서 어떤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요즘 바다이야기라는 성인오락이 문제 거리입니다. 어떤 건실한 50대 가장이 어쩌다가 그곳에 들어가 그냥 재미삼아 한번 댕겨본 것이 전 재산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다니는 아들이 아버지를 붙잡고 울고, 아내가 남편을 붙잡고 울어도 안됩니다. 다 떨어 먹고 이제 한강에 가서 자살하려고 했는데 자살도 못하고 어렵게 된 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사람도 한시 바삐 예수님 앞에 나와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으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면 뜨거워집니다. 새롭게 됩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 실망한 두 명의 제자가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인줄도 몰랐습니다. 마침내 저들이 뭐라고 하느냐?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24:32)

말씀하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겁니다. 우리 인생은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서 역사할 때 심령이 뜨거워집니다. 뜨거워졌다는 것은 감동했다. 깨달았다.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으로 심령이 뜨거워지지 않으면 지식은 많아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합니다.
마음이 뜨거워진 두 제자는 엠마오로 가던 그 불신앙의 길을 돌이켜 제자들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간 변화된 인생이 되었습니다. 말씀이 들어오면 변화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머릿속에 많이 집어넣고 알고 있어도 말씀으로 뜨거워지지 않으면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하면서도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습니다.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 뜨거워질 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듣는 것으로 끝이 나서는 안됩니다. 성경을 몰라서 잘 못 믿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서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내 맘에 뜨겁지 않기 때문에 많이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서 역사하여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길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던 것처럼 여러분의 삶의 길을 돌이켜 주께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성공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죄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니까 왕이 주는 진미를 거절할 수 있었던 줄 믿습니다. 말씀이 역사하니까.......

네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서 역사할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역사할 때, 그 치유의 말씀이 우리 속에서 역사할 때 우리의 혼과 영과 육체까지도 고치질 줄 믿습니다.
시편107편 20절에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의 치료하시는 말씀이 오늘도 여러분 심령속에서 역사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설교 듣다가 말기암 환자도 고침받을 줄 믿습니다. 병으로 손도 못되는 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라는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의사가 손도 못되는 병도 고쳐질 줄 믿습니다.
육체의 병보다 더 무서운 병은 영혼의 병입니다. 교만의 병, 의심의 병입니다. 이런 병들이 주님의 말씀으로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의심하는 병, 불화하는 병, 이런 마음의 병들이 고침받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마음의 병들이 고침을 받으면 이제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다섯 번때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에 역사하면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집니다. 성경을 아는 것으로 우리가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달달 외운다고 해서 변화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서 역사할 때 비로소 변화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이 긍정적인 미래를 봅니다. 내 자식이 아무리 잘못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말씀이 그속에 역사하는 사람은 실망하지 않을 줄 믿습니다. 이것 봐도 감사하고, 저것 봐도 감사하는 사람은 말씀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 사람이요, 이것 봐도 불평, 저것 봐도 불평하는 사람은 말씀이 그 속에서 역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말씀이 역사하면 좋은 보입니다. 감사한 것만 보입니다. 그래서 믿음대로 그 삶속에 축복이 넘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녀의 눈이 작은데 그것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눈작은 것이 어떻게 감사할 것이냐고 하니 “너 눈 작아도 볼 것 다 보지 않느냐. 그러니 감사하지”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말씀이 내 속에서 역사하면 내 심령이 변화됩니다. 내 심령이 변화되면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 줄 믿습니다. 여러분, 금으로 집을 짓고 산다고 행복합니까? 내 속이 변화되어야지요. 내 속이 변화되어야 행복한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 집에 가면 남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감사해야 한다고 했더니 “목사님 집에 가서 남편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보아도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습디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서 그 사람의 심령에 역사하면, 그래서 그 사람이 변화되면 남편의 모든 것이 다 감사하게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이런 남편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말씀이 심령에서 역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눈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집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역사하면 슬픔의 사람이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습니다. 실망한 자가 소망을 얻습니다. 갈 바를 모르는 사람이 길을 찾게 됩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내가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어떻게 해야 할까? 갈 바를 알지 못하는데 주의 말씀이 역사하면 소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1부 예배 때 한동대 학생이 한명 왔습니다. 예배드리고 잠간 이야기했습니다. 모태신앙인데 지금은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방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면 방황 끝이다”라고 해주었습니다.

여러분, 지식으로 살아가는 것 아닙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받아 여러분의 심령에 역사할 때 여러분의 가는 길이 밝히 보여 질 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이 만난 어려운 문제에 확고한 해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서울의 어떤 성도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설교시간 마다 어쩌면 그렇게 이 주간에 내가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의 해답을 정확하게 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설교를 통해서 해답을 주신 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 말씀도 놓치지 않으려고 설교말씀을 받아 적는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만사OK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이 말씀이 여러분 속에서 역사하여 여러분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축북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해답을 얻고 가야지요. 말씀이 역사하면 해답을 얻습니다. 고민 끝입니다. 방황 끝입니다. 확실한 길로 나가에 될 줄로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복된 말씀이 내 속에서 역사하려면 어떻게 받아야 하는 가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4장에서 우리 마음을 길가와 같은 밭, 돌짝 밭과 같은 밭, 가시떨기 같은 밭, 옥토와 같은 밭으로 비유했습니다. 여러분의 밭은 지금 어떤 밭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떨어질 때 그 속에 들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밭입니까? 길가와 같은 밭은 씨가 떨어지면 새가 와서 금방 먹어버립니다. 예수님은 이 새를 마귀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 들어가서 역사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막고 있음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와서 귀로 소리를 듣지만 그 마음이 막혀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래서 말씀이 그 속에서 역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세상에 나가서 넘어지고 실패하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그 들은 말씀이 우리 심령 속에 들어와서 역사하여 변화된 축복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그 말씀을 받아야 할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읍시다. 무조건 믿읍시다.”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어제 오늘 김영길 총장님의 테이프를 계속해서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테이프에 오늘 저녁에 인용할 말씀이 딱 들어있더라고요. 오늘 인용한 말씀도 들어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을 때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김영길 총장님은 말씀을 늘 사모하고 겸손하게 말씀을 받는 분입니다. 저가 오늘 그 간증을 들으며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오늘 저녁에 느헤미야 설교할 때 다 나와서 들으세요.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냐? 믿음으로 좋은 것 다 포기하고 하나님의 일을 시작했는데 어려운 일이 딱 앞을 막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 오늘 말씀드릴 것입니다.

김영길 총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겸손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온누리 교회 시무장로로 있을 때도 예배 20분 전에 사모님과 함께 나와서 제일 앞 자리에 앉아 항상 손수건을 가지고 말씀을 받았습니다. 너무 은혜로워서 눈물이 나오고 죄가 깨달아져서 눈물이 나오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은혜가 복받쳐서 눈물이 나오기 때문에 눈물 닦을 준비를 하고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분속에 말씀이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십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장 6절에 보니까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어려운 환란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령의 기쁨으로 환란가운데서도 말씀을 받으니 말씀이 그들 속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10분 20분 전에 일찍 나와서 기도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오늘 말씀전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오늘 나에게도 은혜를 주셔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말씀을 받게 하옵소서. 오늘도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성령의 감동으로 내 심령에 말씀이 들어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심령이 옥토가 될 줄 믿습니다. 돌덩어리 가시떨기도 개간해서 옥토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셔서 그의 마음을 새롭게 개간하여 그 시간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주시줄 믿습니다. 이런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 모든 성도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그 말씀이 시간시간 마다 우리 모두의 심령에 역사하는 살아있는 말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생명력 있는 믿음 건강한 믿음, 열매 있고 축복이 넘치는 믿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최낙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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