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시대 속에서 주도적인 사람이 되라! (창 50:19-21)

  • 잡초 잡초
  • 259
  • 0

첨부 1


시대 속에서 주도적인 사람이 되라!
창세기 50:19-21

우리들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삶의 기적과 열매는 변화의 작품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새로운 사고로 의식개혁과 자기 정립을 하고 나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역사의 주역이 될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변화를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변화를 두려워해서도 안됩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천국지향형의 새로운 사고에 대한 이해, 성령 충만한 인간성에 대한 이해는 무엇일까?  믿음이 든든하고, 희망에 차있고 사랑의 능력으로 충만했던 1세기 초대교회 성령의 무리들을 바라보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던 그들은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삶의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성품이 바뀌었습니다.  결국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의식변화와 체질 개선을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변화의 선두에 서야 됩니다.  어느 집단에서든지 하나님의 역사를 담당한 사람들을 보면 그 무리 가운데 그 사람의 믿음이 두드러졌습니다.  기도가 두드러졌습니다.  헌신이 두드러졌습니다.  섬김이 두드러졌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나 환상의 결론은 언제나 변화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날의 생활 방식 그대로는 결코 역사에 주역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았던 지난날의 생활 방식을 청산해야 합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했던 지난날의 의식이 바뀌어져야만 합니다.  가치관이 달라지고, 삶의 목적이 달라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시간마다 때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간 시간마다 새롭게 변화되어져야 합니다.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 심령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복된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면 나부터 먼저 변해야 됩니다.  변화되지 않으면 역사에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가 창조된 이래로 변화를 거부했던 동물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없습니다.  끊임없이 변화되는 존재들만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습니다.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기 위해서는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거룩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민족이든 영원한 주역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생각하며 준비하고 훈련하는 국가나 민족은 역사 속에서 살아남습니다.  훈련된 자만이 역사의 주역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훈련받은 사람만이 시대의 역사 속에서 주역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의 훈련을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련한 사람은 훈련을 싫어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훈련을 회피합니다.  훈련을 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훈련받는 것을 기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세워질 그날을 사모하면서 훈련받는 것을 인내하면서 감당합니다.

하늘을 나는 솔개는 무려 70년을 장수하는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솔개도 그 민첩함과 날카로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40년 어간에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갱생과 죽음의 기로에 선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바로 이러한 변화와 갱신의 시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남고,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 역사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훈련과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안에서 훈련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훈련받는 것을 불평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세워 가시기 위해서 준비하시는 훈련의 과정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내와 순종과 감사로 훈련을 감당하면 반드시 정금 같이 아름답게 세워진 사명자로 이 땅에 우뚝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 훈련의 과정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적 성장에도 지름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바로 우리가 끊임없이 훈련을 받으면서 변화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필수제안을 한 가지 드리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미를 잃지 마십시오.  시대의 주역이 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인간미를 잃지 말아야 됩니다.  삭막한 세상입니다.  멋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맛과 멋이 있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인간미가 물씬 풍겨나는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강력한 자기 도덕성의 회복이 있어야 됩니다.  분명한 예의범절과 에티켓이 있어야 됩니다.

예의범절은 남하고의 문제이지만 에티켓은 자기와의 문제입니다.  자기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내면의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인간미를 상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보고서 맛과 멋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맛을 보게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하십시오.  사람과 함께 하십시오.  미래를 창조하십시오.  교회는 변화의 진원지입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발전하지도 못합니다.  발전을 모르면 정신적 불구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자기 개혁을 해야 합니다.  창조적인 신앙으로 오직 한 방향으로 달려가야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미래의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그 변화를 수용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아침에 대학교 강의를 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대구로 가는데 제 휴대폰으로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내용인 즉, 우리 교회에 이런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되어지는 일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성도님들 개개인들에게서 일어나는 심령의 부흥을 바라보면서 자신은 지금 너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년 D12컨퍼런스 때에 울 교회 목사님이 나가서 우리 교회에서 일어난 이 놀라운 일들을 간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도 요즘 목회를 한 이래 가장 행복합니다.  몸은 이래저래 바쁘지만 그래도 제 심령은 성령의 충만하심과 역사하심으로 행복합니다.  우리 교회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부흥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정말로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성령님의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수면에 움직이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그 성령 하나님께서 오늘 이곳에 역사하고 계십니다.  성령님께서 충만함으로 우리들이 모인 이곳에 강력하게 운행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역사가 일어나는 내 이야기를 만들어 가십시오.  우리 언양 영신교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십시오.

아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서 일어난 성령님의 역사를 듣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언양 영신교회에서 일어난 성령님의 역사를 보고 싶어하십니다.

오늘 이곳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십시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십시오.  앉은뱅이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성령님을 환영하십시오.  우리 모두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뜨겁게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이곳에 성령의 바람을 일으켜 주옵소서.
생기의 바람이 불어와 회복과 치유와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성령이여, 임하시옵소서"

오늘 우리는 어떤 인간적인 면보다 먼저 하나님의 은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를 모든 방황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믿으십시오.  우리를 모든 고난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변화의 능력을 사모하십시오.

성경 전체가 아주 뚜렷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우리 성도들의 삶 속에 성령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살아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답답하게 살았던 모든 재주와 경험과 판단과 이성을 버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사고의 통제가 필요합니다.  생각의 다스림이 필요합니다.  생각은 성격과 행위를 형성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보이지 않는 비밀스런 조각가의 작업장과 같은 것입니다.  생각이 어떠하면 행동도 그렇게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이 생각의 중요성을 아주 강조해서 말씀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통제해야 합니다.  생각의 통제는 바로 위에 것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골로새 교인들을 향하여 분명하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결국 사고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을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떨쳐버리십시오.  자신을 나약하게 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메뚜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십시오.  여러분의 생각 속에 아주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의심과 낙심과 절망과 불평의 생각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런 생각들은 사단이 한 순간 내 생각 속에 던지고 간 가라지와 같은 것입니다.  이 부정적인 생각이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이것이 자신을 파멸과 불신의 늪으로 이끌어갑니다.  미움과 불평과 낙심의 생각이 결국에는 자신을 파괴하고 가정의 평안을 파괴합니다.  이것은 포도원을 허물어뜨리는 작은 여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무릇 생각을 다스리십시오.  내 마음의 포도원을 허물어뜨리는 작은 여우를 잡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으십시오.  자고로 인간 속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 가운데로 밀려가도 하늘의 능력을 힘입기만 한다면 다시금 회복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아십니까?  거룩한 성령에 취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는 과정이 신앙의 길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동안만 올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한 걸음씩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여기에 우리의 지친 영혼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삶의 자유가 있는 것을 믿습니다.  아무리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일지라도 여기에 삶의 길이 있는 것을 믿습니다.  삶의 원칙이 있는 것을 믿습니다.  진리와 생명이 있는 것을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사렛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이 있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우리는 다 깨지기 쉬운 질그릇입니다.  같은 질그릇이지만 된장을 담으면 된장그릇이 되고,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 됩니다.  우리는 진리의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수동적으로 남에 의하여 지배되는 그런 나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라 목적 없이 끌려가는 그런 존재는 더더구나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삶이라는 행복도 불행도 결국 자기 반응이 만들어 가는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하든지 은혜의 반응이 나와야 합니다.  어떤 고난을 당하든지 감사와 찬양의 반응이 나와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의 반응만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주여, 어떤 일을 당하든지 은혜의 반응만 나오게 하옵소서.
감사와 찬양의 반응만 나오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의 반응만 나오게 하옵소서."

사람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입니다.  사실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하는 것이지 결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건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적인 사람이 가지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습관은 주도적인 삶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 속에서 주도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시대에 끌려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시대를 변화시키고 이끌어 가는 주도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믿음은 언제나 본질적이고 주도적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언제 어디에 있든지 항상 주도적인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기분이나 분위기, 조건, 주변 여건에 따라서 행동합니다.  감정이나 충동에 따라서 행동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대단히 주도적인 사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을 붙들고 주도적인 무리에 들었을 때와 감정에 붙잡혀 충동적이 되었을 때의 지난날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물론 주도적인 믿음의 사람들도 외부의 자극이나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응은 언제나 믿음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땅히 믿음의 사람일진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당하든지 항상 믿음으로 반응해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결코 감정으로 반응해서는 안됩니다.  감정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아직도 초등학문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유아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믿음으로 반응하십시오.  소망으로 반응하십시오.  사랑으로 반응하십시오.  그가 성숙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 시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도 여러분의 동의 없이 여러분의 심성에 고통을 가할 수 있을까?  일어난 사건 자체보다 훨씬 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우리가 그 사건에 우리의 심령의 평화를 잃고 허용했고 방치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한 선택의 결과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어떠한 것도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지는 못합니다.  여러분의 동의 없이는 그 누구도 고통을 줄 수 없습니다.  고통스러운 삶은 바로 내가 선택한 결과일 뿐입니다.  이제 나는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넉넉히 이기리라.  사람은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반응하십시오.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반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가 반응하는 태도적 가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 어디에 있든지 그 한 시대 속에서 주도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환경과 시대를 이끌어 가는 창조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오늘 많은 사람들은 좋은 일이 저절로 일어나거나 기다려 주는 줄로 아는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음은 결코 환경 결정론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시대 속에서 주도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환경을 다스리는 주도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주님의 성령에 취하여 이 도시를 점령하는 주도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주님의 사랑으로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주도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은 주도적인 사람을 붙들고 일하십니다.  역사는 주도적인 사람들이 만들어갑니다.  우리 언양 영신교회도 주도적인 사람이 필요합니다.  창조적이고 주도적인 여러분으로 인하여 언양 영신교회가 세워지고, 이 도시가 복음으로 점령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시대 속에서 주도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주도적인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우리가 쓰는 말은 자신을 얼마나 주도적인 사람으로 만드는가에 대한 측정 기준이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말은 씨가 되고, 예언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창조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세워주는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믿음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혀는 온 몸을 더럽히기도 하고, 깨끗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힘을 빼기도 하고, 힘이 솟아나게도 합니다.  언어의 통제에 인생의 행복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언어를 세우면 생활은 세워진다'

그렇습니다.  언어를 세우면 생활은 세워집니다.  언어가 주도적이면 어디서든지 주도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안에서 주도적인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그래서 이 시대를 이끌어가고 변화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도적인 사람과 대조적으로 대응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대응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약점을 들추고, 환경과 여건의 문제만 보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빈정대는 말을 하며 피해 의식이 증대화 되고 끊임없이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모두가 당신 때문이라고 하며 결국 모든 사람을 하찮게 취급하며 책임을 회피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이런 사람들, 대응적인 사람으로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습니다.  이런 대응적인 사람에게는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대응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주도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그가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사람이 일평생 벼르고 사는 문제는 저 사람의 버릇을 고쳐야지, 손을 좀 봐 줘야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로 내 남편의 버릇을 고쳐야 행복하겠습니까?  정말로 내 아내의 버릇을 고쳐야 내가 행복할 것 같습니까?  내 시어머니, 내 자녀, 내 교인, 어느 누구의 버릇을 고쳐야 행복해지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계속해서 남의 잘못만 지적해서 실제로 무슨 이익이 있었습니까?  그렇게 벼르고 고쳐보겠다고 해서 행복하던가요?  아닙니다.  오히려 분열과 상처만 더 깊어졌습니다.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고 당신만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무기력한 자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를 부정적인 상황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상대를 괴롭히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행동은 결국 자기는 결점이 많아서 개선이 힘든 인간이라고 스스로 자포자기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과 불행은 하나의 주도적인 선택의 문제입니다.  나무의 뿌리 부분을 심으면 삽니다.  그러나 가지 부분을 심으면 죽고 맙니다.  결국 성공도 행복도 실패의 다른 한편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주는 어떤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하는 실수도 아닙니다.  그 실수에 반응하는 우리의 대응입니다.

독사에 물린 사람이 약이 올라 뱀을 잡으려고 쫓아가면 뱀을 잡을지 모르지만 결국 온 몸 전체에 독이 퍼져서 자신도 죽고 맙니다.  독사를 쫓아가서 잡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선 내가 살기 위해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주도적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꿈쟁이 요셉이 험악한 세월을 보냈는데 110세에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클라이막스 부분입니다.  요셉의 인생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형제들에 의해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을 때, 또 외롭고 고생스러운 노예생활에서 얼마나 형제들이 원망스러웠겠습니까?
불쌍한 자신의 신시에 얼마나 좌절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때마다 그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주도적으로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집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조금 나아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결정적인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결국 13년간이라는 긴 세월동안 부당한 지하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가 절망했습니까?  그가 좌절했습니까?  그가 포기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 감옥에서도 주도적인 사람이 됩니다.  결국 지하 감옥에서도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알 듯이 요셉은 그 기나긴 세월동안 단 한번도 형제들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지하 감옥에 갇히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어도 집안 주인의 탓이라든지, 못된 여자 탓이라든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또 그런 삶의 반응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주도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언제 어디서나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주도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사람들은 나를 해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세상은 나를 버리고, 절망의 늪으로 몰아넣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증거가 되게 하실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오주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