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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응답되는 기도는? (마 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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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인 빌리 선데이라는 젊은이가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가 교회에 나갔을 때에 그를 지도한 사람이 말하기를 “자네가 신앙생활에 성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세 가지를 계획하게. 첫째, 날마다 15분 동안 하나님께 기도하기. 둘째, 매일 15분 동안 성경읽기. 셋째, 매일 15분정도 내가 만난 예수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라고 했습니다. 그는 지도자의 충고를 받아들여 평생 동안 실천했습니다. 훗날 그는 20세기 초 미국의 영적 도덕적 각성을 주도한 유명한 부흥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삶의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 계획 가운데 무엇을 우선순위에 둬야 하겠습니까? 먼저“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 10:31)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성도를 사랑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내 영혼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리라(고)...”(요한3서 1:2)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내 영혼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그 가운데 가장 우선적인 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기도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기도를 지붕이라고 합니다. 지붕 없는 집은 집이 아니듯, 기도 없는 신앙은 지붕 없는 집과 같습니다. 기도는 비를 막아주는 지붕과 같습니다. 기도는 뜨거운 태양을 막아주는 지붕과 같습니다. 기도는 바람을 막아주는 지붕과 같습니다.

세계적인 조직망을 갖춘 대학생선교회(C.C.C)가 있습니다. 이 선교회는 미국의 빌 브라잇 박사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 선교단체는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다수의 대학에도 C.C.C가 있습니다. 그들이 항상 부르짖는 구호가“기도보다 앞서지 말고, 성령보다 앞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할 삶의 지혜입니다.

기도의 능력에 대하여 성경에 말씀하시기를“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야고보서 5:15~16)하셨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11:23의 말씀에는“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하셨습니다. 산을 옮기는 것같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이룰 줄 믿고 기도하면 이루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야고보서 4:3에는“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아서 얻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못하실 것이 무엇이며, 이루지 못하실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기도할 믿음과 열심이 없는 것입니다. 반면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응답이 없는 것은 잘못된 동기 즉 정욕으로 구하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가정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이때에 기도할 일이 많습니다. 우리교회도 영혼 구원을 위한 대각성 집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기도가 절실한 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一.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은 기도하되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구하라”는 것은 곤경에 처한 거지가 죽지 않기 위해 구제를 요청하듯이 구하라는 것입니다.“찾으라”는 것은 값진 보화를 잃어버린 사람이 안타깝게 그 물건을 찾듯이 간곡히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두드려라”는 것은 애타게 노크하듯이 낙심하지 말고 간곡히 기도 하라는 말씀입니다. 응답해 줘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무성의한 태도로 기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5:16에“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석유 왕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에게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그는 친구의 권유로 광산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기를 당해 원금까지 모두 날렸습니다. 광부들은 밀린 임금을 요구하며 폭도로 변했습니다. 빚 독촉에 시달린 록펠러는 너무 괴로워 자살까지 생각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기업을 시작할 때부터 철저한 신앙생활을 해온 록펠러는 황량한 폐광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음을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큰 어려움에 처해 도저히 혼자의 힘으로 해쳐나갈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 주십시오.” 록펠러는 통곡하며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마음속으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너무 염려하지 말고 낙심치 말아라.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노라.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리라. 포기하지 말고 땅을 더 깊이 파라.”는 것이었습니다.

록펠러는 하나님이 주신 깨달음의 확신으로 폐광을 더 깊이 파들어 갔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록펠러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수군거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땅속에서 “검은 물”이 분수처럼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석유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록펠러는 실패를 딛고 일약 세계적인 부호가 되었습니다.

기도하되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브리서 5:7)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토록 간절하게 기도하셨는데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간절한 기도는 하늘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二. 물러서지 않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8:1에“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하되 낙심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포기하고 물러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비유로 말씀하시기를“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누가복음 18:2~5)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시기를“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누가복음 18:6~8) 하셨습니다. 인내하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되는데 말세가 되면 이렇게 인내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말세가 되면 사람들의 성격이 조급해지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1~5에 세상 종말기에 나타나는 증거에 대하여“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하셨습니다.

말세에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사람의 마음이 조급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환경은 모든 것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교통이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전라도나 경상도에서 한양까지 가려면 두세 달이 걸렸습니다. 이제는 자동차가 생겼습니다. 도로 포장이 되었습니다. 자동차가 100㎞ 이상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가 생겼습니다. 심지어 300㎞이상 달리는 고속 전철이 생겼습니다. 배로 3개월이나 걸려야 오가던 미국도 비행기로 열 시간 조금 더 걸립니다.

또한 통신수단은 어떻습니까? 옛날에는 걷거나 아니면 말을 타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 후 자동차로 편지를 배달해도 3~4일은 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전화로 세계어디나 통화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문서나 사진을 안방에서 주고받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평리하고 참 좋습니다. 그러나 폐단은 사람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여유가 없습니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대명사와도 같은“빨리빨리”의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경우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공중전화 앞에서 먼저 사용하고 있는 사람의 통화가 좀 길어지자 참지 못하고 그 사람을 죽인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인간들이 사용하는 통신이나 교통이 빨라졌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우주의 법칙까지 빨라진 것은 아닙니다. 태양의 길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순응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인생살이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임신한 부인은 열 달을 기다려야 하고, 갓난아이는 소년이 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에는 빨리빨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학생은 졸업장을 받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사원은 승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신혼부부는 내 집을 마련할 때까지 절약하여 저축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어느 분야든지 성숙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여름날 나무에 앉아 즐겁게 노래 부르는 매미의 수명은 겨우 한 달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매미는 이 한달의 삶을 위해 굼벵이로 6년 동안이나 깜깜한 땅속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는 매미 이름이 17년 매미가 있다고 합니다. 이름 그대로 17년 동안이나 땅속에서 굼벵이로 살아야만 비로소 매미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매미의 유충인 굼벵이는 나무뿌리의 수액을 빨아먹고 사는데, 너무 많이 빨아먹으면 나무가 말라죽고 나무가 말라죽으면 굼벵이도 함께 굶어 죽게 됩니다. 그래서 나무가 죽지 않을 정도로 먹는 량을 줄여가면서 17년 동안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단 한달의 노래하는 생을 위해 기나긴 세월을 암흑 속에서 인내하고 또 인내합니다.

기도하되 인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그러므로...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야고보서 5:7~8,11)하셨습니다. 기도하되 길이 참고 응답되는 순간까지 불퇴전의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三. 하나님께서 좋게 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9절~11절에“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본래 타락하여 악한 성품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하물며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녀인 성도가 간구하는데 어찌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되 몇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기도에 즉시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둘째, 간절히 그리고 오랫동안 기도했는데 응답이 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조급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때에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셋째, 응답 없는 응답이 있습니다. 철없는 어린아이가 어머니가 부엌에서 사용하는 칼을 가지고 놀고 싶어 한다면 주겠습니까? 그 칼을 주는 대신 과자를 줄 때가 있습니다. 칼을 줘도 괜찮을 때가 되면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구했는데 하나님은 저것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더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더 좋게 해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28 말씀에“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3대 불응 기도가 있습니다. 첫째, 모세가 가나안 땅을 눈앞에 바라보면서 그 곳에 들어가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끝내 모세는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의 잔이 지나가기를 구했으나 응답되지 않고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는 인류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세 째, 바울사도가 드린 건강위한 기도입니다. 바울은 자기 육신의 건강을 위해 간구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하고 일평생 동안 질병의 고통을 겪으며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 사유에 대해 고린도후서 12:7~9에 기록하기를“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응답 없는 응답입니다. 그가 기도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더 좋은 것이었습니다.

四. 선한 목적으로 가도해야 합니다.

본문 11절에“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시고, 본문 12절에는“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말씀은 기도와는 상관없는 말씀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기도와 상관없는 것이 아닙니다. 12절에“그러므로”라는 접속사에 이어서“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은 사람의 생활방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은 사람마다 누구에게나 다 있는데, 받기만 바라지 말고 너희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즉 기도하여 응답받은 것을 자신만 위하여 사용하지 말고 이웃과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유익만 생각하는 사람을 극히 싫어하십니다. 그 까닭은 모든 죄악이 이기심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는 것이 기쁘고 즐겁다면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2에는“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하셨습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4:9에는“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라(고)”고 하셨습니다. 

미국의 부자 가운데 페니(J. C. Penny)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소유한 대형 마트는 미국 전역에 2천 개나 되었습니다. 그는 58세에 파산하였으나 시련을 이기고 다시 성공했습니다. 페니는 새 출발을 할 때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의 사업과 생활의 표어로 정하였습니다.“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교회와 사회사업에 많은 돈을 바쳤는데, 플로리다에 은퇴 목사를 위하여 100호(戶)의 주택을 지어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는 만년에 이렇게 간증했습니다.“처음에 나는 늘‘피땀 흘려 번 돈이니 내가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시험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달았을 때, 주는 기쁨이 움켜쥐고 있는 기쁨보다 훨씬 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12절의 의미는, 기도할 때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이기심으로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3에는“구하여도 받지 못함을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내 자신만 잘 먹고, 잘 살고자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육신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구하기만 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접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을 먼저 대접해드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6:31~33에“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신명기 4:7에는“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을 끌어 내리는 파이프입니다. 상수원의 물이 수도 파이프를 통해 각 가정마다 흘러 들어가듯, 하나님의 축복은 기도의 파이프를 통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쉬지 말고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7)하셨습니다. 기도한다고 하여 아무 기도나 다 들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응답하는 기도는?

첫째, 간절한 기도입니다.
둘째, 인내하는 기도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좋게 해주실 것을 믿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한 선한 목적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로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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