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참된 성도의 모습 (행 7:54-60)

  • 잡초 잡초
  • 219
  • 0

첨부 1


스데반의 설교는 유대인들에게 열을 올리는 설교였습니다. 여러 설교가 들이 그 당시 유대인들의 태도를 은근히 비난하여 왔지만 스데반은 노골적으로 명백하게 비난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계속적이고 반복되는 반역과 불순종을 지적했습니다. 모세시대는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반역하더니, 아모스 시대에는 그들의 마음이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쫓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스데반이 더욱 강하게 비난하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권에 비해 많은 잘못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선지자들의 출현이 계속되었고, 율법의 돌판이 계속 간직되었고, 하나님의 집의 증거가 되는 성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반역과 불순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특권이 많으면 많을수록 잘 못된 길을 선택했을 때 그 비난은 더 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유형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이렇게 반역을 일삼더니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더니 결국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 죄를 지은 것은 베드로와 같이 무지해서가 아니라 반역적인 불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이 연설은 죽음을 자초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이를 갈면서 돌로 쳐 죽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죽어가는 스데반의 얼굴에는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지거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돌에 맞아 죽어가고 있지만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죽음을 기쁨으로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스데반의 신앙을 살펴보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상상할 수 없는 스데반의 신앙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모든 성도들도 그의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1.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지만 험난한 시대에서 성결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비유할 때 불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불은 정결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금속을 깨끗케 할 수 있는 것은 불입니다. 불에 의하여 비금속을 분리시키고, 순수한 금속을 분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할 때만이 죄에서 분리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할 때만이 깨끗하고 정결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왜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까?
성경에서는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르고 있다. 원어에는 “파라클레토스”로 되어 있는데,이말의 본뜻은 ‘남을 돕는 자’,‘중재자’란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카운슬러’라고 번역되었다. 그러니까 성령은 신자들을 계속적으로 도와주고 카운슬러도 되어 주고 중재도 해주어서 주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된자들을 보호해주시고, 굳은 마음을 녹여주시고, 어리석은 생각을 변하여 지혜로운 마음을 갖게 하고, 사람들 마음속에 평화와 안정을 주며, 살기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즐거움을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될 때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줄 수 있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은 아주 강한 용기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성령 충만함으로 죽음의 언덕 너머로 자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의 환영을 보았습니다. 그는 순교의 죽음이 그리스도의 보좌로 통하는 관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 스데반은 예수님의 모습처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눅23:34). 예수님께서 자기를 죽이는 자들의 용서를 빈 것처럼 스데반도 그리하였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부르짖으면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였습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될 때 우리들은 온전하게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게 될 때 좋은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주로 갈라디아서 5장22에 준하는 좋은 열매를 얻습니다. ①사랑과 희락과 화평은 내속에서 임재 합니다. ②인내와 자비와 양선은 대인관계에 임재 합니다. ③충성과 온유와 절재는 하나님 앞에 임재 합니다.

2. 천국에 대한 소망을 굳건하게 가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소망을 굳건하게 가져야 합니다. 소망을 잃은 자는 죽은 자와 같은 것입니다. 소망도 여러 가지의 소망이 있지만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삶이 참된 삶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현재의 삶이 풍성하고 넉넉하다고 해서 머물러서는 안 되며 집착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대한 소망이 확실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포로이후에 구원될 기쁨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메시야의 온전한 구원의 역사로 인하여 죄의 포로에서 풀려나 그리스도 안에서 참자유를 맛볼 수 있는 행복까지 바라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①주님을 향한 참된 소망은 삶의 장애물을 넉넉히 제거하게 됩니다.

참된 소망을 가진 자는 장애물을 넉넉하게 이기고도 남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을 소망하는 자에게 친히 주님께서는 장애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권면하고 계십니다. 주님을 소망하는 자들은 어떠한 두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이 땅의 고통과 괴로움은 장차 받을 믿음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영광과 비교 할 수 없음을 믿고 고난의 장애물을 넉넉히 이겨야 합니다.

②주님을 향한 참된 소망은 점점 더 사랑의 사람으로 거룩하게 변화시키십니다.

믿음생활의 목표도 사랑이요, 성화의 목표도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완전하다고 칭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고, 아래로는 이웃을 향해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니라”(요일4:7-8)고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계명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의 명령을 가리켜서 가장 위대한 주님의 명령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사명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지만(마28:19-20),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명령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3. 말씀과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모든 성도들은 모이기에 힘을 써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게 될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며, 주의 이름으로 모여 찬송을 부르게 될 때 깊은 감동이 있게 되는 것이며, 주의 이름으로 모여 말씀을 배우고 듣고 할 때 뜨거운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①우리들은 모여서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무릎을 꿇고 살 때 우리들의 삶속에 새로운 호흡이 되어져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한나도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될 때 자녀를 얻게 되는 축복을 받았으며, 히스기아 왕도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니엘도 말씀의 귀중성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될 때 그는 여러 가지 이상(꿈)을 봄으로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위대한 귀감이 되었으며 큰 예언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②우리들은 함께 모여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을 사모하기에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영의 양식인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여야 하며, 말씀으로 인한 꿈이 있어야 하며, 말씀으로 인하여 날마다 새로운 힘을 얻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말씀을 읽고 할 때에 믿음이 성장하게 됨으로 항상 말씀을 소중히 여기시며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듣기에 힘쓰시고,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항상 읽을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선배들 가운데 큰일을 한사람들은 대부분 말씀에 의지하여 큰일들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성자가 된 것도 말씀 때문이었고,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을 이루게 된 것도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죤 웨슬리가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새롭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말씀에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죠지뮬러가 많은 고아를 사랑하게 된 것도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도 교회만 다니는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인정만하는 자가 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일에만 잠시 다녀가는 신앙의 손님이 되지 말고 열심을 더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성도가 될 때 참된 성도가 될 것입니다. 주의 은혜가 참된 성도들에게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신복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