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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 은혜가 충만한 교회 (행 11: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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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교회의 창립53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지금도 좋은 교회이지만, 앞으로 10년 후에, 20년 후, 50년 후에도 참으로 좋은 교회, 자랑스러운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마지막 시대에 칭찬받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본래적인 목적을 이루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하며, 어려운 시대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창립기념일이 갖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자축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적인 목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회에 있어서 초대교회는 본래적인 교회요, 기본에 충실한 교회였다고 봅니다.  그래서 언제나 모든 교회들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중에서도 가장 칭찬 듣는 교회로, 가장 자랑스러운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안디옥교회라고 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인 선교의 중심적인 교회라고 하면 안디옥교회는 이방인 선교의 중심이 된 교회였습니다.  세계정신을 가지고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교회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에 사도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성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세계 여러 나라로 피하게 되었습니다.  안디옥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은 스데반이 순교하는 환난이 있은 후에 흩어진 성도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가서 우선 유대인에게 전도하였지만,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인들은 안디옥에서 유대인만이 아니라 헬라인에게도 전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였습니다. 베니게란 곳은 페니키아를 말하는데, 현재의 레바논을 말합니다. 두로와 시돈이란 항구도시들이 있는 지역입니다.  구브로란 곳은 지중해 안의 아주 큰 섬나라인 키프로스를 말합니다.  유명한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안디옥은 시리아의 안디옥을 말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 안디옥이란 이름의 도시들이 있었는데, 성경에는 시리아의 안디옥과 비시디아의 안디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하고 목숨을 다한 교회입니다.  성도들은 어떻게 하든지 복음 전파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교회는 이방인들이 교회로 들어오기를 기다리지 않았고, 이방인들의 접근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안디옥교회는 해외선교의 열매요, 해외선교의 신기원을 이루었지만 누가, 어떤 사람이 그 일을 시작하였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왔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그들은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남의 눈에 알려지기를 바라거나, 감사와 칭찬받으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자기들의 이름이 역사책에 기록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만족하였고,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안디옥이란 도시는 시리아의 고도였습니다.  이 도시는 “동방의 여왕”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이 기록될 당시에 인구 50만 명이 사는 세계적인 도시였습니다.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는 로마였고, 두 번째로 큰 도시는 북아프리카의 알랙산드리아였으며, 세 번째로 큰 도시는 시리아의 안디옥이었습니다.  시리아의 안디옥은 지중해에서 24km 떨어진 곳으로 아름다운 국제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우상숭배가 넘쳐나고 있었고, 사치하였고, 환락의 도시였으며, 스포츠와 도박이 성행하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세계 도시에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이 도시 안디옥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세계정신이 부족하여 해외 선교에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안디옥교회로 하여금 해외선교의 중심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영혼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고, 헌신하는 교회를 들어 선교의 중심지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선교의 중심지가 되어야겠습니다.

  21절 말씀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주의 능력 있는 손이 복음 전도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교회가 설립되는 곳마다 주님의 손이 역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복음이 처음으로 들어가는 나라마다 성령의 폭발적인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란 이제 막 복음이 들어가고 선포되는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원하십니까?  복음을 전파하는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의 교회요, 거룩한 교회요 우주적인 교회여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가 하나이어야 합니다. 유대의 예루살렘 교회가 특별하거나 안디옥의 교회가 이질적이어서 예루살렘 교회와 신앙과 직제와 예전이나 교리적으로 하나될 수 없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도 아니요, 하나님의 교회일 수는 없습니다.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중요한 지도자를 파송하여 안디옥교회를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신중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복음에 비전을 가진 사람, 복음 전파에 열정을 가진 사람, 한 사람의 지도자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는 이방인 사회를 이해하고, 언어 소통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른 신앙을 정립한 사람으로, 교회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지도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여기에 바나바는 아주 적합한 일꾼이었습니다.

  사실 안디옥교회에 대한 소식은 소문으로만 아는 정도였습니다.  정식으로 어떤 절차에 의하여 보고된 것이 아니라, 들리는 소문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라는 지도자를 파송하여 안디옥교회를 지도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바나바라는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요, 교회와 복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24절에서 바나바의 인격과 신앙에 대하여 그를 인정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24절에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고 했습니다.  구브로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인으로, 요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위로와 권면을 잘하여 “위로의 아들, 예언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나바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사람들, 교회의 지도자가 되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근본적으로 착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착하지 못하고 악하거나 불성실하면 명예나 이윤을 추구하려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좋지 않은 마음, 일그러진 마음이라고 하면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맙니다.  우리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교회의 일꾼들은 성령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령이나 믿음은 찾아볼 수 없고, 지식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이요, 경험으로만 하겠다고 하면 사람의 소리만 나고, 하나님의 영광이나 능력을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속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에 드는 사람이어야 진정 교회를 위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주님의 손에 붙들려야 합니다. 

  바나바가 멀리 안디옥에 왔습니다.  소문대로 교회는 자생적으로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유대인 중심으로 교회가 아니라, 헬라인 중심의 교회였습니다.  그는 안디옥 교회 위에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제 갓 믿는 성도들에게 외쳤습니다.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 중심으로 살고, 예수님을 모신 사람으로 철저한 신앙을 요구하였습니다.  굳은 마음이란 어떤 마음입니까?  흔들리지 않는 마음, 식어지지 않는 열정, 단단한 결심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면 안 됩니다.  주께 붙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란 생명의 관계입니다.  생명이란 떨어지면 죽고, 하나로 연결되어야 하고, 예수님 안에 연합되고, 일치되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비전은 그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했습니다.  바나바는 길리기아주의 수도인 다소에 사는 바울이란 청년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 회심하고는 예루살렘에 와서 사도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였지만, 반기는 사람이 없어 고향 다소로 내려가 전도하고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참으로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바울이란 사람은 지성과 열정을 겸비하였고, 믿음의 확실한 체험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세계선교를 위해서라면 바울을 세워주어야 하고 그를 붙잡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바나바는 다소에 산다는 것만 알고 어느 동리에 사는 것을 모르고 찾아가서 마침내 그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와서 두 사람의 지도자가 일 년 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으며,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안디옥교회를 통하여 교회란 모름지기 이러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발견하였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를 받아 소멸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일어나는데, 아예 초기에 쓰러뜨리면 무너질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 박해는 멀리 시리아의 수도였던 다메섹까지 미쳤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잡아들였고, 배교를 강요하였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이제 몇 명만 잡아들이고 죽이면 나사렛 이단, 기독교회는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주님의 교회요, 부활하신 주님이 주인이신 교회입니다.  세상 나라는 무너지고 소멸된다고 하여도 우리 주님의 몸인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교회요,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므로 하나님의 구속을 이루시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아직도 복음화 되지 않았지만, 복음은 결코 예루살렘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유대에서 사마리아로, 그리고 이제는 땅 끝까지 복음은 선포되었고, 교회는 세워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아직도 우리 자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복음 전도는 어는 한 순간도 멈출 수 없고, 중단할 수없는 일입니다. 교회는 전도할 때에 교회입니다.  교회는 무너지지 않고 결코 소멸되지 않습니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남은 과제는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저는 선지자 예례미야를 통하여 참으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예례미야의 열정, 사도바울의 열정을 본받으려고 합니다.  저는 예례미야의 이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소명의식을 느꼈습니다.  렘20:9절입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에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20:9)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도 여호와를 선포하여야 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미칠 것으로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한 영혼을 귀중히 여기며 구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의사로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전도하는 원종수권사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전도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비비안이라는 암 환자가 수술을 받으려 왔으나 암세포가 온 몸에 퍼져서 수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영혼을 불쌍히 여겨 “예수님의 피만이 당신을 천국에 들어가게 할 수 있다.”라고 전도했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고 그분이 간증하기를 “제가 암에 걸리게 된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만약 제가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저는 원종수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평생 예수님을 모른 채, 그렇다면 제 영혼은 영원히 구원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그 교회에는 2000명 정도의 교인이 모였는데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의 가족 7명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환자 한 사람을 전도함으로 그의 영혼이 구원받고, 그의 온 가족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주의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교육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교육하는 사명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힘쓴 부분이 있다면 일꾼을 양성하는 일, 사람을 세우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 안디옥교회는 바나바와 바울 두 사람이 일 년 간 함께 있어 큰 무리들을 가르쳤습니다. 
이 교회는 좋은 사역자들, 지도자들을 있었습니다.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바나바와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라는 바울이 있었습니다.  5명의 참으로 좋은 지도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성령이 충만하였고, 성령님에게 순종하는 이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부름 받은 지도자들이 마음을 같이 하고, 합심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힘이 나고 좋은지 모릅니다.

  교회란 교육적인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을 양성하고, 사람을 세우는 일에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만 지도자요, 내 시대의 지도자는 오직 나 한 사람으로 족하다는 편협하고 마귀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는 시무장로를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안수집사를 세우고, 권사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성경공부, 제자훈련, 사역자반 인도자반을 운영하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일꾼이 곧 교회요, 곧 선교요, 곧 봉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교육전도사를 모시는 일에 열심을 다하였습니다.  각 부서를 나누고 연령에 맞게 교육하고 일꾼을 활용하였습니다.  유치부를 유아부와 유치부로 나누었습니다.  어린이 교회학교를 유년부, 초등부, 소년부로 나누고 있는데, 사실 교육관만 확보된다고 하면 학년별로 나눌 수 있으면 좋습니다.  청년들을 위한 공간이 확보된다면 대학부, 청년부, 젊은 부부반으로 나눌 수 있으면 좋습니다.  교회는 교육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가르치고 배울 것이 있어야 합니다.  연령과 취미와 신앙정도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소그룹과 공부반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교육이라는 것은 한 나라의 운명이 달린 문제요, 한 교회의 미래가 걸린 문제입니다.  교육이란 우리 사회가 누려온 지식과 쌓아온 경험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하나님은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 일에 열심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회도 부지런히 가르치고, 우리도 배우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참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교육은 우리 교회만이 심어줄 수 있다고 봅니다.  진정한 인간교육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시키는 것으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알 때에 나를 알고, 이웃을 알게 됩니다.  교육이 그 사회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을 세우고, 양성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칭찬받는 교회로 도덕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로부터 지탄받지 않고, 인정받는 교회여야 합니다.  이 안디옥 교회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별명으로부터 시작된 이름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크리스티아노스”라고 합니다.
안디옥 사람들은 익살맞은 별명을 잘 붙이는 재능이 있다고 합니다.  후에 로마의 율리안 황제가 안디옥을 방문하였는데, 그가 수염을 기른 것을 보고는 황제라고 하지 않고 염소라고 했다고 합니다.  접미사 “니아노스”라는 말은 어느 당에 속하여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었습니다.  “헤로디아노스”라고 하면 헤롯당원이란 말입니다. 

  “크리스티아노스”라는 말은 크리스토스 당에 속한 자,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자들, 그리스도의 족속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멸시하고 조소하는 요소가 배어 있으면서도 철저한 정신과 생활을 지적하는 말이라고 봅니다.  이 말은 절반은 욕이요, 절반은 익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체적으로 경멸하는 말이지만, 참으로 자랑스러운 별명입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잘 할 때도 있지만, 형편없을 때도 있습니다. 잘 믿으려고 힘쓰고 있는데, 수준이 보잘것없을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목사는 목사다워야 하고 장로님들은 장로님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되고서, 되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목사의 자격이 있어 목사가 된 것이 아니고, 우선 하나님의 은혜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정말 목사가 되어가야 합니다.  장로님들을 들어 말씀드리면, 장로의 자격이 있어 장로될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선 하나님의 은혜로 장로가 되었습니다.  감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격에만 머물지 말고, 장로다운 장로님들이 되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여러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이 있지만,  이번에 청년 단기 선교에 가서 보고는 우리 교회의 장로님과 권사님들은 정말 귀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한 분 장로님과 한 분 권사님이 참여하셨는데, 우리 청년들에게 정말 좋은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청년들과 함께 행동하시면서 땀 흘려 봉사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에 청년들을 보면서 우리 교회는 소망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청년들이 섬지방으로 단기 선교 가면서 우리 청년들이 흘린 땀을 모두 모으면 우리 모두를 다 적시고도 남을 것이라고 봅니다.  완도와 소안도, 횡간도의 여러 어려운 성도들과 목사님 사택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도배하고 페인트를 칠해주었습니다. 그것도 한 두 집이 아니라, 20여 집을 감당하는데, 그들이 흘린 땀은 참으로 소중하게 열매를 맺고, 하나님 앞에 기억될 것입니다.  섬 내의 9개 교회가 모여 여름 성경학교를 개최하였는데, 우리 교회의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운영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먼저 구원받은 사람으로 성도다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이 수준을 보시고, 하늘나라에 데려가는 것입니까?  여러분, 신앙이란 소속의 문제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마귀에게 속하였다가 이제는 우리 주님에게 속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는 크리스티아노스입니다.  그리스도당원입니다.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이름입니까?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까?  하나님의 선교가 이뤄지는 교회, 교육적인 사명을 다하는 교회,  칭찬받는 도덕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안디옥교회와 같은 은혜가 충만한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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