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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오늘을 살아갈 것인가? (엡 5: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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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현대인들이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오라는 사람은 없어도 사실 갈 데는 많고, 돈은 언제나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써야할 데는 많습니다.  우리가 세상 쪽으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교회가 주는 유익이나 혜택보다는 세상이 주는 매력이 더 화려하고 멋지고 커 보입니다.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라는 말은 “어떤 방식, 어떤 자세로”, “어떤 마음으로”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고 확정해야 합니다.  “행한다.”는 말은 헬라어에서는 “걷는다, 돌아다니다.”는 말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도 어떤 자세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살아가느냐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자세히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들 중에는 무엇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느냐?  쉽게 생각하자고 하실 수 있습니다.  되는대로 살면 그런대로 살아가는 것이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라, 깊이 생각하라고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되는대로, 유행 따라,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인생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보고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지적한다면 아마 화를 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온 과거를 되돌아보는데 냉정하게 돌아보면서, 하루를 평가해본다고 하면 나는 또 다시 하루를 낭비한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정신 좀 차리고, 힘쓰고 애썼다고 하면 지금보다는 더 보람 있고, 의미 있는 값진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될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만 합니다.  오늘 설교를 잘 들어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설교하는 사람은 선포하면서 또 듣고 있습니다.

  저는 존 맥스웰박사의 여러 책들 가운데 ‘생각의 법칙’이란 책을 두 번 읽어 보았습니다. 제1기 사역자반원들과 함께 한번 읽었고, 다시 제2기 사역자반원들과 함께 읽고 있습니다.  그가 줄 곳 강조하는 것은 “당신의 생각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존에게는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의 친구에게는 딸이 둘이 있는데, 제니라는 큰 딸과 킴이라는 둘째딸이 있습니다.  부모님과 두 딸이 다함께 있을 때에, 대학4학년에 다니는 둘째 딸에게 약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킴은 어쩔 줄 모르게 기뻐합니다. 그런데 큰 딸 제니는 동생이 원하는 목표가 이루어진 것으로 기뻐하였지만, 동생을 가엾게 여기고 있습니다.  “엄마 킴이 불쌍해요, 앞으로 4년이나 더 학교를 다녀야 하잖아요.” 제니가 말했습니다.  작은 딸은 계속 공부하여 앞으로 있을 취업의 기회를 더 많이 얻었다고 생각하는데, 큰 딸은 동생이 4년이나 학교에 더 다녀야 한다고 측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딸은 입학 소식을 듣고 자신에게 펼쳐질 보수 좋고 보람된 일을 생각하면서 흥분하고 있는데, 다른 딸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들여야 하는 세월을 아깝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한 가지 사건을 놓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존 맥스웰은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의 오늘은 어제 생각한 결과이다.  우리의 내일은 우리가 오늘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명언이라고 생각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키나 체중, 학력이나 집안 배경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생각의 크기에 따라 평가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이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해야만 합니다. 여러분, 뛰어난 생각을 가지고 계시면 그 생각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줄 것입니다.  좋은 생각과 행동은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없습니다.  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은 결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쁜 생각은 일을 불리하게 진척시킨다.  평범한 생각은 일을 진척시키지 않는다.  좋은 생각은 일을 다소 진척시킨다.  위대한 생각은 일을 크게 진척시킨다.”라고 합니다.  이 말에 동의하실 것입니다.  나쁜 생각은 아니라고 하여도 평범한 자리에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생각 정도에 머물지 말고, 위대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1절의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라고 했습니다. 

  사도는 우리에게 지혜롭지 못한 사람같이 살아가지 말고, 지혜 있는 자 같이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지혜 없는 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지혜 없는 자라는 이 말이 구약에서는 ‘거만한 자’를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지혜 없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말합니다. 

  지혜롭다는 말은 “숙련되었다, 현명하다, 분별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참으로 분별력에 있어 뛰어납니다.  어려운 순간에도 탁월한 선택을 합니다. 

1.  세월을 아끼라고 하십니다. 

  15절로 16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의 첫 번째 할 일은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사람,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신 사도는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이 세월이라고 하였는데, 세월이란 우리말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말합니다.  기나긴 세월, 오랜 세월이 지나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는 말을 합니다. 

  욥기14:1-2에 보면 세월이 얼마나 짧으며, 걱정이 가득하고, 시들고, 빨리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예전 사람들이 더 깊이 생각하고 말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헬라인들은 철학적인 사람들이 되어서 시간에 대하여 아주 많이 생각하였습니다.  시간이란 말에 3가지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아이온이라는 시간이 있는데, 이것은 태초부터 종말까지 이어지는 매우 긴 시간, 영원한 시간을 가리키는 시간입니다.  그 아이온 속에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연대기적으로 흐르는 크로노스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계속되는 크로노스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생을 지배하는 크로노스라는 시간 속에는 결정적이고 종말론적인 결단을 요구하고, 좋은 기회로 알고 살아가야 하는 카이로스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이 카이로스라는 시간에는 인간의 카이로스와 하나님의 카이로스로 양분되고 있는데,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이루시려고 하는 귀한 뜻을 깨닫고 주어진 시간을 선용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카이로스를 나의 카이로스로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고 하셨는데, 우리말에 “아끼다”는 말은 ‘소중하게 여기어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에 “아끼라”는 말은 의역입니다.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라는 의미로 그렇게 번역한 것입니다. 원래 “아끼라”는 말은 “속량하여 낸다. 사오라”는 말입니다.  아낀다는 말은 “속량한다.”는 말인데, 노예들을 속전을 주고 구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시간을 사와라는 말은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말에 아낀다는 말도 좋은 번역이지만, 공동번역성경 개정판에는 조금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15절부터 읽어드립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서 미련한 자처럼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사십시오. 이 시대는 악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 (엡5:15-16)라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라는 말이 정말 잘 번역되었다고 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주어진 기회를 사오라는 말인데,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라는 말이 얼마나 알아듣기 쉬운 것입니까?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정신없이 질주하였습니까?  너무 빨리 달려서 속도감을 잃어버렸습니까?  이제는 달려가던 길을 멈추고 제 길을 가고 있는지, 바른 방향, 향방을 바르게 확정하여야 합니다.  향방 없이 달려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할 것입니다.

2.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17절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리석다는 말을 잘 아실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성 없는 것을 말합니다.  심사숙고하지 않고 즉흥적인 것을 말합니다.  판단력이 없이 무분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입니다.  사고력을 주셨습니다.  생각 없이 무분별하게 살면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가치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무가치한 것에 목을 맨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성경에는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비유가 두 번이나 나옵니다.  한 부자가 있었는데, 그의 밭에 소출이 풍성하였습니다.  그해 대풍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심중에 생각합니다.  “내가 많은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너무나 만족하여 자기 영혼에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준엄하신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에게 보내어주신 재물이란 것이 자기를 위하여 쌓아두라는 것으로 알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은 성경에서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또 있었습니다.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거지들이 밖에서 버려진 채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고 있어도 그는 개의치 않고 날마다 먹고 마시다가 죽어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날마다 호화롭게 잔치하다가 세월을 보내고 자기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몰랐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 사람뿐이겠습니까?  오늘 우리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내 것은 당연히 내 것이요, 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벌어 내 마음대로 호화롭게 산다고 하는데 왜 배 아파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로마서12:2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좀 어리숙하게 살고, 좀 뒤쳐져도 좋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변화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야겠습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이해한다는 말은 깨닫는다는 말이요, 들음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듣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 무엇이 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선택이 될 수 있는지, 묵상하고 기도하고, 성령의 밝은 조명 속에서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생각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작업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세상에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데, 어떻게 귀한 열매를 얻을 것입니까?  목회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한 주간 사고의 산물이요, 깊이 생각하는 중에 한 편의 설교가 나오는 것입니다.  얼마나 깊이 생각해야 하는지, 진액을 짜낸다고 까지 말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고된 노동이다.  생각하는 사람이 그토록 적은 이유가 바로 그래서이다.”라고 했습니다.  생각은 고된 노동입니다.  그러나 값진 것입니다.  작가 나폴레옹 힐은 “황금은 땅 속에서보다 인간의 생각 속에서 더 많이 채굴되었다.”라고 합니다. 

  “주의 뜻”이란 말은 의향이란 말인데, 소원 목적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목적을 말합니다.  목적이란 말은 참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말입니다. 릭워렌 목사님의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에 따르는 유익 다섯 가지를 기억하여야 합니다.

1) 목적을 아는 것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준다. 
2) 목적을 알면 우리의 삶은 단순해집니다. 
3) 목적을 알면 초점을 맞춘 삶을 살게 됩니다.
4)  목적을 알면 삶의 동기가 유발된다. 
5) 목적을 앎으로써 영생을 준비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영생을 위하여 준비하라고 보냄을 받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8절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술을 끊기 바랍니다.  술이란 참으로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이 술을 먹지만, 계속하여 술을 먹고 보면 술이 그를 삼켜 버립니다. 

  “술을 취하지 말라고 하셨지,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셨습니까?”라고 물어보시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술이란 마시다보면 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술 취하는 것과 방탕한 것을 같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술의 해독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술이란 이성을 잃게 하여 방탕하게 만듭니다. 내 정신이 아니라, 술기운에 그랬다고 핑계 댈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술이 방탕을 부르고 나중에는 사람을 집어 삼킨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철저히 금주 금연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예전의 합동찬송가에는 ‘금주가’라는 찬송이 있었습니다. 

1. 금수강산 내 동포여/  술을 입에 대지 마오/  건강기력 손상하니/  천치될까 늘 두렵다// (후렴) 아 보지도 마라 그 술/  아 마시지 마라 그 술/  우리나라 복 받기는/  금주함에 있나니라

  1876년 “윌리엄 클라크 박사”는 일본으로 건너온 뒤 삿포로 농업학교를 세우고 인재 양성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원기 왕성한 학생들은 가끔 술을 마시고 난폭한 일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학교 선생인 ‘구로다’ 씨가 클라크에게 학생들에게 술을 금지시켰으면 좋겠다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클라크 선생님도 술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자기가 먹을 1년 치 술을 미국에서 준비해 올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술병들을 모두 교실로 운반시킨 다음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금주를 서약하고 그 자리에서 모두 깨부쉈습니다.  그것을 본 학생들도 그를 따라서 금주서약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부모님들이 술을 끊어야 자식도 술을 끊을 수 있습니다.  사회를 지도한다고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술을 끊어야 합니다.  술 취하는 것은 모든 것에 낭비가 따릅니다.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돈을 낭비합니다. 정작 해야 할 일은 뒤로 하고 정력을 낭비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술을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양주 수입에 세계1위로 올라 있습니다. 저녁이 되면 여기 저기 술판이 벌어집니다.  우리 사회의 치유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일이 음주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술은 절대로 술로 끝나지 않습니다. 음란으로 이어집니다.  가정의 파탄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방탕하여 고성 방가하는 모습을 생각한 바울은 성령 충만한 사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했습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새 술에 취해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충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고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복음을 전파하니까, 유대인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놀려대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세계에 들어와야 합니다.  찬송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기도의 깊은 세계를 맛보아야 합니다.  새 술에 취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충만을 받으라.”는 말은 현재수동형으로 늘 받으라는 뜻입니다.  한번 받은 것으로 되었다고 하지 말고, 계속적인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성령의 임재와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에게 순종하고 나를 통하여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펼쳐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우리도 충만하도록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우리를 가까이 하십니다. 

4.  범사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20절입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이시라면, 예수님은 지금 무엇을 말할 것입니까?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하고, 나는 빠져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입니까?  오늘 사도바울은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세월을 아끼라고 하십니다.  때가 악합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십시오.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범사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세상에서 보기 힘든 성실한 사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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