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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돌아오게 하사 (신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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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게 하사

(신 30: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열조가 얻은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너로 다시 그것을 얻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로 네 열조보다 더 번성케 하실 것이며

세파에 시달려 한 깡마른 사람이 직업소개소에 찾아와 일 할 곳을 소개해 달라고 하자 소장은 그의 사연을 듣고  삶에 지친 그의 모습을 보고 우선 달이 가장 크게 보이는 곳을 알아 오는 일이 있다고 하며 찾아서 알아 오라고 합니다. 얼마의 비용을 받고 천문대를 찾아보니 세계적으로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그런 곳이 없다 합니다. 이곳저곳 찾아보았으나 알 길이 없었습니다. 소개소에 들려 미안 하지만 알아보지 못했다고 풀이 죽어 말하는 그에게 소장은 빙그레 웃으며  지치고 메마른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는 고향이 달이 가장 크게 보이는 곳이라고 말해 줍니다. 그러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생물의 세계에 돌아가는 본능이 있어 이를 귀소성(歸巢性) 회귀성(回歸性)이라 말들 합니다. 해안의 바위에 붙어사는 패류의 어떤 종류는 낮에는 여기저기로 이동하나 저녁이 되면 일정한 바위 그늘로 같은 개체가 되돌아오는 것이 있다합니다. 꿀벌 ·비둘기 ·연어 ·송어 등의 대이동은 태양컴퍼스라 하여 태양의 위치 이동을 목표로 행하여진다 합니다.
  꿀벌이 꽃의 꿀을 따려고 날아간 다음 집을 옮기면 본래 집이 있던 곳에 떼 지어 모입니다. 이것은 집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음을 표시한다합니다.

비둘기는 1분간에 약 1km를 날며, 제집을 찾아 돌아오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있어 일찍부터 통신용으로, 특히 진중에서 전신용으로 많이 사육하여 왔습니다. 유선 ·무선 등의 각종 통신 장비가 없었던 시절은 물론, 이런 장비들이 상당히 갖추어진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만 해도 1,000km 정도 떨어진 곳과는 이를 이용한 통신 연락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진중에서 통신연락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습니다. 비둘기 집을 중심으로 귀소를 학습시키고 점차 그 반지름을 넓혀나가면, 매우 먼 곳에서도 되돌아오는데, 이것은 학습과 귀소성이 함께 작용한 것이라 합니다.

연어나 송어는 태어난 곳에서 가까운 해변으로 오게 되면 강물에 포함된 물질로 후각이 자극되고, 그 기억에 의하여 태어난 곳뿐만 아니라 부화지까지도 찾을 수가 있다합니다.
사람들은 고향을 그리는 향수심이 있습니다.
홈커밍데이라는 귀향의 날을 정하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준비하며 수고하신 모든 분들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귀향은 고향으로 돌아옴입니다. 우리에게는 생명으로 이 땅에 태어난 육신의 고향 신앙을 심어준 교회 앞으로 돌아갈 천국 본향이 있습니다. 그 고향을 찾아가 보고 돌아가 보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돌아오게 하사 회복의 은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고향은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고 도와주는 인정이 넘치는 곳입니다.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글이 있습니다.

오래 전 아직 우리가 동심이었을 때는 시내마다 맑은 물이 흘렀고 우리 마음에도 순수가 넘쳐흘렀지 까만 꽁보리밥 한 주먹에도 배불렀고 빛바랜 무명옷으로도 얼마나 멋이 있었던가? 달빛타고 스며드는 아카시아 향내만으로도 우리들의 사랑은 아름다웠고 고물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일일연속극에 온 동네 사람들이 웃고 울며 삶을 나누었다. 식어버린 고구마 까맣게 재가 묻은 감자 몇 개만으로도 우리들은 시간의 흐름을 잊을 수가 있었으며 흐릿한 등잔불 아래에서도 부지런히 시를 써 내려 갔고 아름다운 소설들을 읽으며 추억을 만들어 갔었다. 지금 우리들의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가면서 시내마다 검은 물이 흐르고 우리들의 마음엔 어두운 욕망들로 가득하다. 몇 십만 원 짜리 식사로도 배부른 줄을 모르고 이태리제 수제양복을 입어도 멋을 모르지 않는가? 샤넬 향수를 뿌려도 우리들의 사랑은 썩은 냄새만 나고 최신식 대형TV를 가지고도 드라마나 보며 외롭게 죽어 가고 있다. 기름이 흐르는 음식들 달콤하게 유혹하는 술 냄새로도 외로움을 달랠 수는 없으며 화려한 샹들리에가 밤을 낮 같이 밝혀도 우리들의 지식은 삭막해지고 냄새나고 썩은 이야기들만 쌓여가고 있다. 우리들은 그렇게 사랑도 잃어버리고 낭만도 상실한 채 핏발 선 눈으로 밤새 컴퓨터 안을 검색하며 보내고 있다. 죽음을 향해 달려드는 하루살이처럼 술에 취하고 향락에 취하여 내일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돌아가자 그 시절로 돌아가자 가진 것이 적을지라도 조금은 불편할지라도 소박한 사랑과 낭만이 있고 우리의 추억들이 숨 쉬는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사는 엘리멜렉이라는 남자와 결혼하여 살았습니다. 자녀를 낳다 보니 아들만 둘을 낳았습니다. 이 가정에는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엘리멜렉은 그래도 그 지역의 유지요, 남들보다는 물질이 풍족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흉년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이끌고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갑니다. 갈 때는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많은 물건을 싣고 많은 돈을 가지고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모압에 가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가진 재물도 다 써버린 뒤 알거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남편 엘리멜렉은 아마 결혼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몸이 약하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는 이유는 아들을 낳자마자 그 아들의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큰 아들의 이름을 '말룐'이라고 했고, 둘째 아들의 이름을 '길룐'이라고 했는데... 말룐이란 뜻은 '병자'라는 뜻이고, 길룐이란 이름의 뜻은 '허약'이란 뜻입니다.  귀한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의 이름을 첫째는 병자라고 이름을 짓고, 둘째를 허약이라고 지은 것은 히브리 사람이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보는 대로 사실화합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이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고통 중에 그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괴로운 자식', '가엾은 자식', '고통 중에 낳은 자식'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오미는 두 아들의 이름을 '병자', '허약'이라고 지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쁜 마음에 두 아들들을 서둘러서 장가를 보냈습니다. 큰 아들은 '오르바'라고 하는 모압 처녀에게 장가를 보냈고, 둘째 아들은 '룻'이라는 모압 처녀에게 장가를 보냈습니다. 오르바는 '작은 사슴'이란 뜻이고 룻이라고 하는 뜻은 '선한 벗'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압 땅에 간 지 얼마 안 되어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설상가상으로 두 아들도 연달아 죽습니다. 그 이름 그대로.... 첫째 아들 병자는 비실비실하다가 병들어 죽고, 둘째 아들 허약이는 마르고 빈약하여 빌빌하더니 죽었다 할 것입니다. 결국 나오미와 두 자부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고향을 기억했습니다. 때마침, 고향의 소식을 들었는데, 그곳에 흉년이 그치고 풍년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치없고 부끄럽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무조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했습니다.  고향에 돌아갔을 때 마을 사람들이 알아보고 나오미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가 뭐라고 말합니까? 나오미는 기쁨이라는 뜻인데, 자기를 '나오미'(희락, 기쁨)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괴롭다, 쓰다)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것이 다 자신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겸손히 고백합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하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돌아오자 하나님은 그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염치없고 부끄럽지만.... 자존심을 버리고 용기를 내어 찾아 왔더니... 뜻밖에도 고향 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이합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며느리 룻이 이삭을 주우려 찾아간 곳이 신기하게도 나오미 가문을 위하여 기업을 무를 자인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기업을 무른다'는 말은.... 어떤 가문이 망하면 제일 가까운 친족이 책임을 지는 관습을 말합니다. 후손이 없으면 남은 여인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주고, 재산도 보상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보아스'라는 사람이 이 가문의 기업을 무를 사람인데, 마침 신앙도 좋고 큰 부자였습니다. 결국 이 보아스와 며느리 룻이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 쓰러진 가문이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니까, 온 동네 사람들이 따뜻이 맞아 줍니다. 도와줍니다. 살길이 열립니다. 기업을 되찾게 됩니다. 자손의 복을 받습니다. 복에 복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함께 축하해 줍니다. 입을 크게 벌리며 기뻐하는 나오미의 모습을 상상해 그려봅니다.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고향이 이렇게 좋은 것입니다. 성도의 고향은 출신 교회입니다. 신앙의 고향 모 교회에서도 서로 도와주며 함께 사는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하여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신앙을 회복하며 서로 축하하며 함께 기뻐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모두가 됩시다.

  돌아오게 하사 영원한 본향 천국의 소망과 기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팥죽 한 그릇에 에서의 장자권을 사서 이삭을 속여 축복을 받은 형 에서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집을 떠나 의지할 곳이 없게 된 야곱은 부모가 지정해 준 하란 땅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 에서에게 쫓기는 몸으로 거의 뛰다시피 해서 벧엘에 이르렀습니다. 야곱은 하란까지 가야 하는 머나먼 여행길에서 동반자도 없었고 쉴 곳도 없었습니다. 벧엘에 이른 야곱은 날이 어두워지자 한 곳에서 돌로 베개 삼아 들판에서 잠을 자면서 외롭고 슬픈 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 밤에 야곱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정든 집을 떠나 절박한 상황 속에 처해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꿈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외로움과 고뇌에 지쳐 있는 방랑자 야곱에게 하나님의 계시는 엄청난 위로와 기쁨이었습니다. 벧엘의 꿈의 내용은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사다리가 있었고 그 위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있었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의 미래를 보장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기업의 축복을 야곱에게 하셨고, 후손을 티끌처럼 많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야곱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의 편재하심과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하나님은 정한 장소 외에서도 어디서든지 나타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지배한 큰 감격의 순간이며 신앙적 독립의 순간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거처하는 곳으로 이곳을 하나님의 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베개 하였던 돌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자기 생애에 있어 잊을 수 없는 하나님에의 체험을 야곱은 이같이 기념하였던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보호와 일용품의 공급과 인도하심을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시리라고 확신하면서 참된 예배와 성전 건축과 십일조를 드리기로 서원하였습니다.(창 28:10-19). 그는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봉사하면서 자식과 많은 재산을 소유한 후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야곱이 하란에서 많은 부를 쌓았으나 그 곳은 영원한 거주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거기에는 이방인들의 시기와 질투만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야곱에게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얻을 곳이 가나안 뿐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택함 받은 자들의 영원한 소망은 하늘나라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해도 그 곳은 죄와 미움과 불신의 곳일 뿐이며 참된 평화와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야곱 귀향 사건은 영적 가나안인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삶의 목표를 확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향을 통하여 육신의 고향이 있음같이 영적인 고향 천국이 있음 을 교훈 받게 됩니다. 성도의 삶은 이 세상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의 삶은 그림자요, 나그네일 뿐입니다. 성도의 삶이 갖는 목적과 목표는 오직 영적 천국,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고향에 돌아옴 같이 장차는 천국 집에 가게 됩니다.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셀 병원에 한 세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존경받는 지성인이 폐수종으로 입원해 있는 한 달 동안 문자 그대로 발악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지를 아내에게도 묻지 못했고 아내조차도 그의 병명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소리치며 괴로워하고 있는 남편의 곁에서 위로조차 하지 못하고 지켜보아야만 했던 이 불쌍한 여인과 그 사람! 그런데 그 사람처럼 글로써 현대인에게 깊은 감동을 남긴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한 세기에 가장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말로였습니다. 1980년 4월 16일, 그는 입원한지 한 달 만에 병원에서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사르트르가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각 언론이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떤 독자가 한 신문사에 이런 기사를 투고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마도 비그리스도인 이었는지 모릅니다. 사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그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습니다.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디럭스바이불)
   
아프리카에서 일하던 어느 선교사님은 여러 해 동안 수많은 열정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배에는 휴가를 얻어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미국의 대통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되었을 때 은은하게 울리는 군악대들의 예포소리와 함께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부둣가에 나와 있었습니다. 배에서 대통령이 내려올 때 거기에는 붉은 주단이 깔렸고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맞이하였습니다. 대통령이 지나가자 붉은 주단은 걷히고 군악대의 나팔소리도 멎었습니다. 그 뒤를 선교사 홀로 고독하게 내려왔습니다. "사냥을 갔다 오는 대통령은 저렇게 환영을 받는데, 큰 아들과 둘째 아들 그리고 부인마저 잃고 선교를 하다가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환영객은 아무도 없구나"하는 생각으로, 고독감과 실패감을 느끼면서 정신없이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내 아들아! 네가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군악대의 나팔 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천군 천사의 나팔 소리와 함께 내가 맞이해 주마. 붉은 주단이 문제가 아니라 황금의 유리 길을 깔고 내가 친히 너를 마중 나오마. 사랑하는 아들아 끝까지 충성하라!" 이 말씀을 들은 선교사는 그동안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충성을 다하지 못했던 죄를 회개하고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충성을 다하였습니다.(예화뱅크-마지막 고향)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개천절 노래 가사의 첫 부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근본이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고향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
우리는 육의 근본인 고향과 가정이 있고 영의 근본인 신앙의 터전 되는 교회가 있습니다.

헨리 위드 비처는 "예수는 어떤 그림도 그리지 않았지만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걸작품들은 거의가 예수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다. 예수는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않았으나 단테, 밀턴 등 세계적으로 위대한 시인들도 그에게 감화를 받았다. 예수는 단 한 곡의 음악도 작곡하지 않았지만 하이든, 헨델, 베토벤, 바하, 멘델스존 같은 음악가들은 그를 칭송하려다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인간이 보여 준 위대함은 이 겸손한 나사렛 목수로 인하여 그 풍성함이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자라도록 도와 준 모 교회가 있습니다.  그 모 교회를 전주 동부 교회로 하는 수많은 심령이 있습니다. 여러 형편 처지를 따라 모 교회를 떠나 생활하는 심령들과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허락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 봉사와 사업과 직장 개인 사정 등 여러 가지 여건 속에서도 모 교회를 기억하고 함께 하기를 원하여 참여 하는 모든 이들이 아름다운 교제의 사간이 되고 선교의 장으로 발전하여 열매 맺고 종국적으로는 천국에서 만나냐 합니다.
장학일 목사님의 사모님이 임종 예배 까지 드린 상황에서 얼마후 깨어 나셨는데 그 동안 지옥 구경을 하셨는데 놀랍게도 지옥에 섬기는 교회의 권사님이 계시더랍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목사님에게 목회 똑바로 하라고 하시면서 우시시더랍니다. 천구에서 만나야 합니다. 

  모세는 마지막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사 회복의 은총 주시고 천국에 돌아오게 하사 천국의 가업으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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