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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이 꾸짖어 주셔야! (마 8: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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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꾸짖어 주셔야! (마8:3~27)

시작하는 말

시편119:21절에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를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꾸짖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gearah”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꾸짖다(to rebuke). 다시 증명하다. 타이르다. 바르게 잡아주다(to reprove)”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고 말했습니다.

교훈은 부드러운 꾸지람입니다. 책망은 강력한 꾸지람입니다. 바르게 함은 구부러진 것을 바로 잡아 주는 꾸지람입니다. 의로 교육하는 것은 곁길로 나가는 것을 바르게 가도록 일러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의 전부가 꾸지람입니다.

왜 꾸지람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한 사람으로 기르기 위해서 필요한 하나님의 조치입니다.

주님의 꾸지람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하와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동산 어슥한 곳에 가서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무슨 짓을 했으며, 어디에 숨었으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완전히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신 것은 죄에 대한 꾸지람을 하셔서 바로 잡아 주시기 위하심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꾸짖으실 때에 아담이 순수하고도 완전한 시인과 회개의 언급은 없지만 하나님의 꾸지람과 바로 잡아 주심에 대하여 순순히 순종했습니다.

아담은 자기에 주시는 하나님의 형벌(penalty)을 순순히 받아 들였습니다. 하와는 하와대로 하나님의 무거운 형벌(penalty)을 순순히 받아 들였습니다. 여인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도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징표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가죽옷도 받아 입었습니다. 아담은 930년 동안 땀 흘리고 수고하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어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묵묵히 여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추측컨대 아담보다 더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면 1.000살 이상 살았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결혼하여 최소한도 900년은 가정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연년생으로 낳았다면 900명의 자녀들은 낳았을 것입니다. 아담의 자녀들은 형제들, 사촌들, 삼촌조카끼리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지구상에는 아담의 자손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꾸지람을 순순히 받아 들여 여인의 후손 메시아 즉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인류 최초의 메시아인 즉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대로 땀 흘리고 수고하여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습니다. 손이 수고하고, 이마에 땀이 흐르는 만큼 소득이 있었습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아비와 정반대였습니다. 가인이 어느 날 들에 있을 때에 그의 아우 아벨을 시기하여 쳐 죽였습니다(창4:8). 부모의 죄의 결과가 자식들에게 서서히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가인을 부르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은 가인을 꾸짖으시고, 그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하심이셨습니다.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반항했습니다. 교회 안에는 현대판 가인이 엄청 많습니다. “내가 누구를 지키는 자니이까?, 왜 나를 보고 자꾸만 그러십니까?, 그가 나 때문에 실족했습니까?, 왜 나만 꾸짖습니까?”라고 반항하며 뉘우치는 기색이 전혀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반항하는 가인에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4:1012)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꾸지람을 달게 받지 않고 반항한 가인은 저주를 받아 손이 수고한대로 소득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의 자녀들은 부모보다 더 악하고 못난 것들만 태어나서 세상에 살인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에는 몇% 모자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차라리 기름부음을 받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름부음 받은 자 였습니다. 인간의 뜻대로 왕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8:7)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위 사울 왕은 하나님의 작품이 아닌 인간의 작품이었습니다. 인간의 작품은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작품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기름 부어 세운 사무엘을 도전했습니다(삼상13:8-14).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행동을 제사장 직을 침해한 단순한 행동으로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통치사역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도전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지 않았습니다(삼상15:11). 하나님의 작은 말씀은 지키는 척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후회시켰습니다.

하나님보다 백성을 두려워했습니다(삼상15:24). ➄사울의 마음속에 악신이 출입했습니다(삼상17:10). ➅엔돌에 귀신 점쟁이 여자를 찾아 갔습니다(삼상28:8-14). ➆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다윗을 잡으려고 끝까지 따라 다녔습니다(삼상18:1-30:30).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사울의 손에 붙이지 않으시고, 사울을 다윗의 손에 붙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생명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길보아 전투에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길보아에서 불레셋과의 전투에서 적군의 활에 맞아 자기의 칼을 세우고 그 위에 엎드러져 최후를 마쳤습니다. 하나님의 꾸지람을 거역한 자의 최후입니다.

다윗이나,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꾸지람을 달게 받고, 즉시 받고 바로 시정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역사상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흡족한 사람이었고, 히스기야는 그가 기도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다 들어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이 대적을 꾸짖어 주셔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대적이 많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원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산을 옮길만한 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린아이 같이 약하고, 어린양 같이 단순하고, 고아와 같은 우리가 막아 낸다는 것은 역부족입니다.

원수마귀를 꾸짖어 주셔야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원수요, 교회의 원수이며, 우리들의 원수입니다. 원수마귀는 두루 다닙니다. 에덴동산으로, 광야교회로, 물 없는 사막으로, 무덤가로 두루 다니면서 자기의 희생제물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모세의 시체까지도 탐을 내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시체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에 우상과 비슷하게 만들어 장난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천사장 미가엘은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유1:9)라고 말했습니다.

모기는 모기향으로 물리치고, 파리는 파리약으로 몰아 낼 수 있습니다. 사탄과 악령은 주님의 능력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몰아 낼 수 있습니다. 사탄도 하나님께는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간질을 일으키는 귀신(마17:18), 벙어리 되고 귀먹게 하는 귀신(막9:25), 정신 이상을 일으키는 귀신들( 마8:28-34)을 주님이 꾸짖으실 때에 물러갔습니다.

우환을 꾸짖어 주셔야 합니다. 세상에는 우환질고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한질고에 시달립니다. 주님이 꾸짖어 주실 때에 물러갑니다. 주님이 시몬의 장모의 집에 들어가셔서 열병을 꾸짖으실 때에 열병이 물러갔습니다(눅4:38-39).

환난을 꾸짖어 주셔야 합니다. 역사상 욥만큼 큰 환난을 당한 자도 많지 않습니다. 사탄의 역사로 욥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지독한 환난 속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반역하지는 않았습니다. 끝내는 욥이 친구들을 위하여 축복하고, 티끌과 재가운데서 회개할 때에 하나님은 욥의 곤경(환난)을 꾸짖으셨습니다. 욥의 환난은 지루한 공방을 거듭하다가 결국은 물러갔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바다의 물결로 인하여 무서워 떨고 있는 제자들의 믿음 없는 것을 먼저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다와 물결을 꾸짖으실 때에 “아주 잔잔하게”되었습니다. 

끝맺는 말

아이들 일에는 어른이 나서야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일에는 신이 나서셔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일에는 그리스도가 나서셔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하나님이 나서셔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잡동사니들을 꾸짖으주시면 은총과 평안이 옵니다.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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