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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희락의 열매, 환난과 시험 중에도 (롬 5:1-6, 갈 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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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저의 가정에는 언제나 과일이 풍성하도록 축복해주셔서 참 감사하고 있습니다. 가을은 열매가 가득합니다. 나는 이 9월에  과일이 풍성하듯이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한 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지난주일 아침 우리는 첫 번째로 ‘사랑의 열매’를 나누었습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이유와 어떻게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한 주간 동안 사랑의 열매를 얼마나 맺으셨습니까?

오늘은 성령 충만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할 희락의 열매에 대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희락, 이는 기쁘고 즐거워함을 말합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즐거움과 기쁨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에덴이 기쁨입니다. 천국이 기쁨입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인하여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은 먼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하였으며 11절에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화평을 누리고 기쁨을 누리는 특권을 얻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성도들이 누려야 할 성령의 열매로의 희락 그것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돈과 권력과 세상 것으로 기뻐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2절

믿는 자는 하나님과 화평을 즐기면서 멀리 미래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주 별미를 먹는다 해도 미래가 불투명하고 보장이 안 되면 기쁠 수가 없습니다.
내일을 지향하는 축복이 없다면 오늘의 축복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하늘나라의 큰 축복과 약속된 영광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고 기쁨과 즐거움이 영원하고 충만한 천국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영원히 누릴 곳은 저 천국입니다. 저 천국을 바라보면서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3절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은 환난이 있고 시련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함을 얻었다면 그 환난과 시련가운데서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그리고 연단은 더 좋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앎이 중요합니다. 알기 때문에 즐거워합니다.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1) 환난이 인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환난이란 히랍어로 드립시스라고 합니다. 드리보 라는 동사 ‘누른다’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압축하는 것이지요. 어떤 일로 여러분이 눌리고 압박을 받을 때 그것은 인내력을 배양해주는 것으로 아주 귀한 것입니다. 어떤 장애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힘을 배양해주는 것이라면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인내력 없는 사람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인내는 견디어내는 힘만이 아니라 어려운 난관을 헤치고 나가는 힘입니다. 그래서 환난은 그 귀한 인내를 생산하는 고마운 어머니입니다. 환난이 우리에게 보배로운 인내를 낳아준다면 환난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승리에 이르게 하는 돌다리와 같습니다.
마치 우리를 파괴하려고 찾아온 환난이 어느덧 우리에게 건설의 열쇠가 되어줍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이렇게 전합니다.
(약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시험과 환난은 선택 옵션이 아닙니다. 필수입니다.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        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왜 그렇습니까?
(벧전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2) 환난은 또한 연단을 가져온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연단이란 쇠붙이를 불속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 망치로 때리는 것을 말합니다.
강철은 이렇게 때려서 만드는 것입니다. 그냥 굽기만 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때려서 만드는 것입니다. 많이 맞은 쇠가 강하고 굳은 쇠가 되는 것입니다.

욥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를 연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환난을 통해서 찌꺼기가 떨어져 나갑니다. 우리는 아직도 덜 떨어진 딱지가 있습니다. 몇 번이고 때려서 그것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것이 연단입니다. 그러기에 그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

3) 환난은 소망을 이룬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환난을 통해서 미래적 내세적 신앙과 참된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통계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자살하는 확률을 적습니다. 대개는 부자가 자살합니다. 잘 사는 선진국국민이 자살률이 높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자살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자살을 본래가 사치한 것입니다. 끈질긴 소망도 역시 환난을 통해서 만들어 지기 때문입니다. 환난 중에라야 무엇을 믿고 어디에 소망을 둘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환난은 더 큰 소망 온전한 소망으로 이끌어 줍니다. 그래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베토벤이나 차이코프스키 모두 자살직전 까지 간 시련을 딛고 일어서 베토벤은 월광곡을, 차이코프스키는 비창을 작곡합니다. 평안한 곳에서는 불후의 명작이 나오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화평을 누리고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고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인위적으로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령 충만으로 만 가능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예수님도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성도의 기쁨을 여인의 해산에다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요16:20-24)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특징을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1) 그 기쁨은 반드시 빼앗길 수 없는 기쁨입니다.
2) 그 기쁨은 반드시 고통을 삼켜버린 기쁨입니다.
3) 그 기쁨은 반드시 고통 다음에 오는 기쁨입니다.

인생의 고통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열매를 희락의 열매라고 합니다.
이 기쁨의 열매를 소망하지 않으십니까?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면 이제 성령으로 충만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이 희락의 열매는 바로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유병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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