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요일 3:1-3)

  • 잡초 잡초
  • 293
  • 0

첨부 1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나는 우연도 아니고 제품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위대한 걸작품이다!”  목적을 바로 알고 목적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발은 목적이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목적이 있는 사람과 목적이 없는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나를 창조한 다섯 가지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배와 교재와 훈련과 사역과 사명입니다.  이 다섯 가지의 목적에 따라서 우리가 지음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목적은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창조되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까?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할 때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창조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노아입니다.  노아는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미소 짓게 했습니까?  노아는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으며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러분들도 노아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순종하고 감사의 예배를 드리므로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여서 노아가 받았던 놀라운 축복을 받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의 중심은 내가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드리는 것이 예배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친구로 삼아주셨습니다.  친구는 나이도 비슷하고 고향도 같고 직위도 비슷하고 학벌도 비슷한 사람이 친구가 되어지는데 우리와는 너무나도 극심한 차이가 나는 하나님이 나를 향해서 친구하자고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는 감격해야하고 하나님과의 우정을 쌓아 나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우정이 두터워질 수 있겠습니까?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하나님의 관심과 같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여섯 번째는 하나님만을 앙망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나님과의 우정이 더욱 더 두터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여섯 가지를 잘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지는 우정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하나님의 비밀한 것까지 보여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숨기는 것 없이 알려주시고 책임져주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어줄 수 있는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살아가다보면 예배드리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던 일이 잘 안될 때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때로는 존재마저 의심 되는 때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맑은 하늘에 구름이 끼면 태양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태양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구름이 끼면 태양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태양은 그 자리에 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우리의 삶에 근심의 구름이끼고 시험의 구름이끼고 재앙의 구름이끼어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멀리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그 장소에 동일하게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는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하며 지금도 내 곁을 지키고 계심을 믿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쏟아놓으신 그 하나의 사랑만을 가지고도 우리는 영원토록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해야하는 존재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면서 살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신앙만은 세상에서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비가 온다고 예배에 한번 빠진들 어떠하리, 오늘 너무 급한 일이 있는데 한번 빠진들 어떠하리, 몸이 찌뿌둥한데 한번 쉬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예배에 생명을 걸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신앙의 생명이고 신앙은 삶의 생명입니다.  우리의 삶의 구심점이 신앙이고 신앙의 구심점이 예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가 흔들리면 우리의 신앙도 따라서 흔들리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면 우리의 생활도 따라서 흔들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규모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이 바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가 바로 서게 되면 우리의 신앙이 바로 설수 있습니다.  이제 예배주간을 마감하면서 내 평생 하나님 앞에 예배를 잘 드리리라!  세상의 모든 것은 실패할지라도 예배만은 성공하리라! 고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일 낮 예배만 드리지 말고 오후예배도 드리세요.  오늘 오후 예배 때도 교재 주간에 적합한 강사를 모시고 예배를 드릴 예정입니다.  강사님의 간증을 듣고 여러분도 각자 가정에 돌아가셔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요예배는 지난주부터 성령집회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별생각 없이 맹숭맹숭하게 드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뜨겁게 기도해서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만 믿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수요예배시간에 계속해서 성령집회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오셔서 성령 충만함을 제대로 받아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인생이 달라지고 신앙이 달라집니다.  “아, 이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것이구나!” 하면서 깨닫게 될 줄 믿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창조의 목적을 잘 감당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창조의 목적을 잘 감다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면 가정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 세 가지가 열린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쁘면 웃으시면서 입이 열립니다.  입이 열리면 마음이 열립니다.  마음이 열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축복하십니까?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 라고 축복하셨던 아브라함의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마음이 열리면 주머니가 열리고 창고가 열립니다.  하나님의 창고에 있는 것을 마음껏 가져다가 쓸 수 있는 축복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만 해보세요.  요즘 아이들이 하는 말중에 “끝내준다!” 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서 솔로몬에게 주시는, 노아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서 누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주간에 이러한 말씀들을 나누어보았습니다.  이제 예배주간은 끝났습니다.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당의 앞자리는 황금자리입니다.  은혜의 자리입니다.  뒤에만 계시지 말고 앞자리로 나오셔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모하고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만나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적극적인 예배를 드리리라!  나는 평생 예배에 실패하지 아니하리라! 다짐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의 자녀됨의 축복

오늘부터 시작되는 두 번째 주간의 목적은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사랑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가 책임 질 수 있는 한주간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번 한주간도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면 여러분들의 가정이 회복되어지게 됩니다.  참여하시고 그대로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실천해보면 사랑하지 않던 부부가 사랑하게 되어지고 사랑하지 않았던 자녀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방법까지도 교제의 기간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으니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교제를 해 보십시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들은 형제요, 자매들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모습의 가족도 있고 저런 모습의 가족도 있지만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는 것 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어떤 가정은 많이 배우고 사랑도 넘치고 책임감도 있고 물질도 풍부한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가정은 경제력도 없고 배운 것도 없으면서 자녀를 구타하고 낳아놓고도 전혀 돌보지 아니하는 책임감 없는 부모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자라나게 되면 인생의 출발이 늦어집니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서 성장하게 되면 그만큼 좋은 인생의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출발이 인생 전체의 행복을 가지고 온다는는 말이 아닙니다.  불우한 환경의 자녀들보다는 훨씬 더 좋은 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출발이 좋으면 얼마나 신이 나고 좋은지 모릅니다.  이와 같이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이 참으로 좋은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서 나는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나는 자녀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주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고, 또 내가 좋은 부모가 되지 못했어도 하나님 한분만 만나면 그 모든 것을 다 만회할 수 있는 축복이 생기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어도 하나님만 잘 만나면 그때부터 행복한 삶을 통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하나님입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분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두 가지의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만 가지고 있는 속성이 있고, 다른 하나는 우리도 가지고 있고 하나님도 가지고 있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신학적으로 말하면 비공유적인 속성과 공유적인 속성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떠올리면 어떤 것이 생각납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다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전능함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어느 정도로 전능하십니까?  천지를 지으실 만큼 전능하십니다.  천지를 소유하신 부자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둘째로는 전지하신 하나님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생활과 더불어 생각까지도 모두 알고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세 번째로는 어디든지 계시는 편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네 번째로는 늘 변함이 없으신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비공유적인 속성입니다.  다같이 정리해 보면서 외우도록 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 편재하신 하나님, 불변하시는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인 이러한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내 아버지이십니다. 

이런 분이 내 아버지라고 한다면 문제될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이런 아버지인 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믿지 않고 남의 집 아버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제는 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확실히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행복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또 어떻게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하면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혈통을 타고 나야만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혈통을 타고나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피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영이기 때문에 피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피가 없기 때문에 피 있는 하나님으로 오신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님의 피를 믿고 수혈을 받아야만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목수가 많은 물건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책상도 만들고 의자도 만들고 아주 많은 물건을 만듭니다.  그런데 그 목수가 완성된 의자를 놓고, 완성된 책상을 놓고 “너는 내 자식이다.  아유, 내 아들아!” 하면서 정을 주는 목수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가 만들었다고 해서 자식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혈통으로 태어나야만 자식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만물을 다 만드시고 지금도 65억의 인구가 살고 있지만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아닙니다.  피 흘려서 깨끗하게 씻은, 예수님의 피를 수혈 받은 사람만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법.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믿는 것은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접하는 것과 믿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을 믿으면 그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영접한 후에는 내 마음속에 누가 계시겠습니까?  예수님이 계십니다.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신 그 사람,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가슴에 지니고 있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가 찬송을 부르던 것처럼 울어도 안되고 눈물 많이 흘려도 안됩니다.  참아도 안되고 힘써도 안됩니다.  말과 뜻과 행실이 깨끗해도 안됩니다.  단 한 가지 믿으면 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돈으로도 안되고 권세로도 안되고 지식으로도 안되고 교회를 수십년을 다녀도 안됩니다.  그러나 믿는 그 순간에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예수님의 피를 믿어야 합니다.  나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같은 죄인을 그대로 두면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를 지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서 귀하고 귀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 예수님에게 나의 모든 죄를 다 뒤집어씌웠습니다.  전가시켰습니다.  그리고 내 대신 십자가에서 죽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전에 심한 채찍에 맞아서 인사불성이 되었습니다.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푹 쓰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얼굴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양손과 양발에 박은 그 못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대못이 아닙니다.  어른 손가락의 두 세배나 되는 말뚝 같은 못으로 박았으니 피가 얼마나 흘렀겠습니까?  옆구리를 찌른 창을 통해서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까지도 남김없이 다 쏟아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 예수가 너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너희의 죄 때문에 이렇게 피 흘려 죽었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너를 내 자녀로 삼아주마!” 라고 하나님은 이렇게 객관적으로 만들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때문에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었다는 사실을 그대로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에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배로운 피가 강물이 되어서 여러분들의 가슴속으로 흘러들어간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먹보다 더 검은 우리의 죄악들이 흰 눈 보다도 더 깨끗하게 희게 되어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와 계신 것입니다.  그때에 성령님께서 내 마음속에 오셔서 “너는 하나님의 자녀야!  이제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단다!” 하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증거 하시고 하나님께서 “너는 내가 기뻐하는 자녀야, 너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야, 너는 내가 기뻐하는 딸이야!” 하면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이 사랑에 응답해서 우리도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축복을 허락받게 된 것입니다.  이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은 세상에 없습니다.  가장 큰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자녀가 된 우리가 한 믿음으로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없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으로 됩니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영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으면 됩니까?  예수님의 피를 믿으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우리의 죄는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영광스러운 축복을 누리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한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교제를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없음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러분은 예수님이 믿어지십니까?  입으로 시인하여서 구원에 이른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정말 믿어지십니까?  예수님이 내 죄를 씻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내 대신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이 사실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믿음도 “내가 꼭 믿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누구한테 배워서, 설득되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요나 시몬아!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 여러분이 믿어지게 된 것은 혈육이 아닙니다.  유산으로 받아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고 배워서 된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믿게 해 주셔서 믿으시게 된 줄 믿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아무개야 네가 복이 있도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면서 공포하는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세례는 마치 결혼식과 같습니다.  결혼식에는 많은 사람을 초청합니다.  “이분은 내 남편이요, 내 아내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손대지 마세요.  나는 이 사람의 아내요, 남편입니다!”  이렇게 공포를 합니다.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도 많은 사람들을 초청해서 하는 것이지 숨어서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제 예수님의 소유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나는 천국백성입니다!” 이렇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세례를 받지 않고서도 신앙생활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안하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소속감이 없어서 원활한 교제가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반드시 세례를 받아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잘 교제해서 아름다운 공동체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 자녀의 복

이토록 귀하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자녀에게 오는 권세와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이 복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0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자녀삼아주신 이유는 깨든지 자든지 함께 살기위해서 죽으시고 자녀 삼아주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자녀를 낳으면 그 자녀가 혼자 살아가도록 버려둡니까?  그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부모는 눈을 떼지 않습니다.  안고, 업고 다니며 돌보지 절대 혼자 두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자녀인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습니다.  깨든지 자든지 항상 함께 생활하십니다.  육신을 가진 예수님께서 수많은 자녀들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성령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고, 그분이 바로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우리와 깨든지 자든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지난주 수요일 예배시간을 통해서도 보혜사 성령님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보혜사를 원어로는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ς) 라고 합니다.  “곁에 부름 받은 자!” 라고 해석을 합니다.  보혜사를 한자로 말하면 도울 보(保)입니다.  돕는 분이고 은혜 은(恩)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가르치는 사(師) 가르치는 스승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혜사를 조금 더 체계적으로 말하면 보혜사는 돕는 자(Help) 라고 할 수 입니다.  그리고 상담자(counselor) 이기도 합니다.  또 위로자(comforter) 이기도하며, 변호자(Spork Man)) 이기도 합니다.  가르치는 자(teacher)입니다.  이와 같이 보혜사는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기 위해서 내 곁에 보내진 자입니다.  성령님이 내 곁에서 해주는 일은 돕는 자, 상담자, 위로 자, 변호 자, 가르치는 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십니다.  즉 성령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를 상담해주기 위해서이고 때로는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이고 때로는 우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이며 우리가 말 못할 상황에 처하면 변호를 해주시기 위해서 우리 곁에 와 계시는 분인데 이분은 파워가 아니고 힘도 아니고 그분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 성령 하나님이 내 곁에서 깨든지 자든지 나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혼자 앉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옆에 성령 하나님이 늘 계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고 요청하면 언제든지 도와주기 위해서 대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내 곁에 부름 받아 계시는 분께 도움을 청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보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도움이 필요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상담이 필요할 때,  잘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늘 성령님께 물어보아서 충분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자녀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은 부모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자든지 깨든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기 위해서 성령 하나님이 지금도 와 계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 웨슬리는 감리교를 창시한 분이고, 유명한 신학자이며, 선교사이고, 부흥사이고, 저술가입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임종할 때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에게도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이런 귀한 축복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든지 깨든지 무엇을 하든지 영원토록 보혜사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신 줄 믿고 어려움이 있으면 기도로서 하나님께 요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두 번째로 요한일서 3장 1절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누구와 같다고 했습니까?  그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과 같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은 비록 병들기도 하고 늙기도 하며 쇠하기도 합니다.  피곤하기도 하며 때로는 장애를 입은 몸을 가지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눈이 작아서 때로는 키가 작다는 자기의 외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장차 우리는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장차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신령한 몸을 입으시고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도 만져볼 수도 있고 식사를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습니다.  장차 우리가 예수님의 몸과 꼭 같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는 아버지를 닮도록 되어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부모를 어떻게 그리도 똑같이 닮는지 신기해 할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데 우리의 노력으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홀연히 우리를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시켜주게 될 것입니다.

배추밭에 가면 꼬물꼬물하기도 하고 털도 나 있고 만지려면 아주 징그러운 배추벌레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벌레가 어느 날 허물을 벗고 나면 노랑나비가 됩니다.  나비야 나비야 하면서 어린아이들은 그 나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이 땅에 살아갈 때 우리의 몸은 마치 배추밭에 있는 배추벌레와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홀연히 변화 시킬 때 황홀한 변화가 우리에게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같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날을 모두 기대하십시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땅에는 눈물나고 고통스러운 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아파서 병원에 한번 가면 나보다 더 많이 아파서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예비해놓으신 나라는 아픈 것도 없고 눈물도 없으며 사망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 흐르는 눈물을 우리 주님께서 다 알아서 닦아주시고 씻어주시며 “날 위해서 눈물 많이 흘렸지?  날 위해서 헌신 많이 했지?  그런데도 억울한 일까지 당하게 되었지?  내가 다 알고 있단다!”  하시면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안아주시는 이런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자녀가 형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울면서 다가오면 엄마는 형이 잘못한 것을 엄마는 다 알고 있단다.  하면서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해주면 동생은 마음이 풀어지고 울음을 그치는 것처럼 우리의 주님도 이렇게 우리를 안아주시고 위로하시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실 줄 믿습니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슬픔도 없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승리만 있네, 고통은 모두 다 사라져버리고 영광만 가득하겠네, 우리의 주님과 함께 있을 때는 영원한 기쁨만 있겠네.’  영원한 기쁨만 있고 슬픔이 없는 그 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살게 될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4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이 땅에서 행한 대로 다 갚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상급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흘러가는 냇물을 그대로 두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서 물 한 그릇을 떠 주면 그것까지도 상 주셔서 다 갚아주시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짜가 하나도 없습니다.  행한대로 다 값아 주십니다. 주님을 위해서 땀흘리고 봉사하고, 드리면 찬물 한 그릇까지라도 상급으로 다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주실 때 거져 주십니까?  누릅니다. 흔듭니다. 넘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친 소년을 보세요.  아주 볼품없는 점심 도시락이었지만 그것을 다 드렸더니 자기가 쫄쫄 굶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축사하고 떼어 주시니까 자기는 훨씬 더 많이 먹었 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예수님도 대접하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 열두 광주리를 누구를 주었겠습니까?  아마 소년의 집에 메어다 주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는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예수님이 배를 빌려 달라고 할 때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기분 나쁘다고 빌려주지 않았다면 참 볼품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께 배를 드렸더니 말씀을 다 하시고 난 다음에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그 말씀대로 따라 했더니 두배나 많은 고기를 잡고 그것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따라 나선 것 아니겠습니까?  공짜는 없습니다.  배를 빌려주신 것 마저도 주님이 다 갚이 주신 것입니다.

사렙다 여인을 보십시오. 마지막 먹고 죽을 빵 한 덩어리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엘리야에게 드렸더니 그 혹독한 흉년가운데서도 기름병과 밀가루 항아리가 마르지 아니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이 땅에서 주님께 드린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갚아 주십니다. 내가 하늘나라 돈 가지고, 수표가지고 현금가지고 못가지만 가지고 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주를 위해 쓰는 그 순간에 하나님 나라에 들여 놓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늘에서 상급 받을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의 상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별것도 아니고 나중에는 알아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영원한 상입니다.  그것만이 진짜 상이 되는데 그것을 하늘나라에서 받아서 누릴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8장 17절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후사가 무엇입니까? 후사는 상속자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후사라고 되어있는데 새로 나오는 성경 개역개정판에는 상속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상속자는 부모의 상속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우리가 이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기록했기 때문에 우리말로 썼습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다니는 길을 황금 길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도 잘 사는 사람 록펠러, 빌 게이츠라고해도 황금 길로 다닌다는 말을 들어보았습니까?  우리말로 표현하니 황금 길이지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예비해 두시고 열두 진주문을 다니고 생명수 강가에서 물을 마시고 양편에 있는 과일들을 먹어서 배고프지 아니하고 영원한 기쁨만 있는 곳, 그곳이 하나님이 자녀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곳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나라를 상속받을 줄 믿습니다.  썩지 아니하고, 더럽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축복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됨의 축복이 얼마나 큰가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이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는 순교자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 그날을 위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힘들고 짜증나고 병들고 어려워도 그 나라를 바라보면 우리는 웃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믿어지면 저에게 오십시오. 안믿어진다고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만은 확인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나 때문에 흘려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녀의 확신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 준비된 영육간의 축복을 받아서 괜히 웃음이 나오고 괜히 마음이 뜨거워지고, 흥분되어져서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 주님께서 나와 늘 함께 하시는 축복과 기도하면 응답되는 축복을 늘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교제하는 사랑하는 아름다운 교제 생활을 할 수 있는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성진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