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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군데서 들려오는 전도 요청 (행 1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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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 이러라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니 세계 인구를 100명으로 축소해 놓으면 그중 20명은 영양실조요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인데 1명은 지금태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15명은 비만입니다. 80명은 적정수준 이하의 주거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이 마을의 모든 富 가운데 6명이 59%를 가졌고 그들은 모두 미국사람입니다. 또 74명이 39%를 차지하고 겨우 2%만을 20명이 나눠가졌습니다. 자가용을 가진 사람은 100명중 7명안에 드는 부자입니다.
100명중 단 1명이 대학교육을 받았고 2명은 컴퓨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14명은 글도 읽지 못합니다.
또 100명중 57명은 아시아인, 21명은 유럽인, 14명은 서구(미주)인, 8명은 아프리카인이고 52명은 여자, 48명은 남자, 70명은 유색인종, 30명은 백인, 70명은 비기독교인, 30명은 기독교인 그리고 그 100명중 11명은 동성애자랍니다.

이 글을 읽다가 내가 복 받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집에 살고 먹을 것이 충분하고 자가용 있고 그리고 거기다 컴퓨터까지 가지고 있으니 선택받은 사람이며 굉장한 엘리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 세상에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나를 먼저 사랑하사 이런 복을 주셨을까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잘나서도 아니고 내가 남들보다 더 뛰어 나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나에게, 우리에게 이와 같은 은혜를 주셨을까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서입니다. 나를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계획이 있어서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요한복음1:7에는 세례요한을 먼저 보내신 것은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하시려고 했다고 했습니다. 요12:11에는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 한 사람 때문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하셨습니다. 요4장에서는 주님은 수가성 샘물 곁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여 동네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그와 같이 오늘 우리도 우리 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먼저 예수를 믿은 나 한사람을 통해 우리 주님은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는데 사용하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우리를 향해서 전도하라고 외치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누가 우리를 향해 전도하라고 부를까요?

1. 우리 속으로부터의 부름이 있습니다.

우리 속에서 우리에게 전도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네가 지금 그렇게 있으면 안 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마치 베드로와 요한이 핍박 자들 앞에서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노라”고 외쳤던 것은 그들 속에 거하신 성령이 말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그 여인이 물동이를 내팽개치고 동네로 뛰어 들어가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보라”외쳤던 그 여인처럼 우리를 가만히 앉아 있게 못하는 그 뭔가가 속으로부터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성령의 외치심입니다.

우리 속에 거하신 성령은 우리를 향해 외치십니다. “가서 전하라, 가서 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 외치십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이 주의 사자의 명령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갑니다.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갔는데 그곳에 가니 에티오피아 내시 한 사람이 병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두루마리 성경을 읽으면서 갑니다. 그때 성령이 말하십니다.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분명 성령이 요구하신 것입니다.
빌립은 순종했고 다가가서 말을 겁니다. “읽는 것이 뭔 이야기인지 깨닫습니까?” 그러자 그 내시가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깨닫겠느냐 합니다. 그래서 빌립이 그 병거로 올라타 같이 가면서 이사야 성경에 나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결국 그는 가는 그 길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까지 받고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할렐루야!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속으로부터 말하시면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어디를 가는데 옆자리에 모르는 사람이 앉았습니까? 그때 성령께서 요구하실 것입니다. “네가 먼저 말하라, 네가 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그 음성이 속으로부터 들려오거든 그것이 성령의 요청인줄 알고 주저 말고 복음을 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제가 외국에 나갈 때 제 옆 좌석에 모르는 사람이 앉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제게 감동을 주십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말을 제가 먼저 겁니다. 그러다가 기회를 봐서 복음을 전합니다. 

항상 이런 부름이 있지는 않습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내속에서 성령이 나를 뜨겁게 합니다. 그냥 앉아 있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때 즉각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여러분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놀랍게 들어 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령은 지금도 여러분 속에 거하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러분이 복을 전하는 일을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속으로부터의 부르심을 외면하거나 거절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2. 밖으로부터의 부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속, 우리 안으로부터의 부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부터의 부름도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세요.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이상하리만큼 길이 막히고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길이 막혔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의 길을 막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울이 밤에 환상가운데서 마게도냐 사람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 사람이 바울에게 외칩니다.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세요.”그때 바울이 그것이 하나님이 저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시는 줄 깨닫고 아시아에서의 사역을 접고 배를 타고 마게도냐, 즉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건너간 곳이 빌립보였습니다.

그곳에 가서 강가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루디아를 만납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 문을 열어 복음 받아 들이게 하십니다. 결국 그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되고 그 집에서 교회를 시작하게 됩니다.
또 점치는 귀신들린 여인을 고쳐주었다가 주인이 고소하는 바람에 감옥에 갑니다. 그 감옥 안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 가족이 다 예수를 믿게 됩니다. 할렐루야!
그때 바울이 말한 유명한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사도행전16장 31절입니다.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할렐루야, 그 말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 믿어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결국 온가족이 구원을 받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부르심에 순종하였더니 귀신들린 자가 해방되고 전혀 예상치 못한 간수와 가족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 마게도냐 사람 한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온 유럽에 복음이 전해지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수많은 백성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밖으로부터 요청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도와주세요.” 하는 소리를 수없이 많이 듣게 됩니다.
바울은 환상 속에 마게도냐 사람 한사람의 요청을 받았으나 오늘 우리는 환상이 아닌 “실제 살아있는 사람”을 통해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저는 외국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요청을 받습니다. “우리 좀 가르쳐 주세요. 우리 좀 도와주세요.”
외국의 교회 지도자들이 저에게 부탁합니다. 우리도 좀 가르쳐 주세요. 젊은 청년들도 가르쳐야 하지만 우리도 좀 가르쳐 주세요. 그들이 요청합니다. 그들뿐만 아닙니다. 저 서쪽 끝의 S에서도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 남쪽 G에서도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 요청을 거절 할 수 있습니까? 그때 그들에게 제가 약속을 했습니다. 내가 직접 여기저기 다니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우리 학교 학생들을 길러서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지난번 S지역 공장에서 수백 명이 예수를 영접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저와 우리 교회를 크게 들어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귀에 그 외침이 들려오기를 축원합니다. 

3. 위로부터의 부름이 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해 외칩니다. 마태복음28장19~20절에서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게 너희에게 명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하셨고  마가복음16장15절에서 “너희는 온천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분뿐만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를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 계신 분들, 우리 믿음의 선배들, 가족들, 그리고 우리교회에서 믿음 생활하다가 먼저 떠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곳에 우리 남무선 집사님이 계실 것이고 또 김인순 권사님도 계실 것이고 그리고 여러분의 부모님이 계실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면 무슨 말을 하실까요? 예수 잘 믿고 천국에 오거라 할 것입니다.

또 그들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분들이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면 이것입니다.
“최 목사님, 부지런히 복음 전해 주시요. 여기 천국에 와보니 정말 좋습니다.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내 가족, 내 친구들에게 열심히 전해주시오.” 이것이 먼저가신 분들의 공통된 소원이요, 요청일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이 우리를 향해 외치는 그 요청을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천국에 기쁨을 누리면서 믿지 않는 가족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우리에게 간곡하게 부탁할 것입니다.

그 요청이 여러분 귀에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아마도 자식들 대학을 가느냐! 못 가느냐를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좋은 아파트를 샀느냐 못 샀느냐를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관심사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느냐 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먼저 구원 받은 우리는 누구나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주위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아래로부터의 부름입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16장에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집 대문에서 구걸하던 사람을 구박하며 인색하게 살던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대문 밖의 거지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지는 천국에 갔습니다. 예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는 불행하게도 예수를 믿지 않아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그 부자가 지옥 음부에서 고통가운데 살면서 하늘나라를 보니 자기 집 대문에 걸식하던 거지가 아브라함 품에 안겨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아브라함에게 부탁을 합니다.
눅16:24“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얼마나 고통이 심하면 그렇게 호소할까요?

그때 아브라함이 가로되
25절:“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하십니다.
26절:“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천국에서 지옥은 갈 수도 없고 건너 올수도 없다고 하십니다. 안된다고 거절 하십니다.

그러자 그 부자가 간절히 호소합니다.
27~28“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전도의 관심이 없을지 모르나 지옥의 사람들은 엄청난 관심이 있습니다. 자기들은 알지 못하여 지옥에 왔고 들지 못하여, 또는 믿지 않아 지옥에 왔지만 자기 가족, 자기 자녀, 자기 형제들은 오지 말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의 요청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호소는 심각합니다. 자기들이 겪어보니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니 제발 나사를 살려 보내서라도 여기 고통 받는 곳에 형제들이 오지 않게 하소서 라며 호소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마도 지옥에 간 모든 사람들의 호소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죽은 자가 살아날지라도 권함을 받지 않을 것이다.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가 있으니 저들에게 들을지니라.” 하십니다.
모세와 선지자는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믿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나서 지옥이 있다고 아무리 전해주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았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는 방법이 믿음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가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까? 그렇다면 그분들은 우리를 향해 학수고대할 것입니다. 나는 몰라서 이곳에 왔으나 너희들은 예수 잘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거라. 제발 제사상이나 차리는 우상 숭배하지 말고 하나님을 똑바로 섬기다가 하나님 앞에서 생명의 면류관, 상급의 면류관 써라.
이것이 그분들의 간절한 소원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네 군데서 들려오는 전도요청의 소리를 들으십니까? 그 간절한 소리를 외면치 마시고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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