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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는 기도 공동체입니다! (약 5: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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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란?

성도 여러분, 교회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교회를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천로역정』을 지은 존 번연은 교회를 “아름다운 궁전”이라고 했습니다. 이 험하고 힘든 인생길을 지나 마지막에 도착할 천국과 같이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라는 뜻이지요. 1,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사람들은 교회를 ‘투쟁하는 교회’ 혹은 ‘군대’라고 말했습니다. 전쟁을 겪었기 때문이고, 또 사단과의 영적인 전쟁을 벌이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노동자는 교회를 “휴식장소”라고 말했습니다. 힘든 노동과 같은 세상살이를 잠시 멈추고 쉬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를 “병원”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의 전도자요 사회사업가인 하천풍언(가가와도요히코)은 교회를 “목욕탕”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죄로 더러워진 사람들, 삶의 때로 찌든 사람들이 와서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겨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여러분의 생각을 하나 더하신다면, 여러분은 교회를 무엇이라고 부르고 싶습니까?

성경도 교회에 대해서 많은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포도원”입니다. 주님이 주인 되신 포도원이 교회이고, 저와 여러분은 거기에 심겨진 포도나무들입니다. 교회에 대한 또 하나의 상징은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영적인 이스라엘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교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데요. 오늘 본문은 교회를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2. 기도공동체

오늘 본문의 구조는 그 대답이 동일한 세 가지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오늘 본문의 첫 번째 질문은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입니다(13).

① 야고보서 당시의 신자들은 많은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고대 교회 사가인 유세비오스의 글을 통하여 그것을 아주 생상하게 알 수 있습니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때, 테바이(더베)의 순교자들이 받은 고난과 형벌은 아무리 설명한대도 다 할 수 없는 정도였다. 그들은 갈구리가 아니라 조개껍질로 살을 도려낸바 되어 살해되었다. 여인들은 한 다리를 꺾이고, 옷을 벗긴 후, 알몸 그대로 높은 곳에 매달려 구경거리가 되었다. 또 어떤 이들은 일부러 만든 도구, 즉 나무 가지 중 가장 센 것들을 한꺼번에 휘게 하여, 그 하나하나에 손발을 결박한 후, 그것을 일시에 놓음으로써, 반동으로 손발이 찢어져 죽은 신자도 있었다. 이러한 일은 수일간이나 잠시 동안 행해진 것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행해졌다. 하루에 10인이나 20인, 또는 30인 이하인 날은 없었고, 60인이나 100인의 남자들이 다양한 형벌의 언도를 받고,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같은 날 피살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는 신자들에게 선고가 내려지기가 무섭게 다른 신자들이 재판관 앞으로 달려 나가 자기도 그리스도인임을 용감하게 고백했다. 그리고 기쁨으로 죽음의 선고를 받아 들였다.”

이러한 역사 자료가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이 말하는 “고난”은 상당히 심각하고 살벌한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유대인들로부터 당한 고난에다가, 로마 정부와 시민들로부터 받은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심각하고 살벌한 고난의 현장에 있는 성도가 우선적으로 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은 “저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이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든지, 반정부단체를 만든다든지, 비밀결사조직을 만든다든지, 로마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제3국으로 탈출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이번 중보기도 세미나에 가서 너무나 많은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가운데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한 번 따라해 보실까요?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엄청난 고난 속에서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성도들에게 성경이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미래 사회를 보여준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영화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 영화에 보면, 사방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날렵하게 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실제가 아니고 컴퓨터가 만든 것이지만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기도가 바로 우리에게 날아오는 세상의 온갖 공격들을 피할 수 있는 무기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온갖 시련과 고난으로 어려우신가요?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그 고난이 여러분을 비켜가고, 여러분은 고난을 넘어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② 오늘 본문이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기도하라”고 명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기도하라는 뜻이지만, 사실은 성도와 교회가 함께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김 목사’라는 이가 있습니다. 이 김 목사에게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이 있습니다. 힘든 유학생활도 어려웠지만, 아들이 더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그 사모가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죽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겠습니까? 그런데 이 분이 아들의 병에 대해 알았을 때, 그는 자신의 가족들이나 저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김 목사의 어머니를 비롯한 다섯 형제 전 가족들이 하루에 한 끼씩 금식하며 아이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김 목사의 아들을 위하여 전 가족들이 함께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과 같이, 아픈 손자 아픈 조카를 위해 고모들과 작은 아빠와 사촌들이 기도하는 것처럼, 우리 교회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말은 지금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의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라는 질문은 다른 말로 하면 ‘고난을 당하면서도 교회에게 기도를 부탁하지 않는 사람이 있느냐’는 뜻입니다.

여러분께서 고난과 어려움으로부터 신속히 벗어나기를 원하신다면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어려움을 말해주면 들은 사람이 기도함으로써 여러분의 문제가 신속히 해결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가 홀로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겠지만, 성도들에게, 교회에게 자신의 사정을 말하고 함께 기도하면 반드시 들어주시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서로 기도 제목을 나누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오늘 본문의 두 번째 질문은 “(너희 중에)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 기쁨이 넘치는 사람 …. 이런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유명한 일본의 기독교 문학가인 미우라 아야코 여사는 그의 책 『하늘의 사다리』중에서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1964년 7월 6일, 그날까지도 나는 기쁜 날에 하는 기도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몰랐다. 그날은 내가 응모한 소설 <빙점>이 입선되었다는 전화가 왔던 날이다. 그날은 내 생애에 있어서 좀처럼 일어날 수 없는 환희의 날이었다.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을 때에 나는 곧 남편인 미우라에게 입선 소식을 전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은 시간에 돌아온 미우라는 곧바로 나를 이층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나를 꿇어앉게 하고는 기도드리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기도였다. 그러고 나서 미우라는 나에게 ‘천만 엔의 상금을 받고 유명하게 되면 인간 바보가 되기 쉽지요.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때 참으로 많은 분들에게서 축하 인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오늘, 아직도 분명하게 마음에 새겨진 것은 남편 미우라가 말했던 ‘바보가 되기 쉽지요’라는 말과 정성들여 나를 위해 기도해 주던 모습이다. … 인생의 위기는 사실 기쁜 일이 있을 때에 오는 것이 아닐까? 어려울 때보다도 오히려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에 있는 것이 아닐까? 옛날부터 ‘험한 길에서 넘어지는 사람은 적다. 오히려 사람은 평탄한 길에서 넘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때 만일 미우라가 다만 ‘수고했다. 우선 한 잔 할까?’고 말했다면, 나는 그때 그 커다란 기쁨을 과연 차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때 미우라는 내가 우쭐할 것을 경계하여 받은 상금을 자기를 위해서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쓸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주었다. 마음이 기뻐서 들떠 있을 때야말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도해야만 하는 것을 나는 정말 알게 되었다.”

어려울 때 신앙적으로 실패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좋을 때, 모든 것이 잘 풀릴 때, 행복할 때, 실패하는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은 좋은 일이 있을 때 마냥 먼저 즐거워하기보다도 가장 먼저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나아가 좋은 일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성도들과 나누고 성도들과 함께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좋은 일을 혼자서 간직하지 말고, 그래서 그것이 지나쳐서 신앙을 그르치게 되지 못하도록, 그것을 나누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같이하라는 말입니다. 성도가 즐거움에 지나쳐 실족하는 것을 방치해 두는 것도 우리에게는 허용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이 있는 성도, 감사 제목이 있는 성도를 보거든, “아이고 복도 많지!”하고 부러워도 마시고, 질투도 마시고, 더더욱 함께 박수도 치지 마시고, 그를 위하여 기도해 주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오늘 본문의 세 번째 질문은 첫 번째의 고난과는 조금 다른 경우입니다. 첫 번째의 고난이 성도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말하는 것이었다면, 세 번째 말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으로서 당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사람 때문에 힘들고, 자녀나 부모 때문에 힘들고, 돈이나 직장이나 사업 때문에 힘들고, 건강 때문에 힘든 우리 인생사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이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라고 묻는 것은 특별한 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경우만이 아니라, 불의의 사고, 예기치 못했던 불행이나 어려움, 뜻하지 않던 질병을 만난 모든 경우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형편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성경은 먼저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고 명령합니다. “교회의 장로들”이란 누구를 말합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처음에는 “장로”로, 다음에는 “의인”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교회의 직분자들로서 감독이나 초대 교회 7집사 같은 신앙의 지도자들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의인”, 즉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깨어있는 신실한 성도를 말합니다. 경건함으로 인하여 칭찬을 듣는 성도를 말합니다.

갑작스런 인생의 어려움을 당한 사람은 이와 같이 교회의 지도자들, 영적으로 깨어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나아가 교회에게 기도를 부탁하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주님은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로 새로운 가족이 되게 만들었으며, 이 새로운 가족이 그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병이라는 엄청난 고난을 당한 성도, 갑작스런 인생의 어려움과 위기를 만난 성도는 당연히 교회와 함께 기도해야합니다.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사르밧의 한 과부는 자신의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야에게 호소했습니다. 엘리야는 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그 아들을 살렸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는 사람들이 병든 사람을 침대와 요 위에 누인 채로 베드로에게 나아갔다가 그 사람을 고쳐서 돌아갔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병든 성도가 있으면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14)”해야 합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반드시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성도는 다른 성도들을 위하여, 특히 병든 교우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서로를 위해 기도할 책임을 가진 자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성경은 성도가 서로 병 낫기를 기도하는 것은 그 병든 자를 구원한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교회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사람을 고치시리라는 것입니다.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면 주님께서 그를 고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어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3. 성도의 기도에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세 가지 경우를 당했을 때 온 교회가 합심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한 뒤에, 그 약속과 기도에 대해서 결정적인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16절 하반절,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이것은 하나님 앞에 정결하고 경건하게 사는 성도를 말하는 말씀입니다만, 크게 보면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온 교회가 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통하여 역사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엘리야의 기도가 인용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엘리야가 저나 여러분과 별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엘리야라고 특별한 사람, 그래서 기도에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엘리야의 기도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즉 교회를 위한 기도였고, 하나님은 교회를 위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위한 기도, 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것은 그만큼 위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옆에 있는 분에게 이렇게 말해 봅시다. “오늘 제 옆에 잘 앉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앉은 이유는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제가 성도님을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제 기도에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우리는 힘없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통하여 역사하실 것입니다. 다 같이 따라 합시다. “내 기도에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교회가 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필리핀의 빈민촌으로 선교를 갔습니다. 선교단들이 빈민촌 사역을 하는 어느 현지인 목사님의 공동체를 방문했습니다. 거기에 약 20여명의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손으로 돌리는 “재봉틀”한 대를 중심으로 걸레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버는 돈으로 어른들은 3일에 한 끼, 자라는 아이들은 이틀에 한 끼를 먹고 산다고 했습니다. 만약 재봉틀이 몇 대만 더 있다면, 또 기계 재봉틀이라면 이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조금 더 숨통이 트일 것 같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선교 팀 가운데 한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 귀국하는 길에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선물을 사 갈려고 가져왔던 미화 300 달러를 헌금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말을 현지인 목사님에게 했더니 그 목사님이 그 자리에서 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간 목사님이 “왜 우냐?”고 했더니, 그 목사님의 말씀은 이랬습니다.
“너무 너무 가난한 우리 교인들에게 만약 기계 재봉틀 3대만 더 있으면, 하루에 최소한 한 끼는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제가 3달 전부터 ‘기계 재봉틀 3대만 달라’고 기도해 왔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이 말은 들은 목사님도, 함께 간 교인들도 전부 울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성도의 기도, 교회의 기도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기도, 교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는 것입니다.

4.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주는 성도

사랑하는 신광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는 기도 공동체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신광교회가 기도공동체로서 그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를 묻고 있습니까? 즉 성도의 고난, 기쁨, 병이나 사고나 환난을 위해 온 교회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이 되어서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교회로서, 성도로서 우리가 만약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비록 서로에게 손가락을 걸고 굳은 맹세를 하면서 약속은 못할지라도, 말로 나타낼 수 없고, 눈으로 울어 줄 수 없고, 또 행동으로 보여줄 수는 없어도,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할 수는 있습니다.

“저는 성도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성도인 이유, 신광교회 교인인 이유입니다. 앞으로 성도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제부터 교회는 곧 기도공동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가슴에 되새기면서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결코 쉬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또 기도 가운데 여러분 자신에게도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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