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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디로 가리이까? (삼하 2:1-11, 골 3:5-11, 마 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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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에 우리네 살림살이가 좀 나아져서 가족 끼리나 또는 다른 사람들과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식당에 들어가면서부터 “빨리 빨리”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뭘 좀 달라고 시켜놓고도 조금만 늦어지면 온통 성화가 불벼락입니다.

제가 첫 번 성지 순례 갔을 때 겪은 일인데 우리는 식당에 가서 식사도 후닥닥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듯이 끝내지만 식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오다 보면 후식 먹고 가라고 다시 불러들입니다. 그래서 외국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우리 말 가운데 하나가 “빨리 빨리”입니다.

이집트에 갔을 때 현지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그때 우리나라 건설 회사들이 그곳에서 건축을 하는데 얼마나 속전속결로 일을 빨리 해버리는지 자고 나면 집이 하나 생겼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쪽 사람들의 사정은 어떠합니까? 예배당 하나 건축하는데 수 십 년, 심지어는 수 백 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예배당 같이 돌로 된 건물들은 세월이 흐르면 떼가 끼게 되는데 건물 외벽 청소를 하는데 한 쪽 면을 청소하고 다른 쪽을 하고나면 먼저 청소 한 것은 이미 떼가 낄 정도라고 합니다. 절대로 급하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빨리빨리 습성은 예배 때도 나타납니다. 보통 우리 주일 예배가 한 시간 소요됩니다.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만큼은 아무 구애받지 말고 넉넉하게 드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배 시간에는 핸드폰을 꺼놓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 급한지 예배시간이 다소 늦어진다 싶으면 연방 시계를 들여다봅니다. 설교자나 예배 인도자에게 속히 끝내 달라는 무언의 압력입니다. 이런 것은 꼭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배시간일지라도 진득하게 견디지 못하는 우리의 “빨리빨리” 습성, 또는 “빨리빨리” 문화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느리게 살자”는 말이 등장하였습니다. 이것은 “빨리 빨리”가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폐해 때문입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영성을 키우려면 이런 빠른 템포의 삶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고 명상하는 일은 후닥닥 빨리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앙생활은 하루아침에 해결을 보듯이 그렇게 쉽게 성취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좁은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새벽시간에 아가서를 상고할 때 “포도원을 허는 여우”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조급함”이라고 말씀 드린바가 있습니다. 다른 산짐승들도 그렇지만 이 여우란 놈은 열매가 맺히기도 전에 꽃부터 먹어치우고, 열매가 익기도 전에 신 포도를 따먹습니다. 그래서 포도원을 망쳐놓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조급한 마음이 교회 공동체나 가정 공동체를 허물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도 부부가 행복한 삶을 누리려고 하면 이 조급함을 극복하고 오래 참는데 그 비결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때 마귀가 제시한 것은 쉬운 길 빠른 길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내게 엎드려 절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주리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라”. 등의 유혹은 단지 한 순간이 아니라 예수님 생애를 통틀어 따라다닌 유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빠른 길 쉬운 길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우직하게 십자가를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서야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신앙생활 할 때 세속적인 방법대로 쉬운 길, 빠른 길이 만능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울면서 씨를 뿌리고 땀 흘리며 가꾸는 수고를 통해서만 신앙의 열매에도 기쁨으로 참여하게 될 줄 믿습니다.

2. 오늘 사무엘하 본문을 보십시오. 1절에 “그 후에”라고 했습니다. 다윗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그렇게 뒤좇아 다니던 사울이 다윗 자기 손이 아니라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말하자면 권력의 공백기간입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사후 소위 서울의 봄이었던 80년대는 권력의 공백기간이었을 때 군인들이 재빨리 정권을 탈취한 것과도 같은 그런 형편입니다. 마찬가지로 권력의 공백기간에는 누군가 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그만큼 유리합니다. 지금이야말로 다윗에게 있어서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부은 후 얼마나 오래 기다려온 세월입니까? 이때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어야만 했습니까? 죽을 뻔 한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제 마침내 기회가 왔습니다. 말하자면 다 차려놓은 밥상과 같아서 수저 들고 먹기만 하면 되는 그런 형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제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다윗은 조급하게 서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다윗의 믿음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는 아무리 발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작은 것이라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다윗인들 왜 마음이 급하지 않겠습니까? 이날을 기다리면서 다윗과 생사를 같이 해 온 그 공동체들의 성화가 오죽했겠습니까? 그래도 다윗은 자기 생각이나 주변의 충동에 의하여 조급하게 서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다윗이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삼하2:1에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라고 했습니다. 요새 쉽게 번역한 성경들을 보면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기도드렸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먼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동지를 규합하거나 의논하는 일을 먼저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하나님”, 이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여기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승리를 주실 줄 믿습니다.

다윗은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가운데 “기도 만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기도하여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도 자체에 주술적인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100세를 바라보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대 하나님은 “나에게 능치 못할 일이 있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아직 미혼이었던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게 될 것이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너무 놀라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과 연결될 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그 뜻을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주시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모든 여건이 다 갖추어진 현실인데도 하나님께 기도해서 “올라갈까요 말까요?”하고 묻습니다. 이것이 느리게 사는 모습입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 삶입니다.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입니다. 이런 다윗에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십니다. “올라가라”. 하나님의 결재가 났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속히 잠을 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답답하게도 다윗은 또 꾸물거립니다. “어디로 갈까요?”. 마치 옛날 어린이들이 부르던 노래가사 같습니다.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요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헤브론으로 가라”고 지시하십니다. 왜 하필 헤브론입니까? 만일 사울이 죽었다고 해서 다윗이 성급하게 “이제 내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니 나를 따르라”고 한다면 북쪽 사람들의 엄청난 저항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하게 됩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 매어서 쓸 수 없습니다.

헤브론은 이스라엘 남단에 있는 도시입니다. 다윗이 속한 유다 지파에 속한 땅입니다. 먼저 거기서 자기 지파부터 결속하고, 자기 지파로부터 인정받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대뜸 “땅 끝으로 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뜻대로 하여 먼저 유대 지파의 왕이 됩니다. 거기서 7년 반을 다스리게 됩니다. 앞으로 온 이스라엘을 통일하기 위한 견습기간이 필요했습니다. 왕으로서 통치 기술도 익힐 필요가 있었습니다. 참고 기다리면서 북쪽 사람들까지 받아들일 준비기간이 필요했습니다. 과거 도피자 생활 할 때도 그랬지만 다윗에게 있어서 이 7년 반을 기다린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에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도 있듯이 급한 마음에 경솔하게 서둘렀다가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다윗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다윗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아름다운 성전에서 예배드릴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조급함 때문에 잘못된 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반면에 우리가 참고 견디고 기다렸기 때문에 이루어낸 것은 또 얼마나 훌륭합니까? 만일 성도 여러분이 지난날 조급하게 서둘기만 했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참고, 견디고, 기다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놀라운 성취와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일이 다 끝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 시작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옮기기도 전부터 이미 우리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 뭡니까?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것도 바꾸고 저것도 하자는 것입니다. 옳습니다. 이제 우리는 많은 것을 시도해야할 여건을 마련했습니다. 당연히 많은 변화를 기대해야 하고 또 시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급하면 실패합니다. 조급하게 서둘게 되면 부작용이 나타나게 됩니다. 현실은 아직 거리가 먼데 의욕이 너무 앞서 달리려고 하면 소리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힘을 모아 기도할 때 입니다. 여기 우리에게 새로운 장을 마련해 주신 주님을 뜻을 살피기 위하여,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 힘을 모으기 위하여 기도할 때입니다. 다윗처럼 “올라가리이까?” “어디로 가리이까?”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일은 먼저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은 다윗처럼 7년을 기다려야 할 일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마음과 힘을 모으면 하나님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지시해 주시고, 감당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오늘 삼하2: 본문에서 기도하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고 성급하게 서두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8절 이하에 사울의 군 사령관 아브넬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사울의 집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하여 그 뜻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비록 유다 지파의 왕으로 기름부음 받았지만 그 작은 행위 속에 장차 이 당에 보내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싹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이미 실패한 사울의 뒤를 기어이 이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들 끼리 왕을 세우고 다윗을 대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떠난 어떤 계획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전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다윗처럼 먼저 일에 모두 동참해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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