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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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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돌리기를 잘하는 광대가 있었습니다. 그는 시장에서 접시를 돌리며 사람들이 던져 주는 동전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수도사가 안타깝게 바라보았습니다. "여보게, 나와 함께 수도원에 가서 살도록 하세. 잠도 재워 주고 먹을 것도 주겠네". 광대는 수도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끼니 걱정을 안하고 사는 광대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광대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찾아왔습니다. 기뻐하는 것입니다. 수도사는 무엇이 광대를 기쁘게 하였을까 궁금하여 따라가 보았습니다. 자루를 둘러멘 광대가 예배실로 갑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앞에 섭니다. 자루에서 막대기와 접시를 꺼내며 그가 말합니다. "예수님, 접시돌리기를 보여 드릴께요!" 광대는 접시를 돌리며 즐거워합니다. 그때 수도사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더니 광대와 함께 춤을 추시는 것입니다. 광대는 날마다 예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과 안식으로 그의 기쁨을 회복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은 한평생 힘겨운 짐과 함께 살아갑니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나름대로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갑니다. 누구도 인생의 짐을 대신 져줄 수 없습니다. 스스로 짐을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 28절을 통해 예수께서 해결의 길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기에서 '내가' 를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안식을 주신다' 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안식이 되신다' 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의 평안이요, 우리의 안식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 내게로 오라' 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께 오는 자들에게 평안과 안식을 약속하여 주십니다. 다같이 찬송가 478장을 부릅니다.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 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키시리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주 날개 밑 즐거워라 그 사랑 끊을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주 날개 밑 나의 피난처 되니 거기서 쉬기를 원하노라 세상이 나를 못 위로 해주나 거기서 평화를 누리리라. 주 날개 밑 참된 기쁨이 있네 고달픈 세상길 가는 동안 나 거기 숨어 돌보심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리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는 은혜를 얻으려면,

첫째로 그리스도의 초청에 응해야 합니다

KFC 창업자는 커넬 샌더스(Colonel Harland Sanders)입니다. 하는 사업마다 망한 절망감과 아들마저 잃은 충격으로 65세에 정신병을 앓게 됩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목숨을 끊기로 결심하고 밤늦게 집을 나섭니다. 그때 어디선가 찬송이 들려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소리를 따라 가보니 한 늙은 부인이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끓어 앉아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곳에도 계시는군요. 평생 예수님 없이 돈을 벌려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멀리 떠난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기도 드리는 손이 떨렸습니다.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한참 동안 울며 회개의 기도를 하다가 커넬은 정신이 맑아짐을 느꼈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진한 결과 정신병이 완전히 나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이 후로 그는 진실된 크리스천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닭고기를 만들어 팔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그 길로 KFC(Kentucky Fried Chicken)라는 이름으로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판매를 시작하였는데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74세가 되던 1964년에는,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하여 600개 이상의 엄청난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돈보다 예수님을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번 돈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왔으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비로 수익금의 많은 부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 전역을 다니며 자기의 삶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신 살아 계신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걱정과 근심, 실패와 좌절 속에 살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에 응함으로 안식을 얻어 성공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께 나가는 자는 누구나 안식을 얻습니다. 오늘도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찬송을 통해 부르십니다. 말씀을 통해 부르십니다. 기도를 통해 부르십니다. 누구든 예수의 초청에 응답하는 자는 평안을 얻습니다. 본래 인생은 죄 중에서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속 죄를 범함으로 사망에 이르는 존재입니다. 이런 고통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역은 인생의 모든 고통에서 해방과 안식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주시는 안식은 누구나 값없이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에 응하기만 하면 받게 됩니다. 이 시간 예수께서 주시는 영원한 안식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께 나오십시오. 초청에 응답하십시오. 그리하여 예수께서 베푸시는 참된 평안과 안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국경을 접한 상태에서 계속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두 나라가 있습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칠레입니다. 두 나라는 1899년 국경분쟁으로 전쟁이 일어날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양국의 종교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 호소하였습니다. "양국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전쟁과 증오는 후손들에게 피와 살상을 유산으로 물려줄 뿐입니다" 국민들은 양국 지도자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대포를 녹여 양국의 국경인 안데스산맥에 그리스도의 동상을 세우고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겨 놓았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을 하나로 만드시느니라." 두 나라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평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본문 29절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멍에이기도 합니다. 여기의 온유함은 무력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온유는 '프라테스' 라는 히랍어로서 '잘 길들여 진 상태' 를 의미합니다. 강하고 능력이 있지만 철저히 순종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온유는 하나님의 길들이심을 통하여 하나님만 의지하며 잘 따르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하게 될수록 짐은 더 가벼워지고 쉬워집니다. 또 하나의 마음은 겸손입니다. 예수님의 멍에 아래 들어가는 데 겸손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는 하늘 영광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겸비하게 오셨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사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감수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멍에 아래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도 스스로 낮추고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무거운 짐과 수고로운 일들로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인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시고 끊임없이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때로는 시험과 환란을 통하여 우리를 깨뜨리기도 하십니다. 그러기에 신앙의 연조에 따라 그리스도의 마음인 온유와 겸손을 배울 수록 더 깊은 평안과 안식을 얻게 됩니다. 부디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움으로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는 뚱뚱하고 한쪽 다리마저 약간 짧아 절뚝거렸습니다. 남성 중심의 직장에서 유일한 여직원으로 매일 편견과 싸워야 자기 몫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칼리의 절뚝이는 모습을 보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등뒤에서 비웃기도 했고, 어떤 이는 그녀의 얼굴도 보기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비웃는 사람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칼리는 승진을 거듭하여 1999년 마침내 세계 IT업계의 거인이었던 HP(Hewlett Packard)의 신임 CEO가 되었습니다. 800대 1 이라는 엄청난 경쟁률 끝에 여자가 선정된 것은 당시의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칼리(Carly)는 자신의 힘든 멍에를 주님의 멍에로 바꾼 것입니다. 그녀는 30절의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는 말씀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자신의 어렵고 힘든 멍에를 주님이 주시는 가볍고 쉬운 멍에로 전환시킴으로 안식을 얻고 성공하게 된 것입니다.

참 안식은 수고를 안하고 짐을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수고를 바꾸고 멍에를 바꾸어 메는 것입니다. 멍에를 집어던지는 것이 아니라 쉬운 멍에로 바꾸어 메는 것입니다. 여기에 율법과 은혜의 차이가 있고 복종과 감사의 차이가 있습니다. 무거운 짐이지만 예수로 말미암은 은혜로 가볍게 지는 것입니다. 복종하는 입장에서 신앙생활은 힘겨운 멍에지만 감사하는 상태에서는 편한 멍에가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떤 짐이라도 가볍게 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안식을 원하는 자는 무거운 짐을 벗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사랑으로 멍에를 메는 자입니다. 세상은 짐을 벗는 것을 안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멍에를 메라고 가르칩니다. 사람들이 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멍에를 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게 되고 그 죄가 평안과 안식을 다 빼앗아 가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안식은 하나님과 함께 멍에를 멜 때 찾아옵니다.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y)가 55세가 되었을 때 '신앙론' 이란 책에서 고백합니다. "55년을 살아오는 동안 15년의 소년기를 제외하고는 안식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안식을 알지 못하고 살아 왔습니다. 18세 되던 해에는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친구의 말에 설득되어 기독교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내 나이 55세, 이제 나는 내가 버린 어머니의 품과 같은 신앙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 왔습니다. 비로소 예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발견했습니다."

진정한 평안을 원하십니까? 참된 안식을 바라십니까? 그러나 아직도 힘든 삶을 살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초청에 속히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멍에를 기쁨으로 메어 참된 평안과 안식의 삶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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