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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기도하라(3) : 하나님 나라와 뜻을 이루소서 (마 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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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주기도문

오늘 주보광고에 나온 것처럼 저는 이번 주간 서울 명성교회에서 열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 참석합니다. 해마다 총회에 수많은 안건이 상정됩니다만 작년 제90회 총회에 주기도문을 다시 번역하자는 안건이 상정되었다가 연기되어 다시 올해 제91회 총회에 다루어질 예정입니다. 도대체 주기도문이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다시 번역하자고 하는 것일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 이번 총회에 상정될 주기도문 개정문을 읽어드립니다. 현재 사용하는 주기도문과 무엇이 다른지 비교해 보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전체적으로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자세히 보면 내용이 상당히 다릅니다. 오늘은 시간상 소개만 하고 자세한 설명은 주기도문강해 맨 마지막 시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기도문을 새로 번역해야 한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주기도문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날식 말투가 많고, 부분적으로 잘못된 번역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새로운 번역이 총회에 통과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워낙 오랫동안 외워왔기에 조금 이상하더라도 그냥 쓰자는 의견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새 주기도문이 통과되면 모두가 주기도문을 새로 외워야 합니다. 상당히 힘들겠지요? 하지만 저는 아무리 힘들고 혼란스럽더라도 제대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이나 옛말을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인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를 함께 살펴봅시다.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주기도문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간구가 있다고 지난주에 설명한 바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위한 간구와 우리 자신을 위한 간구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을 위한 간구는 ①'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②'나라이 임하옵시며' ③'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세 가지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이미 지난주에 설명을 드렸고, 오늘은 '나라이 임하옵시며'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를 설명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말을 문법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초등학교 1학년짜리도 이 '나라이'라는 말이 문법적으로 잘못된 것을 알 것입니다. 현대국어에서 주격조사를 붙일 때 '가'와 '이'를 쓰는데 앞에 나오는 주어에 받침이 있으면 '이'가 붙지만('사람이') 받침이 없으면 '가'가 붙습니다('우리가'). 하지만 옛 우리말에는 이런 구분이 없이 모두 '이'만 썼기 때문에 이렇게 '나라이'라는 이상한 말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오늘날 문법에 맞게 '나라가'로 고쳐야 합니다.

그러면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말의 뜻을 생각해 봅시다. 먼저 '나라'라는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이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일까요? 사회시간에 나라, 즉 국가란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고 배웁니다. '영토,' '국민,' '주권'입니다. 국가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한 영토, 즉 땅이 있어야 하고, 또 국민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영토가 넓어도 국민이 없으면 국가가 아니고, 반대로 아무리 국민이 많아도 영토가 없으면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토도 있고 국민도 있는데 또 한 가지 '주권'이 없으면 국가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엄밀한 의미에서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영토도 있고 국민도 있는데 왜 국가가 아니었는가? 주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36년간 우리의 주권이 일본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어 국가나 나라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 나라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토와 국민, 주권이 존재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나라'라고 하면 이 세 가지를 다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이들에게는 땅이 없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비로소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제 국민도 있고 영토도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한 가지, 주권 즉 통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울로부터 다윗, 솔로몬에 이르는 왕이 생기고 이 왕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비로소 이스라엘은 제대로 된 국가를 이룬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주권이 왕권, 즉 왕이 다스리는 '통치'의 개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주기도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시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즉, 하나님의 나라는 위에서 말한 영토, 국민, 주권(혹은 통치) 개념 중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요?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중세시대에는 하나님 나라를 영토 개념으로 생각해서 피 흘리며 전쟁을 해서라도 다른 나라를 점령해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잘못된 해석이지요. 그런데 오늘날에도 하나님 나라를 영토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생각을 담은 말이 '천국'입니다. 천국(天國)이란 말 그대로 하늘나라인데, 이 천국이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면 하나님 나라가 저 하늘 어디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천국은 하늘 어디엔가 있고 지옥은 땅속 깊은 곳 어디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천국이나 지옥이 하늘이나 땅이라는 어떤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영토 개념이 아니라 주권, 통치의 개념입니다. 즉 누가 주권을 가지고 다스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헌법에 보면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국가입니다.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民主) 나라, 국민에게 주권이 있고 국민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국민이 아닌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직접 다스리고 통치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모든 영어성경은 이 '나라'를 'nation'이나 'state'로 번역하지 않고 'kingdom' 즉 왕국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하늘 어디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요 하나님 나라입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찬송가 495장 가사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주기도문에서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소서'라는 뜻이며 이 말을 다시 풀어보면 '하나님이 다스려 주소서'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 습관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외우면 마태복음 6:7의 '중언부언'하는 기도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항상 매일 새벽기도회 때나 어떤 예배 때 암송하더라도 그 뜻을 깊이 생각하며 내 신앙으로 고백하면서 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고 암송할 때면 늘 내 마음 속에 이런 고백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지금 내 마음에 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 자신을 천국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과 사업,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지금 내 가정에 임하시고 내 사업과 직장과 교회에 임하셔서 친히 다스려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이 모두를 다스려주셔야 그곳이 천국이 되고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고 내 가정의 주인이 가장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그곳이 하나님 나라,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이 주인 되기를 포기하고 그 주인 자리를 하나님께 기꺼이 내어드리며 하나님 뜻대로 다스려달라고 고백하는 기도가 바로 '나라이 임하옵시며'인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다음으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입니다. 누구의 뜻입니까?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간구인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은 주기도문의 맨 처음 내용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의 하늘입니다. 또한 방금 전 부분에 나온 '나라'와도 같은 개념입니다. 즉 하늘나라, 천국,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라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나라, 하나님 나라에서 이룬 것 같이'라는 뜻입니다. 하늘나라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라고 했지요?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다스리시는 곳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려지는 것처럼 땅도 하나님 뜻대로 다스리게 되라는 간구인 것입니다.

여기서 '땅'은 '하늘'과 대조되는 의미로 '이 세상'을 뜻합니다. 문제는 이 땅에서, 이 세상에서는 아직 하나님의 뜻이 하늘나라처럼 하나님 나라처럼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교회를 통해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세상의 대부분이 하나님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복음화율을 보면 2005년 현재 전국에서 복음화율이 제일 높은 전라남도 신안군은 35.1%이고 전라북도는 26.3%, 서울시는 22.8%인데 반해 제주도는 7.2%이고 경상남도는 8.6%에 불과한데 아무래도 미신이나 불교의 힘이 세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경상북도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상북도의 2005년 현재 복음화율은 11.6%입니다. 아주 낮은 복음화율인데 그 중에 특이하게도 울릉도는 31.7%로 엄청나게 높고 우리가 사는 포항도 14.7%로 꽤 높은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숫자로만 치면 포항시는 교회 348개, 교인 7만 1676명으로 경상북도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할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복음화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항에서 신앙생활 하는 우리로서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수치로 보면 지금 포항의 14.7%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스리심을 받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있지만 아직 85.3%라는 대다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포항시민 51만 명 중 7만 명 정도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44만 명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직 이 땅의 극히 일부분에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항이 이 정도 숫자면 잘 믿는 것이라고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교회가 이만하면 많은 숫자가 믿는 것이라고, 우리 가족이 거의 다 믿는다고 해서 절대 안심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포항의 온 시민이 다 구원받는 날까지 전도의 사명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교회가 차고 넘쳐서 이 지역을 완전 복음화 하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전도하고, 우리 가족 100%가 예수 믿는 날까지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나라와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문제는 이 주기도문의 내용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입니다. 결론은 이미 앞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주인 자리를 하나님께 내드리고 그분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전적으로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길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나 자신의 주인노릇을 하려고 들면 절대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못하고 뜻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며칠 전 적지 않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 나온 지 1년 채 안된 새신자들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분이 아니라 여러분입니다. 그 분들 말로는 우리 교회가 여전히 새신자들이 정착하기 참 힘든 교회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교회 문턱이 높고 그 문턱을 겨우 넘어 들어오더라도 "내가 효자교회 식구다"라고 느낄 때까지는 더 높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정말 적응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교회가 참 많이 변했는데, 이만하면 옛날보다 정말 문턱 낮아졌는데, 저 분이 옛날과 비교해보지 못해서 저런 소리 하나보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곧 제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얘야, 아직 멀었다." 그렇습니다. 물론 우리가 옛날보다는 참 좋아졌습니다. 옛날에는 교회 문턱도 높고, 새신자가 와도 환영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더군다나 그들이 '내 가족'으로 정착하기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에 문턱도 낮아지고 분위기도 참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문턱은 다른 교회보다 높고, 더군다나 그들이 "내가 이제 효자교회 가족이다"라고 느끼기까지는 정말 많은 장벽들이 놓여 있습니다. 다만 그 장벽을 효자교회 오래 다닌 우리는 잘 못 느끼고 새로 온 분들은 많이 느끼는 것뿐입니다. 어떤 분들은 "목사님, 제가 효자교회 5년 다녔는데도 아직 새신자 취급 받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얘야, 아직 멀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여전히 우리는 새신자 중심의 교회가 아닙니다. 오래 된 사람끼리 너무 친하고 좋아서 우리끼리는 정말 재미있게 잘 지내지만 그 울타리에 새신자들이 들어오기는 너무 힘듭니다. 구역도 남선교회 여전도회도 마찬가지로 오래된 사람끼리 편합니다. "아니, 누가 못 들어오게 했나? 들어오면 되지..."하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내가 그 울타리를 완전히 무너뜨리기 전에는 들어오기 힘듭니다. 울타리를 없애기에는 그동안 우리는 그 속에서 너무 친하고 편하게 지내왔습니다. 이 울타리 치는 데 꽤 공도 들였는데 이제 와서 무너뜨리려니 아깝기도 하고 아쉽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아쉬움마저 포기하고 기꺼이 우리의 모든 울타리를 부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동안 수많은 새신자가 우리 교회 앞문으로 들어왔지만 남은 사람보다 뒷문으로 빠져나간 사람이 더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태신자 운동이나 새생명 축제 역시 이 울타리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이 울타리를 무너뜨리려면 우리의 주인의식이 없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효자교회 주인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텃세와 주인의식이 우리 안에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자주 했지요? 한 명의 새신자가 들어오면 500명이 그 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물질과 관심을 바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요. 또 한 사람의 새신자를 정착시키기 위해 온 구역식구와 선교회원이 다 목숨도 걸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요. 이 정도가 안 되면 우리는 주인의식을 포기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그냥 의미 없이 암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 내 자신뿐 아니라 바로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지기 바랍니다."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주인의식은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만 다스리심을 받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몹시 불만스럽다는 표정으로 목사님에게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목사들은 말끝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 하는데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뭐요?" 그러자 그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내 뜻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정답입니다. 내 뜻을 포기하면 진정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도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내 생각, 내 뜻을 포기하겠습니다. 아멘."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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