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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집을 정화하라 (왕하 25:8~12, 롬 11:25~32, 눅 19: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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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말씀: 열왕기하 25:8~12
바빌로니아의 느부가넷살 와 제 십구년 다섯째 달 칠일에, 바빌로니아 왕의 부하인 느부사라단 근위대장이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는 주님의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건물 곧 큰 건물은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근위대장이 지휘하는 바빌로니아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의 사면 성벽을 헐어 버렸다. 느부사라단 근위대장은 도성 안에 남아 있는 나머지 사람들과 바빌로니아 왕에게 투항한 사람들과 나머지 수 많은 백성을, 모두 포로로 잡아갔다. 그러나 근위대장은, 그 땅에서 가장 가난한 백성 가운데 일부를 남겨 두어서, 포도원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아멘

서신서의 말씀: 로마서 11:25~32
형제자메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신비한 비밀을 알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비밀은 이러합니다. 이방 사람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일부가 완고해진 대로 있으리라는 것과,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습니다. "구원하시는 분이 시온에서 오실 것이니,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못함을 제거하실 것이다. 이것은 그들과 나 사이의 언약이니, 내가 그들의 죄를 없앨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복음의 관점에서 판단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러분이 잘 되라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택하심을 받았다는 관점에서 판단하면, 그들은 조상덕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마운 선물과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습니다.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은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러분이 받은 그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마침내는 자비하심을 입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않는 상태에 가두신 것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아멘

복음서의 말씀: 누가복음서 19:41~48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셔서,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오늘 너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터인데! 그러나 지금 너는 그 일을 보지 못하는구나. 그 날들이 너에게 닥치리니, 너의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너를 사면에서 죄어들어서,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들을 짓밟고, 네 안에 돌 한 개도 다른 돌위에 얹혀 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될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소굴'로 만들어버렸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우두머리들이 예수를 없애버리려고 꾀하고 있었으나, 어찌해야 할지 방도를 알지 못하였다. 백성이 모두 그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멘

오늘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성전 얘기를 드리겠습니다. 모두 옛날 얘기로 돌아가 보겠는데 성전의 기원은 이스라엘 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을 지었는데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가치 있는지는 모르나 오늘 열왕기상에 성전이 파괴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유추 해볼 때 예루살렘 첫 번째 지은 성전은 굉장한 것 같습니다. 다른 기록에 보면 이스라엘의 문화 통치자 또 문화의 대왕으로 이름을 날린 솔로몬이 얼마나 아름답게 성전을 지었기에 솔로몬의 영광, 솔로몬의 영화 이런 구절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문화와 예술과 지혜와 많은 것이 응축된 하나의 표적으로서 나타난 것이 건축물인 성전입니다.

이렇게 훌륭하게 지은 성전이 오늘 예수께서 오시기 586년 전에 옆 나라인 바빌로니아 군대한테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파괴를 당하고 있는 장면이 구약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바빌로니아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큰 건물을 전부 파괴시키고 불 질러 논 다음에 특별이 예루살렘에 성전은 샅샅이 다 망가뜨려 놓고 가지고간 노획물이 있었습니다. 금붙이가 될만한 것 그리고 놋쇠로 만든 동과 구리로 된 것들, 돈이 될 만한 것은 몽땅 다 가져갔다고 적고 있습니다.

통계는 안 나와 있지만 오늘 표현에 보면 감히 수치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거대한 보물이 날아갔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보물을 다 뺏긴 것도 있고요, 최고로 아름답게 지은 건물들이 망가진 것도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중요한 것은 사실은 건축물 그 자체가 아니라 성전에 자기들의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성전이 이스라엘의 삶의 존재 근거입니다. 삶의 바탕입니다. 성전이 이스라엘 전체를 지켜주는 그루터기입니다. 그루터기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옆에 있는 바빌론 제국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망한 겁니다. 한나라가 망할 때 예루살렘 말고 성전 말고 딴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도시가 다 망가져야 망하는 거 아닙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한나라 멸망시킬 때 그 나라 수도만 멸망시키면 그 나라 망합니다. 인간 개인이 망할 때 온 몸이 다 썩어야 죽는 게 아니고 심장이 멎으면 그걸로 끝이 납니다. 인간의 중심부만 잡으면 인간도 없어지고 이스라엘 중심부인 예루살렘만 파괴하면 이스라엘은 무너지는 거고 예루살렘의 중심인 성전만 무너뜨리면 그걸로 예루살렘 성전 민족 모두 다 무너집니다. 오늘은 성전 파괴는 이스라엘의 핵심이 파괴된 것입니다. 그것을 금이냐 은이냐 놋쇠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혼이 영이 몸통이 완전히 날아가 버립니다.

더 분개한 사건이 있습니다. 바빌론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노획물들 많이 가져가고 나서 또 가져간 게 있는데 가난한 일부 농민 중에 이스라엘에 남아서 포도 농사를 질만한 일부 소수를 빼놓고는 전원 바빌론으로 포로로 데려갔습니다. 남긴 것은 가난한 농부 몇 사람뿐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가리켜서 이스라엘을 다시 구원할 남은 자들 이라고 합니다. 남겨 논자들. 미안하지만 일부 무식하고 힘없는 농부 몇 사람만 남고 전원 다 데려갔습니다. 성전은 파괴됐지요, 이스라엘 혼도 없어졌지요, 정신도 다 빠졌지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층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포로로 끌려갔지요, 이스라엘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은 것이 있다면 절망, 공허, 혼돈, 무, 남은 게 아무것도 없지요. 이 성전이 다시 짓게 된 것은 70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성전을 지었는데 새로 지은 성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모르나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 오늘 성전을 보고 예수께서 욕하십니다. 욕을 받은 성전이 70년 후에 포로에서 돌아와서 새로 지은 성전입니다. 문화나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말은 한군데도 없다는 걸 보면 그냥 힘들게 지은 성전 같습니다.

근데 오늘 예수께서는 성전을 보시고 예수께서 우셨습니다. 이 한마디 속에 당시 성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 수 있습니다. 유추해 보건데 예배는 드리지만 이스라엘의 민족은 정치는 군사는 외교 행정 모든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는 이미 로마 제국한테 빼앗겼습니다. 식민지입니다. 이스라엘에 갖고 있었던 것중 유일하게 로마가 점령을 못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게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요. 하나님의 율법을 담은 법계가 있지요. 이스라엘 혼을 담은 전체 예배가 있지요. 성전 하나만은 로마 제국주의가 건드리지 못한 이스라엘만이 가지고 있는 자주, 자유, 신앙의 본거지입니다. 근데 예수께서는 그 성전을 보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이스라엘의 삶의 본거지를 보고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민이 기도하라고 지은 내 집이 강도의 소굴이 되었구나. 그래서 우셨습니다. 말을 뒤집어보면 하나님이 계셔야 할 곳에 사람들이 와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듣고 말씀하시는 그곳에 강도들이 우글거리니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시냐 하면 사실은 이미 첫 번째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 하나님은 바벨론으로 같이 유배당하기 보다는 바벨론 사람들이 남겨 논 소수 무식한 농민들과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그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역사를 하셨습니다. 이것이 남은 자의 신학의 핵심입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강도의 소굴로 변한 성전을 보면서  창녀들과 함께 식사했습니다. 성전에 감히 가보지도 못할 정도로 더럽다고 낙인찍힌 죄인들 배고픈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이 성전 밖에서 울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는 들어가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강도들은 성전 안에 있고 강도들한테 희생당한 백성들은 성전밖에 있고 예수님은 어디 있어야 되겠습니까? 내가 예수라도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은 강도들과 함께 있으면 안 됩니다. 강도들은 무너뜨리고 강도들의 피해자인 순수하고 작은 백성들과 함께 있어야 됩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을 보니 울음 밖에 없다. 타락, 도덕적인 해이, 부정, 부패, 하나님 없음. 근데 성전에서 율법이라 하는 이름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드나드는 특권층만 위한 하나님을 만들어놓고 모든 배고픈 힘든 백성들을 쫒아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말로 다시 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평양 대동강 근처에 가셨습니다. 가 봤더니 성전이 있는데 이데올로기 강도들로 우글거리고 체제를 위한답시고 그 강도 소굴에서 소외당한 배고픈 수백만의 사람들 굶주린 사람들은 밖에 쫒아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평양에 가시면 하나님은 울고 계시다. 무슨 이름으로도 하나님의 백성을 굶고 죽게 하는 일 그건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울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남산에 올라오셔가지고 서울을 보고 하나님은 또 다른 모습으로 오셨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지 강도들이 장사하는 곳이 아니다. 지들끼리 사고 파는 곳이 아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 서울 이 땅은 자기들 끼리끼리만 모여서 작당하는 곳이 아니고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 끼리 끼리만 모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가 핍박하는 사람도 다 와서 함께 예배드릴 수 있고. 그렇게 넓고 개방된 곳. 그러나 하나님의 중심인 곳. 민족의 공조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국제적인 유대도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은 자기들 끼리끼리 공조 한답시고 모여 이념 하다가 모든 불쌍한 백성들이 들어오기를 차단했습니다. 끼리끼리의 이 사실 하나가 예수님의 질타를 받습니다. 강도들의 소굴이라고. 서울은 북쪽과는 다릅니다만 또 하나의 폐쇄된 공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서울을 보고 울고 싶다. 이 성전을 헐자. 성전을 헐고 내가 다시 짓겠다.

오늘 예수님 말씀은 비탄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가슴속에 있는 우리 땅이 갖고 있는 부도덕한 타락한 모든 성전 같은 것은 헐고 새로 짓자. 예수께서는 우시는 집. 좀 비참한 얘기입니다. 성전이 나라만이 아니고요 가정만이 아니고요 제가 여러분 한분 한분이 다 성전입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성전이지 그 속에 하나님이 안계시면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혼이 되어가지고 우리 속에 계시고 싶어 하시지 하나님의 떠남. 하나님이라는 혼이 떠난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나라도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오늘 예수의 질타를 받고 눈물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 잘못되었지만 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회계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수천 년이 지난 다음에 있었던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1996년 1월27일부터 새로운 예배가 세계적으로 시작이 되는데 특히 독일을 비롯한 오지리나 유럽에서 시작이 되는데 이날은 카톨릭 신자인 로만헤어촉이라고 독일 전임 대통령 그분이 이런 선언을 했습니다. 이날을 유태인을 핍박했던 우리 모두가 다 회계하는 날로 지키기로 하고 예배를 합시다. 그래서 첫 예배가 시작되는데 이스라엘 기념예배입니다. 지금도 매년 지켜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 예배 순서 중에 제가 어느 신앙고백에 관한 얘기를 설명 드립니다. 신앙고백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공식 예배에서 드린 증언입니다. 어느 날 우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구령에 따라서 운동장 옆 연단 앞에 소집명령을 받았습니다. 가서 일렬로 섰더니 3개의 교수대가 준비 되어 있었습니다. 수용소장의 명령에 따라서 두 장년과 10살 정도의 어린 아이가 눈에는 붕대를 감고 끌려왔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을 연단위의 교수대에 앉혔습니다.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밧줄이 위에서 내려오고 세 사람의 목에 밧줄을 묶었습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두 장년이 아니고 어린아이 얼굴에 모아졌습니다. 어린아이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지 눈물이 붕대 밑으로 흘려 내려왔습니다. 이제 막 구령이 떨어지기 전에 두 장년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자유 만세. 그러자 사람들 속에서 이런 소리가 울려나왔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사방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아무 말도 안하고 침묵을 했고 잠시 후에 수용소장의 명령에 따라서 의자가 덜컹 내려앉고 목을 맸던 밧줄이 대롱대롱 달려있었습니다.

얼마가 지났더니 장년 두 사람은 혀가 나왔는데 완전히 파랑 혀가 되어 나와 있고 그런데 옆에 어린아이의 밧줄은 자꾸 흔들리는데 보니까 어린아이가 안 죽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말을 못했습니다. 근데 곳곳에서 음성이 울려왔습니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저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게 한 30분쯤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령에 따라서 우리는 그 장소를 떠나 막사로 가야했습니다. 그런데 사방에서 하나님 어디계시냐고 물었을 때 저는 답을 들었습니다. 제 속에서 가장 깊은 곳에서 이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교수대에서 죽어가고 계시다. 그리고 저는 눈을 돌려서 떠나오는데 아이는 말없이 축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실 곳이 없어서 지금 포로수용소에 교수대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이 부당하게 죽어갈 때 그곳에 계셔서 함께 울고 계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교수대에서 죽어 갈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당 안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교수대에도 계십니다. 근데 오늘 우리가 꼭 알아야 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신 십자가가 하나님의 교수대입니다. 하나님을 처형한 인간들이 만든 교수형을 받았는데 그때 성전을 에워싸고 율법을 외쳤던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왜 못 뛰어 내리냐? 무능한 걸림돌입니다.

히랍 사람들은 이렇습니다. 인간에게 주신 지혜를 최대한 발휘하면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었을 텐데 멍청한 걸림돌. 예수께서는 걸림돌에 걸리셨습니다. 인간이 만든 걸림돌에 걸리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걸림돌을 피해줄 수 없습니까? 하나님의 침묵. 그때 예수께서 속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제 영혼을 받아주소서. 다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걸림돌은 다른 게 아니라 예수님은 그걸 통해서 우리가 받아야 될 채찍과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처형 당해 죽고 그걸로 끝났으면 좋을 텐데 그 십자가를 딛고 십자가를 통하여 십자가 안에서 십자가를 끌어안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부활을 우리에게 잉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허물라.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우리가 받고 있는 고통, 남들이 아닌 제가 당하고 있는 중병 이게 걸림돌입니까? 물론 걸림돌입니다. 왜 나한테만 살면서 이런 걸림돌을 주십니까. 누구나 갔고 있는 걸림돌이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걸림돌입니다. 하나님 왜 우리가 죽어야 합니까? 이유를 말하기 전에 다 죽어야 합니다. 훌륭한 사람도 죽고 지혜 있는 사람도 죽고 다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병도 죽음도 고난도 아픔도 이 세상의 모든 수난이 걸림돌입니다.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예수를 믿는 단 하나가 저는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걸림돌로만 알면 유태인과 다를 게 뭐냐? 걸림돌을 딛고 일어서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라.

우리에게 닥친 십자가와 십자가 비슷한 모든 고난의 현장들이 걸림돌로 생각하면 그렇게 살고 그 걸림돌을 디딤돌 삼아 새 역사를 창조하고 싶으면 나와 함께 이 길을 가자. 우리 나가가 닥친 핵미사일 위기, 핵 위기, 경제위기, 사회도덕의 위기, 위기가 걸림돌이면 그냥 부여잡고 죽고 마십시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역사 창출하고 싶으면 이런 위기와 같은 어려운 상황을 딛고 디딤돌로 생각하고 새로운 길을 창출해 한번 가보십시다. 그것이 어떤 방법일지는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합의하기로 하십시다. 하나님께 그것이 무슨 답변인지는 물어보고 답변을 받아보십시다. 오늘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모든 성전을 모든 건물과 모든 체제와 모든 인간과 한 사람 한 사람 성전으로 다 걸겠다. 그리고 새로운 성전을 지어주겠다. 새로운 미래를 약속해주겠다. 그 대신에 십자가의 진실을 그리스도의 진실을 그리스도의 사건을 걸림돌로만 보지 말고 디딤돌로 알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자. 그래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이 오늘 자기 몸을 주신답니다. 자기 피를 주신답니다. 자기를 딛고 올라서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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