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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함과 진실함으로 (요일 3: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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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미국 대 재벌 가운데 [깁슨] 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깁슨의 3대 성공비결’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는 ‘미리스’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서, 아주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물레방앗간에서, 심부름을 하는 머슴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공부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성실하고, 부지런히 일함으로, 당대 최고의 재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성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저는 늘 이 세 가지 약속을 지켜왔습니다.
첫째, 술을 마시지 말 것.
둘째, 고생을 두려워 말고, 일을 할 것,
셋째, 하나님을 믿고, 만사를 의심하지 말 것,
이것이 제 신조입니다. 저는 이것을 지켰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대답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비결은 없었느냐고 묻습니다.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다른 특별한 비결이 있을 텐데요?” 라고 재차 묻습니다.
그 때 [깁슨]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많은데, 이대로 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결코 요행으로 유연히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특별한 어떤 것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깁슨]의 말대로, 얼마나 성실히,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먼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가두고, 습관을 심으면 성품을 거두고, 성품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고 한 것 같이, 우리의 삶의 결실, 우리의 최종적인 삶의 열매를 거두는 시작점은, 바로 생각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먼저, 땅엣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 곧 하늘의 것, 영원한 것, 믿음 안에서 얻은 약속된 미래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생각의 바탕 위에, 행동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18절)

그렇습니다.
말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해도, 곧 ‘사랑 한다’, ‘축복 한다’, ‘가장 좋다’, ‘위대하다’는 이러한 말이, 말로만 끝나면, 마치 물이 샘에서 흐르다가 말라버린 것과 같습니다.
말은 생각에서 나옵니다.
생각의 표현이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이 풍부하고, 좋은 생각을 해서 말한다고 해도, 행함이 없으면, 샘에서 흘러나오다가 말라 버린, 샘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이 시대의 고민이요, 이것이 오늘 우리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을 대변하는, 여러 가지 표현 중의 하나로, “행동하지 않는 지성인” 이라는 말을 합니다.
생각은 있습니다.
그러나 행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사람들을 가리켜, “행동하지 않는 지성인”이라 꼬집어 말합니다.
솔직히 우리의 고민, 저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보세요.
여러분, 요즈음 금연운동이, 한창 벌어지고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 보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온 것입니다.
흡연 남성과 여성의 사망률이, 비흡연자에 비해, 각각 1.6배와 1.9배 높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력이 감퇴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정력하면 남아나는 게 없을 정도로, 눈을 부라리고 찾습니다.
곰발바닥을 비롯해서, 뱀을 먹기 위해, 태국으로 관광을 간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이요, 고민입니다.

보세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행하지 못합니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지런하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기하고, 행동하지 않는, 지성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말은 잘하는데, 행동하는 것이 달라요.

오늘 본문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17-18)

야고보 사도도,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6-17)

이것을,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실 때, 이 부분을 얼마나 강하게 책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범하기 쉬운 잘못이요, 죄입니다.

*****언젠가, 만화비평에서, 이러한 그림이 실린 것을 보고, 실소했습니다.
한 여성단체에서,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음란물 불법 테이프 반대 운동을 벌입니다.
다들 예쁘게들 차려 입고, 어깨에 띠를 두르고, 피켓을 들고, 거리로 행진하다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그리고, 한 장소에 모여, 몇 시간 동안 집회를 열고,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그 집회를 여는 대표 여성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그 여성이 돌아가는 길에, 비디오 가게를 들러, 테이프를 하나 빌립니다.
“아저씨 거 있잖아요, 뭐 좀 야한 것 하나 없어요?” 그러니, 비디오 집 아저씨가, 알았다는 듯이 안으로 들어가서, 테이프를 하나 꺼내 가지고 왔습니다.
이 아주머니, 야릇한 웃음을 띄며, 집으로 돌아가는 만화 비평이었습니다.

요즘 말은 잘 합니다.
옳은 말만 합니다.
좋은 말만 합니다.
그러나 행동은 다릅니다.
이게 이 시대, 저와 우리 모두의 문제가 아닐까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

오늘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18)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 받은 자의 행동입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무엇이라고요? 감동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감동이 감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나타나고, 그 깨달음 가지고, 그렇게 살기로 결단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자입니다.

내가 생각한 좋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좋은 생각을 했다면, 생각으로 그치지 말고, 행동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옳은 것이라면, 행하십시오.
실천하십시오.
여러분의 실천이, 여러분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혹 내가 하던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즉각 돌이켜서, 바른 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참 신기한 사건이 나옵니다.
삭개오 이야기입니다.
삭개오는,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세리로 부정하게 치부했기에,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외로운 그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마침 여리고로 오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라는 분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뽕나무로 올라간 것입니다.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보신 예수님은, 그를 부르시고, 그의 집으로 가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삭개오는, 예수님께 말씀을 들었겠지요.
이미 그 전부터, 직. 간접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주님과 직접적으로 대면한 삭개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을 바꿉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8-9)

예수를 핍박하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거꾸러지면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울은, 예수라는 인물을, 직접적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 예수가 유대교에 있어서는, 엄청난 이단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한 그가, 예수님을 직접 만난 후, 곧바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 합니다.
이러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행함의 축복

우리가 행동할 때,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됩니다.
이 삶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1. 믿음 안에서 행할 때, 우리가 진리에 속한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9절입니다.
/////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19)

이 말은, 우리가 진리 안에서, 났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소속을, 분명히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할 때, 우리의 삶은, 진리에 속한 자로서의 삶이 됩니다.  곧 그것은 소속이요, 습관의 삶입니다.

내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 하는 것에 따라, 생각이 다르고, 사람의 행동은 달라집니다.
거룩한 곳에 속한 사람은, 거룩한 삶으로,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적인 행위와 삶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고, 경험한 일입니다.
남자들에게, 예비군복만 입혀놓으면, 거의 반 거지가 됩니다.
아무 데나 벌렁 드러눕고, 강의시간이나 교육 시간이면 졸고, 어떡하면 도망갈까, 빨리 끝나지 않나....
점잖던 양반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군대에서 하던 언어(욕)를, 마구 해댑니다.

전도사시절 때, 교역자인 저도, 그 분위기를 이긴다는 것이, 여간 곤욕스럽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직장으로, 학교로 돌아가 보세요.
어엿한 엘리트 사원이요, 선생님이요, 착실히 공부하는 학생들입니다.
전혀 다릅니다.
이것이 소속의 문제입니다.
내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때문에 진리에서 났고, 진리에 속한 자는, 진리 안에서 행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의 사람입니다.
행할 때, 우리는 이것을 알고, 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19)는 말씀은, 하나님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만큼, 큰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 겨자씨의 믿음, 큰 믿음, 다이나믹한 믿음, 이 믿음에 대해서, 많은 부분에서 강조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이 있어야 볼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 일할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는, 아무리 큰 일이 닥쳐도,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산상수훈의 마지막 결론 말씀은, 반석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천국복음을 다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지은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이미 기초가 되어 있습니다.
기초가 견고히 되어 있어, 습관가운데 있기에, 더 이상 어떤 것이 와도 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믿음은, 행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논리나 사변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대로 살 때, 이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행할 때,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때, 우리는 진리에 속한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고, 굳게 서는 축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요일 3:2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누가 당당할 수 있습니까?
진실한 사람입니다.
거짓되고, 외식적인 사람은, 당당할 수 없습니다.
목소리는 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감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항상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 진실한 사람은 당당합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 할 뿐입니다.

4. 구하는 바를, 얻게 됩니다.

요일 3:2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진실한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행동하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성경에서, 간절한 기도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한나가 간절히 기도할 때, 그 마음을 아시고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나의 진실입니다.
진실한 사람, 진실을 행하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왜요?,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임질 줄 알기 때문입니다.

5. 그 사람의 습관이, 행동하는 습관을 가지고, 살게 된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말씀 안에서 보여주는 축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로, 이제 이러한 삶을 사는 습관을 가지게 하십니다.
진리에 속한 자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면서, 기도하고 얻고 하는 가운데, 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 더 큰 믿음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 습관을 주십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습관은, 좋은 행동을 통해서 나옵니다.

가만히 보세요.
부지런한 사람은, 부지런한 습관을 가졌습니다.
가으른 사람은, 습관이 게으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습관이 달라집니다.
이 습관은, 우리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고, 이 습관이, 우리의 성품을 결정하고,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게 하는 과정의, 에너지가 되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전 인생을 삽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진리를 깨닫고, 그 분의 진리를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깨닫고 느낀 바를, 내가 옳다고 믿고 말하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습관은 성품을 낳게 되고, 그 성품으로 인해, 우리의 운명을 거두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필립 제임스 베일리]의 시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말씀을 결론짓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행동 속에서 살고 있는 거다.
  세월이나 사색이나, 단순한 숨 쉼
        속에서가 아니다.
      감동 속에서 나는 거다.
      다이알 위에 새겨진
    숫자 속에 사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심장의 고동으로
      헤아리는 것이다.
  가장 크게 산다는 사람이란,
      가장 생각하고,
    가장 고귀한 감정을 품고,
  가장 뛰어나게 행동하는 것이다.

위의 것을 생각한다면, 그 의미를 깨닫고, 행동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가장 크게 사는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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