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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곤고한 인생에서의 탈출 (롬 7: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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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3:5)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빌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예수를 믿기 전, 그의 신분과 경건생활에 대한 자기 소개의 내용이다.
그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난 후 깨달은 사실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로워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의 기능, 역할은 죄를 드러내는 일이다. 율법 앞에 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율법은 나쁜 것인가? 율법에 대한 사도 바울의 평가가 이렇다.
(롬 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에도 율법에 흠 없는 경건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내용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은혜 충만 성령 충만한 사람인 줄로 알았는데 그의 내면 속에 죄로 인해 이렇게 시달리고 고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오늘 본문에 대한 해석에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1)사도 바울의 고백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의 경험을 말한 것이다.
2)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의 경험을 고백한 것이다.

나는 후자의 입장을 지지한다. 이유는 예수님을 영접한 난 후에도 우리 삶 속에는 사도 바울이 경험한 것과 같은 죄로 말미암은 시달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1.삶에서 나타나는 모순

사도 바울은 14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롬 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노력은 도리어 죄가 드러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죄 아래 팔렸다고 표현했다.

벵겔이라는 주석가는, “나면서부터 노예된 자보다 돈으로 팔려간 노예가 더 비참한 법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가 다시 죄의 노예가 되는 것은 더욱 비참한 것이다. 여기에 사도 바울의 깊은 고뇌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의 고민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모순된 행동 때문이었다.
(롬 7:15)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사실, 자신이 원하는대로 행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시도하려다가 안되면, “마음은 원이지만 육이 약하도다”라고 합리화하고 만다. 운전학원의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고 핸들을 잡으면 바로 운전을 할 수 있는가? 마음은 원이지만 뜻대로 되질 않는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2.모순된 행동의 원인

그는 더욱 깊은 고민 가운데 빠졌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고민 끝에 그 원인을 발견했다.
(롬 7: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금방 착한 사람이 될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순된 현상에 실망하게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왜 그래?” “집사님이 왜 그래?”

이럴 때 비난을 상대방에게 돌리지 말고 나를 향해서 살피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아하 - 내 속에 죄성이라는 것이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구나. 집사님의 마음 속에 죄성이 그대로 남아 있구나, 이 사실을 알면 실망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이 이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자신의 내면에서 나타나는 모순된 행동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함으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 것은 자신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모순 - 원하는 것은 행치 않고 도리어 미워하는 악을 행하는 것 - 그 원인이 바로 자신의 내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죄성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롬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7:19)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얼마 전에 어느 집사님이 찾아와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다.
자신이 집사이면서도 집사답지 못한 행동들을 많이 해서 괴롭다는 것이었다. 예수 믿은지가 20년이 넘었는데도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혈기부리고, 욕하고, 다투고, 심지어는 담배도 피웠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믿음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속이 상하고 괴롭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하소연을 했다.

그래서 성경을 펴서 로마서 7장 14-25의 말씀을 읽도록 했다. 그 고민은 집사님 만의 고민이 아니라 사도 바울도 이미 2천년 전에 이 문제로 고민하고 괴로워했었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죄성이라는 것이 이중적 행동을 만들고,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하여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도 언급하였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와 같은 갈등의 관계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없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3.갈등의 결과

(롬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나의 힘으로, 나의 능력으로 죄의 법을 이기지 못한다. 100전 100패다. 그 결과 자신은 죄의 포로가 되고 깊은 탄식 가운데 빠지게 되는 것이다. 박윤선 목사는 종종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어. 인간이 이토록 악할 수가 있나? 썩고 냄새하는 무덤과도 같아.”

무슨 숨긴 죄가 많아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깊이 깨달으면 깨달을 수록 자기 안에 더러움과 모순이 크게 보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탄식이다.

나는 어느 날 밤에 찾아와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은 그 집사님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다.
그의 고민이 자신의 가족의 문제도 아니고, 교회의 문제도 아니고, 자신의 사업에 관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불거진 갈등의 문제도 아니고 바로 자신의 문제, 죄에 관한 것이었기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온 것이다. 나는 그 집사님의 고민을 본질적 고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본질적 고민보다는 지엽적인 것, 세상적 문제로 고민하며 산다.

문제의 본질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이중적, 위선적행동, 믿음의 삶과는 거리가 먼 모순된 삶 속에서 번뇌하며 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갈등과 탄식이 없는가? 그 집사님과 같은 고민과 고통이 없는가?
만약 없다면 문제는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와 같은 탄식이 있다면 거기에 소망이 있다.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우리에게 나타나는 이중적이고 모순된 모습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예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곤고함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 되신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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