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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마음 알기 (렘 4: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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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한참 인기 있는 드라마가 있었다. <투명인간 최장수>이다. (지난주에 다 끝났다) 제목만 들으면 별 상상을 다 하게 만드는 드라마지만 내용은 참 가슴 아프고 마음이 뭉클한 이야기이다. 평범한 경찰관 최장수는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다. 그의 기억들이 지워지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 이웃들과 함께 나누었던 아름다운 기억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진다. 그의 머리는 기억을 잃어버려 백지처럼 하얗게 된다. 그래서 투명인간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이다.

  (이 드라마의 백미는 지난주에 있었다.) 이렇게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안타까워 주인공은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 아직 자기에게 아름다운 기억이 있을 때, 사람들과 함께 사랑했던 기억들을 나누기 위해서 한 가지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한다. 그것은 자기의 장례식을 미리 하는 것이었다. 살아 있을 때 하는 장례식, 더 정확히 말한다면 자기의 기억이 살아있을 때 하는 장례식이었다. 주위에서는 미친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주인공은 자기의 가족들과 지인들을 불러서 자기가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운 기억의 여행을 한다.

  그 장례식에서 최장수는 이런 말을 한다. “다음 생에도 지금만 같으면 참 좋겠습니다. 다음의 생에서도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고, 사랑하는 내 자녀들을 낳고, 여러분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다음 생에도 지금처럼만 살고 싶습니다.”

  드라마가 끝난 다음 집사람이 저에게 물었다. “자기는 다시 태어난다면 누구랑 결혼하고 싶어?” 그래서 저는 100% 진실하게 대답했죠. “난 다시 태어나도 당신이랑 결혼할거야.” 그러자 아내는 갈갈이 패밀리의 아버지 같은 말을 했다. “왜 자기는 자기 생각만 하는 거야?” (아내는 혼자 살고 싶다고 했다. 아마 요즘에 애기 셋 키우기가 힘든 모양이다.)
  여러분은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있는가? 저 사람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았는가? 나에 대한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진정으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2. 아버지의 마음 알기

  우리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아버지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항상 무섭고, 완고하고, 어떤 세상의 세파 속에서도 강인함을 보여주는 것 같은 우리들의 아버지... 그래서 우리는 애써 아버지의 마음을 외면할 때가 있다. 아버지는 괜찮을 것이라고... 이런 일을 겪었지만 우리 아버지는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말 그럴까?
  제가 우리 남자 성도님들을 심방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 반대이다. 항상 자신 있고, 세상을 다 거머쥔 것 같은 그 당당함을 가진 사람도 병원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한 없이 연약해지는 것을 본다. 그 아버지들은 정말 속으로 겁을 많이 먹는다.
  고아로 자라면서 젊어서부터 온갖 사고를 다 치고, 이 세상 그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믿으면서 자녀들을 길러 온 그 아버지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사고라도 칠 것 같은 그런 아버지도 그의 내면은 너무나 가냘프고, 누군가의 어루만짐을 필요로 하는 연약한 진흙과 같았다.
 
그래서 김현승 시인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노래했다.

바쁜 사람들도 / 굳센 사람들도 /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

어린 것들을 위하여 / 난로에 불을 피우고 /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

세상이 시끄러우면 /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다. //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 //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 //

  이 시는 아버지의 마음속에 항상 있는 자녀에 대한 사랑이 잘 표현되고 있다. 아무리 나쁜 사람도, 아무리 나쁜 일을 하는 사람도 집에 들어오면 아버지가 된다. 사람들은 그렇게 자녀들 앞에서 아버지가 된다.
 
3. 선지자들의 영성

  예언자(또는 선지자)라고 하면 사람들은 부유하고 힘센 사람들에게 살벌한 비난을 퍼붓는 고행자 차림의 기인을 떠올린다. 사람들의 죄악을 지적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죽음과 멸망의 메시지로 무장된 사람으로 예언자를 인식한다. 그들이 선포한 메시지를 기록한 성경을 읽기가 쉽지 않다. 그들의 말을 듣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누가 그들 곁에 있거나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겠는가? 누가 그들처럼 되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을 향한 깊은 우려에서 그렇게 했다. 그들의 마음은 딱딱하지 않고 비단결처럼 부드러웠다. 그들의 겉모습은 바위처럼 강인했지만 그들의 내면은 비단결처럼 부드러웠다.

  호세아를 보라. 그는 북왕국의 죄악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이 징계를 받고 멸망 받는다는 것으로 인해서 때로는 담대함으로, 때로는 격려함으로 그들에게 메시지를 선포한다. 그는 창녀가 되어버린 그의 아내를 계속해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다. 호세아는 순종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단 한 마디의 대꾸도 없이 호세아는 철저하게 순종한다. 호세아는 바위와 같이 강인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어떠했을까? 호세아의 마음은 창녀가 된 고집스런 아내 때문에 무너졌고, 동시에 그의 마음은 행음하는 이스라엘 때문에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한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르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그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렇게 가만히 내버려 두어서는 그들의 멸망이 너무나 분명하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함으로 회복시키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은 호세아보다 더 아팠고, 더 무너져 버렸다.

  예언자들이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선포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멸망당할 그 사람들을 끝까지 품고 건지기를 원하시는 사랑이었다. 그리고 예언자들은 그런 하나님의 사랑에 붙잡힌 자들이었다. 오늘 예레미야가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은 재앙과 멸망과 심판이 바로 그들의 목전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의 고백은 하나님의 고백이요, 그가 이렇게 외쳤던 것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아픈 하나님의 마음을 그가 읽었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의 마음

  우리가 늘 품어야할 소원가운데 하나는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원을 나도 소원하고, 하나님이 열망하는 것을 나도 열망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나도 기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유태인 신학자 아브라함 헤쉘은 예언자들의 파토스(열정)이야 말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서로 가족처럼 닮은 점이요, 심판과 실망과 긍휼과 때로는 진노로 표현되는 관심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인격은 열정 없이 작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철저한 인격체이며 철저히 영향을 받으신다. 그 분의 인격(ethos)과 열정(pathos)은 하나다.”라고 했다.

  헤쉘의 말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열정이 있다. 세상을 향한 열정,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열정으로 그 분의 가슴은 끓어오른다.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이 많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지만 그 메시지는 오직 한 가지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세상을 구원하고픈 열정으로 이렇게 끓어오르고 있다. 그러므로 바로 당신도 그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가운데서 하나님과 연합하여야 하며, 열정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언자들은 우리를 향해 외친다. “당신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는가? 그 분의 마음속에 열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당신의 마음에는 그 분을 닮은 열정이 있는가? 우리의 최악의 죄 가운데 하나는 무감정, 곧 열정의 결핍이다.”
  우리는 오늘 새 생명축제 50일을 앞두고 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은 이 기간 동안에 우리 안에 하나님과 같은 거룩한 열정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열정의 부스러기라도 만져 보는 일이다.
  프레드릭 뷰크너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일은 보통 당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자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시는 자리는 당신의 깊은 즐거움과 세상의 깊은 굶주림이 만나는 곳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전도로 부르셨다. 그 전도는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자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 전도의 자리는 내가 가장 깊은 즐거움을 느끼는 곳이요, 세상의 가장 깊은 굶주림이 만나는 자리이다. 그 전도는 내가 괴로움을 느끼는 자리가 아니라 가장 깊은 즐거움의 자리요, 배부를 것 같은 세상이 사실은 가장 깊은 굶주림을 겪고 있기에 그 가장 깊은 굶주림을 채워주는 구원의 행동이다.

  우리를 향한 뜨거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닮아, 불타는 심장을 지니고 있었던 예레미야처럼, 이사야처럼, 호세아처럼, 나도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한 불타는 마음을 가지기를 소원한다. (이양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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