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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팔을 늘어뜨리지 말라 (습 3: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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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성 시온아, 노래하여라. 이스라엘아, 즐거이 외쳐라. 도성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주께서 징벌을 그치셨다. 너의 원수를 쫓아내셨다. 이스라엘의 왕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게 말할 것이다. 시온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지 말아라. 주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너를 보고서 기뻐하고 반기시고, 너를 사랑으로 b새롭게 해주시고, 너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이다. 축제 때에 즐거워하듯 하실 것이다.  내가 너에게서 두려움과 슬픔을 없애고, 네가 다시는 모욕을 받지 않게 하겠다. 때가 되면, 너를 억누르는 자들을 내가 모두 벌하겠다. 없어진 이들을 찾아오고 흩어진 이들을 불러 모으겠다. 흩어져서 사는 그 모든 땅에서 부끄러움을 겪던 나의 백성이 칭송과 영예를 받게 하겠다. 그 때가 되면 내가 너희를 모으겠다. 그 때에 내가 너희를 고향으로 인도하겠다. 사로잡혀 갔던 이들을 너희가 보는 앞에서 데려오고 이 땅의 모든 민족 가운데서, 너희가 영예와 칭송을 받게 하겠다. 나 주가 말한다.(습 3:14-20)

코끼리를 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무기력 증을 학습시킨다고 합니다. 어린 야생 코끼리를 잡아다 발에 쇠사슬을 묶어서 말뚝에 매어 놓습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도망가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발에서 피가 나도록 고통스러운 자유의 몸부림을 칩니다. 얼마동안 그렇게 기를 쓰다가 코끼리는 끝내 체념을 하고 맙니다. 완전히 체념하게 되었을 때, 쇠사슬을 풀어 주고 가벼운 밧줄로 매어 놓으면 그 다음에도 코끼리는 줄이 팽팽해지기만 하면 자신은 절대 끊을 수 없는 튼튼한 줄로 여전히 묶여 있는 존재로 알고 말뚝 주위를 빙빙 돌뿐 달아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아주 순하게 훈련을 받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오늘날 사탄도 이와 같은 훈련 방법을 통해서 믿는 자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체념하게 하고 패배적인 절망과 함께 자기도 모르게 학습된 무기력 증 환자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능력도 있고, 자유도 있고, 승리의 가능성도 있는데 전혀 그것을 생각지도 못한 체 정신적으로 무능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교회에 나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까지도, 실재적인 상황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완전히 좌절된 체질로 실패를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며 살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스바냐서를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가 무기력 증에 학습된 그런 삶의 모습 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태양신 숭배, 바알과 아세라 숭배, 강신술등의 우상 숭배가 자행되고, 뇌물에 의해 판결이 기울고, 매춘 등이 난무하며 도덕적, 종교적인 부패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각한 부도덕에 빠져, 절망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은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자신들의 유익만을 따라 움직이고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걱정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부정적이고 좌절된 생각으로 손을 늘어뜨리고 주어진 현실을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적인 상황은 어떻습니까?  먹고사는 문제가 윤리나 도덕보다 앞서고, 구조적으로 부패하고 타락된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다 보니 좌절을 맛볼 때가 많습니다.  무언가 좋은 영향을 끼치며  당당하게 거기에 맞서 살아가려고 해 보지만 벽에 부딪치고 체념 속에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려움과 곤란을 많이 겪게 되고 실패를 경험하다 보니까, 마음속에는 부정적인 생각만이 쌓이게 되고, 안된다는 생각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고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흘러 들어와  무기력 증에 빠진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그래도 현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나만큼은 안 된다 고 말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주셨던 말씀을 동일하게 들려주십니다.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위축되지 말라, 기죽지 말라, 힘을 내라, 용기를 가져라!"  따라합시다.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근거와 그 이유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습3:17).

  제 아내는 겁이 무척 많습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서 얼마 되지 않아 세미나를 참석하거나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비워야 할 상황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무서워서 혼자 어떻게 있느냐?”고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없는데 당신이라도 있어야지 며칠동안 둘 다 비우면 교회는 어떻게 하느냐?”고 설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서 아이가 태어나니까 무섭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갓난아이가 무슨 힘이 있어서 엄마를 지켜주겠습니까?  그렇지만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혼자가 아니고 남편이 함께 있고 친구가 함께 있으며 부모가 함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두려워 할 이유가 전혀 없어지는 것입니다. 낙심할 이유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바울이 죽음 앞에 이르렀을 때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려버렸고 그레스게도, 디도도 다 제 갈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와 함께 하였습니다. 바울은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후 4:17-18)"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짧은 생애동안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엄청난 일을 해 낼 수 잇었던 비결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 당시 많은 적들 가운데서 홀로 고군분투하던 마틴 루터가 하루는 극히 낙심한 모습으로 기운을 잃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기운을 잃고 낙심해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본 그의 아내 캐더린은 얼른 안방에 들어가 검은 상복을 입고 나와 남편을 맞이했습니다. 뜻밖에 상복을 입고 나오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루터는 깜짝 놀라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이게 웬일이오? 상복을 입고 있다니, 도대체 누가 죽었단 말이오?" 머리를 수그린 채 이 질문을 받은 캐더린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남편에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께서 돌아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으셨단 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루터는 더욱 깜짝 놀란 기색으로, 흥분한 어조로 반문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그런 말이 어디 있소! 하나님이 어떻게 죽으실 수 있단 말이오?"  그때 캐더린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남편에게 되물었습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당신이 그렇게까지 용기를 잃고 낙심할 수 있단 말입니까 ? " 루터는 힘을 얻어 종교개혁의 대업을 잘 완수했다고 합니다. 384장은 루터가 지은 찬송입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384장 1절)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384장 2절)

  살기가 힘겹습니까? 일에 지쳐 있습니까? 고아처럼 버려져 혼자라고 생각하며 고독해 하십니까? 끝없는 패배로 패배의식 속에 절망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할 것이니라." 이 시간 한번 크게 외쳐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와 항상 함께 계신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극력한 풀무불 속에 있을 때 그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위기의 순간에도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소박한 믿음을 가진 열두 해 혈루 증 앓은 여인처럼 늘어뜨린 손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17).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느 정도 사랑하십니까?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노력을 많이 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기질이 점액질이라 그렇습니다. 우리 같은 점액질은 좋아도 별로 흥분하는 법이 없습니다.  싫어도 잘 내색하지 못합니다. 제 아내가 얼마나 못마땅해 하는지 모릅니다.  음식을 정성을 다해 요리해서 상을 차려도 맛있다고 칭찬할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음, 괜찮네."또는 "좋네."라고 했으면 그것은 최고인 것입니다. 그렇게 무덤덤한 저 같은 사람도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 자식이니까요.  아이들이 다 컸지만 전화라도 걸어서 목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큰 아이는 군대에 있기 때문에 자주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군에 가더니 집에 전화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 하루라도 전화가 오지 않으면 집사람은 '왜 오늘은 전화가 오지 않을까?  아프지는 않은가?' 걱정을 하고 궁금해 합니다. 며칠 만에 아이에게서 전화가  와서 집사람이 "얘, 너 왜 그렇게 전화를 안 한 거야?" "부대의 공중전화가 고장이 났는데 오늘에야 고쳤어요. 엄마는 내가 전화하려면 줄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 점심시간에 일찍 밥 먹고 남들 쉬는데 쉬지도 못하고 남들 눈치 보면서 차례를 기다려 어렵게 전화하는 거 알기나 하세요." 저는 제가 아이들을 그렇게나 사랑하는 줄 몰랐습니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만 들어도 좋고 어쩌다가 집에 와서 얼굴을 보면 더욱 반갑고 좋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저에게 '그렇게 좋으냐? 나도 기도하는 네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좋다. 네가 나를 보러 오면 그렇게 반갑고 좋구나!'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자녀 삼으셨기 때문에 그렇게 입을 다물지 못하십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여러분이 오늘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나오신 것을 보시고 지금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싱글벙글하십니다. 여러분의 찬양과 기도와 봉헌을 받으시고 흐뭇해하시고 행복해 하십니다.

성도들을 보는 하나님의 기쁨은 신랑이 신부를 보는 기쁨과 같다는 것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 베풀어 주십니다. "너를 잠잠히 사랑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뜨겁고 확실하기 때문에 구태여 외부적으로 그것을 표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호들갑스럽게 사랑을 매번 표현하지 않지만 잠잠히 내려다보시며 사랑하신다는 말슴입니다.  사랑의 전류가 흐르면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때는 감동이 생기고 생기가 생기고 살맛이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 하나님만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한 번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잠잠이 나를 사랑하신다. 기쁨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사랑하신다. 나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독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가장 귀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를 구원할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사랑을 확증해 주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형벌에서 제하여 주었다고 말씀합니다. 죄의 대가에서 용서해주고 구원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죄의식에서 해방 시켜 주었다는 말입니다. 죄의식으로 손을 늘어뜨리고 낙심하며 살지 않도록 용서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은혜 의식 속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늘 죄의식 속에서 절망과 낙심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조금 부족하고 연약해도 늘 은혜 의식 속에서 소망과 기쁨을 가지고 손을 늘어뜨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원하겠습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아무리 해도 오염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은혜 의식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요1서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씀이니라."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입니다. 그 사랑은 변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여러분, 왜 어깨가 내려가고 팔을 늘어뜨리고 있습니까? 삶이 힘드십니까? 역경을 만나셨습니까?  질병을 만나셨습니까? 돈 때문에 시달리고 있습니까?  앞이 보이지 않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끈이 다 사라졌습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버리지 않고 함께 계심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절대 여러분 혼자가 아닙니다. 능력 많으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늘 함께 하십니다. 그분이 도와주십니다. 새 힘을 주십니다. 위기에서 지켜주시고 능히 극복하도록 손을 잡아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손을 늘어뜨리지 말고 일어나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고난을 당해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려간 어깨를 다시 추스리십시오. 용기를 내어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다시 도전하십시오.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문기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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