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공동생활과 복종 (히13:17)

  • 잡초 잡초
  • 200
  • 0

첨부 1


공동생활과 복종 

I. 본문 해설
본문은 사도가 핍박을 받고 있는, 혹은 핍박을 목전에 두고 있는 성도들을 향해 쓴 편지입니다.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을 일일이 열거한 후(11장),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믿음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 앞으로 나아가자는 권면(12장)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말씀 13장은 그러한 권면 가운데 특별히 교회 공동체의 생활 속에서의 복종을 언급하고 있으며,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복종하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II. 공동생활과 하나님의 통치
성도의 공동생활 가운데 명령하신 이 ‘복종’은 하나님의 통치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를 다스리시는데,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통치’라 부릅니다.

A. 하나님의 두 통치
하나님의 이 통치는 ‘자연적 통치’와 ‘도덕적 통치’로 나누어집니다.
1. 자연적 통치
첫째로, 자연적 통치입니다. 자연적 통치라 함은 세상에 창조된 모든 피조물들의 생성과 소멸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하는 것으로서, 없는 것을 태어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며, 소멸해 가도록 하셔서 마지막에는 다시금 없는 것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통해 자연은 질서를 지니게 되니 이를 자연적 질서라 부릅니다.
2. 도덕적 통치
둘째로, 도덕적 통치입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특별히 인간과 천사와 같은 영적인 피조물들에게 기대하시는 도덕적인 목적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다름 아닌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구현해 나가기 위한 하나님의 통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인간 세상은 질서를 지니게 되니 이를 가리켜 도덕적 질서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도덕적 통치를 하나님 자신의 진리를 통해 구현해 나가십니다.

B. 구속과 하나님의 통치
도덕적 목적을 가지고 창조함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범죄 하게 됨으로써 그분의 창조목적을 이탈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대속제물로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분의 중보에 힘입어 구원함을 입은 성도들이 다시금 공동체를 형성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성도의 교회생활인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이심으로써 세상을 섬기게 하셨고,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서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아래 복종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분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인간을 만드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여기에는 반드시 그분의 목적, 그분의 의지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계획을 제일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공동체입니다.

C. 하나님이 통치하심
1. 진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를 통치하실 때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진리를 통해 통치하십니다. 진리를 당신의 백성들에게 보이시고, 그 진리로 말미암아 백성들을 깨닫게 하심으로써 이성의 모든 퇴로를 차단하여,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참으로 인간답게 살아가는 진정한 도리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어줍니다. 세상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유혹과 안으로부터의 잔존하는 부패성은 성도들을 부패하게 만들며,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은 교회가 세상 시류를 따르도록 집중적으로 공격하나,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 등불을 준비하시어 그러한 어두움 가운데 참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성경과 계시의 빛을 담는 성도들의 마음, 진리의 빛을 드러내는 목회 사역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다른 어떤 일보다 이 진리의 빛을 찬란하게 드러내는 것이며, 목회자는 진리의 이 사역에 자신을 드려야 하고, 성도들은 이 빛을 소유하고 보존하는 마음이 하나님 앞에 가장 소중한 것임을 깨닫고 그 말씀에 끊임없이 복종해야 합니다.
2. 질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세우신 ‘질서’를 통해 당신의 교회를 통치하십니다. 진리를 통한 통치를 영혼에 대한 직접적인 통치라고 한다면, 이는 일반섭리의 질서를 통한 통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유기체적 질서를 지닌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을 가시적인 질서들 안에 세우셔서 그 목적을 구현해 나가십니다.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목회자를 통해 세우신 것과 보이지 않는 성도들의 연합을 가시적인 교회 가운데 세우신 것이 그것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 근거하여, 또는 성경에 기초한 교리들을 기반으로 하여 세워진 교회 내 수많은 기관들이 그 질서를 보여줍니다.

III. 통치 질서의 본질: 하나님의 의지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 질서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그분의 의지를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이고, 교회 안에 보존되어 있는 질서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통치 의지를 구현해 나가는 보이는 질서인 것입니다.

A. 신자 각 사람에 대해
첫째로 신자 각 사람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점점 더 온전한 사람이 되어가도록 당신 자신의 의지를 그분의 통치를 통해 보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신자 각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영적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을 배향하였던 길에서 끊임없이 돌이켜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에 붙들려 온전한 성도가 되어가도록 늘 애써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자 각 사람은 하나님의 의지가 개입된 교회 내 보이는 질서에 순종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를 기억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통치 의지가 담긴 교회의 보이는 질서를 교란시키며, 분쟁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한 자들 가운데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은 질서와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B. 교회 전체에 대해
둘째로 이 의지는 교회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져 한 몸을 이룬 그 전체도 소중하게 생각하시어 교회 전체에 하나님의 통치가 구현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유익을 위해 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일에 반기를 들거나, 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그 일을 방해한다면 개개인의 성도들은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 기도처럼 기도할 때에도, 말씀을 받을 때에도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각 사람의 성화는 개개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긴 하나, 이는 성례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연합되어 교회 전체에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신앙생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현재 마음을 닫고 진리의 말씀을 거역하며 불순종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는 한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흠집을 내는 일이 됩니다. 공동체와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한 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사랑하는 교회가 없고, 존경하는 목회자가 없는 사람들이 누리는 마음의 평안은 대부분 거짓입니다. 은혜 받은 신자는 자신이 받은 그 은혜를 통해 공동체가 온전해지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C. 세상에 대해
셋째로 이 의지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에 구현해 나가기 위해 부름 받은 존재이며, 그 통치를 선취적으로 맛보는 곳입니다. 베드로전서를 묵상하던 중 은혜를 받은 부분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불순종의 아들이요 사욕을 좇던 자였는데,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후에는 사도가 그 어떤 것도 자기 삶이라고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구원을 얻고 찬란한 진리의 빛 아래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자신은 사라지고, 하나님을 온전히 뜨겁게 사랑하는 것, 그 형상을 가진 이 땅의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 창조의 목적이 회복될 때까지 그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만이 자신의 본분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 입니다.

IV. 교회의 질서와 목양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 질서는 교회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까요? 이는 목양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의지인 통치의 질서를 목양의 질서 가운데 구현해 나가십니다. 교회에 위탁하신 권세는 세속적인 권세가 아니라 영적인 권세이기에 어떤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의해서만 구현됩니다. 그러므로 은혜에서 멀어져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게 되면,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질서를 함부로 보게 되며, 그 질서들을 허물고 파괴하도록 형제들을 설득하고 규합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질서를 깔보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권위를 부정하며, 진리와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루어야 할 교회생활을 분쟁과 다툼으로 몰고 갑니다. 이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에 반하는 행동들이며, 미래적으로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지적과 같이 그리스도의 심판 날에 모두 만나게 되어 그리스도의 판단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적으로는, 그의 영혼은 끝도 없는 침체 속으로 들어갈 것이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곤고함 가운데 지내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 섭리의 모든 축복도 차단될 것입니다.

A. 목양하는 사람을 세우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 구현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가시적인 질서를 세우셨으며, 특별히 목양하는 사람들을 저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부터 오는 강력한 권세로써 이 세상을 다스리셨으며, 오래 참으시는 사랑으로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며, 연약한 자를 고치시고, 일체의 오래 참으심으로 죄인들을 향한 인격적인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어느 시대이든 항상 똑같은 권세를 주신 것은 아니지만 진리로 사람들을 섬기는 목회자들에게도 그와 같은 권세와 마음을 주셨습니다.
1. 영혼을 돌봄
목양하는 사람은 진리를 가지고 영혼을 돌보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영혼을 돌보도록 부름 받았으며, 마치 자신의 영혼인 것처럼 양들의 영혼을 사랑으로 돌보는 그리스도 예수의 대리자들인 저들을 사랑하고 복종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형제들 가운데 취한 바 되었으나, 또한 어떤 면에 있어서는 여러분과 한 형제는 아닙니다. 자연적인 나이도 어리고, 세상의 경험도 부족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직 여물지 못하여 도덕적 판단이나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가 여러분을 따라가지 못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일꾼은 ‘그 사람의 상태’에 달린 것이 아니라 ‘신분’에 달린 것이기에, 진리를 전하는 자로서의 권위를 부정할 권리가 성도들에게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를 판단하시기에,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든지, 목회 사역에서 생명을 거두시든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기름 부어 세우신 종들을 당신 자신이 직접 통치하고 다스리십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따라 그에게 호소하고 건의할 수 있으나, 이 모든 일은 교회의 질서를 따라 진리와 사랑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2. 연약한 인간임
목양하는 사람은 연약한 인간이기에 복종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처럼 영혼을 돌보는 일은 영적인 일이지만 그 일들은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어찌하든지 즐거움으로 하나님과 영혼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모두 드릴 수 있도록 목회자를 도와야 합니다.

B. 양들로 복종케 하심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교회의 질서 안에서 양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복종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양들의 의무는 그렇게 세우신 목양의 질서 안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의 인격적 연약함을 용납하고, 그도 역시 구도의 길에 서 있는 한 사람으로 여기며, 하나님이 그리하셨던 것처럼 오래 참음으로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C.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심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목회자를 바라보면서 그를 통해 세우신 질서에 복종하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일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이 질서를 세우셨지만, 우리가 의지할 것은 제도의 틀이 아닌 그것을 세우신 하나님뿐임을 알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진리로 충만할 때에는 자신의 연약함을 의식하지 못하나, 고난과 시련 가운데 있을 때에는 말씀으로도, 직분으로도, 세운 일꾼으로도 충분하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주신 능력과 권세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붙들고 계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V. 결론과 적용: 온전함으로 나아가자
성도의 공동생활의 이상은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온전함은 지상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순종과 하나님의 은총으로써 가능할 것처럼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전한 성도의 교통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진리와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루며……. (김남준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