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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은 기적입니다 (요 13: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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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일을 하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매일매일 오는 손님중 한 사람, 좋은 차를 타고 와서 문을 열어주면 내리는 그 사람을 굉장히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던 날 소년은 그 손님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아저씨는 도대체 무슨 복이 있어서 좋은 차에 기사까지 거느리며 잘 살게 되셨나요?”
손님은 대답했습니다.
“사실 난 능력이 없는데 우리 형님이 굉장한 부자라서 내가 이렇게 잘 사는 거란다”
우리 같았으면 “ 야 나도 그런 형님이 한사람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부러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년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저씨 제게는 절름발이 동생이 하나 있는데 저도 아저씨의 형님처럼 내 동생에게 그런 형님이 됐으면 좋겠네요”

이런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예수 믿는 나를 통하여 내 가족과 형제가 행복하고 내 삶에 모습이 내 가족과 형제들에게 기쁨이 되고 자랑이 되는 그런 삶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사랑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때 그만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인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홀로 독거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시고 그의 돕는 배필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정을 두시고 사회를 만드십니다.
사람은 사회 공동체 속에서 서로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적자생존이니, 생존경쟁이니 하는 말을 듣고 배우면서
그것이 옳은 양 사랑하는 것은 손해보는 것이요 손해보는 것은 미련한 것이요
오직 세상은 치열하게 싸우면서 사는 것으로 알고 우리는 살아갑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랑했기에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너희를 사랑했으니 너희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예수님을 알기전 주님은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신을 구원했기에
돌에 맞아 죽는 아픔이 올지라도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복음에 빚진 자로서 평생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개미의 세계를 보면
개미의 몸의 구조 자체가 사랑의 원리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즉 위가 둘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요,
또 하나는 저축했다가 배고픈 개미에게 나누어주는 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미는 굶어 죽는 놈이 없다고 합니다.
개미는 자기에게 있는 것을 배고픈 자에게 나눠주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는 상부상조하는 동물만 살아 남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살고 남을 죽이는 짐승은 멸종합니다.

인간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도 서로 나눠주고 서로 베풀 때 함께 공존하고 함께 발전해 갑니다.
나만 살겠다고 하는 사회는 망할 뿐입니다.

서로를 위해서 힘이 되어 주고 서로를 존중해주며 살아갈 때 그곳에 평화가 있고 번영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이것은 철저한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서로 사랑을 나누어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크고 새로운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서로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사랑'하는 것은 마땅히 지켜야 할 계명이요 명령입니다.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될 의무라는 것입니다.

이제 성도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1) 첫째로 미움보다 서로 섬기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한때 런던에 유명한 세 교회가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이어 목사님, 스펄젼 목사님, 켐벨몰간 목사님이 그 분들입니다.

그중에 마이어 목사님의 인기가 약간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 마이어 목사님이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왜 그런지 나는 기도만 하려고 하면 스펄젼과 켐멜 몰간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이 자꾸만 일어날까?"
아무리 기도해도 그의 마음 속에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지금까지 시기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만 했지 진정으로 스펄젼 목사를 위해서, 몰간 목사를 위해서 축복하는 기도를 해 보았느냐?"

마이어 목사님은 무릎을 꿇고 크게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두 목사님과 두 교회가 더 잘 되게 해 달라"고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자기의 노트에 고백합니다.
"나는 이제 자유를 얻었다. 평안을 얻었다. 기쁨이 솟는다. 나에게 이러한 자유와 환희를 가져다주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고 나는 시기하고 비판했다.
하나님 이제 다시는 남을 비판하고 시기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나를 도와주시고 계속 사람들을 축복하며 살게 하소서"

다른 사람을 섬기고 축복하며 살 때에 진정한 내 마음에 자유함을 누릴 수있고 자신의 삶속에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받는 것에만 익숙해 있습니다.
남보다 앞서고 높아지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하는데에 인색해 있습니다.
주님은 섬김의 사랑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남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문 말씀의 앞에서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서로 발씻어주기를 거부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손수 대야에 물을 떠다가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스승으로서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사랑하고 섬기셨습니다.

우리는 현재 월드컵으로 전 국민이 뜨겁게 달아 올랐습니다.
그 중앙에 월드컵 축구팀 감독 거스 히딩크의 찬사가 널려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가 칭찬을 들은 것은 아닙니다
그가 와서 처음에 유럽의 강호들과 친선 게임을 통하여 특별히 프랑스 팀에게 5대 0으로 무참히 패하자 그의 별명이 “오대영”이 되었고 심지어는 국회에서 조차 그를 통렬히 비판했습니다.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웬 휴가가 그리도 많으냐 그리고 선수촌에 애인을 데리고 오느냐 더구나 막대한 돈을 들였는데 돈이 아깝다 늦기 전에 갈아 치워야 한다는 등
언론에서 무참히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때 그가 한말은 지금은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다 6월달 월드컵 현장에서 보여주겠다
세계가 놀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을 세밀하게 조사를 했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선수들의 기술이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양발을 쓰는 선수들이 별로 없는데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양발을 쓰고 기술이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점을 대표적으로 2개를 찾았습니다.
첫 번째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정신력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팀웍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선후배간에 규율이 엄격하고 그러다 보니 대화가 없고
일부선수들은 스타 플레이어로 인기전술에만 힘을 쏟고
한마디로 대원들간에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들어보니 전혀 엉뚱한 이야기입니다.
체력이 약하다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선들끼리 사랑이 없다 규율이 심하다 선후배간에 대화가 없는 것이
운동장에서 꼴을 넣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언론의 비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언론에게 그가 강조한 말은
“나는 한국 선수들을 대단히 사랑한다. 그들의 순수함은 나를 들뜨게 한다”
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볼 때에 명언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한국 선수들을 대단히 사랑한다. 그들의 순수함은 나를 들뜨게 한다“
정말로 거스히딩크는 선수들을 아버지처럼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선후배간에 함께 방을 배정하고 선후배간에 한 상에 식사를 하도록 하고 ]
여러분도 텔레비전에서 보아서 알겠지만 달리기를 할 때에도 서로 손을 붙잡고 달리게 하고 혼자만 스타 플레이 기질이 있고 훈련에 불성실한 선수들을 아예 아무리 유명해도 내 보냈습니다.

그러자 선수들간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선배가 후배를 돌봐주고 후배가 선배들을 위해서 몸을 사리지 않고 서로 열심히 훈련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제목처럼 “사랑이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45년 만에 월드컵에서 처음 꼴을 넣어 봤고 처음 승리를 하는 기적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제 더구나 16강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더 큰일은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에 정신을 국민에게 심어 주었고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서 조국을 위하여 혼연 일체의 정신을 갖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찬아도 온갖 비리로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켜면 부정과 비리 우울하게 만들었던 우리들의 마음을 환희와 기쁨을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인터넷에서는 ‘히딩크’를 대통령으로 추대해야 된다는 등 광화문에 히딩크 동상을 세워줘야 한다는 등 히딩크를 한국 사람으로 귀화시켜야 한다는 등 별에 별 찬사가 나오고 있으며 이제는 애인을 데리고 선수촌에 들어가도 좋다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그가 선수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선수들 위에 군임하지 않았습니다.
솔선수범을 보이며 때로 아버지의 엄한 모습으로 훈련을 시켰고 인자한 어머니의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끝마다
“나는 한국 선수들을 대단히 사랑한다. 그들의 순수함은 나를 들뜨게 한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능력입니다.
귀머거리에 눈멀고 벙어리인 헬렌켈러를 박사로 만들고 세계적인 명사로 까지 만든 것은 이름없는 샬리번 선생의 사랑이 헬렌켈러를 세계의 위인으로 만든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막 10:45)

그런데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섬김기보다 대접받기를 좋아하고 섬김을 받기를 좋아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다 하지만
내가 이웃을 섬김이 없다면 주님 보시기에 전혀 쓸모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주님을 사랑이 없고 섬김이 없다면
우리는 맛을 잃은 소금 덩어리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2) 두번째 우리는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즘 새벽 기도회에서 말라기서를 강해하고 있습니다.

말라기서의 중심 주제는 "너희를 사랑하였노라"(1:2)
하나님은 너희들을 향해 사랑을 쏟아 붓고 있는데 왜 너희들은 이 사랑을 깨닫지 못하느냐?
왜 그렇게 살아가느냐? 하고 책망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라 합니다.
말라기 이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하늘 문이 닫힌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비극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엘리 대제사장이 영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다가 결국 패망하였습니다.
말라기이후 선지자를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는 것으로 엄청난 비극입니다.

우리에게 하늘 문이 닫히고 하나님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인생이 비극입니다.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하여 계속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사랑하였노라"(1:2)
그러므로 돌아 오라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고 하였지만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돌아가리이까"하면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잘못한 것이 없다고 우깁니다. 그들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다시 망하고 메시야 이신 예수님을 못박는 엄청난 죄를 지었고 그 민족이 1900년 동안 나라없이 전 세계를 떠돌며 핍박을 받았고 지금도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건만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깨달아야 여러분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비결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내 좋은 대로 살던 나의 삶이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불신앙적것 불의한 것 다 버리고 하나님께로 참된 신앙으로 돌아와야 하늘 문이 열립니다.

사59:1-2
"여호와께서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고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라"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고 싶어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장롱 서랍을 열어 보니 30년전 친구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까마득히 돈을 떼어먹은 것을 회개하며 당장 찾아가서 잘못을 빌고 이자까지 얹어서 갚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하나님께 기도를 하니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와같이 사람들과 대인관계가 막히면 하늘 문도 닫힘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열려면 사람과의 관계도 열려야 합니다.
여러분 남편을 미워하면 하늘 문이 닫힙니다.
아내를 미워하면 하늘 문이 닫힙니다.

시어머니나 시아버지와 관계가 나쁘다면 하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 번째 사랑하려면 우리의 신앙도 변해야합니다.
변함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1) 잘못 변하는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변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또 하나는 좋게 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화입니다.

본래 하나님이 우리를 지은 모습은
히딩크가 한국 선수들은 사랑하는 이유는 한국 선수들은 순수하고 순진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지은 본래의 모습은 순진하고 순수한 상태였건만
우리들은 세상의 양육강식 적자생존의 원리를 배운 까닭에 우리의 보습이 가증스럽게 변질된 된 것입니다.
사람이 변질되니 자연히 하나님을 행한 신앙생활도 변질되었습니다.

이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 문이 열립니다.

여러분 내가 변해야합니다.
남을 변하라고 하기 전에 내가 변해야 남들이 변하고 하늘 문이 열리게 됩니다.
나는 변할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는 교만입니다. 바로 그것이 변해야합니다.

말라기서 3장 7절 말씀을 보면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위기 닥쳐오고 문제가 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순종하는 자에게 하늘 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은 변치 않습니다.

때를 기다리며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또한 우리를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귀하게도 하시고 천하게도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변해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이에 영적으로 막힘이 없어야 합니다.
그때 하늘 문이 열리고 쌓을 곳이 없도록 복고 귀하게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십자가의 사랑을 베풀며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내가, 그동안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고 섬기는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비록 인간적인 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 기준에서 볼 때 나와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그를 인정하고 함께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나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나는 줄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따뜻한 말 한마디, 미소로 함께 해주세요.
나의 피곤함을 생각하기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 중심으로 판단하고 다툴 여유가 우리에게 없습니다.
섭섭하다고 할 여유가 우리에게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언젠가 다시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으로 창조한 가족의 공동체 속에서 살아 갈 때에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이웃을 판단의 눈으로 보지말고 사랑의 눈으로 보십시다.
그때 우리는 이 땅 위에서 하늘나라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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