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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스겔의 부흥 이야기 (겔 3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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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한국 교회는 제 3의 부흥을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1907년 평양 대 부흥 100주년을 맞으면서 한국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다시 한번 부흥을 보내 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부흥의 모델이 되는 “에스겔의 부흥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에스겔의 부흥 이야기”를 세 가지로 나누어서 하겠습니다. 첫째, 부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둘째, 부흥이 어떻게 일어나느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셋째, 지금 우리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첫째, 부흥은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겔37:3). 부흥은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골짜기 지면에 가득한 뼈 무더기를 보여주시면서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부흥은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들이 누구를 가리켰습니까? 앗수르 사람들을 가리켰습니까? 바벨론 사람들을 가리켰습니까? 애굽 사람들을 가리켰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을 가리켰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겔37:12).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들은 범죄한 ‘이스라엘 온 족속’을 가리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 온 족속을 마른 뼈들과 해골로 보셨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여기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들은 ‘죄와 허물로 죽은 모든 인간들’을 가리킨다고 지적했습니다. “여기 관설된 뼈는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들(엡2:1)을 비유한다.” 성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중생하지 못한 형식적인 신자들’을 가리켜 죽은 자들이라고 지칭했습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 온 족속’을 바라보시면서 마른 뼈들과 해골로 보셨고, ‘허물과 죄로 죽은 모든 인간들’을 바라보시면서 마른 뼈들과 해골로 보셨고,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중생하지 못한 형식적인 신자들’을 바라보시면서 마른 뼈들과 해골로 보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37장이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치는 놀라운 진리는 하나님께서 마른 뼈들과 해골을 바라보시면서 그것들을 살리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이렇게 질문하신 것이었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겔37:3). 마른 뼈들을 살리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을 살리기를 원하는 소원과 질문이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이와 같은 소원과 질문을 에스겔은 품지도 못했고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에스겔은 마른 뼈들과 해골이 살아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죽었던 몸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물론이고 죽었던 영혼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기대도 할 수도 없었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강변교회의 상황에서 말씀 드리면, 안흥규 씨의 영혼이 살아나고 한도정 씨의 영혼이 살아나고 백혜란 씨의 영혼이 살아난다는 것은 도무지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박종서 씨의 영혼이 살아나고 김영옥 씨의 영혼이 살아나고 박선하 씨의 영혼이 살아난다는 것도 도무지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요사이도 죽어가던 영혼들이 새로 살아나서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도 죽은 자들을 살리시기를 원하셨고 지금도 죽은 자들을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아직 중생하지 못한 형식적인 신자들도 살리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인자야, 강변교회를 섬기는 나의 종 김 목사야, 아무 아무개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아무 아무개 신자들이 능히 살겠느냐?”

  부흥은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부흥은 죽은 자들과 죽어가는 자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고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깊이 만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너희가 살리라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겔37:6).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깊이 만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또한 사람들을 깊이 만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으로 성도들과 깊이 만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겔37:7). 성경에서 살아난다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 것을 말하고 둘째는 사람들을 만나서 사람들과 교제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하고 성도들과 사랑으로 교제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죽은 자들이 살아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사람들을 깊이 만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부흥입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부흥은 한 번에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생명은 한 번에 태어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영양 실조로 또는 질병으로 죽어가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부흥을 경험하여야 하고 주님으로부터 계속해서 생명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부흥은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것이고 죽어가는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둘째, 부흥은 하나님의 사람에 의해서 그리고 말씀과 성령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부흥을 소원하시고 부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통해서 부흥을 주십니다.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들을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통해서 마른 뼈들을 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마른 뼈들을 살리십니다. 하나님의 사람 에스겔을 통해서 마른 뼈들을 살리셨습니다. 에스겔의 신앙과 순종을 통해서 마른 뼈들을 살리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질문에 대한 에스겔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겔37:3). 이것은 자기의 무지와 무능을 고백하는 신앙 고백이었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고백하는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나는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나 에스겔과 같이 자기의 무능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와 부흥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부흥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만을 믿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베드로가 필요하고 길선주 목사님이 필요하고 이성봉 목사님이 필요하고 김치선 목사님이 필요합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분부에 절대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두 가지를 분부하셨습니다.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겔37:4).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겔37:9).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살리시는 구원의 역사와 부흥의 역사를 두 가지 방편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신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교육도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교육을 통해서 사람을 살리시지는 않습니다. 의학도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의학을 통해서 사람을 살리시지도 않습니다. 정치 사회 개혁도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정치 사회 개혁을 통해서 사람을 살리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신을 통해서 사람들을 살리십니다.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죽은 사람들을 살리십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분부에 절대 순종했습니다.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겔37:7).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마른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에스겔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분부에 따라서 생기를 향하여 대언했습니다. “이에 내가 그 명대로 [생기에 대하여]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37:10). 마른 뼈들과 해골들이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 의해서 그리고 그가 대언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신에 의해서 마른 뼈들과 해골들이 살아났습니다. 큰 군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고 성령님을 모신 신앙의 공동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셋째, 지금 우리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모두 부흥을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 개인의 소원과 기다림에 그치지 않고 한국 교회 전체의 소원과 기다림으로 이어집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 제 3의 부흥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들의 모습이 마른 뼈들의 모습과 비슷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죽은 자의 모습이거나 죽어가는 자의 모습과 비슷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지금 새로운 부흥이 필요합니다. 새로 살아나는 일이 필요합니다. 기도가 살아나야 하고, 회개가 살아나야 하고, 눈물이 살아나냐 하고, 용서가 살아나야 하고, 사랑이 살아나야 하고, 온유와 겸손이 살아나야 하고, 검소한 삶이 살아나야 하고, 거룩한 삶이 살아나야 합니다. 주님을 사모하고 천국을 사모하는 간절함이 다시 살아나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제3의 부흥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부흥이 올 수가 있습니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대언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하고 생기를 향하여 대언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길선주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들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어가는 강변 교회와 한국 교회에 불어서 한국 교회의 성도들로 하여금 다시 살게 하라"라고 대언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강변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 부흥의 역사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우선적으로 여러분들의 목자로 여기 서 있는 저 자신에게 있습니다. 오늘 이 강단에서 길선주 목사님이나 이성봉 목사님이나 김치선 목사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시고 하나님의 생기에 대해서 대언하신다면 여기에 계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부흥을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기도가 살아나고, 여러분들의 회개가 살아나고, 여러분들의 눈물이 살아나고, 여러분들의 용서가 살아나고, 여러분들의 사랑이 살아나고, 여러분들의 온유와 겸손이 살아나고, 여러분들의 검소한 삶이 살아나고, 여러분들의 거룩한 삶이 살아나고, 주님을 사모하고 천국을 사모하는 간절함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부흥의 역사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저 자신에게 있습니다. 제가 때로는 여러분들의 영적인 DNA 탓이라고 책임을 여러분들에게 전가했지만 사실 그 책임은 저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목자로서의 책임을 절감하며 하나님 앞에 그리고 여러분들 앞에 깊이 사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조처를 내려주시기를 바라고 기다릴 뿐입니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들이 듣고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듣고 하나님의 신을 영혼에 받아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죽은 자들도 어느 정도 들을 수가 있고 죽은 자들도 어느 정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향해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했을 때 나사로가 듣고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들도 어느 정도 듣고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과 같이 된 배신자 제자들을 향해서 “숨을 내 쉬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했을 때 저들이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엡5:14). 영적으로 죽은 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느 정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신을 어느 정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신은 본래 죽은 자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망의 그늘 진 땅에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죽은 자들도 들을 수 있고 죽은 자들도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사데 교회를 향해서 주님께서는 들으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3:1,2,6). 여러분들이 들어야 하고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려고 사모하며 애를 써야 하고 생기를 받으려고 사모하며 애를 써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들을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죽어가는 자들을 다시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범죄한 이스라엘 족속이든지, 죄와 허물로 죽은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든지, 또는 중생하지 못한 형식적인 신자이든지, 하나님께서는 마른 뼈들처럼 죽은 자들을 지금도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바로 대언하고 하나님의 신을 바로 대언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말씀이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저는 말씀이 충만하지도 못하고 성령이 충만하지도 못하고 기도가 충만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같이 부족하고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로 만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할 뿐입니다. 그리고 말씀과 성령이 충만하고 기도와 회개가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 땅 곳곳에 일으켜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할 뿐입니다.

  우리 강변교회 성도들과 우리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신을 받도록 간절히 사모하여 애를 써야 할 것입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에는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 곳곳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하나님의 생기를 받기 위해서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자기의 개인적인 일들을 다 제쳐 놓고 모여들었습니다. 사랑하는 강변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바랍니다. 사랑하는 강변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듣는 귀를 주시고 받는 마음을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바랍니다. 바로 이 곳에, 바로 이 강변교회에, 우리들이 사모하고 기다리는 부흥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바랍니다.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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