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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 보이십니까? (마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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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킨라빈스’라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아이스크림 회사가 있습니다. 31 가지의 다양한 아이스크림 맛을 개발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저는 다채로운 맛 가운데 망고 맛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스크림이 지나친 칼로리에 각종 첨가제가 들어간 불량식품이라고 고발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이 회사의 상속자 존 라빈스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이스크림 콘 모양으로 만든 수영장에서 놀았습니다. 키우는 고양이 이름에도 아이스크림 이름을 따서 불렀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부와 회사를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삼촌 버틴 베스킨이 50 대 초반에 심장마비로 돌연사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삼촌이 회사에서 아이스크림 맛을 연구하기 위해 너무 많은 아이스크림을 먹은 탓입니다. 그 후 그는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건강을 해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은 높은 포화지방이 많아 콜리에스톨 수치를 높여 심장질환을 유발합니다. 그는 아이스크림 성분을 밝히는 고발성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 아버지 회사를 상대를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 아이스크림 회사를 결코 물려받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막대한 부를 포기하고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외곽에 전원주택을 짓고 소박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집에서 재배한 채소를 먹고 운동을 하고 삽니다. 60 세가 넘은 나이에도 30 대 못지않은 근육질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책과 강연 활동을 하며 패스트후드 식품들을 식탁에서 몰아내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존 라빈스는 사람들의 건강을 담보로 돈 버는 것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세계 최고 수준의 부귀영화가 보장되었지만 과감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는 어두움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는 바른 인생의 길을 찾았습니다. 그가 치른 대가는 컸지만 얻은 것에 비하면 오히려 초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두움 가운데 있지만 깨닫지 못합니다. 어두움에 익숙해지면 어두운 것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세상일에는 약삭빠르고 똑똑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일에는 무감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하늘로서 오는 표적이 어떤 것입니까? 땅에서는 평소에 볼 수 없는 희한한 광경일까요?

표적을 구하는 이들에게 불순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본문 1 절을 보면 이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표적을 구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어떤 표적을 보여 주어도 이들은 트집을 잡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이 행한 모든 기적과 능력을 하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힘의 아니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게 나타난 모든 능력은 하늘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 마술사들도 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라고 깎아 내렸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어떤 기적을 나타내도 트집을 잡을 판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과 입장이 반대입니다. 사두개인들의 신앙관은 표적을 믿지 않았습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현실주의자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아예 예수님이 표적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온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성령과 천사의 존재와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천사도 부활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둘은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만나면 서로 신앙의 적입니다. 그런데 이 둘이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뭉쳤습니다.

이들은 답을 미리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떤 표적을 보여 주어도 눈속임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트집을 잡아서 예수님을 궁지에 몰려고 했습니다.

애굽의 바로가 그랬습니다. 모세는 바로 앞에서 10 가지가 넘는 표적을 나타냈습니다. 바로는 술객들을 불려서 모세의 표적을 흉내 냈습니다. 바로의 마음은 강퍅했습니다. 모세의 표적은 모두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낸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바로는 끝까지 땅의 표적으로 보았습니다. 마음이 닫혀있었기 때문에 하늘의 표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큰 아들까지 죽자 하는 수 없이 모세에게 백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곧 마음이 굳어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으려고 병거를 몰아 추격했습니다. 결국 바로의 병거와 기병들은 홍해 바다에 빠져 몰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성경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이렇습니다. 어쩌면 이토록 바로의 마음이 강퍅할까? 웬만하면 인정하고 믿을 텐데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표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어두움에 익숙해진 자들의 특징입니다. 전도를 해보면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뜨거운 가슴으로 설명해 줘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끝까지 원숭이가 인류의 조상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습니다. 우주 만물이 저절로 우연히 생겼다고 우깁니다. 하나님의 존재나 영적인 세계관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교회에 나아와 예배하는 여러분들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이런 영적 세계관을 인정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굳어지지 않았습니다. 영적 진리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그럼 영적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들이 그리도 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일에는 어찌나 약삭빠른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고 예상합니다. 한편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고 합니다.

저녁에 하늘이 붉은 것은 표적입니다. 이런 징조가 나타나면 다음 날은 맑습니다. 경험적으로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천기를 헤아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어부는 날이 궂으면 항해를 연기해야 합니다. 농부는 비가 오는 것 같으면 고랑을 정돈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은 천기를 헤아리는 능력이 뛰어나지 못합니다. 오히려 짐승들이 본능적으로 천기를 놀랍게 예측합니다.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면 짐승들은 미리 대피를 해서 죽음을 면합니다. 개구리가 심하게 울면 비가 오지 않습니까?

며칠 전에 영등포 신길동의 한 2 층 주택이 새벽 1 시 50 분에 무너졌습니다. 집이 무너질 줄도 모르고 모두 곤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너지기 직전에 느닷없이 마당에서 개가 짖어대는 소리에 식구들이 잠이 깼습니다. 어찌나 필사적으로 짖어대는지 놀라서 모두 밖으로 나온 순간에 집이 무너졌습니다. 식구들은 도둑이 든 줄 알고 벌떡 일어나 뛰어 나왔습니다. 7 개월 된 강아지 이름은 복돌이입니다. 복돌이는 노후된 집이 무너질 줄 미리 알고 자지러지게 짖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에 비하면 사람의 예측 능력은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런데도 날씨 변화를 여러 경험 정보에 의해 미리 예측합니다. 지금은 기후 관측이 과학적으로 발달해서 거의 맞추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하늘을 보고 날씨의 낌새를 알아채는 것은 대단한 재주입니다. 그들은 삶의 지혜가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실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에 대해서 이리도 무감각할 수 있는가? 그렇게 반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역설적입니다.

사실 이들은 시대의 표적 전문가들입니다. 그러면서 하늘의 표적에는 둔감합니다.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임한 것을 왜 모릅니까? 예수님이 메시아이시기 때문에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 아닙니까? 맹인이 눈을 뜬 것 아닙니까? 농아가 귀가 뚫리고 입이 열린 것 아닙니까?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고 남은 것 아닙니까? 죽은 이가 살아난 것 아닙니까?

이 모든 징조들이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능통한 이들이 왜 이런 표적을 보고도 예언과 연결 짓지 못합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면서 말씀에 어두운 것입니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보십시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시대의 표적에 민감합니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귀를 세우고 듣고 보고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날아드는 세계 경제 지표와 흐름을 읽고 있습니다. 뉴욕의 주가지수와 기름 값과 콜금리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남보다 한 발 앞서 움직여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표적은 정보력입니다. 누가 더 빨리 정확한 정보를 가졌느냐는 곧 돈을 버는 능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외환딜러들에게 정보를 확보하는 일은 경제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남보다 몇 초 더 빨리 판단하고 팔든지 사든지를 결정합니다. 그 순간에도 수천만 달러가 왔다 갔다 합니다.

요즘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시대의 표적이 중요합니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아파트 시세에 민감합니다. 정부 정책과 행정에 따라 버려진 땅이 금싸라기 땅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어디 한 군데 잘 마련해두면 자손 대대로 물려줄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아파트를 살 건지 팔 건지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합니다.

어느 교회가 땅을 사두었는데 10 배로 올라서 돈을 벌었다고 좋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교회도 시대의 표적을 따라 투기를 잘 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의 표적을 민감하게 보고 계십니까? 거기 온 정신을 쏟고 계십니까? 뭉텅이 돈 다발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입니까?

교회가 땅 투기해서 돈 벌었다는 이야기는 들으면 씁쓸하지 않습니까? 누가 아파트를 배로 남겨서 팔아 돈 번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들리지 않습니까? 돈에 따라 도는 이 세태를 보면서 뭔가 허전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저 우리들은 돈 버는 것이라면 이문을 조금 남기는 장사를 하거나, 직장에서 열심히 땀 흘린 노동의 대가로 받는 것이 전부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남들처럼 약삭빠르게 재주를 부리며 돈을 벌지 못해 미련하게 느껴지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시대의 표적을 따라 세속적으로 벌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사회 정의에 따라 벌어야 합니다. 한탕으로 크게 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지혜롭게 준비해서 하나님의 복으로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수고의 땀이 있어야 합니다. 쉽게 벌고, 빨리 벌고, 왕창 버는 이야기는 피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버느냐는 하나님의 관심이 아닙니다. 얼마나 의롭게 쓸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사실 세속적인 시대의 표적을 따르는 자들에게 하늘의 표적을 이야기 하는 것은 소귀에 경 읽기입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이들을 향해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꾸짖고 계십니다. 본문 4 절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

마지막 구절이 싸늘하게 다가옵니다. 저희를 떠나가시다. 주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떠나셨다는 짧은 보고입니다. 저들은 주님을 잃었습니다. 저들은 주님을 놓쳤습니다. 표적을 구하다가 가장 중요한 분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한탕주의로 번 돈이 다 어디서 나옵니까? 내가 한탕으로 돈을 버는 순간 한 켠에서 그 돈을 잃고 피 눈물을 흘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 하나 잘되자고 남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복입니까?

세계적인 아이스크림 회사를 과감하게 포기한 존 라빈스의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존 라빈스는 표적을 제대로 보았습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세속적인 시대의 표적이 아니라 하늘의 표적이었습니다. 나도 살고 남들도 살리는 길을 분별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런 방법으로 돈을 번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한 가지 표적을 흘리셨습니다. 바로 요나의 표적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서 3 일 동안 있다가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무덤에 장사까지 지냅니다. 그러나 3 일 만에 다시 부활하십니다.

이것보다 확실한 하늘의 표적은 없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구약 성경에 나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구약 성경을 믿습니다. 요나의 표적도 믿습니다. 요나의 표적을 믿으면 십자가와 부활을 못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세 가지 종류의 표적이 나옵니다.

처음에 하늘의 표적입니다. 이 표적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그들의 마음에 하늘의 표적은 본래 없었습니다.

다음은 시대의 표적입니다. 시대의 표적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전문입니다. 하늘을 보면 날씨를 척척 알아맞춥니다. 그들은 시대의 표적에 민감합니다. 세심하게 하늘의 변화를 살핍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늘에서 본 것은 날씨뿐입니다. 하늘에서 하늘의 표적을 보지 못합니다. 날씨 너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보여주시는 영적이 표적을 정작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보여 주신 표적이 요나의 표적입니다. 이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지금 눈앞에 표적 자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가장 분명하고 가장 또렷한 하늘의 표적을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합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십니다.

여러분 날씨를 헤아리는 것 아주 중요합니다. 날씨를 잘 분별하면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날씨를 잘못 헤아려 우산을 준비 못해도 괜찮습니다. 남들처럼 약삭빠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날씨 너머에 하늘의 표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부활을 보십시오. 거기 영생 구원의 복이 있습니다. 참 행복과 기쁨의 인생이 있습니다. 이 하늘의 표적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황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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