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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가장 큰 계명 (마 22: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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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나와서 물었다.
(마 22: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이 때 예수께서 서슴치 않고 답변하셨다.
(마 22:37)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셨으니
(마 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의 답변에 대하여 율법사는 침묵하고 말았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613가지로 나누어서 어느 계명이 더 큰 계명이냐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주 논쟁을 벌여 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 전체를 요약해서 두 가지로 말씀하셨고, 율법의 중심 사상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율법의 조항에 집착함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율법의 정신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었기 때문에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본분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그 구체적이고 분명한 지침이 바로 십계명이다. 그 중에서도 1-4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1.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2.우상숭배하지 말라.
3.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이 네 가지는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의무 조항이라 말할 수 있다. 이 계명을 지킬 때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요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어서는 안된다. 우상을 만들어서도 안되고 섬겨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구원해 내셨기 때문이다.

출15장은 홍해를 안전하게 건넌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영광을 돌리며 부른 찬송의 내용이다.
(출 15: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출 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 15: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이 노래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엇이겠는가?
- 나는 일평생 이제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며 그 분께만 영광 돌리며 찬송하며 살리라!

그러나 이 고백은 오래 가지 못했다. 모세가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으로 올라가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을 중심으로 해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그 앞에서 절하고 춤을 추었다. 1 2 3계명이 일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었고,
-우상을 만들어 섬겼고,
-금송아지를 향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구해낸 하나님이라 일컬었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은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찌 이렇게 속히 하나님을 배신하고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을 만들었는가?
그 원인은 오랜 기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면서 우상을 섬겨 왔던 죄악의 습관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경험한 시간은 짧았다. 비록 그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언약을 맺었지만 그들 마음 속에는 여전히 죄성과 우상숭배의 근성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친구 따라 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그 자리에서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눈물 콧물 흘리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이제 예수님만 섬기며 살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며칠 후 퇴근 후에 직장 동료들과 함께 술 좌석에 앉아서 한 잔 두 잔 마시다 곤드레 만드레가 되었다.

예수 믿고 교회당에 나왔다고 갑자기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 다니지 않을 때의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담배에 여전히 손이 가고, 술잔에 입술을 갖다 대는 것이다. 당장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니면서 옛사람이 습관들을 한 가지씩 한 가지씩 벗어내는 것이다.

이곳에서 살다가 4단지로 이사간 분들이 몇 분 있다. 어느 날 퇴근을 하는데 이전에 자신이 살던 곳에 와 있더라는 것이다. “어 내가 왜 이리왔지?” 익숙해지기까지 상당 기간 혼란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주일이면 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40년간 광야에서 천막생활을 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들의 굳어진 악한 습관과 죄악의 물을 빼내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그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을 보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아, 오늘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구나.”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커다란 기대와 소망을 안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힘차게 들어 갔다. 이제 그들에게는 더 이상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없었다. 대신 그들에게는 십계명을 담은 법궤가 있었다. 진두에서 제사장들이 법궤를 질머 메고 앞장 서서 걸어갔다. 그들은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고 가나안 땅을 점령했다.

법궤가 진두에 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곧 계명을 그들의 삶의 최우선에 두라는 교훈이다. 그것은 또한 행복한 삶의 보장이기도 하다.

(신 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신 28: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신 28:4)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신 28:5)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신 28: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역시 죄악의 습성들을 버리지 못하고 쉽게 바알신을 섬기고 우상을 만들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었다. 그 후에도 계속 그들은 회개치 않고 계명을 지키지 않다가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그것이 바로 BC 587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 당한 사건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우상숭배한 결과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불러 들였고 결국 다시 노예 생활로 돌아 갔다.

1948년 5월10일, 영국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이 다시 독립을 하게 됐다. 그러나 무려 2600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이 신세로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왔었다. 지금까지도 평안할 날이 없다.

결국 이스라엘의 실패는 그들을 구원해내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했다면 다른 신을 섬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우상을 만들고 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졌을 때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게 되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게 된 것이다.

젊은 남녀 간의 사랑이 불붙었을 때 직장이 부산인 남자 애인은 서울에 있는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나 KTX 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한 번 약속한 것은 어떤 희생을 치루고라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사랑이 식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번 주에 일이 너무 많이 밀렸어. 올라가기 힘들 것 같아. 가보도록 노력해 볼께.”

일주일 내내 여자 친구가 별로 생각나지도 않고, 다른 여성에게 눈이 돌아가게 된다. 사랑의 열기가 식었기 때문이다. 부부간에도 사랑의 열기가 식으면 의무감으로 살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사랑이 식으면 의무감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형식적으로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게 된다.
한 시간 드리는 예배가 지루하고 빨리 끝나서 다른 재미를 찾으려고 한다. 첫 사랑이 식어졌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기 바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예수님은 먼저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여 그 피 값으로 우리를 구원해 내셨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영원한 생명을 받은 자요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후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우리가 사랑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 구체적 실천 방안은 계명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1.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2.우상숭배하지 말라.
3.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 계명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해 보기 바란다.

이제 다음 주면 추석 명절을 지키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 유쾌한 날이 되지 못한다. 제사드리는 문제로 인해 부모 형제간에 갈등이 불거지고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즐겁다기 보다는 부담스럽고 불편한 날이 명절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분명히 우상을 섬기는 죄악에 해당된다. 그리고 내 자신이 분명히 하나님을 믿노라고 고백하는 성도라면 제사로 인해서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은 제사를 없앴더니 집안이 편안치 않고, 묘자리가 나빠서 되는 일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나도 조부께서 살아계실 때는 장손으로서 제주 노릇을 한 적도 있었다.
오히려 우리 집안은 제사를 치움으로 인해 복을 받았다.

제사를 잘 지내서 후손이 잘 되고, 가정이 평안할 것 같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제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조상의 얼을 빛내는 것은 제사를 정성껏 드림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후손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면 조상이 빛이 나는 것이다. 우상섬겨서 잘 되는 민족이 없다.
(사 44:9)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의 기뻐하는 우상은 무익한 것이어늘 그것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만 하는가?
1.먼저 제사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제사를 드릴 때 위패를 쓰는데,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 하여 신위(神位), 즉 조상귀신이 좌정하였다는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은 고유의 미풍양속이요 부모공경의 우선된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사 행위는 분명히 종교행위에 해당되는 것이다.

원래 제사는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제사 제도가 일반화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태조가 유교를 받아 드림으로 조상숭배 사상이 유교의 효사상과 결합되어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국시로 삼았던 것이다. 오늘날 모습은 미풍양속이요 부모공경의 예라 하여 맹목적으로 덩달아 제사상을 차리고 제사드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2.제사 드리는 것에 대한 분명한 자신의 입장을 선언해야 한다.
돌아가신 후에 성대한 제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효사상이 기독교 사상 보다 더한 종교가 있는가?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정말 열심히 공경하고 효도하기로 결심하고 시행하라. 그리고 자신과 가족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좋다.
- 나와 내 가족은 하나님 만을 섬기겠노라.
- 가족들에게는 정중히 양해를 구하라. 처음에는 불편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하게 된다.

3.가족들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오랜 전통과 습관을 하루 아침에 버리거나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믿지 않는 부모님이나 형제들에 대하여 인내와 배려가 필요하다. 무조건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더 관심과 사랑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번 추석 명절을 기해 제사 문제로 인해 고민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먼저 순종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결단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과 함께 부모님 공경하는 일이 중요하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부모님과 형제 사랑을 통해 하나님 사랑을 경험하는 명절이 되길 바란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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