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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말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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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이겠습니까?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를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다 잡아서 감옥소에 처넣었던 사람입니다.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다메섹까지 가서 신앙의 사람들을 박해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후에 놀랍고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서 예수님을 증거하고, 전도하는 사도로 바뀌게 됩니다.
누구에요?
바로 바울이라 일컫는 사울입니다.

사도하면!
아무에게나,
교회를 다닌다고,
세례를 받았다고,
누구나 다 부르는 직책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시고,
임명한 사람에게만
붙일 수 있는 직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너무나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사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롬 1:1에서는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나 바울은”이라고 하였고,

고전1:1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1:1에서도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
이 얼마나 당당합니까?
이 얼마나 떳떳한 모습입니까!

소망의 백성들이여!
그 언제든지,
누구 앞에 서든지,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나는 믿음의 사람”

이라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외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바울이 이토록 떳떳할 수 있었을까요?

사람이 사람을 뽑아보세요.
학력을 적으라고 합니다.
고향이 어디냐고 따져 묻습니다.
결혼을 했느냐? 그것도 초혼이냐, 재혼이냐,
세상에서 상 받은 것이 있느냐, 벌 받은 것이 있느냐?
학교는 어디냐?
키는 얼마냐?
체중은 어떻게 되느냐?
예쁘냐 아니면 못 생겼는가?
얼마나 이것저것 따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따지는 게 없습니다.
사울인데도,
포악자요, 훼방자요, 핍박 자였던 사울을 사도로 뽑으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적인 조건으로 보면, 사울은 도저히 뽑힐 수 없는 사람입니다.
고전 15:8-9에서도 “내가 교회를 핍박하였으니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할 수 없다.”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따지시는 것이 없단 말입니다.

저 자신을 돌이켜 봅니다.
과거를 들추어내자면?
따지고 든다면?
목사가 될 수 있었을까요?
따지고 든다면 누가 완전한가요?

그렇습니다!
잘난 것이 없는 나를 뽑아 주셨으니 감사,
연약한 나를 버리시지 않고 오늘도 세워 주셨으니 또한 감사, 감사!
부르시고 옛 것을 묻지 않으시니 그것도 감사!
죄 많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평안을 주시니 우리는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바울을 사도로 부르신 아버지께서
나를 불러 주셨으니,
나 같은 못난이까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그러나 세상은 보세요!
뽑아 놓고는, 잘라 버리고,
세워 놓고는, 흔들어 대고,
약속 하고서는, 잊어버리고,
손바닥 뒤집듯이 변질되는,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주홍같이,
진홍같이,
붉은 죄를 흰 눈처럼 씻어 주시면서,

쓰러져 있을 때는 손 내밀어 주시고,
병에 걸려 고통스러울 땐 치료해 주시는 아버지,
나를 살려 주시는 아버지,
두 손으로 꽉 잡고계신 하나님 아버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시는 아버지
계 14:13에서는 “주 안에서 죽으면 수고를 그치며, 쉬게 될 것이라고” 죽음 이후까지라도 책임지시는 아버지!
이 얼마나 평안이 넘쳐납니까?
얼마나 당당합니까?
그러므로 세상에서 당당하게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2절도 보세요.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사람들을 형제라고 부릅니다.

3절을 보세요.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쫒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형제끼리 은혜와 평강으로 축복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 정도 돼야 진짜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형제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왜
싸우고,
다투고,
미워하고, 왜 그런 일들이 벌어집니까?
이건 형제가 아니라 원수에요. 원수.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하십니까?

1.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2. 내 맘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히인 보배로다
나의 보화를 캐내어 가져갈 자 그 누구랴 안심일세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3. 내 영혼에 평화가 넘쳐남은 주의 축복을 받음이라
내가 주야로 주님과 함께 있어 내 영혼이 편히 쉬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4.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하나님께서 뽑아 주셨고,
그래서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니,
두려움이 없는 내 마음!
사명 앞에서 떳떳한 내 모습!
이런 믿음이 있을 때 진짜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서울에 암 선고를 받으신 집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때만 해도 암에 대한 보험 혜택이 없어서 약값이 엄청나게 들어갈 때였습니다.
집사님께서 기도하시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영혼 구원을 위해 목숨까지도 다 주셨는데,
그 생명까지도 모자라서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이 약값을 써야하는가?
천국 백성으로 살려 주셨는데도 허구헛날!
나 자신만 위해 살고 있는가?
생각하니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이제는 이 약값을 거리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을 위해 써야지,
그 때부터 집사님의 얼굴에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흐르기를 시작합니다.
얼굴과 얼굴을 바라보며 웃게 됩니다.

이렇게 되니 5절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영광을 돌리는 사람,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형제로 보이는 복된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진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박세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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